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263 (12월 18일) 오랜 세월이 만든 요르단의 페트라에서

프리 김앤리 2009. 12. 21. 03:39

 

페트라(Petra). 

우리에겐 꿈의 여행지였다.

 

태어나서 꼭 한번은 가봐야 할 곳이 페트라라는 누구의 말처럼...

죽기 전에 반드시 한번은 가봐야 하는 여행지로 꼽히는 곳,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배경이 된 곳.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자

지난 2007년 전 세계인의 투표로 당당하게 세계 신 7대 불가사의 중의 한 곳으로 뽑힌 곳이기도 하다.

요르단을 여행하는 사람의 99%는 반드시 페트라를 찾아간다.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페트라를 간다.

 

페트라를 가려면 와디무사라는 도시엘 가야 한다.

아랍어로 와디가 계곡이라는 뜻이니 와디무사는 무사계곡이겠지?

와디럼, 와디무사...

럼 계곡, 무사 계곡....이것 또한 나의 선입견이다.

우리나라에서 계곡이라고 하면 반드시 물이 흐르고 있어야 하는데

외국에서는 꼭 그런 건 아니라는 말씀.

좔좔 흐르는 계곡물이 없는 요르단에서 계곡이라는 뜻의 ‘와디’가 들어가는 지명이 많은 건

계곡이라는 게 꼭 물과 연관된 건 아니라는 거다.

계곡에는 바람의 계곡도 있고, 바위의 계곡도 있다.

‘계곡’하면 항상 '물'을 연관시키던 또 하나의 내 알량한 선입견을 깨뜨리는 곳이다.


와디럼 사막에서 미니버스로 두시간여. 와디무사에 도착했다.

바위산, 모래먼지, 색채감 있는 건물은 거의 없다.

황량하다.

게다가 모래바람까지 불어댄다.

 

와디무사에서는 많은 여행자들이 발렌타인 인(Valentain Inn)에 묵는다고 한다.

와디럼에서 탄 버스가 도착한 터미널에 발렌타인 인 버스가 기다리고 서 있다.

다른 여행자들과 함께 우루루 그리로 간다.

북적북적하다. 

싼 이집트를 여행하다가 요르단에 오니 다시 지갑을 여는 손이 벌벌 떨린다.

와디럼 투어를 같이 했던 일본인 카츠, 그리고 이집트 다합에서 만났던 일본인 유타를 다시 만나

4명이서 함께 도미토리를 쓰기로 했다. 일인당 7JD(요르단 디나르 1JD= 1,700원. 거의 12,000원이다.)

아침밥도 안주고...

요르단은 음식값도 장난이 아니다.

그제 아카바에서 닭고기 바비큐도 콩알만큼 주면서 2.5JD나 하고...


발레타인 인에서 일인당 4JD를 주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밖은 모래바람도 많이 부는데다가 제법 쌀쌀하다. 

밖으로 나가느니 유타랑 카츠랑 안에서 같이 먹기로 했는데...

차려진 식탁에  입이 쩍 벌어진다.

저녁을 준비하는 저 아저씨의 입에 담배만 없었다면 최상이었을텐데...

하여튼 맛은 죽여줬다.

 

밤의 와디무사.

바람에 날리는 모래먼지가 없어서 그런지, 황량한 들판이 안보여저 그런지

우리 숙소 옥상에서 내려다 보는 황량했던 낮의 풍경과는 달리, 불빛 가득한 와디무사의 밤은 제법 멋지다.

 

내일을 우리가 오랫동안 가보고 싶어 했던 페트라를 간다.

 

이른 아침.

어제보다는 날씨가 훨씬 좋다.

바람도 잦아들었다.

햇살도 환하게 비추는게 페트라를 들어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페트라 1일권을 끊었다.

3일권을 끊는 사람도 있다는데 따지고 보니 우리 여행이 얼마 안남은 것 같아 욕심을 버린다.

오늘 하루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한다.

 

페트라를 들어서자 마자 바로 바위산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말을 타고 가라, 마차를 타고 가라... 입구에서는 우리를 유혹하지만

오늘도 우리는 튼튼한 두 다리만 믿고 걸어서 페트라를 들어간다.

 

입구.

THE SIQ라는 팻말이 보인다.

SIQ는 아랍어로 '협곡'이라는 뜻이다.

 

드디어 그 유명한 페트라의 협곡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약간은 설레이고 긴장된다.

 

하늘을 가릴 듯 엄청나게 높은 바위산과 그 사이로 난 좁은 길.

바위산의 끝을 보려고 자꾸 머리는 하늘로 들려진다.

위가 안보인다. 

 

일설에 의하면 페트라의 이 좁은 틈을 인공적으로 벌였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건 못 믿겠다.

오래 전 자연 현상에 의하여 바위산이 갈라졌으나

그 중 일부가 막혀서 사람들이 그 부분만 뚫었을 수는 있지만

이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위대한 자연의 힘이다.

늘 우리를 감동시키는 '자연의 힘'.

그리고 오랜 세월이 보인다.

위대한 자연과 세월의 힘.

 

페트라의 협곡은 1.2Km다.

햇볕 한 줌 안 들것 같은 아주 좁은 부분도 있지만

중간중간에는 제법 넓은 길도 나타난다.

 

여전히 머리는 하늘로 들려있다.

'이 바위산의 꼭대기는 어디일까?'

 

가이드북도 제대로 없는 우리는 현지에서 팜플렛이나 다른 여행자의 가이드북을 빌려본다.

영어를 사용하는 투어팀이 있으면 좋다.

동냥 가이드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이드에 의하면 오른쪽에 깨어진 동상은 아라비아상인이 낙타를 끌고가는 모양인데 하단만 남았다고 한다.

그리고 오른쪽의 이어진 홈은 패트라로 물을 끌어들이는 수로란다.

 

사람들이 모여 살기위해서는 물이 필요하다.

그래서 강가에 주로 살았는데...

강이 없는 페트라엔 물을 멀리서 끌어 온 흔적이  협곡 양쪽으로 이어진다.

바위를 깍아서 물길을 만든 나바티안...

그리고 협고사이의 바위에 대상과 낙타, 그들의 신과 각종 상징물을 새겨놓고 있다.

 

 협곡사이의 바위 양쪽에 수로가 선명하다.

수로는 각도를 이루며 아래쪽으로 흘렀을 것이다.

대단한 기술이다.

 

한참을 올려다보면서 걷다가 ...

드디어 협곡이 끝나는 지점. 앞을 가리고 있던 바위산이 열리면서 시야가 확 트인다. 

영화나 사진에서 보았던 장면.

신기루 같은 협곡의 끝.

드디어...알 카즈네 (AL KHAZNEH)가 보인다.

 

알 카즈네.

보물을 찾아 떠나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어디에 보물이 있었을까?

알 카즈네라는 뜻이 바로 '보물창고'라는데...

 

후대에 이걸 발견한 사람들은 왜 여기에다 보물창고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일설에 의하면 건물 제일 윗부분에 조각되어 있는 항아리 형태의 건물에

먼 옛날 나바트인들이 보물을 숨겨놓았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란다.

 

알카즈네 앞에는 낙타들이 기다리고 섰다.

협곡을 다시 돌아나가거나 아니면 페트라 유적지의 더 안쪽을 들어가려면 낙타를 타라는 말인가?

 

엄청난 규모다.

거대한 바위산을 뚫어 나바트인들은 그들의 신전을 지어놓았다.  

신전안은 텅 비어있다.

 

딱 여기까지인 줄 알았다.

우리가 알고 있던 '페트라'에 관한 지식.

하늘을 가리는 높은 바위산의 어두운 협곡을 한참 걷다보면

그 끝에 갑자기 앞이 확 트이면서 거대한 신전이 펼쳐지는 장면.

그게 페트라의 전부인줄 알았다.

그것만 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낮이라도 햇볕이 제대로 들지 않는 좁은 협곡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갑자기 환해지면서 세상 밖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듯한, 알카즈네.

그걸 만나기만 해도 페트라의 위대함을 다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정작 페트라라는 곳엘 들어오니 이 거대한 바위산의 아름다운 무늬가 보인다.

바위산 벽면의 아름다운 물결무늬....

아주 오랜 세월 지층이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낸 기하학적 무늬.

층층이 다른 재질의 암석으로 조성되어 있는...

 

바위산의 거대함에 놀란 이후, 아름다운 무늬에 홀딱 반하면서 점점 더 페트라의 안쪽으로 들어간다.

 

알 카즈네를 지나 바위산 양쪽으로 줄지어 늘어서 있는 왕족들의 무덤을 만난다.

 

이란의 다리우스 무덤도 바위산을 그대로 뚫어 만들어 놓았었는데,

나바티인들도 페르시아 문명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이 거대한 바위산을 뚫을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바위산의 물결무늬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아름답다.

중간 중간에 앉아있는 상인들은 이 바위들을 페트라의 무늬란다.

 

곳곳에 바위를 뚫어 놓은 동굴들이 보인다.

이 동굴들은 귀족, 왕족들의 무덤이기도 하고,

먼 옛날, 이 곳에 터전을 잡은 사람들의 집터이기도 했다.

 

동굴 안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단다.

동굴 안에 만들어진 까페 안에서 커피 한잔을 한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 나오는 듯한 모습의 청년.

옷만 옛날 아라비아 옷으로 바꿔 입으면 영락없는 그 모습일거다.

여기서 살고 있단다.

시원하고 따뜻한 동굴에서.

조상들이 만들어놓은 아름다운 이곳에서 아무 불평없이 즐겁게 살고 있단다.

동굴의 천정에도 아름다운 물결무늬 천지다.

 

이렇게 멋진 바위를, 동굴을 본 적이 없다.

사람이 만든다고 이렇게 절묘하게 만들어낼수 있을까?

붉은 빛, 흰 빛... 갈색, 노란색, 오렌지 색...

층층이 쌓여있다.

 

동굴 안에서 바라본 원형극장.

AD 25년 경에 나바트인들이 만든 거란다.

페트라는 그 이후 AD 6세기 경에 로마에 점령당했는데 

나바트인들이 만든 원형극장을 로마인들이 확장 보수한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란다.

바위산을 그대로 깍아 계단식 원형극장을 만들어 놓았다.

7~8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다.

 

바위산의 물결무늬에 자꾸 눈이 간다.

좁은 협곡과 돌연히 나타나는 알카즈네만 기대하고 왔던 우리들에게

페트라는 전혀 다른 즐거움을 주고 있다.

 

베두인 유목민들.

여기 와서 읽은 책 '요르단'에서 이 나라는 이스라엘 못지않게 성경과 관련된 곳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성경을 제대로 몰라서 완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 중에 하나 가슴에 와 닿는 글귀가 있었다.

" 예수가 살았던 시절과 지금도 똑같이 살고 있는 유목민들을 만나면 성서를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양치는 목자들...."

페트라에서 만난 이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면서 책 '요르단'의 그 글귀를 떠올렸다.

예수의 삶을 그려놓은 영화에서 많이 보았던 사람들과 아주 흡사하다.

 

왕족들의 무덤.

쭉 늘어서 있는 무덤들의 주인을 아는 경우는 딱 한군데란다.

AD 100년경 로마제국 시대의 아라비아 통치자 섹스투스 플로렌티누스의 무덤 하나밖에 없다.

나머지는 누구의 무덤인지는 모른다.

그래도 이 무덤은 페트라 내의 왕족들의 무덤중에 가장 큰 것이라 이름도 지어놓았다.

'Urn Tomb'

당시 권력자 누군가의 무덤이기는 하지만 로마 점령이후 비잔틴 교회였을 것이라고 짐작하기도 한단다.

 

페트라에 들어와서 우리가 가장 많이 한 말.

"와!!!!"

"정말 대단하다."

"진짜 멋지다"

 

우리는 이게 누군가의 무덤인지, 이게 몇세기에 세워진 것인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보다는

바위산을 만들어 놓은 켜켜이 쌓여진 지층에서 오랜 세월을 느끼고,

자연이 만들어놓은 아름다운 예술에 더 마음을 빼앗겼다.

 

광할한 페트라의 바위산을 앞에 두고.

미국의 그랜드캐년도 대단했었지만,,,

내가 가 본 그랜드캐년은 위에서만 볼 수 있어서 인간을 약간 오만하게 만들었었다.

직접 그랜그캐년 안으로 들어가 본게 아니라 전체를 다 조망할 수 있도록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곳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곳에서는 뭔가 '자연을 정복'하는 느낌, '내가 이 위에 올라왔다'는 건방진 생각을 했었다면

위로 쳐다보게 만드는 페트라 협곡이나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거대한 자연을 올려다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이 곳에서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했다.

'대단하다, 페트라'

 

멋지다, 페트라.

 

이것도 무덤인데,

화려한 외관과 거대한 규모덕분에 궁전 무덤(Palace Tomb)라는 이름이 붙여진 곳이다.

 

다시 한번 기억한다.

페트라에는 알카즈네만 있는 것이 아니다. 

ㅋㅋ 

 

왕족들의 무덤을 쭉 보고 돌아나오는데 꼬마가 나를 졸졸 따라온다.

그러면서 자꾸 뭐라고 말한다.

"~~~뽐뽀~~~ 뽐뽀..."

뽐뽀가 뭐냐?

"~~~뽐뽀~~~ 뽐뽀..."

아마 봉봉... 사탕을 말하는 듯하다.

뭐를 달라고 하는 소리인 것 같은데 알수가 없다.

옷이며 얼굴이 꼬질꼬질하다.

하기야 얼굴 씻을 물이 있을까? 옷 빨아입을 물이 잘 나올까?

가지고 있던 비스켓만 조금 줬다.

꼬질꼬질한 얼굴에 천진난만한 웃음을 띄운다.  

 

조그만 동굴안에 사는 자기 엄마한테 막 뛰어간다.

메마른 나뭇가지들을 주워와 불을 피워놓고 엄마와 아들 셋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다.

베두인 차 한잔 하고 가란다.

 

이 사람들은 왜 도시로 나가서 살지 않을까?

이렇게 열악한 곳에서 왜 그대로 살고 있을까?

 

도시인의 눈으로 또 그들을 바라본다.

그들이 살고 있는 삶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도시인의 의문을 가진다.

답도 모르면서.

 

요르단은 전 국민의 90%가 글을 안단다.

이는 중동 국가들의 평균치인 50%에 비하면 아주 높은 수치다.

요르단 정부에서 베두인 유목민들에게 교육과 주택을 제공하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베두인들이 정부의 이런 혜택에 별다른 매력을 못느끼고 여전히 사막에서 살고 있단다.

양과, 염소, 낙타를 키우면서... 

 

이제 왕족들의 무덤으로 부터는 떠나자.

페트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수도원엘 가야한다.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어디선가 말발굽소리가 난다.

청년하나가 쨉싸게 우리쪽으로 달려온다.

수도원은 여기서 아주 멀리 있으니 말을 타고 가라고..

ㅋㅋ

이보슈. 튼튼한 우리 두 다리로 걸어갈꺼유...

 

산꼭대기에 있는 수도원엘 가기 위해서는

나바티안들이 닦아놓은 길을 지나야 한다.

기둥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중앙대로.(Colonnaded Street)

로마시대의 황제가 다시 복원하기도 했단다.

 

페트라 지역을 조사해보면 이 지역에서 BC 7천년경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을 발견할수 있단다.

그러나 역사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AD를 넘어선 나바티안 문명, 로마제국 시대란다.

AD 6세기경에 이 지역에 아주 큰 지진이 있어서 많은 건축물들이 함몰되고 폐허가 되어

그 이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을 할 뿐.

자연이 만든 협곡사이에 사람들이 물을 끌어와서 살다가, 대규모 지진에 의해 산이 무너지고 지형이 변하여

아마 물이 나지 않았거나 더이상 끌어올 수 없을 것이란걸 짐작만 할 뿐이다.

그래서 아랍 이슬람 세력이 요르단을 점령한 7세기부터 19세기 초 탐험가 부르크하르트가 이를 알아내기 전까지

페트라는 외부인에게는 잊혀진 도시였단다.

 

당시의 지진으로 나바티안의 대로에 있는 기둥들이 많이 허물어져 있다.

 

중앙 대로를 지나 수도원(Ad Deir Monastery)으로 오른다.

참...

뚫려있는 동굴 하나하나에 차들이 들어가있다.

천연 차고다.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차고일지 모른다.

 

저쪽에는 당나귀도 동굴 하나를 차지했다.

천연 마굿간이다. 

 

수도원으로 올라가는 길.

붉은 바위, 흰 물결 무늬..

올라가는 길이 하나도 지겹지 않다.

주변 경관에 취해서 올라가는 길, 즐겁기만 하다.

 

한번씩 뒤도 돌아본다.

하늘 저 끝까지 바위산이 늘어서 있다.

페트라는 햇볕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바위산들의 색깔이 달라진다고 하더니만

햇살이 비치는 앞쪽은 붉은 기운이 감돌면서 총천연색이 드러나는 데 반해

햇살이 비치지 않는 곳은 그냥 컴컴한 바위색이다.

 

수도원을 오르는 길에도 호객꾼들은  당나귀를 타라고 우리를 꼬신다.

페트라에는 호객꾼들이 구간구간을 나눠서 영업을 하고 있나보다.

입구에서 한 번 타면 끝까지 쭉 들어가는 게 아니라

입구에서 협곡까지, 협곡에서 왕족의 무덤까지, 그리고 기둥들이 늘어서 있는 중앙대로에서 수도원 올라가는 입구까지

또 수도원을 오르는 산길에서...

나름대로의 영업구간이 나눠져 있으면서 서로를 침범하지는 않는 상도덕(?)이 있는 듯 하다.

대신 걸어가기를 원하는 여행자들은 매번 사양해야 하는 귀찮음도 있다.

 

아마 저 빨간 옷을 입은 아가씨는 밑에 있는 호객꾼들에게 꼬였겠지?

그냥 걸어올라가기도 숨이 찬데...

저 당나귀는 얼마나 힘이 들까?

 

두 다리 튼튼한 우리는 뚜벅뚜벅 우리 다리만 믿고 산길을 걸어 올라간다.

날씨가 제법 더워져서 윗도리 하나는 벗었다.

계단은 바위를 깍아서 만들어진 것이다.

 

햇살이 비치는 붉은 바위틈을 지나서...

 

당나귀나 말을 탄 사람들은 이 곳을 지날때는 잠시 내려서 걸어올라 가야 한다.

말 따로 사람 따로...

ㅋㅋ

꼬시다.

 

 그래도 당나귀나 말을 타는 사람들이 제법 된다.

쉬엄쉬엄 걸어올라 가는 우리는 주변의 멋진 바위산들을 천천히 감상하며 감동하며 올라가고 있는데

말을 탄 사람들은 바짝 긴장한 얼굴로 앞만 쳐다본다.

양 손으로는 말 고삐를 꽉 움켜쥐고...

하늘을 본다거나 산을 둘러본다거나. 더구나 바위산의 아름다운 무늬를 관찰하는 건 얼른 없는 일이다.

저건 그냥 수도원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는 최종 목적만이 있을 뿐,

페트라를 마음으로 느낄 수는 없을건데...

 

우리처럼 이렇게 천천히 걸어올라 가야

가다가 힘들면 중간에 쉬면서 하늘도 한번 보고, 바위산도 한번 보면서

페트라를 온 마음에, 눈에 담아 갈 건데...

괜히 남의 걱정까지 해 본다.

 

30분 정도를 걸어 올랐을까?

드디어 아드 데이르 수도원(Ad Deir Monastery)에 도착했다.

페트라에서 알 카즈네 다음으로 유명한 건축물이다.

이 꼭대기에 저 걸 어떻게 지었을까?

 

짓는다는 표현이 어쩌면 안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페트라에 있는 유적들은 뭔가 건축물을 쌓아올린 게 아니라

바위산을 통째로 뚫어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짓는다'는 표현보다는 저걸 어떻게 '해내었을까?' 라는 표현이 더 맞는지 모른다.

 

수도원의 기둥 옆에 섰다.

그냥 천연의 바위 그대로다.

거기에 사람들의 생각대로 둥글게 깍은 것일 뿐.

층층이 쌓인 세월이 지층 그대로 드러난다.

 

수도원의 벽면에도 지층의 물결무늬가 그대로 있다.

세월이 그대로 남아있다.

 

수도원을 아래로 두고 우리는 그 보다도 한참을 더 올랐다.

페트라 전체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 곳을 찾기 위해서.

온통 바위산이다.

 

반대편에는 줄지어 늘어선 산군들이 펼쳐진다.

대단하다.

멀리는 황량한 사막까지 보이는데...

 

문득 푸른 나무 가득한 우리나라의 산이 그립다.

우리나라 지리산이 그립다.

한국이 그립다.  

 

세상 구경을 하고 싶어서 떠나오고 싶어 안달이 났으면서...

세상 곳곳의 대단한 자연에 엄청난 감동을 하고 있으면서도...

좋은 곳을 보면, 꼭 떠나온 한국이 생각난다.

 

이제 다시 내려가자.

오늘 하루... 참 많이도 걷고 있다.

 

수도원을 내려와 다시 나바티안의 대로를 지나오니

앞쪽으로 왕족들의 무덤이 보인다.

아까 올라갈 때는 저 쪽으로는 햇살이 안들었는데

이제는 햇볕이 저쪽으로 확 비친다.

바위산을 뚫어 만들어 놓은 무덤들의 음양이 아주 잘 드러난다.

 

한참을 걸어 제일 처음 우리가 시작했던 협곡으로 다시 들어간다.

이제는 이 협곡을 따라 나가야 한다.

광할하게 펼쳐진 곳에서 다시 좁은 길로 들어선다.

페트라를 구경한다고 지친 여행자를 실어나르는 마차가...

또 다른 지친 여행자를 싣기 위해서 급하게 달린다.

 

아까 들어갈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코끼리 모양의 바위도 발견한다.

바위의 무늬도 보이고.

 

이제 협곡도 나왔다.

아침에 들어 갈때는 페트라의 입구가 그냥 밋밋한 바위산으로만 보였는데

오후 햇살이 가득하니 또 다른 색깔로 보인다.

 

정말 페트라는 잠깐만 보고 가는 건 아닌 것 같다.

아침, 점심, 저녁.. 햇살이 비치는 방향마다 달라지는 색깔의 변화를 봐야 할 것 같다.

저 앞에 가는 부부는 우리와 같은 숙소에 머물고 있는 사람인데

페트라 3일권을 끊어서 오늘이 마지막이라면서 아쉬워한다.

야간에도 들어왔었다는데...

달랑 하루밖에 안오고 간다는게 아쉽다.

 

페트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