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250 (12월 5일) 이집트의 영광, 룩소르에서

프리 김앤리 2009. 12. 5. 14:50

<이집트 경찰 이야기... 그리고 이집트 사람들>

이집트 경찰 이야기부터 하고 가자.

‘이집트 경찰’ ... 흐미~~~ 나는 무서버...

총을 들고 있단 말이야...

유적지 어느 구석에서 갑자기 나타나 한쪽 어깨에 총을 메고서

‘이리 가까이 오라’고 하면 저게 뻔히 무엇을 의미하는 줄 알면서도

우선은 어깨의 그 총 때문에 약간은 움찔.

더구나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찰이 부른다면 찍소리 못하고 가야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경우에야...

외국인도 마찬가지일게다. 경찰이 부르는 데 감히 누가 거부할 수 있단 말인지.

 

진짜 총알이 들어있는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사람들은 꼭 구석에 있단 말이야.

 

 

 

ㅋㅋ 저 커플, 이집트 경찰한테 걸렸다.

아마 저 구석으로 가면 좋은 볼거리가 있다고 했겠지?

그리고 사진 찍어주고... 다음은 돈 요구하고...

돈을 줘도 기분 나쁘고, 안 줘도 기분 더럽고...

하여튼 이집트 경찰 곁으로는 안가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인데,

이 사람들, 뭔가 볼만한 위치라면 다 차지하고 있어서...

 

 

 

 

룩소르 카르낙 신전의 가장 안쪽이다.

약간 높은 둔덕이 보인다.

저기 올라가 봤으면 좋겠는데...

역시나, 저기에도 이집트 경찰이 지키고 있다.

손짓을 한다. 저기로 오면 카르낙 전체 풍경이 다 보인다며.

얼마나 친절한 미소를 짓는지.

친절과 속임수 사이에서 갈등해야 하는 불쌍한 여행자들...

 

 

 

 

에라이 모르겠다.

올라갔다. 

“살람 와레이쿰.. 제 이집트 이름은 음네야라구요...”

나도 한껏 떠벌리고 그가  말하는 뷰포인트에서 사진 한 장 얼른 찍는다.

자기가 찍어주겠다는 거, 살짝이 사양하고... 얼른 발길을 다시 아래로 돌린다.

갑자기 얼굴 표정이 변하는 경찰아저씨.

money, money.  엄지와 검지를 살살 비비면서 money, money.

그냥 뒤도 안 돌아보고... “슈크란(땡큐)!!” 하고 내려 와버린다.

우리 등뒤에서 아랍어로 뭐라고 큰소리로 말한다.

아마 욕이 하는 것이겠지...

기분 더럽다.


저 경찰이 없었다면 우리는 저 낮은 언덕에 한참을 앉아 람세스 2세의 영광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카르낙 신전을

오랫동안 볼 수 있었을텐데...

로마에서도 다른 어떤 곳보다 포로 로마노가 좋았던 이유는

거의 다 허물어진 곳이지만 포로로마노가 다 내려다 보이는 낮은 언덕위에 앉아

수천년 전의 당시를 머릿속으로 상상할 수 있어 아주 행복했었는데

이집트에서는 유적지에 앉아 뭔가를 상상하고 생각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있다.

저 놈의 경찰들과 삐끼들 때문에...


쿠바를 여행했던 남편은 그런다.

쿠바에서는 경찰들이 사람들로부터 굉장히 존경을 받고 본인들도 아주 긍지와 자존심을 가지고

새벽 늦게 까지 일을 한다고...

월급이 많은 이유도 있겠지만 ‘부패’가 전혀 없어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경찰 본연의 의무를 충실히 하고 있어서란다.

이집트 경찰의 월급은 현재로선 우리가 전혀 알 길이 없으나

유명 유적지 후미진 구석에서  부패라고 이름짓기에도 쪽팔리게 관광객들에게 1달러, 2달러나

받아내는 걸 보고 있자니 답답해 죽겠다.

문제는 몇몇만 그러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경찰이 다 그런다는 게 더 심각하다.

하루를 마치면서 이들은 서로 이런 대화를 나눌까?

“ㅋㅋ. 나는 오늘 대어를 하나 잡았어. 이만큼 큰 돈을 내밀더라니까???”

아니, 각자의 조그만 푼돈 벌이 사업은 서로서로 숨길까? 아니면 나눠먹을까?

그 푼돈을?

 

 

 

경찰만 그러는 게 아니라는 것도 문제.

물건을 들고 원달러 원달러 하면서 뭔가를 사라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상인들도 그렇지만

유적지에서 아랍인 전통 옷을 입은 관리인들도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요구하기는 마찬가지다.

입장료를 당당히 내고 들어왔음에도..

여기가 좋은 뷰포인다. 어디서 왔느냐고 친절하게 말을 걸면서....

저 순진해 보이는 서양인 커플도 걸려(?) 들었다.

어쩌면 알면서, 또 각오하고 사진을 찍는지도 모른다.

히잡을 부인에게 부지런히 씌워주고는 함께 사진 한 장 찍고,

이번엔 남편과도 한 장.

다음엔 과연 어떻게 할까?

 

 

 

역시나 돈을 요구하고 있다.

동전을 건네는 부부.

그러나 어림없다. 지폐를 달란다.

약간 난색을 표하지만... 큰 돈 밖에 없다는 투.

거스름돈까지 주며 끝내는 지폐 20P(4달러)를 받는다.


우리나라에서도 할머니들 모아 놓고 휴지부터 비누, 약, 심지어는 비싼 찜질침대까지 비싸게

팔아대는 장사꾼들이 있다.

친정 엄마는 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놀기 삼아, 때로는 자신의 정신 건강, 육체 건강을

마치 그 사람들에게 맡겨 놓았다는 듯이 열심히 그 곳을 다니신다.

조금만 사라고, 엄마의 놀이터 정도로만 생각하고 하나씩만 가끔 사라고 얘기해도

때로는 비싼 물건들을 턱턱 사와 우리를 속상하게 만든다.

엄마 왈. “그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 그 사람들도 땅 팔아서 장사 하겠냐?

우리 같은 할머니들이랑 놀아 주는 게 고맙지 않냐? 나랑 잘 안놀아 주는 느거들은 가만 있어라.“ 라면서

오히려 지 살기 바빠 엄마를 외면하고 있는 딸들을 나무래서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 엄마의 논리에 의하자면 ‘돈을 남겨 먹는 게 뻔히 눈에 보이는 짓’이지만 그 사람들의 사는

방식을 인정한다는 거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 엄마들의 속깊은 마음에 오히려 놀라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 엄마처럼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고만 친다면

매일 유적지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서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요구하는 이집션 나름의 살아가는 방식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하여튼 우리 맘에는 안 든다.

 

 

왕의 계곡 투어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탄 페리의 선장(?)

열 살이나 되었을까?

보트를 모는 솜씨가 여간 아니다.

 

  

그리고 이 아이는 기관장(?)

이 녀석들 둘이서 이 배를 몬다.

귀여워서 사진을 찍는다.

어린 나이에 길거리에서 외국인에게 동냥질 하지 않고

직접 배를 몰면서 당당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 여간 기특한 게 아니다.

그런데...

배에서 내리는 우리에게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비빈다.

“money... money..."

배를 몰면서 사진을 찍을때의 순진하고 착한 모습이 아니라,

다른 이집트 어른들과 똑같이 비굴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집트가 잘 살지 못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겠다.

기름도 나는 산유국인데다가, 나일강가의 기름진 땅에 넘쳐나는 곡식들...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오는 관광객들로부터 벌어들이는 외화 수입도 만만찮을텐데...

문제는 정치구조와 교육이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교육을 제대로 시키고,

정직한 정치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이들이 못살아야 할 이유가 없을텐데...

나일강에서 페리를 몰고 있는 어린 나이의 선장과 기관장을 만나 씁쓸하게 배에서 내린다.



<또 만나고 또 만나는 네델란드 아줌마, 콜리>

네덜란드 아줌마 콜리.

우리의 첫 번째 만남은 아스완에서 페리를 타고 오는 배에서였다.

다른 사람들도 워낙 많은 배라,

그때까지는 그저 현지인이 타는 페리에 올라탄 우리 외에 유일한 외국인이겠거니 라고 생각했었다.

다음은 아스완 강가, 맥도널드에서. 커피를 마시다 다시 부딪혔다.

그도 우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같은 페리를 탔었다고...

자연스럽게 합세해서 서로가 이집션들에게 어떤 곤욕을 치루었는가로 한참을 떠들어 댔었다.

그 때 우리는 나일강 크루즈를 할 계획이라고 그에게 말했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아부심벨에서 또 만나고.

이틀 후.

나일갈 크루즈 중간에 내린 콤옴보 신전에서 다시 그를 만났다.

우리 계획을 듣고 자신도 급히 크루즈를 신청했다나?

이집트 가이드 북을 열심히 읽고 있던 그는 우리에게 콤옴보 신전에 대해 열심히 설명까지 해줬다.

다음날은 에드푸 신전에서.

다음날은 룩소르 카르낙 신전에서 또.

 

  

지금은 이집트 여행의 성수기라 가는 곳 마다 여행자들이 넘쳐났다.

수많은 여행자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지나가는 코스가 비슷하기는 하지만

어떻게 콜리와 우리는 같은 장소에 거의 같은 시간대에 다니고 있는지.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이 후미진 곳에까지 똑같은 시간에 돌고 있는지.

카르낙 신전의 한 모퉁이에서 다시 부딪힌 우리는 서로를 확인하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이거, 오늘 저녁에는 한 잔 합시다.


콜리는 우리와 다른 호텔(?)에 머물고 있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 그가 있는 호텔의 옥상 레스토랑까지 찾아가서 맥주를 한 잔 했다.

58세. 네델란드의 암스테르담에 살고 계신다.

우리나라로 치면 정부 복지기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정년이 아직 몇 년 더 남았지만

그냥 은퇴했단다. 돈 버는 것 말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하고 싶은 일이란? 공부!

철학과 고고학 공부를 더 하고 싶으시단다.

서양나이 58세라면 만 나이가 없는 우리나라로 친다면 거의 60이라는 얘기다.

60이 된 할머니가 철학.고고학 공부를 더 하고 싶으시다니?

대학에서 개설된 강좌를 들을 생각인데 따로이 자기는 학위가 더 필요한 것이 아니라서

학비가 그리 많이 들지는 않는단다. 대단하다. 이 여행도 그런 자기 미래를 위한 준비 중의 하나라고... 대단하다.

그래서 이 할머니(?) 그렇게 유식했구나!!!

특별히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유럽의 복지 시스템과 정치 구조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신다.


우리를 이렇게 이집트에서 여러번 만난 것도 큰 인연이지만

자기는 오늘 더욱 정말 놀라운 인연을 만났단다.

3년 전 터키 페르가몬에서 만나 하루를 같이 보낸 독일인 부부를 여기 룩소르에서 다시 만나

내일은 그들과 함께 택시를 렌트해서‘왕의 계곡’을 돌아볼 거라고.


흥겨운 맥주타임을 가지고 우리는 그의 방까지 따라가 이메일을 주고 받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다시 몇 년이 지난 후 우리도 지구의 어느 곳에선가 기적처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며.

어쩌면 내일이라도 우리는 다시 어디에서 부딪힐지 모른다며...

 

 

ㅋㅋ

다음날 하셉수트 신전에서 우리는 다시 부딪혔다.

우리는 투어를 신청해서 단체로 간거고

그는 개인 택시를 렌트해서 따로이 온 거였는데도

또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만났다.

서로 웃는다.

이번에는 그도 혼자가 아니다.

3년 전에 만났다는 독일인과 함께였다.

독일인 커플에게 우리를 소개한다.

자기도 우리 이야기를 들었단다.

 

하셉수트 신전 여기저기를 보면서 빨리 가자는 가이드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저기 구석을 우리는 한번 더 둘러보고 오겠다며 들어갔다.

거기에도 역시 콜리가 있었다.  또 한 번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웃고...

역시 우리 인연은 질기다니까요!!!


 

<이집트의 영광, 카르낙 신전>

룩소르는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와 같은 도시다.

예전에는 테베라고 불리웠던 곳이다.

이집트 고대 왕국의 수도가 있던 곳, 서쪽 사막 골짜기에는 왕족들의 무덤이 있고,

람세스 2세와 그의 아버지 세티 왕의 위대한 건축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룩소르.

우선 카르낙 신전(The Temple of Karnak)을 찾았다.

 

  

입구를 들어서면 카르낙 신전을 지키는 스핑크스들이 줄지어있다.

숫양의 머리를 하고 있는 스핑크스.

고대 이집트에서는 숫양을 신성시 했고, 나일강을 지배하는 신으로 숭배했다.

 

양쪽의 파라오의 거상도 보이고,높은 벽의 탑문도 지난다.

 

 

이집트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파라오 람세스 2세 석상.

다리 사이에는 그가 가장 사랑했던 딸의 석상이 있다.


BC 3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집트의 고 왕국 시대에는 파라오왕을 바로 신으로 받들었다.

기자지구에 있는 피라미드의 주인, 쿠푸왕, 카프라왕들의 시절이었다.

그러나 신왕국 시대에 들어서면서 파라오는 신들의 비호를 받는 절대 권력으로 인정하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투모투스, 하셉수트, 투탕카멘, 세티, 그리고 람세스는 다 이 시절의 파라오들이었다.

파라오는 카르낙 신전에서 즉위식을 치르고 아문신과 하나되는 의식을 치룬 후 왕으로 인정받았단다.

 

 

카르낙 신전의 압권은 바로 이 곳, 거대한 기둥들이 늘어서 있는 대 열주실.

23m 높이의 거대한 기둥들이 134개나 줄지어 늘어서 있는 곳.

어마어마한 규모에 입을 다물 수가 없다.

모든 기둥들에 하나도 같지 않은 부조들을 새겨놓았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색이 거의 날아가 버렸지만, 예전에는 부조 하나하나가 다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붉고 푸르고, 노랗고 검은 색들로 칠해져 있었던 거대한 기둥들.

수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상상을 해본다.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천년도 더 앞선 시간이다.

 

 

엄청난 크기의 기둥 아래를 지나가는 사람들.

콩알만하다.

 

 

입구에 앉아있는 또 경찰에 이끌려 카르낙의 은밀한 곳까지 들어간다.

하셉수트 여왕의 신전이란다.

햇빛이 덜 들어서인지 부조의 색깔이 제법 많이 남아있다.

 

 

하셉수트 여왕 신전의 벽 부조에 있는 쇠똥구리(?).

쇠똥구리 부조에 손을 갖다 대었다가 가슴에 손을 얹는 것을 반복하라고 시킨다.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하다.

 

 

카르낙 신전에서 유명한 거대 쇠똥구리(Giant Scarab) 석상.

영화 ‘미이라’를 보면 피라미드를 지키는 벌레로 쇠똥구리가 막 기어나오는 장면이 있다.

(영화 속의 상상도 다 현실에 근거한 거다. 이걸 보면... 여행을 많이 다녀야 한다니까...)


이집트에서 쇠똥구리는 행운의 상징이다.

태양의 신 ‘라의 아들’로 여겨지는 쇠똥구리는 마치 태양을 굴리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어

행운의 상징으로 여겨진단다.

카르낙 신전을 찾은 사람들은 이 거대 쇠똥구리석상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세 번 돌면서 행운을

빈다. 반드시 시계 반대방향이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심장하고 좀 더 가까운 쪽으로 쇠똥구리상을 돌아야 하기 때문이란다.

 

 

우리도 각자 열심히 세 바퀴를 돌았다.

이렇게 세상 가는 곳마다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의식(?) 죄다 치르고 있으니

행운이 넘쳐 흐르겠다.  ㅋㅋ

 

 

멀리 카르낙 신전의 오벨리스크가 보인다.

 

 

그래!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에 있어야 제 맛이야...

 

 

카르낙 신전의 벽면 부조 앞에서.

이곳에서 치른 의식들도 그려져 있고, 고대 파라오들의 이름도 새겨져 있고,

멀리 아스완에서부터 이 엄청난 돌들을 싣고 오는 장면들도 다 이 부조에 새겨져있다.

글이 없던 시절, 신전의 부조들은 기록문화의 산물인 것이다.

 

 이건 누구의 상???

 

 


<왕들이 잠든 계곡, 하셉수트 신전...>

룩소르의 서편, 일명 웨스트 뱅크에 있는 왕의 계곡(Valley of Kings), 왕비의 계곡(Valley of Queens),

하셉수트 신전(Deir er Bahri), 멤논 거상(Clossi of Memnon)을 보러 가는 건 호텔에서 투어로 신청했다.

 

  

멤논의 거상.

신왕국시대 아멘호테프 3세란다.

 

 

왕들의 계곡 가는 길.

서쪽을 죽은 자의 땅으로 여긴 이집트에서는 룩소르의 서쪽에 거대한 왕들의 무덤을 만들었다.

모두들 저 엄청난 바위를 뚫고 만든 것이다.

 

 

왕들의 계곡, 입구.

여기는 무덤 안은 물론, 무덤으로 가는 길도 모두 사진 촬영 금지다.

그냥 밖의 자연도 왜 사진을 못찍게 하는지 이해가 안되지만...

모두 60개의 무덤이 여기에 있단다.

우리는 그 중에 3군데의 무덤 안을 둘러보았다.

 

  

이집트 최초의 여왕 ‘하셉수트’의 신전.

하셉수트는 남편 투트모스 2세가 죽은 뒤 아직 어린 투트모세 3세의 섭정으로 되었으나

후에 스스로 파라오가 되었다.

그래서 여왕이지만 파라오였으므로 그녀의 무덤은 여왕의 계곡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왕들의 계곡에 있다고.

 

 

하셉수트 신전 오르는 길.

마른 땅으로부터 올라오는 열기로 땀이 흘러내린다.

아!!! 이집트 덥다. 겨울이라는데...

 

  

거대한 바위산 아래 세워진 하셉수트의 신전이 대단해 보인다.

자신의 위엄을 보이기 위해 남장을 했던 여인.

엄청난 규모의 신전을 세웠지만 그의 사후, 왕이 된 투트모세 3세는 이 신전을 다 부수어버렸단다.

그래서 지금 있는 하셉수트는 모두 새로이 재건축된 것.

 

  

하셉수트 시절, 이집트 왕국은 대 번영의 시절을 맞는다.

그녀는 정치를 잘 했을 뿐만 아니라, 외교에도 능력 있고,

당시에 지금의 소말리아 지역과 무역까지 했다.

하셉수트 신전의 부조에는 당시에 무역으로 거래되었던 코코넛 나무, 기린(목은 달아나고 없었지만)등이 그려져 있다.

 

 

이건 그냥 재미있는 사진.

티켓 판매소에서 신전 입구까지는 차량도 운행되는데,

여러 칸의 차량을 끌고 가는 선두차가 우리나라의 지게차다.

 

‘하셉수트 신전’을 보고 난 느낌이 어떠냐는 가이드의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

“멋지기는 한데... 사실 신전보다는 신전 너머에 있는 자연이, 저 거대한 산이 더 멋지다.”

머쓱해 하는 가이드.

진짜 그랬다.

거대하기는 하지만 너무 일률적으로 만들어져 흥미를 깍아내리는 것 같다.

뒤에 있는 바위산과 푸른 하늘이 훨씬 더 감동적이었다.

 


<룩소르 안녕!!!>

 

  

룩소르에 들어와서는 새로운 걸 맛있는 걸 하나 발견했다.

따겐이라는 그릇에 담아주는 국물 요리.

쇠고기도 있고, 양고기도 있다.

우리로 치면 딱 육개장이다.

가게 앞에 이미 만들어 놓은 육개장이 보글보글 끓고 있다.  

 

 

10파운드(2달러가 안되는 이집트 돈. 2천원 조금 넘나?)짜리 따겐을 시키면

빵이랑, 샐러드,밥, 스프, 따히나(참깨 갈아놓은 소스)까지 따라 나온다.

얼큰한 맛이 우리나라로 치면 육개장, 이란으로 치면 디지, 헝가리로 치면 딱 굴라쉬다.

새로운 이집트 요리를 발견하여 또 포식...

살찌는 소리가 들린다.

 

  

룩소르는 정말 깨끗했다.

거리에서 쓰레기를 발견할 수 없을 정도.

아니, 이집트에도 이런 곳이 있었단 말야?

가로수도 잘 정돈되어 있고, 신호등도 보이고 교통신호를 잘 지키는 차들도 있고,

도로가의 페인트 칠도 새로 하고 있고, 가로수에 반짝이는 등을 달고 있는 모습도 보이고

거리에 꽃도 제법 많이 심겨져 있고...

룩소르... 이거 멋진데?

zz

그런데 그 속내를 알았다.

우리가 룩소르를 떠나는 날, 알고보니 이집트 대통령 무바락(Mubarak)이 룩소르를 방문한단다.

대통령이 방문한다고 온 거리를 그렇게나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구나.

페인트 칠도 새로하고, 반짝이는 등도 달고...


무바락 덕분에 우리는 이집트 어느 곳에서 보다 상쾌했다.

이럴 때는 고맙다. 무바락!!!

오랫동안 독재정치를 하면서 이집트 사람은 이렇게 가난하도록 방치해 둔 대통령이지만...

 

   

미운 경찰들, 얄미운 삐끼들, 속상하게 만드는 손벌리는 사람들...

그러나 그 외의 다른 이집션들은 정말 유쾌하고 친절하다.

만나면 무조건 ‘웰컴 투 이집트’다.

카르낙 신전에서 만난 한 무리의 이집션들.

간단한 아랍식 인사에 굉장히 좋아한다.

자기네들 사진기에도 우리가 찍히고,

우리 사진기에도 그들이 찍히고.

 

  

해질녁 강가에서 만난 어린 아이들.

어디를 가나 애들은 참 이쁘다.  

 

 

이제 룩소르를 떠나  배낭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는 시나이 반도의 다합으로 간다.

그곳에서 우리는 얼마동안 머무를지 모른다.

 

이제 이 아름다운 나일강과도 이별이다.

마지막으로 보는 나일강의 일몰.

석양사이를 가르는 한 무리의 새떼.

룩소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