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224(11월 9일) 따뜻한 푸엇아저씨네, 마케도니아의 오흐리드

프리 김앤리 2009. 11. 10. 04:58

<이번엔 알바니아에서 마케도니아로 국경넘기> 

발칸지역에서 국경을 넘기는 참으로 힘들다.

보스니아에서 몬테네그로, 몬테네그로에서 다시 알바니아의 티라나로 결코 쉽지 않게 국경을 넘었다.

보스니아에서 6시간 밤버스- 새벽 2시 도착-2시간 반 기다려서  40분간 택시 - 걸어서 국경넘기 -

30분 기다림 - 다시30분 봉고- 비오는 거리를 비맞고 걸어가다  - 또 다시 불법영업 미니버스 2시간 반을 가서야

겨우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에 도착했었다.

 

그리고 요란스럽지도 감동스럽지도 않게 티라나에서는 비만 만나다가 마케도니아로 떠나가로 했다.

아!!! 이번에는 좀 편안하게 무사히 다음 목적지로 갈 수 있었으면...

티라나의 숙소 주인말에 의하면 마케도니아의 오흐리드로는 버스 터미널에만 나가면 된다고 한다.

예약도 필요없고, 그냥 제시간에 맞춰나가기만 하면 된다고.

 

비오는 거리를 배낭을 질질 끌고 터미널까지 갔더니만,

글쎄... 오흐리드로 한번만에 가는 버스는 없단다.

알바니아의 티라나에서  마케도니아의 스투루가(Sturuga)까지만 버스가 가고 거기 가서 다시 오흐리드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야 된단다. 돈은 1인당 1유로 정도밖에 안한다면서...

뭣이야.

또 한방에 착 연결이 안된다는 것이야?

나라가 바뀌어도 국경같은 국경 한번 없고, 기차만 타면 혹은 버스만 타면 옆의 나라로 슥슥 다닐 수 있는 유럽땅을 밟고 다니다가

국경이라는 문제에 부딪히니 참말로 피곤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어쩌랴?

자기네 나라에서 자기네들 마음대로 하는 걸.

우리는 따를 수 밖에.

더구나 유고연방이 해체되고 난 이후라,

예전의 유고연방의 국가들끼리의 소통이 더 안되는 것 같다.

국경을 꼭꼭 걸어잠그고 넘어가는 사람, 넘어오는 사람을 일일이 검사하고,

서로서로 연결되는 대중 교통수단은 거의 없애버리고...

지도상에는 분명히 기찻길이 연결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국경부근에서는 끊어져 있는 경우도 있고...

아니, 있는지도 모르지. 단지 우리가 모르는 것 일수도 있고.

하여튼 오늘 아침에도 한방에 해결할수 있는 팔자는 아닌가 보다.

 

                                                                                                              <사진: 알바니아쪽 국경을 넘으면서>

알바니아 국경을 넘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알바니아는 입국세나 출국세를 받았던 모양인데 지금은 그런게 완전히 없다.

그냥 도장 하나 꽝꽝 찌기만 하면 들어가기도 나가기도 참 편하다.

 

약간 시간을 지체 한 곳은 마케도니아쪽이었다.

버스안의 다른 사람들은 금방 처리해 주는데, 우리한테는 경찰이 몇번씩이나 와서 남한에서 왔느냐, 북한에서 왔느냐를

점검한다. 남한은 괜찮은 데 북한 사람이면 입국이 안된다나?

1시간도 더 지체한 후에 마지막으로 우리 여권을 넘겨준다.

 

 

<FYROM - 마케도니아의 공식적인 나라이름>

                                                                                                    <사진 : 마케도니아 국경에 있는 면세점(?)>

마케도니아로 들어왔다.

세계지도를 펼쳐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마케도니아'라는 나라 이름은 없다.

그런데 발칸반도의 지도를 자세히 보면

서쪽으로 알바니아, 동쪽으로 불가리아, 북쪽으로는 코소보와 세르비아, 그리고 남쪽으로는 그리스로 완전히

둘러싸인 조그만 나라가 하나 있다. 

F.Y.R.O.M.이라고 쓰여진 나라, 여기가 바로 마케도니아다.

F.Y.R.O.M.은 The Former Yugoslava Republic of Macedonia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마케도니아의 구 유고연방지역이라는 의미다.

마케도니아라고 나라 이름을 붙히니, 그리스에서 '마케도니아'라는 나라 이름을 반대하고 있다.

그래서 마케도니아와 그리스는 사이가 좋지 않다. 

 

사실 알렉산더 대왕의 마케도니아 왕국은 지금의 마케도니아 공화국 뿐만 아니라

그리스, 불가리아 지역에 넓게 퍼져 위세를 떨치던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더구나 당시의 마케도니아는 지금의 그리스 지방이 더 많이 포함되어 있기도 해서

그리스로서는 충분히 반대할 수 있는 명분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래서 마케도니아는 마케도니아 인데, 옛날 유고연방의 마케도니아 지역이라는 의미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나라이름은 FYROM 인거다.

 

하여튼 마케도니아로 들어왔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게 국경에 있는 Duty Free Shop 건물이다.

이름하여 면세점이라는 건데, 여지껏 세계를 돌아다니며 봤던 가장 작고 초라한 국경면세점이다.

물론 아예 없는 곳도 있지만.... 그래도 없으면 아예 생각을 안했을 텐데... 있으니 초라한 행색이 보인다.

그것 마저 문을 닫았다.

흰 벽에 써놓은 Duty Free Shop이라는 글자만 없었어도 그저 지나쳤을 것인데...

 

잠시를 달리던 버스, 몇몇을 스투르가(Sturuga)에 내려주고 휑하니 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로 달아나버린다.

 

자!! 이제 드디어 오늘의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

어떻게 오흐리드까지 가지???

분명히 버스는 있다고 했건만... 텅빈 거리만 보일 뿐이다.

어제 아침 처럼 깜깜한 밤이 아니어서 천만 다행이라 느긋하다.

버스가 있다고 했으니, 버스를 기다려야지!!! 1유로밖에 안한다고 했는데...

론니에도 분명히 적혀있고...

그런데  어라!!! 자주 있다는 버스가 흔적도 없다.

역시 우리를 노리는 택시기사들만 줄줄이...

그리고 똑같이 하는 말... "버스 없다"

어쩜 어제와 레파토리가 이리도 똑 같은지...

같이 내린 현지인들은 미련없이 모두들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다 떠나버리고 또 우리 둘만 달랑 남았다.

바로 앞에 있는 버스 정류소 안으로 들어가니 티켓 파는 사람조차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택시기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봐라.. 택시타고 가야한다"며 우리를 종용한다.

오늘은 그리 오래 뻐대지 않았다.

현지인들조차 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우리가 무슨 통뼈라고 뻐대랴?

순순히 택시에 올라탔다.

오늘은 5유로 밖에 안한단다.

아하하 ... 신난다.

둘이서 서로 보며 웃는다. 꼭 바보 같다.

이국경, 저국경 넘으면서 택시 두번에 40유로내고 중간에는 걸어서 국경까지 넘었던

깜깜하고도 막막하고도 두려웠던 어제에 비하면

오늘은 훤한 대낮에 양쪽 국경을  버스에 앉아서 넘고  다음 목적지로 가는데 돈이 약간 드는 것일뿐이라며

둘이서 이리 신니하다니... 웃다가  서로를 보니 꼭 바보 같아서 다시 한번 더 웃는다.

으하하... 신난다.

 

 

<아름다운 호수마을, 오흐리드>

아!!! 좋다.

오흐리드.

도시 전체가 차분하다.

그렇다고 착 가라앉아 있는 게 아니라 잘 정돈되어 있고 단정한 느낌이다.

루마니아 부쿠레스티에서 율리아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이유를 알겠다.

매번 여름이면 휴가를 반드시 여기 오흐리드에서 보낸다고,

스코페같은 도시에 가지 말고 이곳으로 가라면서 추천해준 곳이다.

 

어제 알바이나 티라나에 있다가 와서 그렇나?

악다구니를 쓰는 사람들, 여기저기서 싸우는 사람들, 천지에 널려있는 쓰레기,

어딘지 모르게 음습한 느낌이 나던 티라나와는 천지 차이다.

 

보통 이렇게 비교를 하면 한쪽은 비좁지만 사람냄새가 물씬 나고 북적거리는 활기찬 도시인데 반해

다른 한쪽은 평화롭지만 사람냄새가 거의 나지 않은 그저 조용하기만한 느낌을 연상시킬 수 있는데

그건 또 반대다.

 

티라나에서는 사람들이 북적거렸지만 그건 활기참이 아니라 악다구니를 쓰는 듯한 느낌이었다.

살기가 너무 힘들어 다른 사람의 존재, 다른 방식을 인정하지 않는...

악악거리고 살지 않으면 누군가가 내 것을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같은 것이 보였던 편치 않은 거리였다.

툭 건드리기만 하면 어딘선가 큰 소리가 나고, 싸움을 거는...

그러나 여기, 오흐리드는 정갈하고 단정한 느낌이 나면서도 활기차다.

사람들의 표정이 온화하고 밝아 도시 전체가 살아있는 느낌이다.

 

오흐리드 시티센터에서 호수까지 걸어가는 길.

일요일이라 상점을 거의 문을 닫았지만 대신에 호수변으로 놀러 나온 사람들은 많이 보인다.

 

저기,,, 보이네... 빨간 가방 등에 매고, 까만 배낭 끌고 걸어가는 나...

ㅋㅋ

아마 저 때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을 것이야.

날씨도 좋고, 분위기도 좋고...

 

호수다.

날씨가 흐려도 좋다.

비가 안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데...

 

바다같이 넓은..

 

사람들이 거닐고...

 

운동도 하고...

 

여긴 아직 겨울은 아닌가 보다.

가을이다.

따뜻하기도 하다.  

 

아!!! 좋다.

 

호수 딱 바로 앞에 있는 큰 동상.

누군지는 모른다. ㅋㅋ

성을 들고 있는 걸 보면 이 성을 세운 사람인가?

십자가가 있는 걸 보면 그건 아닌 것같다.  성직자?  ㅋㅋ

 

아주 잠깐 비가 흩뿌리더니 호수에 딱 붙어 있는 호수가의 집 너머로 선명한 무지개가 걸린다.

아!!!!

 

자, 이제 한 이틀 우리가 묵어갈 숙소를 찾아야 하는데...

어디에서 찾지?

오흐리드를 소개해 준 율리아 말에 의하면

호수가에 민박집들이 많다고 고르면 된다고 했는데...

 

 

<최고의 숙소. 푸엇아저씨네>

호수가의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린다.

거의 대부분의 집이 민박을 하고 있다.  물론 호텔도 하고.

여름 성수기가 지나서인지 '내가 골라도 되는' 상황이다.

더구나 지금은 깜깜한 이른 새벽도 아니고, 깜깜한 밤도 물론 아니고...

호텔도 둘이서 40유로 정도면  들어갈 수 있겠다.

ㅋㅋ

어디는 방이 약간 어둡네, 어디는 돈이 비싸네...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둘러 본 몇 집들을 그냥 넘겨 버렸다.

다른 집보러 골목으로 돌아서는데,

마음좋게 생긴 아저씨가 묻는다.

방 구하고 있는거냐고.

내가 골라도 되는 상황에선 이런 삐끼한테 굳이 꼬일 필요는 없는데...

그래도 아저씨가 마음이 좋게 생겨서 봐줬다.

"방 있어요? 우리는 두 사람인데.. "

 

깨끗하다.

이 나이에 도미토리를 전전하다 더블룸만 만나도 황홀해 하는데

여기는 더블룸에 화장실도 안에 있고, 모든게 깔깔하니 다 새거다.

흐미..

이제는 이 정도의 호사에는 탄성을 지른다.

작은 것에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배운 게 여행의 소득이라고 생각하고 사는데

여행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제 이런 건 작은 게 아니라 우리 생활의 거의 전부가 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생활의 전부를 만족시키는 느낌.

얼마나 활홀한가!!!

 

정말 깔끔하다.

유리창으로는 서쪽 호수로 넘어가는 햇살이 비쳐들어오고...

 

그렇게도 바라는 넓은 베란다도 있고.

그 베란다 너머로는 호수로 지는 석양을 바라볼 수 도 있고.

(그런데 그 사진은 왜 없지?  ㅋㅋ 사진 찍는 실력이 없어서

지는 햇살이 정면으로 비쳐오는 장면은 깨끗하게 찍힌 게 없다.

사진 상으로는 그냥 부시시할 뿐. 우리 머리속에는 선명하게 그 장면이 남아있는데...)

 

"하루 저녁에 이 방이 얼마예요?"

한 여름에는 25유로를 받는단다.

그런데 지금은 성수기가 아니니 둘이서 20유로만 내라나?

그것도 감지덕지다.

그런데 욕심을 조금 더 부려볼까?

"둘이서 15유로면 안될까요?"

"음... 그러세요."

이건 왠 횡재.

이러코롬 멋있는 방이 15유로라니.

원래는 하루를 머물려고 했었는데 마음을 바꿔먹고 금방 이틀로 늘인다.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게 계획이니까... 그게 배낭여행이라면 더욱 더.

 

푸엇 아저씨.

오스만 투르크가 비잔틴제국을 점령할 때 터키에서 유럽쪽으로 들어온 집안이란다.

그렇지. 어쩐지 터키사람처럼 생겼더라니까.

자기 이름 '푸엇'이 아라비아어로는 'Heart 혹은 Soul'이라는 뜻이란다.

자기도 잘 몰랐는데 모로코 사람이 와서 그렇게 일러주더란다.

'Heart or Soul'

이름도 멋지시지.

3층에 살고 있는데 자기 집에 잠시 올라가서

농약 하나도 안친 완전 무공해 과일이라면서 사과도 가져다 주고

터키식 진한 커피도 타다 준다.

인터넷도 잘 터진다.

둘러본 집 들 중에서 민박집에 인터넷이 되는 곳은 여기 밖에 없었다.

 

마치 시골 큰 아버지 집에 온 것 같다.

푸근하고 기분 좋고.

으하하!!! 오흐리드!!! 우리는 니가 마음에 든다!! 

 

다시 밖으로 나선다.

여기는 오후 4시 반만 되면 날이 벌써 저문다.

4시30분을 조금 넘긴 시각인데도 밖은 어둑어둑하다.

 

호수가를 거닐고.

 

낚시 하던 사람들도 보이던데

내일 우리도 낚시나 할까?

 

하나 둘씩 가로등에 불도 들어오고.

 

바로 앞 광장에는

마치 우리나라 사물놀이패와 꼭 같은 장단의 경쾌한 리듬이 흘러나온다.

자기네 전통 옷차림이다.

날라리 같은 것도 불고 있고.

해는 벌써 졌지만 일요일 저녁, 사물놀이패(?)의 경쾌한 리듬을 타고 사람들은 흥겨워한다.

 

식당을 찾았다.

사실 국경을 넘는 날에는 거의 빵이나 비스켓.. 주스나 우유등 간단하게 먹을 수 밖에 없다.

새벽부터 움직이면서도 삶은 계란과 빵조각으로 하루를 버티고 나니 배고 너무 고프다.

 

마케도니아에는 바베큐가 유명하다는데

닭 한마리를 통째로 사서 둘이서 냉정하게 반으로 나눠먹었다.

당연히 현지 맥주도 있고.

 

그리고 파프리카 고추 야채도 한 접시씩.

마케도니아는 파프리카를 그렇게나 많이 먹는단다.

집집마다 파프리카를 줄줄이 널어 말리고 있었다.

어찌나 파프리카를 많이 먹던지

"차를 타고 달려오다 베란다에 파프리카가 널려 있는 집들을 만나면 그 때부터 마케도니아다'라는 말도 있단다.

 

배도 부르고..

내일은 저 성벽위에도 가보고 ♪♪♪

호수도 거닐고 ♪♪♪

낚시도 해 볼꺼나♪♪♪

 

배도 부르고, 집도 좋고, 공기도 맑고, 분위기도 좋고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징하다. 이 놈의 비>

언제부터였더라?

하루종일 화창하게 맑았던 날이 거의 없었다.

하루 종일 찔끔찔끔 청승맞게 비가 오거나

제법 많이 쏟아져서 걸어다니기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다거나

잠깐 맑은 하늘을 보여줘서 우리에게 기대를 갖게 하다가 여지없이 우리의 기대를 짓밟아 버리던 하늘.

어제저녁 우리 숙소로 꼬셔온 한국 애 - 저녁 밥 먹고 나오는데 길에서 숙소를 찾고 있는 한국애를 만났다.

당연히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지. 바로 우리 옆방에 걔는 혼자 그 좋은 방을 차지하고 싱글벙글 했었다- 는

8일 연속으로 비만 맞았단다.

 

그런데 어제 저녁 오흐리드로 들어오니 비도 안오고 저녁 노을도 붉게 물들었었다.

호수도 얼마나 아름다웠었는데...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니 비가 오고 있다.

며칠간 몸을 많이 혹사한 것도 있고, 아침에 게으름을 좀 부려야 겠다.

침대로 도로 들어가 영화나 한 편 보자고, 그래서 날이 맑아지면 나서자고 하면서...

 

중간 중간에 계속 베란다로 나서본다.

그런데 그칠 비가 아니다.

남편은 코까지 골며 그냥 자버린다.

하기야 이것도 괜찮다. 오랜만에 아무 할 일없이 그냥 침대에서 뒹굴뒹굴... 책이나 보고...영화도 보고... 인터넷도 하고...

 

그래도 비가 그치면 좋기는 하겠건만.

참, 이 놈의 비. 징허다.

 

3시가 다 되어서야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더 이상 안되겠다.

이러다간 성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 보겠다.

일어나야지. 배도 고프고...

우선 점심을 먹으려고 밖을 나섰다.

아직도 비가 철철 내린다.

징헌 놈의 비.

우리가 왔을 때는 조금 멈춰주지...

하기야 옆방에 있는 한국애는 8일 연속으로 비를 맞았다잖아,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양반인데 뭘.

 

호수가 제일 끝에 있는 멋진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확! 시켜 먹었다.

이렇게 경치가 좋은 곳에서 한 번 먹는데, 뭐 어떨려구.

맛은 있는데, 그보다 더 우려스러운 건 벌써 해가 지려는지 어둑어둑해져 온다는 거다.

그러고 보니 이 동네는 해가 4시 반이면 져 버리는데...

밥 먹고 나서면 거의 4시가 다 될텐데...

오늘 하루종일 우리, 뭐했지?

 

결국 밥을 다 먹고 나서니 이미 날은 거의 저물어갔다.

아직 오후 5시도 안되었는데...

그래서 결국 오흐리드에서 우리가 본 장면은 겨우 이런 것들. ㅋㅋㅋㅋ

 

 언덕위의 깜깜한 정교회 건물...

 

저 멀리 언덕 아래의 호수는 그냥 검게만 보이고...

불빛만 아련히...

 

오흐리드 성

복원을 한 탓인지 성의 형태가 완벽하고 돌이 깨끗하다.

그러면 뭐해.. 늦은 시간에 올라와서 안으로 들어가 보지도 못하는 걸...

아!! 그 징헌 놈의 비 땜에... 아니 뒹굴뒹둘 그 게으름 땀시..

 

 

 

<따뜻한 푸엇 아저씨네 식구들>

오흐리드. 참 좋은 데 그치?

비 와도 아침에 안자고 밖엘 나왔어야 했나?

정말 좋은 데 그치?

다음에 한 번 더 올까?

맑은 오흐리드를 보지 못한 아쉬움에 자꾸 중얼거리게 된다.

햇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호수 색깔이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바뀐다는데...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상상으로 보지 않은 장면을 떠올릴수 있다고

수업시간에 아이들한테 그렇게 이야기 했으면서도

정작 오흐리드 호수의 아름다운 장면을 내 눈으로 보지 못한 아쉬움은 크다.

상상으로도 가능하고, 거리 상점의 엽서로 확인까지 가능하면서도.

 

집으로 돌아온다.

그래도 우리 집이라고.

좋은 집, 우리 오흐리드 집.

 

3층에서 쪼르르 막내 셋째딸 데니스가 내려온다.

시간나면 커피 한잔 하러 오라고?

어이?

민박집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친절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기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는 경우는 없는데?

우리야 당연히 OK!!!

 

이 집 셋째딸 데니스는 요즘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 산다.

안그래도 어제 우리가 도착했을 때 커피 가져다 주는 아빠 따라 한번 우리 방으로 왔었다.

굉장히 흥분하면서.

자기가 요즘 한국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한국사람이 자기 집에 머물러서 정말 좋다면서.

그리고 지금 보고 있는 드라마를 이야기 하는데

우리는 잘 모르겠다. 주인공 남자도 이야기 하는데... 그것도 잘 모르겠고.

한국에서 드라마라고는 거의 안봐서... 알 수가 없어 쬐금 미안하기도 했는데.

 

3층으로 올라가니 데니스만 있는게 아니라 큰딸, 둘째딸, 그리고 엄마, 이모까지 모두들 거실에  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커피도 내오고, 마케도니아 전통 차도 내오고

직접 구운 빵에 쿠키까지..

 

즐거운 시간.

중학교에서 알바니아어를 가르치는 선생님 엄마, 칫과의사인 큰 딸, 그리고 치 기공사인 둘째딸.

그리고 한국드라마를 사랑하는 고등학생 셋째딸 데니스와 함께.

데니스의 흥분이 전달된 건지...

모든 가족들이 아주 친절하고 먼나라 한국에서 온 우리를 극진히 대접한다.

 

데니스가 푹 빠져있던 한국드라마는 "꽃보다 남자"였다.

제목은 들어본 것 같다.

안그래도 우리나라에서도 젊은 애들한테 이 드라마 인기가 대단했었다고 하니

데니스는 올 여름 내내 이 남자애들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나?

U 튜브를 통해 영어로 본단다.

거기서 한국말도 몇마디 배워서 '고마워요' ' 감사합니다' 정도는 한다.

'DENIZ'라는 이름이 영어뜻으로는 'SEA' 라고 해서

그건 우리나라 말로 '바다'라고 가르쳐 주고 한글로 써 줬다.

발음기호까지 따라 적어가며 기뻐한다.

큰 언니, 작은 언니는 앞으로 데니스를 '바다'라 부르겠단다.

 

수줍어하면서도 자기 의사표현에 당당한 데니스와 남편이 같이 사진 한 장 찍었다.

데니스! 미안...

우리 남편이 '꽃보다 남자' 에 나오는 꽃미남 처럼 잘 생겼거나

아니면 하다 못해 그 애들 처럼 팔팔하게 어려주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한국 사람이라고는 처음 눈으로 확인 했는데... 우리가 나타나서.. ㅋㅋ

 

온 가족이 다 함께.

엄아, 이모, 세 딸들과 나.

마실 거피나 차, 다과까지 준비해 놓고 우리를 초대한 것이다.

가족들도 데니스가 너무 즐거워해서 온 가족들도 즐겁단다.

 

푸엇아저씨까지 있었으면 다 모인 식구처럼 됐을텐데...

푸엇아저씨는 볼일보러 가서 조금 늦게 돌아온단다.

 

으하하!!!

비가 와도 좋다.

비가 징하게, 모질게 내려도 좋다.

진짜 우리집 같은 우리 집에 와서 따뜻한 식구들 만나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 가질 수 있었던 오흐리드...

잊지 못할 우리 여행의 한 조각이 된다.

 

굿바이 푸엇

안녕 데니스.

 

*** 다음 날 우리는 아침 6시 30분 버스를 타야했다.

     오흐리드의 버스 터미널은 호수가에서 3Km쯤 떨어진 곳에 있다.

     아침 일찍 출발해야 되서 택시를 불러달라고 했더니 푸엇아저씨는 걱정하지 마란다. 

     내일 아침 일찍 자기가 데려다 주겠노라고.

     다음날 아침... 정말 억수같은 비가 쏟아졌다.

     아저씨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5시 50분에 우리를 깨우고

     비오는 새벽을 뚫고 운전을 해서 버스 터미널에 우리를 버스 시간 전에 데려다 준다.

     헤어지면서 꽉 끌어안은 채 말씀하신다.

     " Have a nice trip.  Good LucK!!  Thank You!!!"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