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247 (12월2일) 럭셔리 나일강 크루즈

프리 김앤리 2009. 12. 4. 23:33

나일강은 이집트를 동과 서로 나누고 있다.

해가 뜨는 동쪽은 산 사람들이 살아가는 땅,

그리고 해가 지는 나일강의 서쪽은 죽은 자들을 위한 땅.

나일강을 사이에 두고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의 땅이 나누어져 있다.

 

나일강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른다.

인간의 개념으로 나누어 놓은 동서남북이 만들어놓은 고정관념에 의한다면

대개 북쪽은 남쪽보다 고도가 높아 남북에 걸쳐 놓여져 있는 강은 북쪽에서 남쪽에서 흐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집트의 나일강은 지도상의 남쪽인 아스완쪽이 상류이고,

지도상의 북쪽인 카이로 부근이 삼각주가 형성되는  하류다.

그래서 나일강은 아프리카의 적도 부근에서 시작하여 빅토리아 호를 거쳐

이집트에서는 아스완쪽에서 카이로쪽으로 흘러 결국엔 지중해로 흘러 들어간다. 

 

나일강은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이다.

총 6,690Km.

어릴 적 내 친구 희원이 , 귀화, 분성이...지금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지 알수 없는 나의 어릴 적 친구들..

그 친구들과 나는 사회과 부도를 펼쳐들고 세계의 강, 산 높이를 누가누가 더 잘 외우나 놀이를 하곤 했었다. 

그 때 외웠던 세계에서 가장 긴 강 나일강,그리고 아마존강, 미시시피강...

우리는 또 사회과 부도의 아무 페이지나 펼쳐놓고 한 명이 그 속에 깨알같이 쓰여져 있는 지명을 말하면

머리를 지도 속에 쳐박고 그 곳을 누가 먼저 찾아내는가 하는  놀이도 즐겨했었다.

서로 자기가 이길려고 어디 구석에 있는 조그마한 지명들을 문제로 내곤 했었는데.

그래도 우리는 그걸 또 귀신같이 찾아내고.

그 때 나일강 같은 유명한 걸 문제로 내는 친구는 바보 취급을 당했었다.

며칠도 안되어 우리는 그게 어디에 있는지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었으므로.

 

지금처럼 '학원'도 없고 '컴퓨터'가 없던 시절이라

생각해보면 제법 멋진 게임을 하고 놀았던 것 같다.

그 때 외웠던 세계 여러나라의 수도 이름이나 산, 강의 이름이

지금 이 나이에도 내 지식정보(통찰력이나 이해력과는 상관없기는 하지만)의 저변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크루즈'

이건 늘 꾸기만 하는 꿈인 줄 알았다.

좀 더 나이가 들면 카리브해에서 크루즈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사실 그것도 그냥 꿈꾸다 말 일 처럼 느꼈었다.

너무 비싸서 내게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진짜 꿈일 뿐 같았다.

 

그런데 여기, 이집트에 와서 꿈만 꾸던 크루즈를 했다.

아스완에서 고대 이집트 테베 유적지가 있는 룩소르까지 2박3일간의 나일강 크루즈...

2박 3일동안 재워주고 먹여주고 태워주고 1인당 90달러(10만원정도) 라고 해서,

이 기회 아니면 크루즈는 완전히 먼나라  이야기 될까봐 얼른 신청했다.

 

나일강을 따라 2박 3일동안 흘러 내려가면서

나는 지금껏 어느 곳에서보다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보았다.

나일강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고, 나일강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배낭여행으로는 꿈도 못 꾸었던 맛있는 뷔페 음식을 매끼 포식하는 호사도 누렸고,

하루종일 아무 생각없이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무한대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남들에게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둘에게는 지금껏 없던 '최고 럭셔리한 여행'이었다.

 

우리를 실은 배가 아스완 항구를 떠난다.

아스완의 나일강 서편 '귀족들의 무덤'이 있는 사구' 를 뒤로 하면서...

 

아스완의 아름다운 펠루카를 다시 한번 더 보면서...

 

나일강의 크루즈에는 우리같이 여객선을 타고 가는 크루즈도 있지만

펠루카를 타고 우리와 똑같은 코스를 2박3일동안 갈 수도 있다.

가격은 여객선 크루즈의 절반도 안되었지만,

아무 덮개도 없는 갑판위에서의 사흘동안 앉아있거나 그냥 벌렁 누워 있는다는 게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닐 것 같아서 포기했다.

더구나 아주 좁은 공간 아닌가...

그래도 손만 내밀면 흘러가는 강물이 그대로 손에 와닿는 친근한 느낌,

바람에 온 몸을 맡기고 떠내려간다는 점에서는 훨씬 더 낭만적인 크루즈는 틀림 없었겠지만.

 

크루즈 배의 우리 방에서.

우리 방의 창문 너머에 나일강이 반짝인다.

우와~~~ 환상적이다.

 

갑판위로 오른다.

성급한 외국인들은 벌써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선탠을 즐긴다.

우리는 크루즈 내내 한번도 수영복을 갈아입은 적은 없었다.

햇빛을 싫어(?) 해서... 햇살 공포증이라고 할까? 

 

다른 승객들은 옷을 제대로 챙겨 입은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우리는 긴 소매까지 챙겨 입고...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오는 갑판위의 평온한 시간...

책도 잘 넘어간다.

 

방금 환상적인 점심 뷔페에서 실컷  먹고 올라온 터라...

배도 부르지... 바람은 시원하지...

우리를 실은 이 배는 나일강을 따라 잘 흘러가지...

세상 부러운 게 없다 .

 

4층 갑판에서 내려다 본 3층 갑판.

사람들은 저기에서 수영도 하고, 긴 의자에 한 잠 늘어지게도 자기도 하고,

 

와인을 마시면서  떠들고 놀기도 하고...

 

오후 4시 커피 타임이라고 승무원들이 박수를 짝짝 친다.

진한 커피와 달콤한 카스테라, 쿠키까지.

남편은 달콤한 카스테라를 참 좋아한다.

그런데 내가 달콤한 것을 잘 먹지 못해서 나를 위한다며 아이스크림, 카스테라 같은 달콤한 것을 자제하는 편이다.

... 그러면서 자기가 얼마나 자상하냐고 늘 폼을 잡기도 하지만...

 

크루즈를 하는 배 안에서는 달콤한 카스테라가 공짜로 제공되는 거니까

먹어도 되지 않겠냐며 얼마나 즐거워 하면서 먹던지...

 

펠루카들의 줄지어 늘어서 있다.

항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절경이다.

나일강...

 

나는 나일강이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이라고 해서,

그 폭도 아주 넓을 줄 알았다.

분명히 '길다'고 했지, '넓다'라고는 하지도 않았는데...

상상보다 나일강의 폭은 훨씬 좁다.

배를 타고 지나가면서 양쪽의 땅이 다 보인다.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의 사막을 지나가기도 하고...

팍팍하지만 강가에서 자라는 야자수가 가득 심겨져 있는 땅을 지나가기도 하고,

모래 절벽 바로 옆을 지나가기도 한다.

 

나일강에 해가 지기 시작한다.

강은 붉은 색으로 물들고...

그림자까지 선명한 펠루카.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 같다.  

 

해질녁,강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 나일강의 사람들.

 

정말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세상에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처럼 느껴진다.

고요함 그 자체...

 

서쪽 하늘에는 해가 넘어가고 있는 데

강 건너 동쪽 하늘에는 달이 벌써 한참을 떠 있다.

해와 달이 동시에 하늘에 떠 있는 시간.

해와 달을 한 하늘에 동시에 그려놓아 비현실적일 것 같았던 '일월성신도'의 장면이

지금 우리 눈 앞에 펼쳐져 있다.

'해'와 '달'이 한 하늘에 있을 수 있다!!! 놀라운 발견이다.

 

이제 해는 서쪽, 죽음의 땅으로 완전이 넘어갔다.

바람이 차다.

 

우리를 실은 배가 콤옴보(Kom Ombo) 항에 도착하나 보다.

멀리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콤옴보 항구.

먼저 와서 정박한 배들도 많이 보인다.

 

콤옴보 신전으로 들어선다.

콤옴보는 일반 버스를 타고 찾아가기는 힘든 곳이다.

주로 나일강 크루즈를 해서 찾는 유적지.

이미 깜깜한 저녁 늦은 시간이었지만 여러 척의 배에서 내린 여행자들로 콤옴보 사원은 오히려 비좁아 보인다.

 

콤옴보 신전은 악어 신인 세베크와 매의 머리를 한 호루스 신에게 봉헌된 것이란다.

 

거대한 유적에 새겨져 있는 고대 이집트 사람들의 믿음이 야간 조명을 받아 반짝거린다.

이들은 여기에 무엇을 새기고자 했을까?

아니 이 엄청난 작업을 하면서 무엇을 빌었을까?

영원 불멸? 부활?

어디에서나 죽음에 대한 공포를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두려움이 보인다.

그것이 파라오의 부활을 위한 것이었건, 당시 사람들의 부활을 위한 염원이었건 간에... 

 

지금과 같은 기계도 없고, 과학문명도 없던 당시에는

어쩌면 어떤 사람은 평생을 두고 여기에서 돌만 나르다 죽었는지도 모르고,

또 어떤 사람들은 평생 이 곳의 벽에 글자를 그림을 새기다가 죽었는지도 모른다.

 

아, 아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일년에 몇달씩은 의무적으로 나라의 작업에 부역을 해야 했다고 했었다.

그러니 평생을 이 건축물의 작업에 다 쏟아붓지는 않았겠지만

이 건물이 다 지어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은 사람도 많을 지 모른다라는 말이 맞을지 모른다.

그렇게 죽어가면서... 신에게 봉헌한 자신들의 시간 덕분으로

파라오의 영원불멸을, 그리고 자신들의 부활을 확신했을까?

 

벽면에 그려진 부조의 내용을 나는 거의 알지 못한다.

가이드를 대동하고 왔더라면 어쩌면 조금은 더 알게 되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렇게 얻은 조그만 지식으로

이 엄청난 규모의 유적을 다 이해하기는 힘들것이다.

우리는 오히려 한켠으로 비켜서서...

먼 옛날 여기로 돌을 끌어오던 사람들, 돌을 쌓던 사람들... 그리고 벽면에 그림을 새겨 넣던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 속에서 그려본다. 그들의 마음을 떠올려본다.

마른 뙤약볕 아래 노동에 힘들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을 그들을... 

 

다시 배로 돌아왔다.

낮동안 잠시 흐트려 놓았던 방을 우리가 나갔다 오는 사이 다시 깨끗하게 정리해 두었다.

럭셔리 호텔 맞다.

수건으로 만들어놓은 침대 위의 악어가 깜찍하다.

저녁 뷔페에서 다시 배가 터지도록 맛있는 음식을 먹고 편안한 잠자리로...

 

이른 아침. 5시 50분. 모닝콜로 우리를 깨운다.

밤사이 나일강을 더 내려온 우리 배는 어느 새 에드푸(Edfu)에 도착해 있었다.

에드푸 신전.

 

에드푸 신전은 이집트의 신전 중에서 보존 상태가 가장 좋은 신전이라고 한다.

역시 엄청난 높이의 탑문과 열주들.

 

이 신전은 순전히 호루스 신에게 바쳐진 신전이란다.

한틈도 빈 곳없이 신에게 바쳐지는 벽화들로 가득하다.

 

여러가지 이집트의 상형문자들.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에 한번 더 이집트를 여행한다면 상형문자 공부를 좀 하고 와야겠다.

주름진 모양은 땅, 그리고 눈, 노인...

몇개 안되는 문자로 이들은 자신의 염원을 다 표현하고 있다.

종이도, 연필도 없던 시절.

그래도 이들은 몇천년을 이어올 기록을 하고 있었다.

종이도 넘쳐나고 펜도 많고, 자료도 엄청나게 많고... 인터넷이라는 공간도 충분히 가진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기록문화이다.

 

이른 아침부터 이집트문명에 또 한번 감탄하고 있다.

 

그러나 속상하게 만드는 이집트 사람들.

유적지의 구석구석에는 이집트 사람들이 앉아있다.

원래 이들의 임무는 유적지를 손상시키는 것을 막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주로 구석에 있는 이들은 여행자들에게 손짓을 하며 더 안쪽에 있는 뭔가를 보라고 한다.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고... 다음은 역시나 'Money'다.

 

우리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이들이 보라고 하는 어디 구석의 벽면을 아예 보지 않으려고 한다.

이들의 속임수가 싫어서.

따지고 보면 이들은 결국 우리의 관람을 방해하는 사람이 될 뿐이다.

푼돈을 요구하는 그들의 비굴한 모습때문에

위대한 조상들에게 흠집을 입히는 것은 물론이고...

 

에드푸 항구에 내려 신전까지 가는 길은 우리도 드디어 마차를 탔다.

잠도 덜 깬 상태에 엉겁결에 배에서 내려 에드푸신전까지 가는 길도 잘 모르겠고, 거리도 얼마쯤 되는지 감이 없었다.

배에서 육지로 내려서 얻은 시간이 1시간 30분 정도 밖에 안되서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

 

마차 가격의 흥정, 역시 쉽지 않았다.

처음 그들이 부른 가격은 왕복 100파운드(20달러)였다.

가는 길이 3Km에 왕복 6Km라면서.

배로 돌아가는 시간만 충분하다면 결코 마차를 탈 필요가 없는 거리였지만...

몇번을 시루다 30파운드로 하기로 하고 마차를 탔다.

과연 30만 주고 내릴 수 있을까? 한편으로 걱정도 하면서.

 

에드푸 신전을 보고 다시 마차를 타고 돌아나오는 길..

마부가  남편더러 앞자리에 타란다.

그리고 남편의 카메라를 뺏어들더니 자기는 마차에서 뛰어내린다.

아니.. 이런...

그러면서 나보고 남편을 뒤에서 안으라나?

덕분에 멋진 사진하나는 건졌다만은...

 

다시 마차에 올라타서는 마차에 붙여놓은 자기 애들 이야기를 막 한다.

애가 셋이라면서...

이거 어쩌자는 이야기지?

 

우리 마차 아저씨...

우리가 타기 전에는 그렇게 웃음을 보내더니만...

항구에 도착해서는 돈을 더 내란다.

누가 사진을 찍어달랬나?

하기야 달리는 마차에서 내려 사진까지 찍어주는 성의에 감사하며 더 줄수는 있지만...

이런 이집션의 행동에 화가 나는 것, 또한 어쩔수 없다.

 

분명히 30으로 계약하고 갔는데 50을 달란다.

또 애들 이야기를 한다.

사진 찍어줘서 조금 더 줘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건 아니다.

미워서 한푼도 더 주기 싫다.

 

40으로 내려갔다가 35만 내란다.

그래 좋다. 5정도는 나도 더 줄려고 생각했었으니까...

딱 맞게 돈이 없어서 40파운드를 줬더니,

이 사람, 나에게 잔돈이라며  0.5파운드 짜리 지폐를 돌려준다.

(이집트의 0.5 파운드 짜리 지폐에는 '50'이라는 숫자가 쓰여져 있다.

 그림으로는 구별이 조금 힘들고 돈 단위를 보면 파운드가 아니고  피아스터Pt라고 쓰여져 있다.

 안그래도 잔돈을 주고 받을 때 하도 헷갈려서 늘 확인해야 했었다.)

이 사람이야~~~

5파운드를 잔돈으로 주셔야지요?

이거 맞잖아?

이건 0.5파운드잖아?

어어!!! 미안 미안..

내가 못알아봤으면 그냥 넘어갔을텐데...

자기한테 잔돈이 없다며 다른 마부한테 뛰어가버린다.

한참을 기다렸다.

배를 타야하는 시각이 다 되었지만 괘씸해서 끝까지 기다렸다.

한참만에 나타나서는 5파운드를 손에 꼭 쥐고서 이제는 팁을 달란다?

뭐??? 팁???

팁으로 5파운드 더 얹어줬잖아?

자기 말고, 이 말한테 팁을 주라나?

으하하!!!

"말한테 팁을 주란다... 으하하하"

아침부터 우리를 웃긴 이 이집션의 재치(?)에 웃어야 하나? 화내야 하나?

으하하하... 말한테 팁을!!!

이보슈... 마부 양반... 그만 웃기시고... 5파운드 잔돈 주셔요...

 

원래 계약한 30파운드는 아니고..

말한테 팁으로 줬는지, 아니면 달리는 마차에서 뛰어내려 사진까지 찍어준 그 아저씨에게 줬는지,

그것도 아니면 그의 세 딸에게 줬는지...하여튼 5파운드만 더 주는 것으로 그날 아침의 우리 흥정은 끝이 났다.

 

5파운드 해봐야 1달러도 안되는 돈이다. 1,000원.

이걸 가지고 시루고 있는 이른 아침 우리의 풍경이 낯설지 않은 이집트에 지금 우리가 있다.

(다른 마차들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으하하...

 

마부와의 잠깐 실랑이가 있었지만 우리는 다시 행복한 크루즈 배에 올랐다.

맛있는 빵과  야채, 샐러드, 풍성한 과일, 오믈렛.... 풍성한 아침 식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금새 방금의 실랑이 따위는 다 잊어버리고  어느새 세상 부러울 게 없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에드푸 항을 떠나 다시 배는 나일강을 따라 흘러 내려간다.

나일강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조그만 배에 그물을 가득 싣고 고기를 잡으로 강으로 나간다.

 

갈대 숲도 보이고...

다 떨어진 남루한 옷이지만

얄팍한 수로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길거리의 이집션들보다 훨씬 더 정겹게 보인다.

 

강으로 그물을 푸는 사람들.

 

그리스 작가 헤로도투스(Herodotus)는 '이집트는 나일강이 준 선물'이라고 했다더니만...

이들에게 있어 나일강은 삶을 이어주는 소중한 생명의 강일 것이다.  

 

우리 배는 계속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아래로 아래로.. 나일강의 사람들은 계속 보이고...

 

대개가 고기를 잡고 있는 사람들이다.

멀리로는 사막의 바위산들도 보이고

 

야자수 아래 풀을 먹고 있는 말들도 보인다. 

 

쓰레기더미 가득한 곳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꼬마 여자애도 있고

 

어디론가 떠나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염소도 있고, 말도 있고...

목동(?)도 있고...

 

강가에서 축구를 하며 뛰노는 아이들도 있다.

나일강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배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갑판 위에서 책을 읽다가, 흘러가는 강을 보다가...

멀리 경치도 보다가... 또 점심을 푸지게 먹고 방으로 돌아오니

이번엔 침대위에 예쁜 꽃이 하나 피어있다. 오리도 한마리 놀고 있고.

 

진짜 매번 신나는 식탁이었다.

나일강 크루즈는 투어를 신청해 단체로 온 사람들도 있었고, 우리처럼 그냥 개인이 신청해서 온 경우도 있다.

우리 식탁은 개인으로 온 사람들용.

스페인에서 온 시라와 미카엘은 식사 테이블 파트너였다.

뉴질랜드에서 혼자 여행온 조안나도 늘 함께 하는 파트너였는데 이날 저녁에는 배가 아프다며 저녁을 먹지 않아서 사진이 없다.

 

뷔페에서 음식은 무한정 제공되지만 음료는 따로이 계산을 해야되는데

우리식탁에서는 여섯끼 먹는 동안 어느 누구도, 단 한번도 음료를 따로이 주문한 적이 없었다.

나중에는 우리 테이블에는 아예 음료 주문을 묻지도 않았었다.

 

시라는 스페인 사람답게 얼마나 유쾌하던지... 식사시간마다 우리 식탁이 가장 떠들썩 했었다.

오죽하면 서빙하는 스텝들이 우리 식탁을 ' 스페셜 게스트들'이라고 했을까?

 

유럽에서 먹었다면 한 접시에 10유로는 넘을 샐러드를 몇번씩이나 가득 담아먹고,

오랜 만에 나온 생선가스는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음료는 없이...

그동안 여행다니면서 우리 몸에서 기름기가 거의 빠졌었는데,

크루즈를 하면서 얼마나 먹어댔던지... 살이 피둥피둥 찌는 기분...

매번 식사때마다 '사육'당하는 것 같다며 킥킥거리면서 배를 채웠다. 

 

첫날 배를 타자 마자 내 이름을 소개하면서 이집트 이름으로 '음네야'라고 소개했더니

배 안에 있는 모든 승무원에게 금방 유명해졌다.

단 한명의 승무원에게 말했을 뿐인데.. 배 안에서 여기 저기 움직일 때 마다

여기 저기서 '음네야'라고 친근하게 불러 주는 승무원들 덕분에 내내 유쾌했었다.

ㅋㅋ

한마디로 음네야 인기짱이었다.

 

 겨우 몇마디 배운 아라비아 말로 친근함이 다 통하는 시간들.

이들은 우리의 이집트 샤딬(아랍어로 Friend라는 뜻)이었다.

 

나일강에서 또 하루가 저문다.

온 세상이 붉게 물드는 저녁...

 

내 평생 가장 아름다운 일몰,

결코 잊을 수 없는 가장 붉은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