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261 (12월16일) 붉은 사막, 요르단의 와디럼에서

프리 김앤리 2009. 12. 19. 03:21

 

여행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자연과 가까이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연이 주는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일 수 있고, 자연이 베푸는 빛깔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을 맴도는 바람소리, 모래가 흐르는 소리, 풀이 사그락 움직이는 소리도 들립니다.

태양빛을 받아 붉게 물드는 땅의 빛깔을,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 색깔도 즐기게 되었습니다.

물론 사람이 빠져버린 자연은 제아무리 아름다워도 소중한 의미를 갖지는 못하겠지요.

 

사람들은 그럽니다.

여행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얼굴이 편안해지는 것 같다고.

우리도 모르는 새 그렇게 바뀌어 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자연을 느낄 여유도 없이 바삐 움직여야 했던 예전의 우리와 달리

어느 듯 시간의 여유,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넉넉함이 얼굴에 배어 나오는 모양입니다.


 온천장에 계신 어머니, 그리고 양정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

 저희들은 지금 요르단 남부의 와디럼 사막에 와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어떤 건축물보다 더 아름답고 더 광활한 자연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끝도 없이 펼쳐지는 사막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여기에서 터를 잡고 살고 있는

 베두인 사람들과 함께 가야 합니다.

 어디가 어디인지도 제대로 분간할 수 없는 여행자들은 이들이 모는 지프차나 낙타를 타야만  사막을 돌아다닐 수가 있습니다.

 

 이집트의 다합에서 요르단의 와디럼 사막까지 오는 길은 참 멀었습니다.

 아침 9시에 다합을 떠나 누웨이바까지 봉고차로 2시간, 누웨이바 항구에서 6시간을 기다린 끝에

 다시 두시간 정도 배를 타고 홍해를 건너 요르단의 아카바에 도착했습니다.

 그날 저녁은 너무 늦게 도착해 바로 와디럼 사막으로 들어올 수는 없었습니다.

 먼 옛날 카라반 무역의 중심지였던 아카바에서 하룻밤을 자고

 새벽 6시에 호텔에서 나와 다시  택시를 타고서야  겨우 와디럼 사막의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우선은 와디럼의 비지터 센터(Visitor center)에서 우리와 동행할 베두인 가이드를 만나야 했습니다.

 다행히 쉽게 가이드를 만나서 그가 사는 동네로 먼저 들어왔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움직여서 우리가 제법 일찍 왔나 봅니다.

 다른 여행자들이 마저 올 때까지 시간이 조금 나서

 베두인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마을의 언덕위에까지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저 아래 몇 채 안되는 집들이 보입니다.

 이렇게 조그만 마을이라도 학교도 있었습니다.

  

오전 11시까지는 가이드의 집으로 돌아가야 와디럼 투어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서둘러 내려오니 낙타 두 마리가 우리를 반깁니다.

이 녀석들의 몸 색깔이 자연의 색을 그대로 닮아 있습니다.

언뜻 보면 구별이 안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막이라고 하면 모래산과 모래사막만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와디럼 사막에 있는 거대한 바위산은 참 장엄합니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낙타를 탄 여행자와 자가용을 동시에 봅니다.

이 사람들은 아마 낙타를 타고 사막 구경에 나서나 봅니다.

우리는 사륜구동 차를 타고 들어가겠지요.

조금은 마음이 설레입니다.

사막 여행은 몇 년전에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에 가보고 처음입니다.

그때도 겨울이었는데, 어찌나 추웠던지 사막엘 들어가려고 하는 지금,

한편으로는 설레이고 한편으로는 추울까봐 걱정도 되고 그럽니다.

 

자!!! 이제 우리도 떠납니다.

우리를 실은 지프차가 마을을 떠난 지 5분도 안되어, 우리 눈 앞으로 사막이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아마 다른 팀들도 여럿 되나 봅니다. 앞서가는 차량들도 제법 있습니다.

오늘 우리 팀은 일본인 카츠, 프랑스인 로렌스, 나미비아인 실키, 그리고 우리 둘. 모두 다섯명 입니다.

고작 일주일 휴가를 받아 요르단으로 여행 온 카츠는 참 조용한 친구입니다.

그냥 조용히 사막을 느끼고만 있습니다.

로렌스와 실키는 커플인데 참 말도 많은 친구입니다.

로렌스는 영화 ‘아라비아 로렌스’의 실제 배경이기도 했던 와디럼 사막에 들어와서

마치 옛날 자기 집에 돌아온 것 같다며 떠벌입니다.

 

아버지! 우리가 살던 집에는 나무가 제법 많이 있었지요. 꽃도 많이 피었었고...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등산을 다녀오신 아버지는 아침 일찍부터 그 나무와 꽃들에게 물을 뿌려주었습니다.

아침 식탁에서 한번 씩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물었더랬습니다.

“느거들, 목련 꽃 핀 거 봤나?”

“연산홍 핀 거는 봤나?”

....

무슨 무슨 꽃 이름을 대며 계절의 변화에 대해서 말씀 하셨지만, 저는 그걸 알고 있었던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 큰 이파리가 뚝뚝 다 떨어지고 난 뒤에 어느 날 목련이 피었다가 져버렸구나 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사실 그런 생각도 거의 없었습니다.

꽃이 피는지 지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제가 알 수 있었던 유일한 변화는 만리향 꽃이 피었을 때 뿐이었습니다.

만리까지 꽃향기가 퍼진다는 그 꽃은 제가 관심을 두지 않아도 알아서 내 코까지 향기를 갖다주어

‘꽃이 핀 사실’을 느낄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마당 연못에 살고 있는 콩알 만한 물고기의 상태까지 세세하게 살피시면서 그 녀석들 숨쉬기 좋게 한다며

매일 아침 연못에 떨어진 나뭇잎을 하나하나 다 주워주시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은

그저 일상처럼 흘러가는 우리 집의 한 풍경이었을 뿐입니다.

저는 매일 매일 밖에서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좋았고, 그 사람들과 어울려 계절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랬던 제가... 여행을 떠나오니 자연이 보이네요.

바람소리도 들리고, 팍팍한 사막의 벌판에서 자라나는 풀이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이런 곳에서도 생명의 씨앗을 뿌려놓은 이 놈들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발걸음을 옮길 때 혹시 이 녀석들을 밟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기도 하고,

우리 차 바퀴가 쓱 이들을 밀어버리고 지나가지 않을까 걱정까지 합니다.

 

우리를 실은 차가 ‘로렌스의 샘’이라며 우리를 내려줍니다.

계곡 사이 언덕위로 조금만 올라가면 샘이 있답니다.

거기에서 호스를 연결해 물을 아래로 끌어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아래에 사람이 살 수 있나 봅니다.

낙타에게도 말에게도 거기서 내려온 물을 마시게 합니다.

베두인 사람들은 관광객들을 위해 천막을 쳐놓고 베두인 차도 팔고...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은 사막에서도 샘솟는 물이 있다니 참 경이롭습니다.

베두인 가이드는 우리더러 로렌스의 샘이 있는 곳까지 올라가보겠냐고 물었는데

게으른(?) 여행자 다섯, 어느 누구도 올라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산을 오르고 싶어서 여기를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저 황량한 사막, 끝도 없이 펼쳐진 모래바다를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베두인 사람들에게 ‘와디럼’은 그들의 집입니다.

이런 척박한 곳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그냥 한번 들르는 여행자들은 한결같이 의문을 갖지만

이들에게는 이 곳에서의 삶이 자연스럽게 가장 편안한 곳일 겁니다.

먼지도 많고, 바람도 많이 불고,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곳.

그러나 이들은 세상 어느 곳보다 여기가 가장 편안한 그들의 집입니다.

사막 가운데서 만나는 베두인 사람들과 그들의 머리에 두른 터번, 그리고 낙타... 모든 게 참 자연스럽습니다.

 

제가 와디럼 사막을 알게 된 건 지난 해 연말쯤이었습니다.

EBS 세계테마기행의 요르단 편에서였습니다.

지난 해 연말이라면 십년 이상을 기다려온 우리의 세계여행이 ‘실현 가능한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시점이었습니다.

저도 그렇고 이서방도 그렇고,

대충 주변의 일들이 정리가 되어 ‘드디어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겠구나’  느끼던 때 였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세계 곳곳의 이야기들에 관심이 많았지만

작년 이맘 때 만큼 세계 구석구석이 현실적으로 다가온 적은 없었습니다.

딱, 그 시점, 세계테마기행에서 요르단의 ‘와디럼 사막’이 방영된 겁니다.

“우리, 저 곳에도 가자!!!”

 

지금 우리가 그 곳에 와 있습니다.

거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넓은 사막, 험준한 바위산, 하늘... 그리고 우리가 있습니다.


흙과 돌에 관심이 많은 로렌스와 실키는 하늘을 쳐다보는 일보다 땅을 보는 일이 더 많습니다.

사진을 보니 저 순간이 다시 떠오릅니다.

 

와디럼(Wadi Rum) 사막.

‘와디’는 여기 말로 계곡(Valley)이라는 뜻입니다. ‘럼’은 그냥 하나의 이름이랍니다.

와디럼, 그러니까 ‘럼 계곡’이라는 뜻이지요.

사막인데도  이름에 계곡을 붙여 놓은 것은 저 거대한 바위산들 때문일 겁니다.

제일 높은 바위산은 1,700m도 넘는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사막 한가운데 덕유산만한 높이의 산이 불쑥 솟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거대한 바위산과 바위산 사이에 모래계곡이 만들어져 있는 곳이 와디럼 사막입니다.

 

와디럼은 여기 사람들에게 ‘달의 계곡’이라고도 불리웁니다.

밤이면 요르단에서 가장 많은 별을 볼 수 있는 곳도 와디럼이라고도 합니다.

주변에 인공적인 불빛이 하나도 없어서 밤이 되면 자연 그대로가 이 광활한 사막위에 내려앉는다고 합니다.

오늘 밤에는 달은 없겠지만 쏟아지는 별은 마음껏 볼 수 있겠지요.

‘달의 계곡’ ‘별의 계곡’ 와디럼에서...


이 사진은 찍어놓고서 아주 만족해했던 사진입니다.

사진 밑 부분에 있는 사람 둘의 그림자가 바로 저희들 것입니다.

바위산들이 오랜 세월 바람에 깍여 만들어놓은 작은 다리(Little Bridge) 위에 올라선 겁니다.

참 작지요?

저 거대한 자연 앞에 서 있는 우리의 모습은 정말 작습니다.

 

사막의 바위산은 수만년 세월동안 바람에 깍여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내었습니다.

앞의 사진은 작은 다리였는데 이건 앞선 것보다 더 웅장한 다리입니다.

사람이 손이 전혀 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저는 무서워서 여기를 올라갈 수 없었습니다.

가이드는 이 위로 가면 스펙타클, 파노라믹 뷰가 펼쳐진다며 올라가라고 했는데

세월에 깍인 바위가 맨들맨들한 게 여간 겁이 나는 게 아니었습니다.

높이도 장난이 아니고... 김씨 집안의 용감한 딸이 여기서는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습니다.

이서방은 용감하게 저 꼭대기까지 올라가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대신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파노라믹 뷰를 제공하며 아래에 섰습니다.

달의 계곡 사이에 서 있습니다.

바람이 많이 불어 입안으로, 코안으로 모래 먼지가 마구 들어갑니다.

이집트에서 사온 머플러가 여기서 단단히 한 몫 하고 있습니다.

 

한참동안 사막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지프차는 우리를 거대한 모래언덕 앞에 내려놓습니다.

완전 붉은 모래언덕입니다.

저 아래, 우리를 싣고 온 차량이 좁쌀만하게 보입니다.

 

모래 언덕 위를 오릅니다.

발이 푹푹 빠집니다.

안 미끄러지려고 발바닥에 힘을 주니 발이 더 모래 깊숙이 빠지면서 오히려 올라가기가 더 힘듭니다.

한 쪽 발이 모래에 닿는 듯 하면 가볍게 힘을 주고 얼른 다른 발로 옮기면 조금 낫습니다.

괜히 힘주며 용을 쓰면 오르기 힘든 것이 모래언덕인가 봅니다.

그야말로 사뿐사뿐 올라야 합니다.

나를 뒤따라 일본인 카츠도 올라오고 있습니다.

 

바람이 만들어 놓은 사선의 모래언덕 꼭대기까지 올랐습니다.

사람들이 올라오는 쪽은 발자국이 많았지만 다른 한쪽은 사람들의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아니 매번 불어오는 바람이 사람들이 흔적을 금방금방 지워버리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세차게 불어댄 바람의 무늬만 있습니다.

화면을 잘라버리는 듯 파란 하늘과 붉은 모래언덕이 갈라져 있습니다.

 

와디럼 사막은 붉은 사막입니다.

모래 중간 중간을 보면 붉은 사막을 만들어내고 있는 돌들이 보입니다.

마치 우리나라 어항속에 이쁜 돌로 넣어놓는 것 같은 붉은 빛깔의 돌들입니다.

이 빛깔의 돌들이 바람에 깍이고 깍여서 온 세상이 붉은 것 같은 와디럼 사막을 만들어 내고 있나 봅니다.

 

바람이 만들어 놓은 무늬입니다.

붉은 빛깔의 돌들이 깍이고 깍여 붉은 모래가 되어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무늬를 만들어냅니다.

 

사람의 손길이 전혀 없는 자연이 만들어놓은 자연그대로의 사막인 것 같은데

여기에도 먼 옛날 사람들의 흔적이 있습니다.

와디럼 사막 바위산의 벽면에는 수천년 전 사람들이 새겨놓은 그림들을 볼 수 있습니다.

낙타, 새, 사람들의 모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와디럼이라는 지명이 그리스 로마 문헌에도 나와 있다는 걸 보면,

여기에는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나 봅니다.


여행을 떠나오고 나서 백년 이백년의 역사는 바로 얼마 전 같이 짧게 느껴집니다.

가는 곳마다 천년 이천년 아니 그를 훨씬 뛰어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어서

인류의 위대한 역사를 종종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발전은 정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닫습니다.

정말 도도하게 역사는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역사의 흐름에는 반드시 인간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도 또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단순히 자연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연을 일구어 온 위대한 인간의 역사 말입니다.

 

카츠와 실키가 열심히 나바티안의 그림들을 보고 있습니다.

한국, 일본, 프랑스 , 나미비아. 각자 자신들의 나라는 달라도

오랜 전 인류가 남겨놓은 흔적 앞에서 느끼는 감정은 비슷할 것입니다.

 

우리를 태운 지프차는 또 사막 위를 달립니다.

사막위에는 따로이 정해진 차도가 없는 것 같으면서 이들 나름대로 지키는 운전 규칙은 있는 것 같습니다.

중간 중간에 움트고 있는 작은 나무(? 풀)은 살짝 비켜가고

가능하면 앞선 차량들이 만들어놓은 사막위의 차도(?)로만 달립니다.

사방천지가 모래 사막에 바위산으로 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것 같은데

이들은 군데 군데 찾아가야 하는 다음 목적지에 딱딱 도달하는 걸 보면 길이 있나 봅니다.

 

지프는 사막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가이드라고 하지만 이 베두인 사람은 별로 말이 없습니다.

우리더러 모래언덕을 오르라 하고, 아니면 바위 산을 타라, 바위산이 만들어 놓은 협곡속으로 들어가봐라,

사막 한가운데를 걸어봐라 하고선 자기는 그냥 가만 앉아 사막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때로는 사막 한가운데 자라고 있는 나무만 멀뚱하니 쳐다보고 있습니다.

별로 말이 없는 진중한 사람입니다.

원래 베두인이 이렇게 무뚝뚝한 건지...

우리 팀 사람들이 대부분 그냥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는 걸 좋아하는 걸 인정하는 건지,

자기도 우리도 그저 사막을 느끼고만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참 좋습니다.

이상하게 거대한 자연 앞에 오면 인간의 자잘한 설명이 하찮은 것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질녁이 다 되어서 오늘 저녁 우리가 묵을 사막 한가운데 있는 캠프에 우리를 내려놓습니다.

해가 지기 전까지 한 시간쯤 시간이 남습니다.

이제는 그냥 우리끼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걸어가 봅니다.

사막위의 한 점이 됩니다.

 

서쪽 하늘에 해가 질려나 봅니다.

해가 뜨고 해가 진다는 사실은 하루도 빠짐없이 일어나고 있었던 일인데

어찌 일상에서는 그리 무심해지는지요.

 

제가 출근이라는 걸 꼬박꼬박 하던 시절-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닌데 아주 까마득하게 느껴집니다 -

겨울, 이 맘때 쯤이면 해운대 달맞이 언덕을 넘어가는 출근시간이

동해바다에서 떠오르는 일출시간대와 거의 맞아 떨어졌습니다.

바다가 붉게 물드는 장관이 아침마다 펼쳐졌겠지만

꼬부랑 고갯길을 운전해야 하는 저는 거기에 감동을 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아니 꼬부랑 고갯길이어서라기 보다는

늘 지각을 할똥 말똥해서 액셀레이터를 밟아야 하는 데 더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천하제일경이라는 해운대 아침 해맞이는 한 번도 마음 놓고 구경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무심했던 저에게 여행은 아무 걱정없이 오랫동안 기다려 일출도 보게하고,

또 이렇게 느긋하게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시간에 쫓기지 않아서 얼마나 편안한지 모릅니다.

 

와디럼 사막의 해지는 장면을 보기 위해  바위 언덕 위를 올랐습니다.

아래는 오늘 저녁 우리가 잘 텐트가 쳐져 있는 베두인 캠프입니다.

서쪽 하늘로 넘어가는 태양이 마지막으로 보내오는 붉은 빛으로 우리가 앉아 있는 바위를 물들였습니다.

모래 사막도 붉고, 바위산도 붉고, 사람들의 얼굴도 붉어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한참동안을 저 위에 앉아 와디럼의 해가 지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이제 해가 거의 넘어 가려나 봅니다.

바람도 서서히 차가워지기 시작합니다.

 

지난 번 모로코 사하라 사막에서는 텐트라고 쳐 놓은 게 그냥 하늘 위를 가렸을 뿐,

사방이 다 열려 있는 텐트에  모래 위에 거적떼기를 깔아놓고, 이불이라고 주는 것도 거적떼기였는데,

여기는 그 때에 비하면 고급 호텔입니다.

사막 한 가운데인데도 더블룸 텐트에 담요도 깨끗하게 두 장씩이나 주고, 바닥에도 스펀지 시트 같은 게 깔려 있습니다.

이만하면 오늘밤은 그리 고생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와디럼을 거쳐온 이집트에서 만난 사람들이 추워서 고생을 했다는 말을 하도 많이 해서

사실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라면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별이 쏟아진다는,

요르단에서 가장 아름다운 밤하늘을 맞을 수 있다는 와디럼의 밤을 기다리고만 있으면 될 것 같습니다.

 

사막의 모래에 웅덩이를 파서 구워낸 바비큐 닭과 밥, 브로클리 감자, 피망등을 넣어서 매콤하게 만든 소스,

야채, 빵, 찐한 베두인 티까지 맛나는 저녁이 나왔었습니다.

오랜만에 나무 장작이 타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모두들 배불리 저녁을 먹고 나니 사막 한가운데 사는 베두인 사람이 전통악기를 연주하면서 노래까지 불러줍니다.

지난 번 사하라 사막에서도 느낀 건데 이들의 음률은 참 단조롭습니다.

아프리카의 음악은 아름다운 선율보다는 흥을 돋우는 박자에 더 치중하는 것 같습니다.

노래가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탁탁 두드리는 박자에 익숙해지면 저절로 흥이 납니다. 

베두인 티를 마시면서 제법 한참동안 이들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밖은 이미 어두워졌습니다.

밤하늘을 보러 나갔습니다.

과연 하늘에는 별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온갖 별자리들이 눈에 들어오고 정말 오랜만에 은하수도 보았습니다.


아버지, 어릴 때 우리 집 옥상에서는 항상 은하수를 불 수 있었는데... 그지요?

이제는 부산의 어느 곳에서도 은하수를 볼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어린 날, 우리 집 옥상에서 보던 은하수를,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이곳 요르단 하늘에서 다시 보았습니다.


밤하늘의 별들은 우리 카메라에 담을 수는 없었습니다.

실력이 모자라는 건지, 카메라가 밤하늘을 담는데 성능이 부족한 건지... 둘 다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보여드릴 수가 없습니다.

대신 우리 가슴속에 쏠랑 담아가지고 갑니다.

 

걱정했던 거와는 달리 정말 포근한 밤을 보냈습니다.

상쾌하게 잠을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와디럼 사막에 안개가 끼었나 봅니다.

간밤에는 비도 조금 왔었습니다.

텐트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었습니다.

와디럼 사막에는 겨울에만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한여름에는 4~50도를 넘나드는 불볕 더위만 계속되고...

이렇게라도 비가 내려주니 사막에도 생명이 살 수 있나 봅니다.

잠결에 들었던 빗소리가 오히려 반가웠던 이유도 ‘생명’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안개낀 아침, 사막을 걸어봅니다.

모래가 더 붉게 보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일어나 이미 사막을 걷고 있는 사람도 보입니다.

 

한참을 걸어갔습니다.

붉은 모래 사막 위를 , 안개 자욱한 사막위의 바위산을 보면서...

 

이제 와디럼을 떠나야 할 시간이 다 되갑니다.

사막 한가운데의 캠프에서 아침까지 먹고 떠나기로 되어 있습니다.

붉은 모래바다와 거대한 바위산, 황량하고 광활한 사막벌판,

바람소리, 모래소리, 풀 소리... 태양... 쏟아지는 별...

모두, 여기 그대로 두고 떠나야 합니다.

다시 한번 우리 캠프의 앞에서 와디럼 사막을 눈에 담아둡니다.

장엄한 바위... 거대한 모래사막... 그 앞에 있는 인간들이 타고 다니는 조그만 차량...

 

다른 사람들도 다 아쉬운 모양입니다.

간밤에 이 캠프에는 우리 팀 말고도 다른 서너 팀이 더 와서 함께 묵었습니다.

캠프의 주인 아저씨와 조카, 그리고 한 여행자의 어린 아이가 함께 폼을 잡습니다.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집니다.

참 이쁜 장면입니다.

사막 한가운데의 캠프에서 밤을 보내야 하는 투어에

네 댓살 밖에 안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나온 서양 부모들이 제법 있습니다.

참 멋지게 키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두인 아저씨는 형제가 서른 두명인가 그렇답니다.

베두인 전통대로 한명의 남자가 여러명의 여자들과 결혼을 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한분이지만 어머니는 4명이라고...  각 어머니 아래 태어난 자녀들이 많으니 형제가 서른명이 넘겠지요.

그래서 같이 이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전부 형제고 조카입니다.

좀 더 있으면 이 아저씨랑도 더 친해지고 하겠지만...

이제는 우리의 갈 길을 떠나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와디럼 사막을 눈에 담습니다.

자연 속에 완전히 들어가 있었던 1박 2일을 보내고 우리는 이제 페트라로 떠납니다.


우리는 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