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254(12월 9일) 배낭여행자들의 블랙홀, 이집트의 다합에서

프리 김앤리 2009. 12. 11. 21:43

  

이집트의 ‘다합’.

흔히들 배낭여행자의 블랙홀이라고 부른다.

한 번 들어오면 빠져나가기 힘든 곳, 몇 날 며칠씩 머무르는 곳.

붉은 바다 홍해, 다합에 우리도 지금 들어와있다.

 

 

 

 

다합은 이집트 시나이 반도의 해변 마을이다.

이집트 지도를 보면 아프리카 본 대륙과 사우디아라비아,요르단, 예맨등이 있는 아랍 반도 사이의

삼각형 모양, 거대한 땅이 시나이 반도다.

다합은 그 시나이 반도에서 남서쪽 아래에 위치하는 곳.

홍해가 바로 눈 앞에 펼쳐져 있다.

 

바로 앞은 홍해이지만

눈을 들어 고개를 뒤로만 돌리면 거대한 산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모세가 하늘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다는 험준한 시나이산이 보인다.

사막의 산 답게 풀한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팍팍한 산이다.

가까이 가서 보면 저 곳에서도 생명이 움트고 있겠지만, 멀리서는 아무것도 없는 그저 모래와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다. 

 

이집트라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깨끗한 곳.

기도 시간이 되면 울려퍼지는 아잔 소리만 아니라면 여기가 이집트라는 걸 실감할 수 없다.

다합의 조그만 해변에 수많은 숙소와 여행자들이 찾기에 적당한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있다.

 

다합의 바다, 바로 그 너머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보인다.

서쪽으로 나있는 다합의 해변에 해가 지는 시각, 맞은 편 사우디아라비아 땅이 붉게 물든다.

 

 

다합에서 사우디아라비아까지는 바닷길로 10Km 조금 넘는다.

수영을 해서 갈 수는 없겠지만 윈드서핑으로, 조그만 배로 바로 건너갈 수 있는 거리다.

물론 우리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들어갈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사업’상의 이유가 아니면 비자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 사람들은 평생 한번은 반드시 가야 할 '메카'가 있는 성스러운 땅으로 여긴다.

 

 

우리는 여기서 그저 쉬고 있다.

한국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일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우리의 여행이라는 게 그저 매일매일 쉬고 있는 것이겠지만.

 

그동안의 우리 여행이 매번 그 나라의 어럽고도 헷갈리는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숙제같은 것이 있었던 것과는 달리,

여기 다합에서는 역사와 사회문제에 대해 그다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여행이라는 것이 낯선 것에 대해서 익숙해지고 이해하고 공감하는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면

이곳 다합에서는 다합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대로 공감하고 익숙해지면 되기 때문이다.

역사를 배워야 하는 곳에서는 역사를,  낯선 문화를 찾아가야 하는 곳에서는 문화를,

그리고 편안한 휴식이 잘 정돈된(?) 곳에서는 또 그렇게... 공감하며...

 

아침이면 일어나서 해변가의 적당한 레스토랑을 찾아 편하게 아침을 먹고...

빵과 계란 후라이, 소세지, 야채, 콩조림, 커피등 풍성한 식탁을 차려내 놓고도 10파운드(2달러)만

지불하면 되니 천국이 따로 없다.

원래는 아침 메뉴가 18파운드에 커피 값도 따로이 지불해야 하는데 왕창 할인까지 해주신다.

매일 아침 서둘러 일어나서 아침을 차려먹고 일터로 나서야 하는 한국에 계신 분들에게 그저 미안할 뿐이다.

 

 

점심이나 저녁에도 또 해변가의 레스토랑을 찾아 생선요리, 닭 요리등 화려한 식탁을 맞는다.

다합이 배낭여행자들의 블랙홀이 될 수 있는 건 '이집트의 싼 물가'가 한 몫 하는 게 틀림없다.

싼 물가에 환호성을 지르며 마음껏 레스토랑을 찾는 즐거움, 다합이 주는 큰 선물이다.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세븐헤븐호텔 바로 앞에는 중국 식당도 있어서

여행 나와서 처음으로 ‘자장면’도 먹었다.

중국음식점 아니랄까봐, 양도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두 사람이 하나만 시켜도 충분하다.

한그릇에 15파운드(3달러) 라서 버젓한 식당에 두 사람이 앉아 하나만 시키기 뭐해서 자장면 말고

고기 들어간 우동도 한 그릇 더 시켰었는데... 그걸 다 먹어 치우기에는 벅찼다.

 

호텔이라고 이름 붙여진 우리 숙소, 세븐헤븐호텔은 바다가 다 보이는 전망을 가지고서도

하루 저녁 방값으로 약 8달러밖에 안된다.

우리 돈 9천원도 안되는 금액에 두사람만이 들어갈 수있는 트윈룸을 제공하는 이집트...

얄팍한 속임수나 쓰는 몇몇 이집트 사람들이 있어도 다 '용서' 해 줄 수 있다. ㅋㅋㅋ

  

 

다합에서 할 수 있는 액티비티는 여러 가지다.

홍해 바다 속을 들어갈 수 있는 스쿠버 다이빙,

멀리 나갈 필요도 없이 바로 앞바다에 퐁당 뛰어들면 화려한 산호군과 알록달록 물고기를 엄청 많이 볼 수 있는 스노쿨링,

자전거를 빌려서 다합 돌아보기,

4륜 오토바이 ATB를 타고 사막을 가로질러 나가 일몰 보기,

낙타 타고 사막 투어하기,

시나이산을 올라 일몰과 일출도 보고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는 성소에 가보기....


일단 우리는 며칠동안 바다에서만 놀고 있다.

스노쿨링 장비를 빌려 매일 아침 운동 삼아 앞 바다에 퐁당퐁당 빠진다.

배를 빌려 타고 나갈 필요도 없고, 멀리 차를 타고 나갈 필요도 없다.

숙소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타박타박 걸어나가 바로 앞 바다에 퐁 빠지기만 하면

해안가의 바다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한 바다 속 풍경이 펼쳐진다.


그래도 다합바다에서의 핵심은 다이빙이다.

세븐헤븐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스쿠버 다이빙을 해서 나도 한번 시도하기로 했다.

남편은 이미 다이버 자격증이 있어서 바로 다이빙을 하기로 하고, 나는 그냥 체험다이빙으로.

자격증이 있는 다이버 마스터가 40분동안 물 속에서 내 손을 한 번도 놓지 않고 이리 저리 인도하는 대로만

따라 흘러다니는 체험 다이빙. 무섭기도 했지만...ㅋㅋ 즐거웠다.

“잘 하더라”며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다이빙을 해보라는 권유에 ‘한번으로 족하다’며 나는 사양했다.

수영도 못해 내 키보다 깊은 물 속에만 들어가면 그저 허우적 대기에 바쁜 내가 다이빙이라니...


한 번밖에 안 했지만 그래도 다이빙 슈트를 입고 폼은 그럴싸하게 잡아본다.


 

남편은 전문 다이버 처럼 스쿠버 다이빙으로 신나게 바다속에서 놀고 온다.

한참을 물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온 남편은 얼굴에서 웃음을 놓지 않는다.

여행이 주는 느긋함에서 오는 웃음이겠지요.

더구나 물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사람이니 더더욱...

세븐헤븐 호텔의 마당에 있는 다이빙 센터에서 다이버 마스터 아미르와 지금 마스터 자격증을 따려고 준비하고 있는

일본인 샤오리와 함께 사진 한 장 찍는다.

 

 

남편은 펀 다이빙으로 모두 4번을 신청해 내일이나 모레 쯤에는

여기서 다이빙 장소로 아주 유명한 ‘캐년’이나 ‘블루홀’으로 나갈거란다.

그 때 나도 같이 나가서 스노쿨링이나 해야지...

다른 사람들은 바다 속으로, 나는 바다 위에서 둥둥 떠다니며...

스카이 블루빛 바다 위에 떠있으면 마치 하늘 위에 떠 있는 느낌.

뭐라고 말로 표현을 못하겠다, 그 자유로운 느낌을...

 

카이로가 고향이라는 남편의 다이버 강사 아미르는 그런다.

자기는 어릴 때부터 뭔가 괴로운 일이 있으면 나일강 물속으로 뛰어들었다고...

물 속에서 수영을 하다보면 모든 괴로운 건 싹 다 잊어버리고

아주 편안하고 기분 좋은 상태가 되었다고...


물 속으로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도 다 비슷한 느낌인 모양이다.

나처럼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라면 물 속이 ‘공포’  그 자체이지만

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바다에다 몸을 있는 그대로 맡기고 마치 한 마리의 고기처럼

자유롭게 떠다니다 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아질 수 없다고...

하여튼 웃음을 지우지 않는 남편과 다른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머물고 있는 세븐헤븐의 우리 방 바로 앞에서...

스노쿨링, 다이빙을 마치고 샤워까지 하고 편안하게 맞은 저녁.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아니 너무 빨리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한 곳에서 하루 이틀 자고 빨리 빨리 움직이면서 여행할 때는

하루 이틀 전이 아주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바로 며칠 전에 다녀왔던 곳이 아주 먼 옛날의 흐릿한 기억처럼 아스라하게 멀리 가 있다.

하루도 그렇게 길고...

 

 

 

그런데 여기 다합처럼 한 곳에서 오래 머물면서 매일 매일의 일상이 비슷하게 진행되면 시간은 마치 멈춰 있는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고, 바다에서 수영하고, 밥 먹다가   책보다가.. 쉬면서... 그리고 다시 저녁...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는 요 며칠은 언제 어떻게 날짜가 지나가고 있는 지 모르겠다.

다합이라는 곳에 바로 어제 도착한 것 같은데 날짜를 따져보니  벌써 며칠이나 훌쩍 지나가 있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 한국에서 우리가 늘 느꼈던 것 처럼.

 

하루를  빡시게 살았던 우리의 한국 생활....

어느 새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고, 어느 새 한달이 훌쩍 지나가버리고, 다시 일년이 다가오는 것 같았었다.

한국에서는 바쁘게 살았지만 그래도 매일매일이 같은 일들로 반복되어서

여기서는 느긋하지만 또 매일매일이 같은 일들로 진행되어서

언제 어떻게 시간이 지나는 줄도 모르는 것 같다.

다합에서 우리는 한국에서의 나날들과 꼭 같은 시간의 속도로 살고 있는 듯하다.

 

물리적인 시간은 똑같이 하루 24시간으로 굴러가고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하고 지내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상대적인 시간의 속도.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다합...

우리의 여행, 지금 우리는 홍해 바다에 푹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