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210 (10월 26일) 슬로베니아 류블라냐, 블레드에서

프리 김앤리 2009. 10. 29. 17:25

 <히치하이킹으로 크로아티아에서 슬로베니아까지>

플리트비체에서 잘 쉬고 이제 다시 자그레브로 올라가야 한다.

오늘 중으로는 슬로베니아의 류블라냐에는 들어가야 시간 맞춰 로마로 내려갈 수 있으니까...

오전 6시 50분 아니면, 11시 출발 버스 밖에 없다.

11시 버스를 타면 자그레브에 오후 2시나 다 되어야 도착하고, 그러면 류블라냐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또 몇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캄캄한 밤이나 되어야 겨우 도착할 수 있을라나?

 

10시 40분. 버스가 온다는 조그만 부스에 앉아있었다.

서너명이나 앉을 수 있을까?

정말 콩알만한 부스다.

우리가 있는 걸 모른 채 그냥 버스가 지나가버리면 어쩌나 조마조마하다.

안개비가 내리는 거리. 부스 안에 앉아있지 못하고 밖에서 서성거린다.

며칠동안 억수같이 내리던 비는 멈추었지만 아침 안개가 자욱하고

거리에는 사람도 차도 아무것도 없다.

 

저기서 차 불빛이 보인다.

버스가 벌써 오나?

아니다. 자가용이다.

버릇처럼(?) 손이 번쩍 올라간다.ㅋㅋ

아!!!!!! 그런데 차가 깜빡이를 켜고 우리 앞에 삑--- 선다.

'우리 자그레브로 갈 건데, 좀 태워줄래?'

두번 물어보는 것도 없다.  OK!!!

 

무슨 이런 일이...

운전석 옆자리 , 뒷자리 할 것 없이 널부러져 있는 자기 짐들을 치우는 데 한참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까지 하면서 우리를 태워주시다니...

후후후 정말 고마운 사람...

 

먼길까지 동행이 되어 떠난다.

조건은 단 한가지.

자기는 지금 크로아티아 돈이 하나도 없단다.

그래서 톨게이트 비가 나오면 우리보고 좀 내달란다.

흔쾌히 OK!!

'1시 전에만 도착하면 잘 하면 류블라냐로 가는 앞 기차를 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은근히 기대로 하면서...

 

동행... 참 신기한 우연이다.

마리아. 50대 후반의 슬로베니아 아줌마다.

"그래요? 우리도 지금 슬로베니아로 가려고 하는데...

 자그레브에서 류블라냐까지 가는 기차를 탈 거거든요.

 혹시 류블라냐까지 가세요?"

우하하하!!!

아줌마는 류블라냐까지 가신단다.

어찌 이런 행운이...

그렇다면 굳이 자그레브까지 갈 필요도 없다.

중간에 Kralvac에서 슬로베니아 국경을 넘어가면 더 빠르다.

캄캄한 밤이나 되어서야 도착할 줄 알았는데, 오후에 도착할 수 있겠다.

ㅋㅋ

 

룰루랄라..

한국이야기, 크로아티아 이야기, 슬로베니아 이야기를 슬슬 하는데...

이게??? 이게???

어째 좀 이상하다. 아줌마의 상태가...

굉장히 흥분한다. 아니 굉장히 감성적이라는 표현이 맞나?

운전을 하는 데 집중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 하는데 더 집중한다.

뒤따라 오던 차가 우리 차를 앞질러가면 뭐라 뭐라 소리지른다.

우리나라에서 운전할 때 사람들이 그냥 한번 욕지거리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

운전대에서 손까지 놓으면서 삿대질도 하고 쉬지않고 반복적인 중얼거림.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crazy'라고 했다나?

그러면서 갑자기 빨리 속도를 내기도 하다가.. 또 천천히 가다가

그러다가 또 갑자기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하다가.. 또 뭐라고 알아듣지 못하는 자기 말로 중얼거리고

속도를 빨리 하기도 하고... 천천히 하기도 하고...

불안해 죽겠다.

 

끊임없는 이야기. 가족 이야기를 시작하더니, 자기 남편 욕을 하기 시작한다.

알고보니 3년전에 이혼했단다.

이혼 이후로 자기는 완전히 파산했고.

남편이 몇년간 자기를 한번도 가까이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부터,

남편의 바람행각이 얼마나 심각했는가까지.

두 아들을 결국 빼앗겨 버렸다는 이야기...

끝도 없이 이어진다.

결국엔 울기까지 하신다.

 

운전을 하면서 자기 가방을 막 뒤진다.

사진을 한장 꺼낸다.

왠 미인대회 사진?

우리나라로 치면 미스코리아대회랑 같은 거다.

유고슬로비아 미인대회. 19살때 출전했단다.

2등까지 하셨단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미스코리아 선인 셈이다.

그러면서 또 가방을 뒤적거린다.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 내가 가방을 쥐고 안에서 빼주는 했지만

불안해 죽겠다.

이번은 목과, 다리 허리 부분에 피멍이 들어 있는 사진이다.

남편이 자기를 이렇게 만들어 놨단다.

죽어서 하나님 앞에 갔을때 '간음하지 말라'는 모세의 십계명을 지키지 않은 자기 남편은 천벌을 받을꺼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리움으로 가득차서 또 울먹인다.

 

한때 미인대회에서 2등까지 차지한 마리아 아줌마가 결혼을 하고 나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불쌍한 생각이 들면서도

먼길까지 같은 차 안에서 동행을 하는 현재의 우리는 불안해 죽겠다.

 

차창밖으로는 정말 아름다운 슬로베니아 풍경이 펼쳐지는데

마리아 아줌마는 울다가, 이야기 하다가, 운전대를 놓았다가, 마주오고 앞서가는 차한테다 대고

욕도 하고 중얼거리기도 하고...

맞장구치면서 이야기 하기가 너무 힘들다.

"다 잊어버리세요. 불행했던 과거는...

 이제 남편도 잊어버리고 앞으로 남은 당신의 인생이 얼마나 행복해질지만 생각하세요"

진정으로 마리아가 괴로웠던 지난 날들을 잊어버리고 앞으로는 행복하게 살기만을 바라는 마음도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흥분하는 마리아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기도 했다.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오늘 우리가 마치 하나님이 자기에게 내려주신 선물같단다.

플리트비체의 어느 길가에서 딱 그 시간, 우리가 기다려 자기에게 다가와 준 것이라고...

앞으로는 즐거운 일만 있을 것 같다고 넘어갈 듯이 웃는다.

 

숫자에는 얼마나 집착하는지...

마주오는 차, 앞서 가는차, 심지어 백밀러로 보이는 뒤차 번호판까지 다 읽고

'저건 불행의 징조다.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다.

 저건 괜찮은 거다. 우리 둘재 아들이 태어난 날이다.'

생일, 제사 정도를 기억하는 건 일상적이라 하더라도

자기 남편이랑 처음 만난 날, 남편과 함께 어디를 여행한 날, 큰 아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은 날,

자기 시누이가 자기에게 뭐라고 한 날....

모든 숫자에 모든 기억을 다 더듬어가며

또 흥분하고 또 울먹이고...

또 남편이야기, 이혼이야기, 자기의 불행했던 결혼 이야기...

 

미치겠다.

히치하치킹을 괜시리 했나?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탔으면 바깥 경치 보면서 즐기거나 아니면 편히 잠을 잘수 있으텐데...

이건 꼼짝마라다.

잘 수도 없고, 계속 마리아의 말 벗이 되드려야 했다.

흥분하는 것도 가라앉히고, 운전하는 것도 계속 봐드려야 하니까...

남편이라도 이 대화에 끼어들어 나를 좀 도와줬으면 좋으련만

여자들끼리의 이야기라서 그런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영어로 몇시간동안, 그것도 남의 가정사를 상담하듯이 이야기 하고 있자니 머리가 핑핑 돈다.

 

바깥에 좋은 경치가 나타나면 몰고 가던 차를 세우고서라도 사진을 찍던 남편은 창문도 한번 안열고 사진도 전혀 안찍는다.

왜 이 좋은 경치를 안찍느냐고 물어보니,

혹시 창문을 열어 세찬 바람이 밖에서  불어오면 마리아가 더 흥분할까봐

참고 있단다.

그저 흥분하지 않도록 도와야 하니까...

 

슬로베이나 국경도 넘어섰다.

그래도 슬로베니아 사람 차를 타고 국경을 넘으니 아주 편하다.

국경에서 자기가 말 다해주고.

이럴때 보면 멀쩡하다.

(표현이 좀 이상하다. 멀쩡한 사람 맞는데... 단지 감정의 굴곡이 좀 심하다면 심하다고 할까?)

 

국경을 넘어, 트렁크에 넣어두었던 슬로베니아 지도를 보여주면서 우리가 앞으로 갈 길을 설명하고 있다. 

 

슬로베니아의 아주 예쁜 어느 시골 마을.

류블라냐로 들어가는 길이다.

이 길은 자기가 잘 알고 있는 길이라는데,  좋은 경치로 드라이브 코스로는 최고란다.

어느 한적한 시골 피자집에서..

하나에 3.5유로밖에 안한다.

우리 둘만 있었다면 분명히 하나 시켜서 갈라먹었을텐데,

현지인이랑 같이 있으니 현지인이 하자는 대로 할 수 밖에.

너무 크고, 너무 많아서 겱구 절반 이상은 다시 싸가지고 나왔어야 했다.

 

운전을 하지 않는 마리아는 정말 단정했다.

이야기도 사분사분하게 하고, 자기 미인대회 출전 이야기를 하면서 아주 즐거워한다.

우리의 운명같은 만남에 대해서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그렇게 오후 3시 반쯤 되어서 류블라냐에 도착했다.

원래는 저녁 8시가 넘어서 도착해야 하는건데...

(그런데 오는 길에 전화를 한통 받았다.

 마리아는 이 차를 렌트한 거였는데, 오늘 오후 5시까지 류블라냐로 오는 중간 도시 Novo Meso에

 차를 반납하라는 전화.

 불안하기도 했는데, 그러면 우리를 노보메소에 그냥 내려달랬더니,

 류블라냐로 데려다 주기로 우리와 약속했기 때문에 약속을 지키겠단다.

 자기는 고속도로로 다시 1시간 정도만 하면 돌아갈 수 있으니까.... 고마운 사람)

마리아는 역으로 걸어가는 우리의 모습을 한참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고마운 사람. 마음은 여리지만 아름다운 사람, 마리아와의

불안하고도 행복한 몇시간을 보내고 류블라냐에 도착했다.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라냐>

 

슬로베니아 역시 옛 유고연방의 나라이다.

그렇지만 서유럽과 가장 가까이 접해 있는 나라라서 그런지

어디에도 예전 사회주의의 냄새는 나지 않는다.

어디 서유럽의 도시에 들어와 있는 느낌.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나누어주는 류블라냐 소개에도

몇시간만 하면 다 둘러볼 수 있다고 설명되어 있을 정도로 시내는 조그맣다.

 

류블라냐 시내가 다 내려다 보이는 류블라냐 성에서.

 

푸니쿨라를 타고 올라갈 수도 있고, 걸어갈 수도 있다.

다른 때 같으면 당연히 걸어올라갈 우리인데,

시간도 좀 늦은데다가, 오늘은 히치 하이킹으로 플리트비체에서 류블라냐까지 바로 와서

차비도 하나도 안 들어서 큰 맘 먹고 푸니쿨라로 올라왔다.

ㅋㅋ

눈깜짝할 새에 올라온다.

다른 때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성이 조그맣다.

조그만 타워도 하나 보이고...

 

어둠이 내려오니 그래도 제법 예쁘기는 하다.

그래도 장엄하다거나 웅장하다거나 그리 감동적인 건 아닌 것 같다.

 

류블라냐에 있는 사람들만 다닐 수 있는 세개의 다리 중 하나.

강 양쪽으로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군사감옥을 개조한 셀리카 호스텔>

류블라냐에서 우리가 더 관심이 갔던 곳은 도심 자체보다는 군사감옥을 개조했다는 셀리카 호스텔이었다.

셀리카 군사감옥은 1880년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져서

그때부터 유고슬로비아연방이 해체되기 전까지 군사감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슬로베니아가 분리 독립후 정부에선 이 군사감옥을 부수어버리려고 했으나,

1993년 부터 슬로베니아의 예술가, 건축가 시민등이 건물을 보존하려는 운동을  3년 동안 한 결과,

마침내 1996년에 80명 이상의 슬로베니아와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참여하여 아트갤러리를 만들었다.

이들은 셀리카 아트갤러리를 "piecd of peace'(평화의 상징)으로 여기고 활동하다가,

루블라냐 시청과 대학총학생회가 주체가 되어 유스호스텔로 개조하고

2003년 부터 대중적으로 공개되고 이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군사감옥의 일부였던 셀리카 호스텔의 입구는 담장이 높고, 철장이 아직 남아있다.

담벼락엔 죄수들이 운동하던 농구골대가 남았고 주변의 담장에는 이후에 활동한 예술가들이 만든 그래피티가 많이 남아 있다.

 

2층건물의 창가엔 쇠창살이 있지만 창문마다 벽의 색깔은 다르다. 

 

입구에 들어서면 전형적인 감옥문이 아직 남아있다.

뭔가 약간은 답답한 느낌이다.

 

입구를 들어서면 예전의 감옥스타일로 양쪽에 방이 있다.

호스텔에 머무는 손님들의 방이다.

방은 천장이 높고 의외로 깨끗한 편이다.

우리가 사용한 7인실 도미토리는 그렇지도 않았지만... 

 

셀리카 감옥호스텔의 식당.

감옥이라는 느낌보다 어디 잘 차려진 식당같다.

호스텔의 유명세 때문인지 비수기라는데도 방이 없을 만큼 사람들이 많았다.

 

 

인터넷은 빵빵하게 터져서(사진은 잘 안올라갔지만)

플리트비체에서 한 며칠 못한 인터넷 중.

낮에는 돌아다니고, 밤이면 글쓰고...

우리가 생각해도 우리는 철인들이다.ㅋㅋ

 

 

<호수마을, 블레드>

류블라냐에 가는 이유는 슬로베니아의 수도를 돌아보겠다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바로 그 옆에 있는 호수마을 블레드에 가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류블라냐에서 기차로 1시간 5분 정도.

조그마한 블레드 기차역에 내렸다.

기차는 레쎄 블레드 역에 세워준다.  (류블라냐 기차역 인포에 가면 블레드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시간표를 구할 수 있다.)

여기서 다시 블레드 호수까지 가는 버스(1.3유로) 를 타야 한다.

사실 류블라냐에서 블레드 호수까지는 버스를 타면 한번에 갈 수 있는데

우리는 유래일 패스 여유분이 있어 기차를 타기로 했었다.

 

기차역에서 7-8분 정도 버스를 타면 블레드 호수에 내려준다.

호수에서 만난 백조와 오리떼들.

잠수하는 오리가 있어 그 녀석을 보느라 온 몸을 구부리고 기다리는 모습이다.

바로 앞에 있는 곤돌라를 타고 블레드 호수 한가운데 있는 교회로 갈꺼다.

 

곤돌라 젓는 아저씨.

손대장님은 여기서 곤돌라 가격을 흥정하면 된다더니만,

흥정은 커녕 12유로 고정 가격이라며 핀잔만 준다.

ㅋㅋ

일본애들 2명, 슬로베니아 사람 4명 그리고 우리 모두 8명이 한 곤돌라를 타고 교회로 들어간다.

 

저 멀리 언덕위에 블레드 성도 보이고...

 

블레드 교회도 보인다.

 

이건 내가 아니다.

짧은 머리이기는 하지만... ㅋㅋ

같이 탄 슬로베니아 아가씨.

이 아가씨는 머리가 짧아도 예쁘구만, 나는 왜 이리 아직도 촌 아지매 처럼 낯설은지...

머리는 어차피 또 길껀데 뭐, 하면서 위안을 해보지만 여전히 마음에 차지는 않는다.

언젠쯤되면 자신있게 카메라 앞에 서지? ㅋㅋ

 

곤돌라에 내리면 교회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교회에 들어가면 종탑에서 종을 쳐 볼수도 있다고 했는데...

교회 안에는 안들어갔다.

매번 보는 교회 같아서.. 아니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만큼의 가치는 없는 것 같아서...

ㅋㅋ

여행이 길다보니, 점점 쫀쫀해진다.

 

곤돌라를 개인이 빌려서 탈수도 있나 보다.

오리모양의 곤돌라를 타고 블레드 호수를 돌아보는 가족들.

꼬마가 신나는지 우리보고 계속 웃는다.

 

혼자서도 노를 젓고...

 

곤돌라에서 내려 블레드 성으로 올라간다.

 

성으로 올라가면 조금전 곤돌라를 타고 가봤던 교회가 한 눈에 보인다.

블레드 호수 안에 박혀있는 저 교회의 모습.

이게 블레드의 상징이다.

날씨가 맑았더라면, 아니 카메라가 좀 더 좋았더라면, 아니 사진찍는 솜씨가 더 나았더라면

훨씬 더 멋진 사진을 보여줄 수 있었을텐데...

또 우리의 가슴속에만 멋진 장면을 남겨놓고 가족들, 친구들에게는 이리 흐리멍텅한 사진을 보여준다.

미안.

 

블레드 성을 내려가는 길.

이 성은 외부 침략에 대한 방어라기 보다는 그냥 살아가는 데 더 큰 목적을 둔 것 같다.

하기야 산꼭대기에 지어두었으니 방어의 목적도 있기는 했겠니만.

입구가 그냥 달랑 이거 하나다.

저 문만 때려 부수면 얼마든지 침략이 가능한...

 

원래 생각으로는 류블라냐가 아닌 블레드에서 하룻밤을 자고 싶었는데,

감옥을 개조했다는 셀리카 호스텔에 이끌린 것도 있고,

저녁무렵에 도착해서 예약도 안한 블레드 까지 갈 자신이 없었던 것도 있고 해서 우리는 류블라냐에 머물렀었다.

그런데 와서 보니, 역시 블레드에서 하룻밤을 자는 게 더 옳은 선택인 것 같았다.

여기 호수가에서 밤을 보내면서 산책도 하고, 호수변에서 밥도 먹고...

다음에 오면 블레드에서 머물면서 류블라냐를 왔다갔다 해야지...

언제 다시 올수 있을까?

 

블레드 성을 바라보며 호수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할아버지.

고기는 별로 안잡히는 것 같던데...

그냥 경치를 낚고 계시나?

 

 

<다시 류블라냐로 돌아와서>

 

류블라냐의 상징, 용의 다리.

류블라냐에서 사람만이 걸어다닌다는 세개의 다리 중 하나다.

이 다리를 건너가면 류블라냐 성으로 오를 수 있다.

 

청과시장.

여행나와서 감을 처음봤다.

그것도 홍시.

여기 사람들도 홍시를 먹는구나...

 

가장 신기했던 건 우유 자동판매기.

처음 봤다.

우유가 쫙 쫘여져 나오는 기계?

우선 옆에 있는 기계에서 0.3유로를 넣고 우유병을 받는다.

다음 오른쪽 기계에다 그 우유병을 넣고 1유로를 넣으면 1L의 신선한 우유가 병 가득채워 나온다.

물론 병은 재활용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도 샀다.

옆에 있는 언니한테 도움 받아서.

정말 신선한 우유.

우유의 속성상 다른 자동 판매기처럼 그날 안 팔리면 내일 다시 팔수도 없어,

시간시간 신선한 우유를 공급한다.

어찌나 신선한지. 먹자마자 배에서 바로 신호가... 쿠루룩...

둘다 화장실에서 고생 좀 했다.

그래도 정말 맛있었던 기억.

 

아까 말한 것 처럼 류블라냐를 소개해 준 책자에서조차 몇시간이면 다 돌아다닌다고 할 만큼 조그만 곳이 이곳이다.

그런데 그 책자에서 소개해놓은 설명이 웃긴다.

자세히 보면 류블라냐만이 가진 아르누보 양식을 도시 곳곳에서 만날수 있단다.

그러니 그냥 몇시간만 휙 보고 지나가지 말고 자세히 살펴보란 말이지...

 

멋진 걸 하나 발견했다.

어느 성당의 문.

교황님의 모습을 부조로 얼굴만 드러나게 해 두었다.

참신한 아이디어다.

그렇네.. 

멋진 아르누보도 보이네...

 

다시 강가로 나와서.

 

바쁘게 돌아다닌 사람들도 보고...

 

류블라냐의 시장건물도 본다.

청과물이나 옷가지는 광장에서 판매하고

빵, 고기같은 것은 이렇게 멋들어진 건물에서 판매한다.

남편은 그런다.

이런게 소규모 시장의 경쟁력이라고.

우리나라에서는 대규모 자본에 밀려 재래시장과 같은 것이 다 나가 떨어지는데

소규모 재래시장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깔끔하게 만들고 자기들만의 특색을 가지면

대규모 자본에 대해 경쟁력을 가지는 거라고.

별 볼것 없이 느꼈던 류블라냐에서 시장의 경쟁력을 또 배운다.

 

다시 한번더 용의 다리에서 류블라냐 성도 보고, 시가지도 보고, 시장건물도 보고...

 

이것도 아르누보 중의 하나인가?

타투(염색)가게 앞에 만들어져 있는 부조.

색감과 재치있는 아이디어가 눈에 띈다.

마치 지금 롤러브레이드를 이 선을 따라 타고 있는 듯한 느낌...

 

드디어 오늘 밤차를 타고 로마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몇달동안 헤어져 있었던 우리 노트북을 만나겠지요?

투어야의 멋진 대장 민재씨도 만나고

보급품도 받고...

고추장 먹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