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229 (11월14일) 여행의 고수, 소매치기 고수를 만나다, 그리스 아테네.

프리 김앤리 2009. 11. 15. 17:14

 

<온통 흰 빛깔... 아테네의 첫 날>

아테네는 하얗다.

아테네는 파랗다.


아테네의 하늘은 최근 두 달여 동안 우리가 보아온 하늘하고 많이 달랐다.

파란 하늘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이 가을에 유럽에 이런 하늘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감동했다.


아테네의 집들은 온통 하얗다.

구시가지의 몇몇 지붕들이 붉은 걸 빼고나면 세상 천지가 온통 하얀 빛깔이다.

 

필로파포스 언덕(Fillopappos Hill)을 오르면 아테네 시내 전체가 다 보인다.

약 350만이 살고 있다는 아테네의 하얀 집들이 눈부시다.

언덕의 대리석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오르내리던 사람들의 발길로 반짝반짝 거린다.

서쪽 바다에 해가 지는 시각.

필로파포스 언덕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우리도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그리스 아네테에서의 첫 날.

시내 전체가 다 내려다 보이는 필로파포스 언덕,

오른 쪽 위로는 신들의 거처, 고대 신전 아크로폴리스가 올려다보이고,

아래로는 민주정치의 기원이 된 아고라가 내려다 보이는 곳 하얀 대리석 언덕에서

아테네에서의 첫날 해가 지기를 오랫동안 기다렸다.

 

<아크로폴리스를 가다... 아테네의 둘째날>

 

아크로폴리스란 ‘높은 언덕위의 도시’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 한 가운데 신들의 거처, 아크로폴리스를 만들었다.

수천년 전 사람들이 살고 있던 아래 동네에서 하늘을 향해 올려다 보면 보이는 곳,

아레오파구스 언덕(Areopagus Hill) 위에.

 

고대 사람들이 생각하면 하늘과 가장 가까운 저 곳에 신전을 세우고 그들의 신을 모셨으리라.

오늘 우리는 그 곳으로 오른다.

 

아크로폴리스로 들어가려면 프로필레아(Propylaia, 정문)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한 계단, 한 계단 신을 향하는 길이다.

 

 

고대 아테네 시민들은 신과 정령들이 세상 곳곳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물론 선한 신도 있지만 악한 정령도 있다고 믿었다.

이때는 현세기에 주장하는 유일신의 시대가 아니라 다신교의 시대였던 것이다.

 

온갖 양식의 기둥들.

이오니아식 기둥, 도리아식 기둥...


우리는 왜 건축양식을 보면 이런 기법에 관해서 더 충실히 공부를 해야 했을까?

바로크, 비잔틴, 고딕.... 이오니아식... 도리아식...

봐도 제대로 모르기도 하거니와 그걸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해서

그 옛날 아테네 사람들의 생활을 떠올릴 수 있는 건 아닐텐데...

 

우리는 그저 이곳에서 아테네식 민주주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을뿐인데...


중, 고등학교에서 우리가 배운 건 그랬다.

아테네가 직접 민주주의의 원천이었다고...

시민 한명 한명이 모든 정치적 사안에 직접 투표하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꽃을 피운 곳이 바로 그 아테네였다고...

맞는 말이기는 하다.

아니 10%만 맞는 말이다.


이런 건 우리에게 말해 주지 않았었다.

당시에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아테네에 살고 있는 사람의 10%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

아테네 출신이 아닌 사람은 시민이 될 수 없었다고,

수많은 노예들, 그리고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여성들 역시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가질 수 없었다는 사실을 배우지 않았었다.

아테네식 직접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그 사회가 온전하게 지탱해 나가기 위해서는

결코 시민일 수 없었던 나머지 90%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희생이 없어서는 안되었다는 사실도...

아니, 가르쳐줬는지는 모른다.  아마 강조를 하지 않았을지도.

어쩌면 당시의 내 의식이라는 게 일천하여 제대로 생각을 못했는 건지도 물론 모른다.

 

지금 우리는  당시 사회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던 방식이 더 궁금한데...

기둥들의 건축양식보다...

 

 

파르테논 신전 앞에 섰다.

거대함에 압도당하는 느낌이다.

2,500년전에 아네테 사람들은 이런 걸 만들었다는 말인가?


그런데 지금은 기둥들만이 남아있다.

아름다운 조각상과 부조들은 지금 이곳에 하나도 없다.

대영박물관에서 넋을 잃고 바라보았던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상들을 떠올린다.

원래 있던 이 곳에, 이 건물과 함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나마 이 곳은 복원이 되어 있다.

파르테논 신전의 서쪽에 있는 에레크테이온(Erechtheion).

6명의 소녀상이 신전의 앞에 기둥으로 아름답게 서 있다.

물론 이것도 진품은 아니다.

진품은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그 중에 하나는 역시 대영박물관에 있다.

 

다시 필로파포스 언덕으로 내려온다.

아크로폴리스를 또 다시 올려다 보며...

오늘도 역시 서쪽 하늘에는 석양이 물드는 시각이다.


오늘 하루 우리는 무얼 하느라 그리 바빠...

여전히 저녁이 다 된 시각에 아크로폴리스를 찾았을까?

 

 

<아랫동네를 다니다... 아테네의 셋째날>

어제는 언덕을 올라가 아크로폴리스를 보았다.

오늘은 아랫동네를 다닌다.

아드리아 황제의 문(Hadrian's Arch).

제우스 신전과 함께 있다.

우리 집을 가는 길, 버스안에서도 환히 보이는 화려한 건축물이었다.

 

넓은 벌판에 서 있는 바라보는 제우스 신전(Temple of the Olympian Zeus).

넓은 벌판이라고 해서 어디 아테네의 외곽에 있는 건 아니다.

아테네의 가장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신타그마 광장(Syntagma Square)에서 걸어갈 수 있는 위치다.

고대 아테네 시민들은 신도 인간이 살고 있는 곳곳에 함께 살고 있었다고 생각한게 맞는 모양이다.

하늘 높은 곳에만 신전을 지어 놓은 게 아니라

자기들이 살고 있는 아랫동네에도 이렇게 신전을 지어놓은 걸 보면...

 

 

제우스 신전에서 저 멀리 위로 올려다보면 성벽으로 둘러싸인 아크로폴리스가 보인다.

파르테논 신전 머리 부분이 살짝 나온 채...

 

 

아크로폴리스 밖의 성벽 주위를 한바퀴 돈다.

아크로폴리스를 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 인 듯 하다.

직접 아크로폴리스 안으로 들어가서 보는 방법,

저 아랫동네에서 아크로폴리스를 올려다 보는 방법,

그리고 이 것 처럼 아크로폴리스 바로 아래 성벽 주위로 난 길을 따라 한바퀴 돌면서 보는 방법.

마지막 순환코스에는 아크로폴리스 아래에 있는 다른 유적들도 다 볼 수 있다.

 

우선 이로드 아티쿠스 음악당(Odeon of  Herodes Atticus)이 보인다.

이로드 아티쿠스라는 대부호가 아네테시에 기증한 것이라는데 로마시대에 지어졌단다.

한 여름에는 이 곳에서 연극, 콘서트, 오페라 등이 상연된다는데...

아깝다. 

 

이로드 아티코스 음악당 입구.

여기는 안으로 못들어가게 해 놓았다.

그래서 위에서 한번 보고, 앞에서 보고, 저 문 틈으로 얼굴 디밀어서 안으로 쳐다보고...

 

 

옆으로는 디오니소스 극장(Theatre of Dionysos)도 보인다.

극장이라고 해봐야 돌계단만이 유적으로 남아있을 뿐이지만.

아!!! 돌계단? 모조리 대리석이다.

나도 저기에 앉아본다.

 

 

위에서 내려다 본 디오니소스 극장.

아주 멋지다. 한번에 17,000명은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통 한번 크다. 그 옛날에 지었으면서도...

지금은 아랫동네에 현대식 건물이 많이 들어서 있지만

그 옛날에는 멀리 아테네의 바다가 보였을지 모른다.

그곳에서의 연극... 무대... 관객... 배우...

상상해 본다.

 

 

아크로폴리스 성벽을 거의 다 돌아간다.

이제 아래로는 그리스 정교회 건물도 보이기 시작한다.

 

 

필로파포스 언덕을 이제는 아래로 내려다 본다.

오늘도 저 곳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저 사람들도 우리처럼 해가 지는 장면을 기다리고 있는걸까?

 

다 내려왔다.

아고라 광장까지 내려왔다.

‘아고라’, 현대 그리스어로는 ‘시장’이라는 뜻이다.

아마 이곳에서 물건과 함께 노예도 사고 팔았을 것 같다.

그러나 고대에는 정치,종교,문화적 시설이 집중한 곳이라는 의미였다 .

아테네 시민들은 이 곳에서 정치 집회를 열고, 다양한 의견들을 모아내고, 투표를 하던

아테네식 직접 민주주의의 산실이다.

소크라테스도 플라톤도 여기서 연설을 했단다.

사진은 고대 아고라 광장안에 있는 헤파타이투스 신전(Temple of Hephastus).

혹은 테세이돈 신전이라고도 부른다.

 

 

고대 아고라 광장에 있는 또 하나의 유적, 아탈로스 주랑 박물관 (Stoa of Attalos).

 

 

이제 완전히 아래로 내려왔다.

아테네의 골목골목을 돌아본다.

잘 보존되어 있는 그리스 정교회.

 

 

이건 올리브나무.

올리브 나무를 본 건 처음이다.

올리브 열매가 조롱조롱 달려있었다.

참, 그리스를 와서 달라진 입맛. 올리브 열매가 참 맛있다는 거다.

예전에는 올리브 열매가 들어있으면 골라내고 먹었는데

여기 와서는 샐러드에 나오는 올리브를 먼저 골라먹고 있다는 사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앞에서...

씁쓸한 풍경이었다.

대부분이 유색인종이었는데, 중동 어디나 북 아프리카 쯤에서 온 사람들 같았다.

저 사람들이 팔고 있는 물건이,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물렁물렁한 고무처럼 생긴 인형(돼지모양, 토마토모양)을

나무판에다 탁 던지면 이게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나무판에 착 퍼졌다가 서서히 다시 제 모습을 찾는거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봤던 것.

하나에 1유로란다.

그런데 문제는 똑같은 저걸 파는 사람이 박물관 앞에도 아크로폴리스 앞에도, 그리고 아테네 중심가 거리에도

엄청나게 많다는 거다. 옆에 그 옆에...모두들 같은 지역 출신인 것 같았다.

가만 앉아있다 관광객만 지나가면 한결같이 자기 앞에 놓인 나무판에다 인형을 탁 던진다.

우리가 아테네를 돌아본 사흘 내내 하루종일 탁탁 던지기만 한다.

저걸 다 판다고 해도 몇 유로를 못 벌 건데, 거의 팔지도 못한다.

더 안타까운 건 하나같이 다 똑같은 동작만 반복하고 있다는 거다.

모두들 똑 같은 인형에, 똑같은 나무판에 똑같은 동작으로 탁!! 탁!!

서로 다른 물건이라도 팔든지, 아니면 같은 걸 판다고 해도 뭔가 다른 사람하고 다르게 포장을

해 놓는다거나, 아니면 좀 다른 동작을 해본다거나 광고 문구를 만들어놓는다거나, 색다르게라도 해 놓아야 할 텐데...

어쩜 저리도 다들 똑 같은지.


사흘동안 딱 한명 봤다. 저 인형 사가는 사람을.

 

 

물건 파는 위 사진을 두고 바로 아래 이 사진을 두니 묘한 대비를 하는 것 같기는 하다만

(마치 TV 뉴스에서 의도적인 편집으로 사건의 순서를 정하는 것 처럼...zz)

박물관 바로 앞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밝아 보여서 한 장 찍었다.

 

 

<잠깐, 옆길... 아테네의 내공>

아테네에 대해서 사실 잘 몰랐다.

그냥 그리스의 수도,  고대 도시 아테네, 스파르타 그리고 아테네, 올림픽, 성화, 마라톤 전투...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그냥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단어들과 연결되어 있는 어렴풋한 상상 정도.

그런데 아크로폴리스도 대단하고 다른 유적들도 대단하다.

그런데 정작 ‘아테네가 그냥 아테네가 아니다’라고 느낀 건 길거리 상점의 기념품들이었다.

고대 그 시절부터 예술가, 철학자, 건축가들이 모두 아테네로 모여들었다는 것처럼

미적 감각이 살아있는 도시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2,500년도 더 옛날, 파르테논 신전의 그 아름다운 조각상을 만들어내던 사람들이었다!!!


아테네, 역시 내공이 있는 도시였다.

  

 

각종 청동 조각상들과 투구.

 

 

특히 청동제품을 참 잘 만드는 듯.

그런데 여기 와서 알게 된 사실인데

그리스 로마 문명의 조각상들에서 우리가 그토록 감탄해 마지않는 인간 조각상들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서 직접 본을 떠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조각상들에서 보였던 다리, 엉덩이 등의 살아있는 듯한 근육이

모델로 세워놓고 조각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석고를 바르고 굳힌 뒤에 떼어내서

그것을 주형으로 하여 청동을 녹인 물을 넣어 만든 것이란다.

누가 조각가들의 주형이 되어 주었을까?

우아하고 고상하고 논리적으로 기억되고 있는 아테네식 사회의 발전에 희생물이 되어야 했다는 노예들이

떠오르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하여튼 그냥 아테네가 아니다.

내공있는 아테네...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는 아테네다.

성수기가 한참 지났다고 하는데... 여전히 아테네의 거리는 발 디딜틈 없이 비좁다.

 

 

식당들도 마찬가지고.

고대 아고라가 보이는 거리에서.

 


<여권이 없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다시 아테네의 첫날로 돌아가야 한다.

도착하는 첫 날, 기차역에서 내려 숙소까지 찾아가는 그 때도 차가 비좁기는 했었다.

지하철도, 신타그마 역에 내려 트롤리 버스로 갈아타고 갈 때도.

파업이 있어서 한 시간도 넘게 기다려서 그렇겠거니 생각을 했었다.

숙소에다 짐을 풀어놓고 다시 시내로 나와 필로파포스 언덕에서 해지는 아테네를,

붉게 물드는 아크로폴리스를 올려다 볼 때 까지만 해도 좋았다.

돌아가는 지하철. 정말 사람이 많다.

‘조심해야 한다’며 가방도 움켜쥐고 지갑을 넣은 호주머니를 챙기면서 서로에게 말까지 했었는데...

딱 한 구역 가서 갈아타려고 지하철에서 내렸는데...

갑자기 남편이 말한다.

“여권이 없다!!!”

“뭐?”

순식간이었다. 

딱히 우리를 더 밀고 당겼던 것도 아니고 진짜로 지하철이 비좁았을 뿐인데...

‘아차!! 우리 바로 앞 뒤에 있던 술냄새 나는 그 녀석들?’

주머니를 뒤집어보고, 가방을 뒤집어 보고 하는 사이 지하철에서 같이 내린 사람들은 흔적도 없다.


무슨 이런 일이...

돈보다 더 중요하다는 여권을...

여행 고수라고 건방지게 다니더니만 여권을...

고수는 무슨!!!

아테네의 소매치기 고수가 우리보다 한 수 위다.


하여튼 결론은 여권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 시간은 벌써 저녁 7시가 다 되어가고.

일단 집으로 가자.

경찰서 위치를 물으니 다행히 우리 히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다.

우선 저녁밥이나 먹자.

 

 

저녁 9시, 경찰서 도착.

소매치기한테 여권을 잃어버렸다니까 금방 분실증명서를 끊어준다.

아테네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란다.

잃어버렸다는 게 여권이란 말인지... 돈이란 말인지...

한국 대사관 위치를 물으니 잘생긴 경찰 아저씨,

주소랑 위치, 전화번호까지 친절하게도 일러준다.

우리 여행 코스를 들으며 자기가 바로 그 메테오라 근처 출신이라며

고향 자랑까지 한참 곁들인다.

남편은 친절한 경찰 아저씨랑 기념이라며 사진 한 장 찍으란다.

으이구...  여권을 잃어버리고 분실증명서를 만들려고 들어온 경찰서에서

사진 찍으라고 하는 남편이나 찍으란다고 웃으면서 경찰관이랑 나란히 서는 마누라나...

옆에 있던 경찰관도 웃는다.


집에 와서는 그냥 자버렸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하자며.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아테네에서의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어쩌지? 

이제 여기서 우리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대사관에서 만들 수 있는 여행증명서로 나머지 여행을 할 수 있을까?

간단하게 결론을 내렸다.

1.그리스 다음으로 여행할 나라가 터키였으니까

  여행증명서로 터키를 여행할 수 있으면 터키만 여행하고 이스탄불에서 한국으로 돌아가자.

  어차피 우리 항공권이 이스탄불 아웃으로 잡혀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2.터키를 여행할 수 없다면 에게해 쪽 섬에나 가보고 비행기 항공권 아웃하는 지점을

  바꿔서 아테네에서 돌아가자.


첫 번째가 되거나 두 번째가 되거나  어쨋거나 20일정도만 있으면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결론이다.

아!! 드디어 회도 먹을 수 있고 김치찌개도 먹을 수 있겠다.


3. 그래도 이집트까지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테네에서 이집트 가서 여행하고 터키로 가서 아웃하면 좋은데...

  두 나라만이라도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욕심을 버려야겠지?


“맞지, 그지? 여행이라는 게 그냥 일상의 삶이라니까.

 일상에서 일어나는 귀찮은 일이 여행에서도 다 일어나고 있잖아?”

“따분하고 힘들고 귀찮은 일이 여행에서는 안 일어나야 되는데 말이야.

 어쩜 이리도 똑같은지....”


여행지에서 우리가 생고생하는 이야기를 읽으면 ‘메롱’하며 기뻐한다는 후배의 글이 떠오른다.

‘배낭여행자가 여권을 잃어버렸다’는 최고의 사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나올까?

메롱? 얼라리 꼴라리? 무슨 그런 쪼다같은???


“이것 또한 여행이니라... ㅋㅎㅋㅎㅋㅎ” 


샤워도 하고, 아침도 먹고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갈아 까지 타가며 한국 대사관을 찾아갔다.

 

 

아테네 타워빌딩 19층에 한국 대사관이 있다.

유리창 너머로 아테네 시내가 다 내려다 보인다.

‘아테네는 정말 하얗다....’

여권을 잃어버린 상황에서도 대사관 창문너머로 아테네의 경치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어쩔수 없는 여행자다.ㅋㅋ


여권을 잃어버렸다고 하니 여행증명서를 만들어주겠단다.

그걸로 터키를 여행할 수 있냐고 물으니 안 된단다.

항공권이 이스탄불 아웃이라고 하니 그러면 공항 밖으로는 못나가고 공항 내에서

비행기를 갈아탈 수만 있단다.

우째.

우리는 유레일 패스 사용해서 육로로 터키를 들어가려고 생각했는데.

이집트는 여행증명서로도 갈 수 있기는 하단다.

그러면 어떡한다? 이집트만 갔다 와서 한국에 연락해서 항공권의 아웃지점을 바꿔달라고 할까?

그냥 한국으로 가버릴까?


“그러면 혹시 여권 재발급은 되나요?”

터무니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묻는다.

“.... 여기서 분실 신고서하고 여권 재발급 신청서를 한국으로 보내고

 한국에서 여권을 만들어서 다시 이리로 보내야 하는데...”

된단 말이야?

“모든 서류를 DHL로 보내고 받아야 돼서 돈이 좀 듭니다.

 시간도 열흘에서 보름은 걸리고...”

하여튼 된다는 소리다.

OK!!!

재빨리 판단한다.

그러면 재발급 넣어놓고 그 동안은 에게 해 크레타 섬, 산토리니 섬으로 여행 갔다 오자.

가지고 간 사진은 여권 발급용 사진은 안 된다고 해서 얼른 사진 찍어 오고...

각종 서류를 작성한다.

우선은 분실 여권 대신 여행증명서를 발급하여 그리스내의 여행을 하다가

여권이 다시 나오면 대사관에 와서 받아서 나머지 여행을 계속하자.

하하하하...

자꾸 웃음이 나온다.

 

사건 발생 : 목요일 저녁 6시경

사건 진행 : 목요일 저녁 9시, 경찰서 방문 , 분실증명서 발급

                 금요일 오전 10시 한국대사관 방문 , 여행증명서 발급& 여권 재발급 신청

사건 해결 : 금요일 11시.

ㅋㅎㅎ 눈깜짝할(?) 사이에 모든게 정리됐다.

요즘 외국에 있는 한국대사관 정말 친절하다. 업무처리도 빠르고...

그리스 경찰도 마찬가지고... 고맙다.


원래 우리 계획으로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지난 몇 달간의 유럽 여행을 끝내고 터키로 들어가려고 했었다.

남아있는 여행일정은 터키와 요르단, 시리아등 중동국가, 이집트, 그리고 튀니지였다.

그런데 그 계획에는 하나 문제점이 있었다.

튀니지를 가고 싶은데 어느 지점에 어떻게 튀니지를 넣어야 할지 도대체 해결책을 찾지 못하던

중이었다. 터키부터 이집트까지는 육로로 쭉 연결이 되는데 반해 튀니지는 어디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도

따로 비행기를 끊어야 할 입장이었다.

로마에서도 시칠리로 가서 튀니지로 배를 타고 갈까 하다가 여행 방향이 정리가 안되어 포기하고 다시

돌아오던 중이었다. 일단 터키쪽으로 가서 다시 방법을 찾자고...


하하하...

그런데 여권을 잃어버려서 그 문제가 한 방에 해결이 되어버렸다.

튀니지를 안가면 되는 거다.

아테네에서 이집트로 가는 편도 항공권만 끊어서 카이로로 들어가서

카이로, 룩소르, 아스완을 거쳐 시나이 반도를 지나 요르단 --- 시리아로 중동국가를 거쳐

터키를 아래에서 위로 쭉 훑어 이스탄불에 맨 마지막에 들어가면 되는 환상의 코스를 잡을 수

있게 된 거다.

튀니지로 잡아둔 보름 정도를

대신에 그리스의 크레타섬이나 산토리니 섬을 여행하면 되는거다.

크레타 섬이나 산토리니 섬으로 가보고 싶었지만 여행 일정상 생략하고 그냥 나간다는 게 안그래도

섭섭하던 중이었다.

여행 시작부터 정리가 안되던 튀니지 일정을 한방에 해결하고 나니 오히려 속이 시원하다.


이래서....

우리는 한국에 빨리 들어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렸다(?).

박차버렸다.

들어가면 매일매일 가방을 싸야하는 이런 귀찮은 일도 더 이상 안해도 되는데...

회도 먹을 수 있고, 김치찌개도 먹을 수 있는데...

 


<덕분에 우리는 크레타로, 산토리니로 간다>

여권 재발급 서류를 넣어놓고 대사관을 나섰다.

열흘에서 보름정도 걸릴 거라며 중간중간에 연락하란다.

임시 방편으로 여행증명서를 받아들었다.

또 하나 더. 대사관 사무실에 있는 책꽂이에서 한국 책 두 권까지 대출해서.

여권 찾으러 오면서 반납하겠다고... 얼마 전에 만난 투어야 여행사 민재대장한테 전달받은

책도 한권은 이미 다 읽었고, 나머지 한권도 다 읽어가는데...마침 잘됐다.

섬에 가서 책이나 읽고 푹 쉬다 와야겠다.


한국 식당을 찾았다.

오슬로에서 후배가 주문해놓고 간 한국음식 먹고는 아직 한국음식이라고는 구경도 한번 못했다.

헬싱키에서는 한국 식당 문전까지 갔었지만 너무 비싸서 포기했었고.

에라이... 오늘은 사 먹어버리자.

1유로에도 벌벌 떨며 살았는데... 여권을 잃어버리고 나니 통이 좀 커졌나 보다.

한국으로 가려면 아직도 몇 달이나 더 남았는데 오늘은 그냥 사 먹어버리자.

 

 

김치찌개, 불고기를 시켰다. 맥주도 시키고.

맛있다. 

아삭아삭한 김치 맛.

 

 

싹싹 다 긁어 먹었다.

공기밥을 한 그릇 더 시켜서 그것마저 바닥이 완전히 보일 때까지.

아!! 정말 맛있다.


윗도리 후드 점퍼도 하나 샀다.

어제 가게에서 봤던 것.

35유로나 해서 안 사려고 했었는데,

여권 잃어버린 김에 하나 사야겠다.

위의 사진들에서 둘째 날부터 보이는 새 옷이 그런 사연을 담고 있는 점퍼다.

zzz


그래서 우리는 전혀 계획에도 없던 문명의 발상지 크레타,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산토리니로 떠납니다.

잃어버린 여권이 우리에게 준 선물입니다.

얼마동안 있어야 하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여권이 그리스로 도착하면  그 다음날 우리는 이집트로 날아가겠지요.

이것 또한 ‘우리다운 여행’이라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