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213 (10월29일) 로마

프리 김앤리 2009. 10. 31. 05:34

로마는 과거다.

예수 탄생 훨씬 이전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적이 있는 곳.

로물루스 형제가 로마를 세웠다는 팔라티노 언덕, 로마 공화정 시대의 포로로마노,

모든 신들의 사원 판데온, 아피아 가도를 따라 그 끝에 있는 까따꼼베 등이 그 옛날 로마의 유적이다.


로마는 과거이면서 현재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라노칙령을 발표함으로써 이전에 박해 받았던 기독교를 국교를 받아들인 AD 313년

이후 왕권의 강화로 잠시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옮긴 잠시를 빼고는 쭉 세계 카톨릭의 중심이 되어왔다.

수많은 교회와 조각들이 신의 영광을 위해 지어지고, 지금도 신의 영광을 노래하는 곳이다.

지금도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은 신앙을 가진 카톨릭 신자들에게는 꼭 가보고 싶은 순례지 영순위다.


로마는 현재다.

세계 예술의 중심지, 관광의 천국이다.

마치 ‘과거 조상의 업적’을 가지고 먹고 사는 것 같이 보이는 로마는

고개를 돌려 어디를 돌아다보아도 유적이고 볼거리들이다.

‘최후의 심판’ ‘천지 창조’등이 있는 시스티나 성당은 발 디딜틈 없이 여행자들로 꽉 차고

나보나 광장, 트레비 분수, 스페인 광장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가 현재에 그대로 녹아있는 도시, 로마.

로마는 우리에게 있어서도 과거이면서 현재다.


로마는 우리 둘 다에게 모두 세 번째 방문이다.

10년 전 함께 로마를 찾아왔고, 그 이후로는 각자가 따로이 한 번씩 더 왔던 곳이다.

10년 전 그 때의 로마를 떠올리면 오로지 더위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남들도 다 가본다는 콜로세움, 바티칸, 까라깔라 욕장, 나보나 광장, 트레비 분수, 판테온...

돌다가 돌다가 더위에 지쳤다. 결국엔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사소한 문제로 말다툼을 하다가

스페인 광장 앞 계단에 이르러서는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헵번처럼 깜찍 발랄하게 아이스크림을

먹는 건 고사하고 계단에는 한번 앉아보지도 못하고 맞은 편 길 어디선가 한 시간 이상을 입을 불퉁하게

내민 채 삐져있었다. 어떻게 다시 풀어졌는지 역시 기억에 나지는 않는다.

다만 길도 모른채 어디론가 하염없이 걷다가 한 공원에서 집시처럼 생긴 여자가 머리를 자르고 있길래

무턱대고 내 머리도 잘라달라고 부탁해 싹둑, 아주 짧은 커트를 한 기억만 있다.

날도 제대로 안 갈은 것 같은 무딘 가위가 내 머리카락을 스걱스걱 자르던 소리는 기억 속에 빤하다.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헵번은 로마에서 긴 머리를 싹둑 잘라도 그렇게나 예쁘더니만

나는 그 때도 역시 ‘김군’처럼 변신하는 굴욕(?)을 겪어야 했다.

이번 여행 중에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 미용실에서 만든 ‘김군’의 굴욕처럼...


두 번째의 로마는 동생과 조카들과 함께 한 여행이었다.

그 때도 역시 더웠었다. 참을 수 없을만큼.

신앙을 가지고 있는 동생은 베드로가 묶였던 사슬이 보관되어 있다는 빈콜리 성당이나, 베드로가

갇혀있었다는 지하성당(이름은 모르겠다)에 굉장히 감동 했다. 천사의 성도 가보고...

문제는 시스티나 성당 안에서였다.

거기 들어가려고 아침부터 몇 시간을 밖에서 기다린데다가

안으로 들어서자 한발짝조차 옮기기가 어려울 만큼 수많은 사람들.

급기야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를 보려고 들어간 방에서는 한마디로 아비규환이었다.

숨을 쉬기가 힘들었었다.

앞뒤 양옆으로 압박해오는 사람들. 미켈란젤로의 대작이고 뭐고 다 끔찍했었다.

밀리다 시피 그냥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나오는 길을 잘못 나와 같이 갔던 일행들을 놓쳐버리고

안 된다는 경비를 꼬셔 그 비좁은 틈을 뚫고 다시 거꾸로 돌아가야 했다.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게다가 비좁은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이리저리 헤매는 동안

가방 안에 넣어둔 요구르트가 터져 가방 속은 요구르트 범벅이 되어있고...

끔찍했다. 

로마의 시작은 늘 가슴 설레이고 감동적인 것이었으나 끝은 늘 끔찍했었다.

(남편의 두 번째 로마행은 끔찍한 건 아니었으나

 시간이 바빠서 제대로 보지도 못했던 여행이었단다.)

 

다시는 로마를 찾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번에도 우리는 로마행을 선택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수리한 우리 노트북을 받기 위해서였다.

투어야의 가을 팀과 일정을 대충 맞추다보니 로마가 가장 적절한 곳이었다.

두 번씩이나 왔어도 우리는 한 번도 트레비 분수에 뒤로 서서 동전을 던진 적도 없는데,

또다시 로마를 오게 된 걸 보면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로마를 다시 찾는다’는

전설(?)도 별 미덥잖은 것인 모양이다.


우리에게 이번 로마행은 여행이 목적이라기보다는 액정을 수리한 우리 노트북을 보급받는 일이 더 큰 일이라

이틀동안 로마에 머물면서도 별로 돌아다니지 않았다.

하루는 꼬박 호텔에 머물면서 노트북에 있는 자료들을 다시 옮기는 데 시간을 다 썼고,

하루 저녁은 투어야팀의 이민재 대장이랑 술 한잔 하고...

고작 로마를 돌아다닐 수 있는 시간은 한나절 정도 밖에 없었다.

가봐야 할 곳은 대충 다 둘러봤으니까, 지난 번에 안 가봤던 곳을 좀 가보고,

추억(?)이 서려있는 스페인 광장에 한번 더 가보자는 정도의 계획만 세워뒀었다.

가는 길에 나보나 광장의 야경 정도 구경하자고...

그래서 이번 우리 사진에는 로마의 유명한 유적지는 별로 없다.  

 

스칼라 산타(Scala Santa). 일명 홀리스테어즈(Holy Stairs)라고 하는 곳이다.

예수님이 빌라도 총독에게 무릎을 꿇고 올랐다던 예루살렘의 그 계단을

326년에 통째로 뜯어서 가져다 로마로 옮겨온 것이란다.

모두 28개의 계단으로 되어 있는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고난의 예수님을 떠올리며 모두 무릎을 꿇고 한계단 마다 기도를 올리면서

제단의 끝까지 오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계단 한 계단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하며 오르는 사람들.

엎드려 이마를 땅에 대었다가 다시 한 계단을 더 오르고.

 

스칼라 산타 성당의 외벽.

 

 

싼 지오반니 인 라떼라노(San Giovanni in Laterano) 대성당.

스칼라 산타 바로 맞은 편에 있다.

카톨릭을 국교로 선포한 콘스탄티누스황제가 세례를 받은 곳이면서, 처음으로 가톨릭에 불하한 땅?

아비뇽 유수로 교황청이 옮기기 전, 약 천년 동안 이성당에 교황청이 있었다.

현재도 이성당은 바티칸의 영토이자 재산?이다.

아비뇽 유수로 교황이 떠나고 난 뒤에는 방치되어 있다가 17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었단다.

 

 

성당 내부는 바티칸 성당만큼 크지는 않지만 다른 어떤 성당보다 규모면에서 크고 더 화려하다.

제단에는 거대한 그리스도 상과 양 옆으로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상이 있다.

이것 역시 로마에 있는 많은 작품의 조각가, '대리석의 마술사'로 불리우는 베르니니의 작품이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곳이자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판테온이다.

지난 번 두 번의 여행에서 다 가봤던 곳이기는 하지만

그때의 관심은 하늘로 열려있는 9m 지름의 천정에 있는 큰 구멍과 거기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이었다.

기둥도 없이 넓게 펼쳐진 실내, 아늑한 분위기... 주로 분위기에 더 취해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판테온이 가진 의미였다.

‘모두’를 뜻하는 ‘판’, ‘신’을 뜻하는 ‘테온’

판테온, 즉 ‘모든 신’이다.

모든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운 곳이다.


판테온은 로마의 시대정신을 나타내는 곳이다.

로마는 다양한 신들을 인정하는 사회였다. 신이란 인간 정신의 표징이라고도 한다면

로마는 인간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신들의 다양성을 인정한 사회였다.

내 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신도 인정할 줄 아는 관용의 정신이 천년왕국, 제국 로마의 힘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일신만을 주장하는 기독교는 예전부터 다양한 신들을 인정해 온 로마의 정신을

흐트려 놓은 셈이 된다.

 

콜로세움도 다시 가봤다.

 콜로세움 낙성식 땐 검투사와 맹수의 싸움이 무려 100일 동안 계속됐다고 한다.

이때 검투사 수백 명과 함께 맹수 5천 마리가 죽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맹수의 밥으로 던져진 이들은 식민지에서 끌려온 노예들과 그리스도인들이었다.

네로가 그리스도인들을 희생양으로 선택한 것은 이미 그들이 로마인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신을 존중하는 종교관을 가진 로마인들로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랜 옛날부터

 따라온 여호와만을 믿으며 다른 신을 부정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이해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그냥 검투사와 맹수와의 잔인한 싸움 정도로만 넘겨왔던 콜로세움이지만

 좀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콜로세움은 새롭게 보인다.

 이번 여행 내내 생각하고 있는 종교 간의 갈등.

 자신의 믿음에 충실하는 만큼 다른 사람의 믿음도 인정한다면,

 그동안 숱하게 벌어져 왔던 종교 갈등으로 인한 인류의 재앙은 없지 않았을까?

 지금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콜로세움에서 비또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가는 길.

로마제국의 번성이 벽의 판화로 만들어져 있다.

작은 도시국가에 시작한 로마에서부터...

 

 

전성기 시절의 로마제국.

스페인, 프랑스 지역은 물론 현재의 북아프리카 지역, 터키 이란 이라크 지역까지 다 포함하고 있다.

대제국 로마는 나중에 이 넓은 영토를 유지할 비용이 고갈되어 망하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콜로세움에서 포로로마노 안으로 들어가버려 길의 오른쪽은 보이지도 않더니만

포로 로마노 쪽을 포기하니 반대쪽이 포리 임페리알리가 보인다.

포리 임페리알리는 많은 황제들의 포룸이란 뜻이다.

(그러나 두 번의 여행에서 로마에서 가장 감동적인 곳을 꼽으라면 역시 내게는 포로로마노였다.

 다 부숴지고 돌덩이들만, 기둥 조각만 남아있는 폐허였지만

 그 언덕빼기에 앉아 2천년도 더 지난 예전의 거리와 사람들을 상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 길 바로 뒤로 보이는 또 하나의 유적터.

Mercati di Traiano란다.

트라이아노 황제 시절이 시장이라나?

 

 빅토리오 임마뉴엘 기념관과 동상

19세기 중엽 이탈리아를 통일하고  초대왕으로 등극한 빅토리오 임마뉴엘 2세 동상이 보인다.

2차 대전중에는 한때 파시스트 뭇솔리니의 집무실도 있었고, 난간에서 그가 연설도 했다고 하는 곳이기도 하다. 

 

밤의 나보나 광장.

여전히 거리의 화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내놓고 있었고,

연인들의 웃음소리가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밤에 보는 나보나 광장은 더 아름다웠다고 할까?
(로마를 여름이 아닌 가을에 찾는 건 행운인 것 같다.

 하나도 안 덥고, 아니 날씨가 여행하기에 그만이다. 참 좋다.ㅋㅋ)

이 분수의 조각 역시 베르니니의 작품이다.

 

스페인 광장을 다시 찾았다.

10년전 삐져서 말도 안하고 저 계단에 앉아보지도 못했던 우리의 과거(?)가 있는 스페인 계단.

ㅋㅋ

오늘도 역시 그때처럼 사람들이 많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다 들떠 왁작거리고...

스페인 광장 앞의 난파선이 침몰하는 모양의 분수는 아버지 베르니니의 작품이다.

 

이번엔 나도 이 계단에 앉았다.

맥주까지 사 들고.

다시 이곳을 우리 둘이 함께 찾아올수 있음에 감사하며...

아니 지난 번과는 달리 맥주까지 함께 마실수 있음에 기뻐하며...

ㅋㅋ

 

로마를 떠나는 날 아침.

산타 마리아 델라 빅토리아(승리의 성모 마리아) 성당를 찾았다.

영화 '천사와 악마'에서 나오는 성당.

그리고 베르니니의 조각 작품, '성녀 테레사의 황홀경'이 있는 곳이다.

이 조각작품은 바티칸 박물관에 있어야 할 만큼 뛰어난 작품인데

성령을 받은 테레사의 감동스런 얼굴 모습이, 어찌 다르게 보면

성적인 흥분을 느낄 때 나타나는 표정과 비슷하다 하여 바티칸 박물관에 안들어간거라나?

작품에 대한 흥미도를 높이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라고 남편은 단정짓는다.

어쨋거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너무 높이 걸려있어서 얼굴 표정을 자세히 볼수는 없었다.

성당의 입구에 걸려있는 사진으로서만 짐작할 뿐.

멋있기만 하구만...

 

해골 성당 들어가는 길 광장에서.

 

테르미니 역 바로 앞에 있는 싼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

역 바로 앞에 있는데 두번의 여행에서 다 놓친 곳이다.

 

성당 입구에서.

곧 떠날 준비를 하느라 무거운 배낭을 들고 있다.

잠시밖에 시간이 없어서 락커에 맡겨놓기도 뭐하고...

 

이 성당은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과학적 실험을 한 성당으로 유명하다.

갈릴레이가 실험한 기구들도 직접 볼 수 있다.

 

바닥엔 하늘의 별자리를 대리석으로 만들어 놓기도 하고.

 

미사를 드리는 곳은 다른 성당과 비슷하지만...

 

한쪽 벽면에서 햇살이 들어오도록 해놓고

바닥에는 태양 주변으로 돌고 있는 행성의 위치를 표시해 놓고 있다.

창조주 하나님과

한편으로는 신앙인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과학자였던 갈릴레이의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진리는 지금까지 살아있는 걸.

 

성당문을 나서며...

과학과 종교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과학에 대해서는 얼치기이고, 종교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내가 생각한다는 것이

아주 얄팍한 것이겠지만...

이것 역시 또 이번 여행이 내게 주는 숙제이다.

 

성당 입구에 앉아있는 동냥하는 아주머니.

오늘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종교도, 과학도... 모든 것이 사람에게 귀결되어야 한다는 것 정도뿐이다.

오늘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잠깐 생각해 본 여행에 관한 이야기>

노트북을 받기 위해 로마로 와서 우리는 이틀밤을 묵었었다.

하루는 한국민박집에서, 또 하루는 투어야 팀이랑 같이 호텔에서.

우리가 한국민박집을 찾은 이유는 한국음식을 먹기 위해서였다.

지난번 헌 노트북을 찾기 위해 머물렀던 파리의 민박집, '별하우스' 의 이모 음식솜씨가 얼마나 좋았던지

그동안 모자랐던 김치와 고추장의 맛을 보충할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한국민박을 찾으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마침 로마 호텔에 하루만 예약해 놓은 상태라, 고민하지 않고 한국민박을 찾았다.

맛있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아삭아삭한 김치, 냉이김치, 조개 아욱국, 조기구이, 갓김치...

입맛을 확 돌아오게 만들었다.

속이 따가운줄도 모르고 김치를 얼마나 먹었던지...

행복했다.

아!!! 한국민박을 찾는 이유가 이런 거구나...

 

그런데 거기서 만난 한국애들(애들이라고 해도 되겠지? 나보다는 전부 한참 젊은 애들이었으니까)에게서는

약간 아쉬운 점이 있었다.

한국민박을 찾아가는 애들은 유럽 여행을 떠나와서

어느 도시에 가든지 대개 한국 민박만을 찾아다닌 다는 거다.

한국민박에 있으면서 한국음식 먹고, 한국 사람들만 만나고, 한국말로 이야기 하고, 한국말로 설명듣고.

거기서 추천해주는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투어에 참가하고.

외국에 나와서도 조국을 사랑하고 조국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나

외국 여행이라는 것이 내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를 보러 나오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외국음식도 먹어보고, 외국 사람들과도 만나고, 이야기를 해야  더 좋은 게 아닐까?

물론 두려움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두끼 밥 든든하게 먹을 수 있고, 정보도 빨리 쉽게 얻을 수 있으니까

외국인들과 함께 쓰는 호스텔에 들어가는 것 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더 유리할 지 모른다.

그렇다고 내내 한국사람들과만 어울린다면...

*** 여기서 잠깐!!!

     파리의 별하우스는 정말 달랐다.

     아줌마가 불어, 중국어, 일본어까지 능숙하게 써서

     한국인은 물론, 중국사람, 프랑스 사람 일본사람까지 그 집을 찾아들어서 한국인만 버글거리는 민박이 아니었다.

     한국밥을 먹으면서 외국사람들까지 만나니... 게다가 마당까지 있는 넓은 집이라 만족 대 만족이었다****

 

주로 한국민박집이라는 게 일반 가정집를 약간 개조해 한국인 배낭여행자를 받아들이는 형편이라

거실과 같은 쉬는 공간도 거의 없고, 욕실은 한두개, 좁은 방안에도 겹겹이 침대를 쌓아 빼곡이 재우고...

한국 음식을 먹는다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장점도 없는 듯 보였다.

물론 한국말로 된 설명을 들을 수 있기는 하겠지만

이것 역시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발품을 팔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너무 안타까웠다.

좁은 곳에서 바글바글 거리며

그 안에서만 서로 놀고 있는 듯 해서.

 

그래도 제법 여행을 다녀봤다고 주제넘은 걱정 한 번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