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242 (11월27일) 어지럽다. 그러나 활기넘치는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프리 김앤리 2009. 11. 29. 08:01

드디어 아프리카로 넘어왔다.

지난 몇달동안 조용하고 차분하던 유럽을 돌다와서 그런지

이집트 카이로에 들어서자 마자 우리에게 다가오는 느낌은 모든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에 수 많은 혼란이 온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 천지고,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너무나 많은 소리들이 우리 귀에 들어오고,

먼지도 많고, 여기저기 쓰레기들이 널려있다.

절대 우리를 그냥 걸어가도록 만들어두지도 않는다. 어디선가 삐끼들이 나타나서 말을 건다.

거리에 차들은 쌩쌩 달리는데 어느 차도 건널목을, 신호등을 지켜주지 않는다 .

건널목도 신호등도 제대로 없지만...

부르카를 시커멓게 뒤집어 쓴 여인들은, 그리고 활기찬 아랍인들은

쌩쌩 달리는 차들 사이로 아무렇지도 않게 길을 건너는 데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몰라 더듬거리고 있다.

 

이게 사람사는 모습이라고...

사람냄새 물씬 나는 흥겹고 북적거리는 활기찬 모습이라고 마음 다져먹으면서도 아직은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사람... 사람...

사람 부르는 소리.. 차소리... 아잔 소리... 크락션 빵빵... 불빛...

왁자지껄... 북적거림...

정신이 없다.  

 

카이로에서 유명한 칸 엘 칼릴리(Khan al Khalili).

우리나라로 치면 재래시장이다.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는 곳인데 내 눈에는 없는 것이 없는 시장같다.

이집트 고대 유물을 쏙 빼닮게 만들어 놓은 크고 작은 기념품부터 카페드, 도자기 , 향료, 물담배 도구...금은시계방...

우리는 여기서 진작에 둘다 줄이 끊어진 시계줄을 새로 바꿔 끼웠다.  

 

대륙이 달라졌다는 게 확실하다.

차도르를 둘러쓰고 엉덩이까지 가린 윗옷을 입은 여인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모스크도 보이고.

이집트의 90%는 무슬림이란다.

그래도 10%는 무슬림이 아니라서 그런지 이란에서와 달리 차도르를 둘러쓰지 않은 여자들도 간혹 보인다.

 

이란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도 여성전용 지하철도 있고...

 

신앙심깊은 무슬림들.

카이로 중앙역(람세스 역) 안이다.

여행가방을 옆에 두고도 이들의 기도는 끊이지 않는다.

물론 여자들은 없다.

그들이 기도를 해야 하는 곳은 다른 곳이다.

남녀를 엄연히 구분짓는 사회...

 

모스크 안에서 만난 기도하는 이집션들.

참으로 경건한 모습들이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구석도 있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 기도를 올릴때는 이렇듯 경건한 사람들이

어떻게 외국인을 만나면 금방 삐끼로 변하는지...

 

이집트를 여행 갔다온 많은 사람들이 그랬다.

이집션들의 삐끼짓에 참을 수 없었노라고...

끊임없이 속이려고 하는 저들때문에 기분을 많이 잡쳤노라고...

몇해전에 이집트를 갔다온 조카는 그랬다.

그 곳에는 단 두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하더라고... 여행자 아니면 삐끼...

실제로 그들이 우리를 속이려고 하는 돈은 얼마되지도 않은 작은 금액인데 한번 속고 나면 그렇게나 기분이 나쁘단다.

웃으면서 다가오는 그들의 친절함과 어쩌면 그 속에 숨어있을지 모르는 자그마한 속임수에 당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긴장해야 하는 것도 이집트 여행의 피곤함을 더해주는 것일테고...

 

이집션들의 주식이라고 할 수 있는 에이쉬(일명 걸레빵)다.

방금 화덕에서 구운 게 제법 맛나게 보인다.

식당엘 가도 우리네 반찬처럼 뭘 시켜도 따라 나오기도 하고...

그런데 왜 걸레빵이라고 우리나라사람들이 붙였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화덕에서 방금 구워져 나올 때는 빵빵하게 부풀어져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녀석이 풀이 죽어버려

걸레처럼 팍삭 사그라 들어서 그렇게 부르는지는 모르겠다.

하여튼 이름과는 다르게 샐러드와 이 사람들이 찍어먹는  흰 소스를 곁들이면 훌륭한 맛이 되는 빵이다.

 

우리도 길에서 이걸 사 먹었는데

첫날은 이게 하나에 1P(이집션 파운드,  우리 돈으로 200원 정도 한다) 라는 거다.

그 정도면 괜찮은 거 같아 3P를 주고 세개를 사 먹었다.

싸다고 하면서...

역시 이집트는 물가가 싸서 좋다고 ...

 

다음날 우리 숙소 바로 앞에서 사려고 하니 두개에 1P란다.

아니 그럼 전날 저녁 거기서는 우리한테 두배나 받았다는 말이야?

이런 괘씸한...

그래서 이집트에서의 둘째날, 1P에 에이쉬 두개를 샀다.

킥킥거리면서...  두 번은 안속는다며 ♬♬

 

그런데 기자 피라미드를 가는 날, 우리는 못 볼것을 보고 말았다.

어떤 사람이 단돈 1P를 주고 엄청나게 많은 에이쉬를 봉투에 담고 있는거다.

안물어봤어야 하는데...

1P에 이 빵이 20개란다. 자그마치 20개....

그렇다면 첫날은 60개의 빵을 살수있는 돈으로 단 3개를 샀다는 소리가 된다.

노래를 부르며 에이쉬를 사든 어제도 10배의 바가지를 썼다는 거다.

다 합쳐봐야 더런 400원, 600원 밖에 안되는데...

우습기까지 하다.ㅋㅋ

 

 

<우리도 피라미드를...>

언젠가 세계여행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슬쩍 비친 수업시간...

아이들은 어디를 제일 가고 싶냐고 물었다.

순간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그 때 왜  이집트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 아이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고,

유럽에 있는 나라들이나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나라들보다는 좀 더 '세계여행'이라는 단어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나는 그 때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니네들도 대학을 가면 아마 배낭여행이라는 걸 떠날거다.

이집트 피라미드의 어느 모퉁이에서 어느날 문득 니네들을 만났으면 좋겠노라고...

세상의 어느 한귀퉁이에서 기적처럼 만날 그 날을 나는 꿈꾼다고...

 

그 때 그 아이들이 기억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혹시 있을지 모르는 '기적같은 만남'을 기대하며 피라미드를 들어선다.

 

멀리로 보이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겨울철(?)이라 그런지 하나도 안 덥다.

이렇게 생겼었구나... 피라미드라는게... 스핑크스라는 게...

그토록 많은 여행사진에서 보아왔던 장면, 수많은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장면...

그러나 내가 여기에 와 있다는 것은 또 다른 감동을 낳는다.

 

피라미드를 들어서자 마자 수많은 삐끼들이 우리를 향해 돌진(?)한다.

Horse? Chammel?

You know how much?

Good price!!!

기념품을 파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한결같이 원달러!!! 란다.

눈길을 한번만 주면  자기들이 우리에게 되묻는다.

How much do you want?

 

ㅋㅋ

파는 사람이 왜 자꾸 가격을 우리에게 묻냐고?

가격은 자기네들이 얘기하는 거고 얼마냐고 물어야 하는 쪽은 우린데...

 

가만보면 이 사람들은 물건을 파는 것보다 '흥정'이라는 걸 즐기고 있는 듯 하다.

아슬아슬한 게임을 거는 것 같은.

그래? 그렇다면 우리도 즐기자.

이들의 게임에 같이... 덩달아 즐거워하며...

 

이 꼬마 이집션 '니디아'는 여행자들을 만나는 방법이 조금 다르다.

여행자들의 카메라를 마치 자기 것 처럼 빼앗아 들고 스핑크스 앞에서 이런저런 포즈를 요구한다.

그리고는 귀신같이 사진을 찍어댄다.

스핑크스와 키스하는 장면,

혹은 스핑크스 턱을 손으로 고아받치게 하거나, 엉덩이를 쭉 내밀어 스핑크스의 입에다 정확히 맞추기도 하고..

선글라스를 벗어서 스핑크스의 눈에다 정확히 끼우는 장면도 만들기도 하고....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다. 순식간에 착착 찍어댄다.

서양애들은 귀신같은 니디아의 사진실력에 놀라고 즐거워하면서 고맙다고 1P를 건낸다.

주는 돈을 덥썩 받지도 않고 계속 다른 포즈를 요구하며 또다른 사진을 찍어주고는

마지막으로 자기와 같이 사진도 한장 찍어주기 까지 한다.

정말 깜찍한 웃음을 지으며.

끝내 1P는 거절하더니만 동전은 안된단다. 좀 더 큰 지폐를 달란다.

적어도 1$(5P) 이상은 줘야 하지 않겠냐며...

당돌한 꼬마의 대답에 돈을 차에다 두고 왔다고 항변해보지만, 이 꼬마아가씨는 어림없다.

자기가 버스까지 따라갈수 있다며.ㅋㅋ

결국 서양애들은 꼬마를 데리고 버스가 있는 쪽으로 다시 돌아나가고...

 

빈틈을 이용해 나도 똑같은 포즈를 취해본다.

수천년된 스핑크스와의 짜릿한 키스.

 

그런데 좀 미안하다.

스핑크스는 한갓 우리같은 현대 인류와 키스하고 엉덩이를 떠받치고, 턱을 고이는 능멸(?)을 당해야하는

그런 존재는 아닌 것 같다.

피라밋 앞을 굳건히 지키는 당당한 모습이 더 어울린다, 이렇게...

 

피라미드까지 올라가는 길은 팍팍한 모래길이다.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 중에 가장 큰 쿠푸왕의 피라미드에 올라선다.  

돌덩이 하나가 사람 몸보다 훨씬 더 큰 어마어마한 크기.

사선의 피라미드 모퉁이가 하늘 끝에 닿아있다.

146m 높이. BC 2570년에 완성되었단다.

억겁의 세월의 녹아있는 바위에 지금 우리가 앉아있다.

3500살이나 된 피라미드의 한 모퉁이에서 아주 작게...

 

쿠푸왕 피라미드의 모퉁이를 돌아간다.

갑자기 경찰이 우리를 부른다.

아까 피라미드에 올라갈 때도 어떤 경찰이 조심하라고 친절하게 나오더니만

내려오는 우리에게 조그만 소리로 황당하게도 'money'라며 손을 내밀더니만...

 

또 다른 경찰이 부른다.

이 경찰은 또 왜?

정확하게 피라미드의 사선 끝으로 몇걸음 떨어져 땅에 박혀 있는 징을 가리킨다.

뭐죠?

여기가 사진 포인트란다.

그러면서 어느 새 우리 사진기를 빼앗아(?) 들고 이 포즈 저 포즈를 취하란다.

엉겁결에 시키는 대로 하고 있는 우리를 발견했다(?).

어? 이건 아닌데...

피라미드를 양팔로 누르고, 피라미드의 정수리를 새끼 손가락으로 꼭 찍고...

참말로 바보같이 또다시 우리는 수천년 세월의 피라미드를 능멸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진을 다 찍어주고 나서...

경찰이라고 다른 건 결코 아니었다. 그도 역시 이집션...

money를 달란다.

정중히 거절했다.

그래도 그는 대 이집트의 경찰이 아닌가?

이토록 훌륭한 조상을 둔 수천년을 이어온 당당한 후손아닌가?

몇 푼도 되지 않는 돈을 주는 건 피라미드의 위대함을 이어온 후손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며 정중히 거절했다.

또 한편으로는 게임같은 그들의 놀이를 같이 즐기는 여유도 가지면서...  

 

쿠푸왕 무덤안으로 들어가는 길.

계단 사이로 조그만 틈이 수천년의 세월을 뚫고 가는 길이다.

우리는 안들어갔다.

안에 있는 유물들은 모조리 이집트 박물관에 있다고도 하고... 들어갔다온 모든 사람들이 정말 실망이더라는 말도 많아서...

 

계단 틈틈이 올라가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는 한눈에 찾을 수 있다.

우리 남편이 어디 서있는지를... ㅋㅋ 

 

쿠푸왕 피라미드(Pyramid of Khufu)을 지나서 카프레왕 피라미드( Pyramid of Khafre) 앞에 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핑크스를 보고,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돌아본 뒤

멀리서만 나머지 피라미드를 보는지 이곳까지 걸어오니  훨씬 한적하다.

진짜 우리가 피라미드 앞에 선 기분이다.

팍팍하고도 광할한 사막위의 거대한 피라미드 앞에.

 

쿠푸왕 피라미드, 카프레왕 피라미드, 제일 작은 멘카우레 피라미드(Pyramid of Menkaure)까지 다 돌아보고

피라미드 군들을 멀리서 바라 볼수 있는 곳까지 팍팍한 모래사막을 건너갔다.

걸어서... 뙤약볕을 그대로 받으면서...

걸어서 가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

우리는 의지의 한국인

 

다른 사람들은 낙타도 타고 말도 타는 구만...

쫀쫀한 남편 만나서 우리는 모래바닥으로 발이 푹푹 빠지면서 그냥 걸어간다.

이런게 진짜 피라미드를 보는 기분 아니겠냐는 말에 속아서...

그 옛날 피라미드를 지은 사람들을 생각해보라면서...

그들은 저 피라미드를 지으면서 얼마나 힘들었겠냐며...

누가 뭐라고 하나용?

 

그래도 피라미드를 바라보며 낙타를 타는 사람을 보고 있자니

슬그머니 심통도 나고 부럽기도 하구만.

 

비오는 날에는 새던 운동화가 이제는 모래를 안으로 자꾸 삼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면서

땀을 뻘뻘 흘리고 한쪽 사구에 올라앉아 있으니

키작은 당나귀를 탄 사람이 코카콜라를 마시라며 우리를 희롱한다.

당나귀를 탄 사막위의 코카콜라 장수다.

ㅋㅋ

더운 날에는 코카콜라보다는 그냥 물이 낫거든요.

물만 디립다 마셔댔다.

팍팍한 곳에 살면서 얄팍한 속임수나 쓰는 이집션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그들의 게임같은 유희를 즐기는 마음으로 보고 있으니

이들이 짓는 천연덕스러운 미소가 눈에 들어온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역시나 다른 사람들은 낙타를 타고 사막을, 피라미드를 즐기고 있다.

 

끝내 이 낙타 한번 못 타보고 피라미드를 떠나왔다.

그리고 '기적같은 만남'도 역시 이루지 못한 채...

 

*** 카이로에 도착하자 마자 숙소에서 기자 피라미드를 어떻게 가면 되겠냐고 물었다.

     택시를 대절하란다.

     160P만 하면 우리 둘만 태워서 휑하니 피라미드로 데려다 준단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카이로의 다른 곳도 둘러볼 수 있다며...

     160P라면 30달러. 우리 돈으로는 3만 5천원도 채 안되는 돈이다.

     6시간 정도 대절비로는 그다지 비싼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혹시 숙소에 우리 말고 다른 두명을 더 만들어주면 서로 택시비를 나누어 낼수 있을 것 같아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을 수배해 달라고 얘기해 두었다.

     그때까지도 우리는 이집트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가이드 북도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그 날 저녁,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기자의 피라미드는 지하철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지하철 비는 단돈 1P.

     지하철 기자 역에 내려서 피라미드 입구까지 택시를 타면 10-15P만 주면 된다는 사실도.

     모르면 돈이 많이 들거나 수족이 고생한다는 말이 딱 맞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택시 대절을 포기하고 지하철과 택시로 피라미드를 갔다 왔다.

     우리의 교통비는 지하철 왕복 4P에 지하철 역부터 피라미드 입구까지 택시비 30P

     모두 34P밖에 안들었다. 택시 대절비의 1/5.

 

     피라미드를 다녀온 사람들이 써 놓은 글에 의하면

     택시기사가 피라미드 뒷문에 내려줬다거나, 아니면 어중간한 곳에 멈춰서서 더이상 들어갈 수 없다고 뻐댔다거나

     그리고 피라미드와 한참 먼곳에 내리니 낙타를 타고 들어가라는 삐끼를 만났다거나...

     이집션들에게 어떻게 당했다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난무했었는데

     다행스럽게(아니 재미없게) 우리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탄 택시로도 물론 피라미드 입구를 채 가기 전에 누군가 다가와서

     '여기서 부터는 택시가 들어갈 수 없다'며 제지를 했었지만

     이미 그들의 게임을 즐기고 있던 우리가 웃으면서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마라고 했기도 했지만

     우리를 태운 택시 기사도 몇번의 제지를 자기 스스로 물리쳐주는 친절함까지 보였었다.

     꼭 속임수를 쓰는 이집션만 있는 건 아니었다.

     물론 그 택시 기사한테 이미 우리는 뇌물(?)로 딸한테 주라면서 국산볼펜을 하나 선물한 이유가 있기도 하겠지만..

     -무턱대고 볼펜을 준 건 아니었다.  택시를 타서 몇마디 하는 동안 이 사람의 진실됨에 우리가 감동해서였달까?

     우리는 정확하게 피라미드의 정문앞에 내려서 아무 실랑이 없이 피라미드에 들어갔었다.

     재미없게도???

 

     피라미드를 갔다 온 날 저녁, 우리는 헌책방으로 가서 론니프래닛 이집트편을 한권 샀다.

     이제 가이드 북도 가지고 있으니 그리 무식한 일은 하지 않겠지.****

 

 

    <나일강... 먼지... 그러나 맛있고 값싼 이집트 음식>

사람도 많고... 쓰레기도 많고... 먼지도 많고...

소음도 엄청나다.

나는 무슬림사원에서 시간마다 울려퍼지는 아잔소리가 시끄러울 수 있다는 건 카이로에서 처음 느꼈다.

터키, 이란, 사라예보 같은 곳에서 들었던 아잔소리는 늘 애잔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경건한 마음까지도 들었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의 북적거림과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울려퍼지는 아잔소리는 오히려 소음을 한층 더한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그나마 카이로가 시원하게 느껴지는 건 나일강이었다.

정말 생명의 강이고 이집트의 젖줄이다.

시원하게 흐르는 나일강이 카이로의 한 가운데 있어서 그나마 숨을 쉴수 있을 것 같다.

 

밤이면 나일강은 화려한 불빛으로 수놓아진다.

멀리 이집션 타워도 보이고... 강변에 있는 유람선 레스토랑, 그리고 나일강 크루즈하는 배까지...

물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나일강 다리 주변의 차도를 마음대로 건너다니고 있는 혼란스러움도 있었지만.

 

카이로 시내를 가득 덮은 희뿌연 먼지.

사막의 한가운데 있는 도시라는 건 조금만 높은 곳으로 올라가보면 금방 알수 있다.

같은 사막의 한가운데 도시 이란은 그래도 거리도 깨끗하고 나무 가득한 가로수길도 많이 만들어놓아서

이리 고통스럽지는 않았었는데...

어디를 가나 쓰레기천지인 거리는 도시의 하늘을 가득 메운 먼지와 함께

'카이로'라는 도시에게 정내미를 똑 떨어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실망만 했을까?

짜증만 내면서 그냥 툴툴거리기만 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이집트의 싸고도 맛있는 음식들이 있어 우리는 여기서 또 달리 흥분중이다.

이집트 사람들의 전통음식 쿠샤리와 따메야, 그리고 도쉬.

우리나라로 치면 쿠샤리는 짜장면과 같은 첫번째 가는 대중 외식메뉴다.

쌀, 마카로니, 국수, 녹두, 콩을 삶아 담고 그 위에 볶은 마늘을 얹고 맵싸한 소스를 듬뿍 끼얹어 준다.

눈이 확 뜨이는 것 같은 매운 맛에 입맛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한그릇에 3.5P(700원 정도?)

 

그리고 콩과 푸른 채소를 갈아 만든 튀긴 크로켓과 토마토 야채를 넣어 주는 따메야.

하나에 겨우 1.5P. 맥도널드 햄버거보다 훨씬 더 싸고 맛있다.

그리고 야채절임 도쉬. 0.5P.

 

길거리에 천지로 버려져 있던 쓰레기 더미는 금방 잊어버리고 우리는 어느새 먹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쿠샤리는 우리가 머문 이슬라믹 지구의 숙소 앞에서도 먹어봤었는데

시내 중심가에 있는 이 집의 것이 훨씬 더 맛있었다.

한국사람들이 많이 간다는 선호텔 바로 뒤에 있는 집.  FelFela.

 

우리는 교통경찰한테 어디가면 맛있는 쿠샤리를 먹을 수 있느냐고 물어서 찾아간 거였는데

아마 유명한 집이었나 보다.

투어를 나선 버스들이 줄을 이어 이 집 앞에 서서 수많은 외국인들이 여기를 들어와 쿠샤리에 따메야를 시켜 먹는다.

발 디딜틈이 없다.

우리는 카이로에 있는 동안 이식당에 세번이나 간 단골이다.

주인과 종업원도 알아보고 인사하는 사이...

 

장사가 잘되는 집은 주방장도 신나고 주인도 그저 웃고 있는다더니만...

쿠샤리를 담는 주방장의 바쁜 손길에 웃음까지 얹어준다.

 

닭고기 바베큐도 맛있고, 해산물 스프도 맛있으면서 싸고... 땅콩등 견과류도 싸고 맛있고...

기름진 나일강 하류에서 생산되는 곡식과 과일들로 카이로는 먹을 것 천지다.

그 자리에서 싱싱하게 갈아주는 과일쥬스도 2P밖에 안한다.

늘 비타민, 미네랄이 부족한 것 같은 여행자에게 천연과일쥬스는 생명수 같은 거다.

매일 저녁, 과일쥬스를 마셨다.

 

이건 또 다른 즐거움.

물담배, 이집션 말로는 '쉬샤(Sheesha)'다.

길거리 카페에서 느긋한 이집션들이 피워대는 물담배의 달콤한 향기에 빠져들기도 한다.

 

 

<이집션 박물관과 시타델, 술탄 핫산 사원>

이집션 박물관 앞에서.

이집션 박물관은 그 유명한 투탕카문 마스크와 그의 무덤에서 발굴된 수만점의 보물이 있는 곳이다.

또 피라미드에서 발굴한 수많은 유적들도 전시되어 있고..

그러나 불행하게도 여기는 내부에서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어마어마한 양의 유적들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우리끼리만 보고 나왔다.

 

대영제국 시절 이집트의 수많은 보물을 다 들고 나가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전시해두었다고

영국에서 디립다 욕을 했었는데

여기 와보니 대영박물관에 있는 이집트 유물은 그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엄청나게 많은 유적들이 여기 이집트에 남아있었다.  

영국이 제아무리 한때의 제국을 자랑하며 다른 나라 유물들로 폼내고 있어도

이집트 박물관에 엄청 쌓아둔(정리가 제대로 안된 것 같아 많이 아쉬움을 남기기까지 하던) 유물을 보면

이집트가 그다지 안타까워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시타델(Citadel)에도 갔다.

십자군의 침입에 대항하여 만든 성벽이란다.

낮은 지대가 펼쳐져 있는 카이로에서 제법 높은 언덕위에 세워져 있어 카이로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입구부터 육중한 성벽이 눈에 띈다. 

 

이렇듯 든든한 벽을 쌓아두었으니 십자군이 쳐들어와도 문제가 없었겠지?

남편은 그런다.

아마 우리나라도 유럽이랑 가까운 곳에 위치했더라면

옛날 옛적 십자군이 우리나라도 쳐들어 왔을거라고...

그러면서 개종하라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을지도 모른다고...

평화를 사랑하는 십자군?에 의해 우리나라 불교도들도 많이 죽임을 당했을거라고...

 

시타델의 가장 중심에는 모하메드 알리 모스크(Mosque of Mohammed Ali)가 있다.

신발을 벗고 들어서면 반짝반짝 대리석바닥이 우리를 기다린다.

 

모하메드 알리 모스크의 외부.

둥근 돔형의 모스크 꼭대기에는 무슬림의 상징인 초승달이 걸려있다.

그리고 모퉁이의 높은 첨탑들.

 

카이로의 하늘이 언제 그렇게 뿌옇었냐는 듯이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한 이곳의 하늘은 푸르기만 하다.

 

오랜만에 나도 머리에 히잡을 두르고...

 

다른 각도에서 바라 본 모하메드 알리 사원.

 

카이로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시타델의 마당에서.

하늘을 날으는 비행기가 눈에 띈다.

우리 둘이 동시에 한 생각은?

'저 비행기를 타면 한국으로 돌아갈수 있을까?'

여행을 오랫동안 같이 하다보니.. 점점 생각마저 닮아가고 있다.

여행이 9개월째다.

둘이 똑같은 생각을 순간적으로 같이 했다는 것을 확인하며 얼마나 웃었던지...

 

시타델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술탄 핫산 사원.

카이로에서 가장 큰 무슬림 사원이다. 

앞으로 이집트를 그리고 나머지 중동국가들을 다니면서 숱하게 볼 무슬림 사원이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겠지?

유럽에서 지겹도록 성당을 본 것과 마찬가지로...

 

 

< 밝은 사람들... 이집트 아이들>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인도 암리차르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한테 질려 했으면서도

북적거리는 사람들에게서 밝은 미소를 만나 행복해했던 것 처럼.

차도르를 뒤집어 쓰고 폐쇄적일거라고만 생각했던 이란에서 사람들에게서 따뜻한 눈길을 받았던 것 처럼.

 

조용하고 차분하고 깨끗한 유럽에서는 결코 느낄수 없었던 사람들의 따스한 눈길.

얄팍한 속임수조차 그들의 놀이라고 생각하고 같이 어울리면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이집션들...

우리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헬로'라는 인사에

'살람 와레이쿰'이라고 대답해야 했고, 그들의 즐거운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어디까지 따라오는 애들을 만날수 있었고,

그들의 미소에 덩달아 웃음을 지어야 해고 그래서 행복한 시간을 만날수 있었다.

 

술탄 핫산 사원에서부터 몇백m는 졸졸 따라오며

길건너편에서 끊임없이 '헬로'라고 외치던 동네 꼬마들.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더듬더듬 영어로 우리 이름을 묻던 카이로의 학생들.

 

잠시 탄 지하철 안에서 몇마디 안되는 영어로 끊임없이 질문공세를 펴던 남자애들.

인사하고 이름묻고 ....

이들이 있어 앞으로 우리의 이집트 여행은 더 흥미로워 질지 모른다.

모하메드, 무샤파드, 하마스.... 이름도 어려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우리의 여행은 앞으로도 쭉 계속된다.

 

 

<카이로를 떠나 아스완으로>

산토리니에서 일요일 밤배를 타고 아테네로 돌아온 우리는 바로 그날(월요일)에 여권을 찾을 수 있었다.

빠르게 일을 처리해 준 그리스 한국 대사관에 정말 감사드리고 싶다.

급하게 우리는 화요일 아테네에서 카이로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11월 24일(화요일), 카이로에 들어왔다.

번갯불에 콩볶아 먹듯이 후다닥, 유럽을 떠나 아프리카로 들어왔다.

언제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별로 시간도 지체한 것도 아닌 상태로 카이로에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혼돈스럽게 시작한 카이로에서 점차로 적응하면서 사흘밤을 묵은 뒤,

이집트의 가장 남쪽 도시 아스완으로 떠난다.

아부심벨도 가보고 나일강 투어도 하겠지, 아마?

 

아스완 가는 밤차를 기다리면서 만난 '음네야' 가족들.

 

이집트에 들어와서 하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 이름을 물어봐서

우리 스스로 이집트식 이름을 하나씩 지었다.

나는 음네야로, 남편은 아미드로...

... 음네야입니다, 아미드입니다라고 대답하니 여기 사람들도 아주 좋아한다.

살람 와레이쿰!!!! (Hello!!!)

슈크람 (Thank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