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237 (11월 22일) 비극으로 만난 절대적인 아름다움, 그리스 산토리

프리 김앤리 2009. 11. 25. 05:51

  

    눈이 부시도록 하얀 집들과 화창한 하늘,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한 바닷물.

    산토리니라는 황홀한 섬에 도착했다는 흥분을 채 시작하기도 전에 배에서 내리자마자  남편은 한마디를 한다.

    “내 한테 평생 고마워해야 할꺼야. 니는 내 아니었으면 산토리니에 우째 왔겠노?”

    이건 무슨 황당한???

    “내가 만약에 여권을 안 잃어버렸다면 산토리니에 올 수 있었겠나? 바로 터키로 넘어갔겠지...”

    참내,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여권을 잃어버려서 혹시 마음 상해할까봐 한마디 불평도 안했더니만 이 사람이야~

    누구는 뭐 편해서 여권을 복대 안에 넣고 하루 종일 다닐까봐?

    중요한 거라고 해서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땀 냄새 범벅이어도 참고 있는거지.

    건방지게 여권을 복대에 안 넣고 바지 주머니 속에 넣어 다니다가 결국 덜컥 소매치기 당해놓고서...

    한국으로 여권 재신청 해놓고 남는 시간에 선택한 산토리니 여행의 행복을 자기 덕으로 슬쩍 챙겨갈라고 하다니...

    이거, 화를 냈어야 했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더니 한술 더 뜬다.

    “여권을 내가 일부러 잃어버렸겠냐? 내가 버렸겠냐? 그 소매치기가 고수라서 그런데...

     좋잖아... 크레타도 오고, 산토리니도 오고...”

    이제는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듯 하다.

    크하하...

    “이런 마누라 만났기 망정이지, 쪼잘쪼잘 신경질 내는 마누라를 만났으면 어떡했겠어?

     워낙 내가 통이 크니까 참는다, 참는다. 맞다, 맞다. 당신 덕분에 산토리니에 왔다... 고맙다.”


    어떤 이유이거나 어떤 과정을 거쳐 왔거나

    여권은 이미 잃어버린 상태고 우리는 지금 산토리니에 와 있다.

    잃어버린 여권을 두고 왈가왈부 하느니, 현재의 산토리니를 즐기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ㅋ하하 산토리니다. 

크레타에서 배를 타고 5시간, 산토리니에 도착하니 천길 낭떠러지가 우리를 맞이한다.

산토리니는 기원전 1500년경에 엄청난 규모의 화산폭발이 있었다.

그 때의 화산 폭발로 섬의 중심부가 가라앉고 한쪽은 낭떠러지가 형성되었단다.

그래서 산토리니 섬은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다.

초승달의 안쪽면은 낭떠러지 이고, 바깥쪽이 넓게 펼쳐진 평평한 면.

낭떠러지 꼭대기에 산토리니의 중심, 피라 지역의 하얀 집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옛날에는 항구에 내려서 저 꼭대기까지 오르기 위해 사진에서 보이는 저 구불구불한 길에 당나귀를 타고 올라가거나

케이블카를 타야했단다.

지금은 항구를 새로이 건설하여 도로가 닦여 있다.

물론 구불구불하게 , 천길 낭떠러지를 한쪽으로 ... 바다를 보면서.

 

산토리니 섬의 새로운 항구(New port).

새롭다고 해봐야  그저 몇몇의 렌트카, 투어, 숙소의 정보를 제공한다는 사실상의 가게들

벌써부터 흰색과 파란색의 집들이 보인다.

미리 예약해 둔 숙소(Manos villa)의 주인이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왔다.

 

마노스 빌라.

이쁜 집이다.

10월을 넘어서면서 산토리니의 다른 집들은 거의 다 문을 닫았다는데, 여기는 아직도 영업중이다

그래서인지 비수기라는데 우리 말고도 투숙객이 많이 보인다.

 

수영장도 있고, 야자수 나무 아래 쉬는 곳도 있다.

멀리로는 산토리니의 동쪽 바다도 보이고...

 

더블룸.

일인당 11유로다.

깔끔하다.

 

비수기라서 사람들도 적고 모든게 싸진다는데

산토리니는 왜 벌써부터 비수기인지 이해가 안된다.

아직도 저렇듯 햇살은 찬란하고, 바다는 푸르기만 한데...

 

한여름에는 발디딜 틈도 없다는 산토리니의 북적거림에 비하면

여기는 성수기를 약간 벗어나는 것이 훨씬 좋은 것 같다.

 

복이다. 지금 산토리니에 들어와서...

우리방의 발코니. 4박5일동안 있으면서 하루에도 몇번씩 저 의자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이제 밖으로 나가자.

산토리니의 중심지 피라가 한눈에 보인다.   

.

 

우선 동키를 만나러 가볼까?

 

저 아래 항구에서 동키가 사람들을 실어 오르내리는 길.

 

일본인 커플은 동키를 타고 섬을 오르내리고 있다.

 

밑에서 부터 위까지 모두 588계단이란다.

우리는 이미 위로 올라왔으니 동키를 타지는 않고, 동키 타는 사람 구경만 한다.

 

이리로 내려가면 동키 스테이션이 있습니다요...

이쁜 간판.

  

절벽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도 보인다.

  

이제 산토리니의 상징,

하얀 집들, 좁은 골목 사이를 다닌다.

산토리니의 절벽에 붙은 집들은 어디에서나 바다가 보인다.

 

한결같이 바다쪽으로 발코니를 만들어두었다.

아랫집의 옥상이 윗집의 발코니가 된다.

 

눈을 어디로 돌려도 하얀 집들이다.

건물의 외벽을 흰색으로 만든게 벌레들이 오지 못하도록 한 것이란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선택한 색깔이지만 파란 하늘빛과 어울려 미적으로도 훌륭하다. 

 

골목 골목.

 

여기도 에게해가 보이는 골목,.

 

다른 어떤 묘사도 필요가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산토리니를 보며 즐기면 된다.

 

...

 

어느 집의 발코니 끝에 만들어 둔 해마상.

청동제품이었는데 가운데는 유리로 만들어 녹색의 물이 담겨져 있다.

 

낭떠러지 위에 지어진 동네라 파란 바다와 하늘과 함께 어울려 있는 지붕을 보며 걸어다니는 기분이 최고다.

황홀하기까지 하다.

이런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화산폭발이라는 대비극으로 만들어졌고..

여권분실이라는 작은 비극으로 우리가 지금 여기 와있다.

 

설명이 필요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쭉 바라만 볼뿐...

 

 

 

 

 

 

 

 

 

 

...

 

이 동네는 어슬렁거리는 개들조차도 그럴싸한 폼을 잡는다.

주인은 없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먹을 걸 달라고 비실비실.. 사람들 꽁무니만 쫓아다니는 털빠진 놈들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털도 반짝반짝 멋진 배경을 뒤로 하고 아슬아슬한 담벼락 위로 탁 올라서준다.

ㅋㅋ

 

이 녀석들.

이렇게 반기기까지...

하기야  우리 남편에게는 전 세계에 있는 개들이 다 꼬리를 흔들기는 하더라만은...

 

산토리니에는 주인없는 개, 주인없는 고양이들이 아주 많이 보였다.

비수기가 되면서 아주 많은 집들이 문을 걸어잠그고 사람들이 떠나버렸던데..

아마 지난 여름에 사람들이 데리고 와서 그냥 놔두고 간 개들인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주인 없이 지낸 개들같이 보이지는 않고 아직은 모두들 다 건강한 모습들이었다.

게다가 골목 골목에 개들이 먹을 수 있는 먹이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먹이 통에 개 사료나 고양이 사료가 가득들어 있어, 골목을 어슬렁 거리던 개나 고양이는

길을 가다 아무곳에서나 배를 채우곤 하는 모습을 여러번 봤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특히 우리 남편에게 아주 충성스러운(?) 놈이었다.

전날 피라에서 우리를 만나 몇시간이나 우리를 쫓아다니던 녀석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까지도 한참동안 우리를 따라왔었는데,  인터넷까페를 들어가버리는 바람에

그만 헤어졌던 녀석이다.

그런데 이아 마을을  다녀오고 이틀만에 다시 피라를 올라갔을때

어디선가 우리 냄새를 맡고 나타났던 녀석이다.

 

ㅋㅋ

남편은 그런다.

얼마나 충성스러운 놈이냐고?

말한마디 안하고 그냥 믿고 따라온다고...

그러면서 '말한마디 안하고'에 방점을 찍는다.

 

이 사람이...

여권 잃어버렸을 때 화를 냈어야 했나???

ㅋㅋ

 

어쨋거나 아무 해야 할 일이 없는 산토리니의 하루하루는 그저 즐겁기만 했다.

일찍 일어나기를 해야 하나...

어디 시간맞춰 가기를 해야 하나...

뭘 반드시 봐야 하나 ...

또 반드시 느껴야만 하나....

 

그저 좋으면 좋으대로, 편안하면 편안한 대로...

보이는 색깔 그대로 보면 되고

드문드문 드는 생각을 그대로 느끼기만 하면 되고...

 

어제 가 본 골목을 오늘 다시 가도 되고,

어제 봤던 예쁜 집들을 또 봐도 되고...

 

그리 멍청하게 다니다 해변을 가면서 남편이 한번 쭐당 미끄러졌다.

덕분에  오른 쪽 팔에 아주 약한 상처를 입기도...

그것도 상처라고 사진찍으면서 팔을 드러낸다.

투정부리는 것도 아니고...

 

산토리니에는 하얀 집들도 있지만 이런 천연색의 집들도 있다.

간혹씩이기는 하지만...

 

그런 집들도 어김없이 발코니는 있고...

창문안으로는 태양을 가득 담아들이고...

 

창틀만, 대문만 파란색으로 만들어 놓는 게 아니라

집 마당에 만들어둔 항아리 장식품도 색깔을 맞추어 놓았다.

 

빨간 대문앞 고양이들.

 

기념품 솜씨도 아주 뛰어나다.

이번 여행 앞까지는 그래도 배낭여행이라고 해도 길어봐야 15일-25일 정도 밖에 안되어서

매번 예쁜 기념품들은 하나씩 사곤 했는데..

그래서 우리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이래뵈도 이거 외제(?)"라며 뽐 내기도 하고...

그보다 더욱 그 조그만 것들 볼때 마다 그때의 여행을 떠올리면서 즐거워하곤 했는데...

 

이건 여행이 길어지니 뭔가를 살 엄두가 안난다.

돈도 돈이지만 이걸 어떻게 들고다니나 싶어서...

 

사진에 있는 저 흰 돛을 단 푸른 조각배는 정말 사고 싶었는데...

가방 어느 구석에 넣어서 깨질지 모르잖아???  어떻게 들고 다니겠어???

이집트랑 중동, 그 먼길을 다니면서 저게 살아남겠어???

또 포기했다.

장기 여행자의 비애다.

그래서 사진으로 남겨놓는다.

우리 집의 거실에 산토리니의 추억을 남겨놓을 수는 없어도 사진속에나마 남겨두려고...

 

해가 진다.

서쪽으로 나 있는 산토리니의 마을에 노을이 비친다.

지금까지 저렇게 먼 곳에서 태양이 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저--- 멀리 바다 속으로 하루해가 저문다.

 

산토리니에 있는 동안 몇번이나 일몰을 보았다.

 

기원전 1500년전에 터졌다는 대규모 화산 폭발로 초승달 모양을 한 산토리니 섬 앞으로 자그마한 화산섬들이 흩어져 있다.

원래는 하나의 섬이었겠지...

3천 5백년도 더 오래던 어느 날, 화산이 폭발되어 모든 것이 다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런 추측도 한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고대 아틀란티스 대륙'이 어쩌면 이곳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단다.

찬란한 문명을 가지고 있던 사회가 어느날 사라져 버렸다는 '아틀란티스의 전설'.

 

크레타에서 발견되는 미노아 문명,

그리고 이 곳 산토리니에서 발견되는 고대 문명...

(산토리니라는 지명은 우리가 부르고 있지만 현지 사람들은 이 곳을 '티라'라고 부른다.

 그리고 산토리니에는 고대 티라의 화려한 유적들도 많이 남아있고...)

산토리니에서 엄청나게 큰 규모의 화산이 폭발했다면 아마 크레타에도 어마어마하게 큰 해일이 뒤덮었겠지?

 

산토리니의 일몰... 산토리니의 바다... 

  

초승달 모양의 산토리니 하늘에 뜬 초승달...

서쪽 바다로 해가 미처 떨어지기도 전에 초승달 하나가 푸른 하늘에 떠올랐다.

 

 

<아껴둔 사진들.. 산토리니의 이아마을> 

우리는 산토리니라는 곳을 가면 그저 걸어다닐 수 있는 줄 알았다.

섬이 콩알만해서...

그냥 하루종일 걸어다니면 섬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가 볼수 있으리라는 생각.

(그건 크레타 섬이 오로지 아주 오래된 문명의 발상지로 , 사람이 살았던 흔적만 있을것이라는..

 유적들이 널부러져 흩어져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던 무식한 선입견과 같은 종류 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산토리니라는 섬은 걸어다니기에는 너무나 큰 곳이었다.

그곳에는 피라마을도 있고, 이아마을도 있고, 페리사 마을도 있고.숱한 이름을 가진 여러 마을이 있었다.

피라가 항구가 있는 산토리니의 중심마을이고...

 

그 중에서 여행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이아마을'이다.

산토리니의 '숨막힐 듯한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곳.

우리도 하루는 그 곳을 찾아가 해가 질때까지 머물렀다.

 

이아 마을의 대표적인 장면.

저 너머가 바로 바다인데...

하늘과 바다가 구분이 안된다.

 

이아마을의 하늘.

 

바다가 노을빛으로 물든다.

 

노을 빛을 받은 이아마을의 하얀 집들도 물들고...

 

길게 만들어진 그림자를 따라 세상의 색깔이 바뀐다.

 

석양을 바라보면서..

이아마을을 등뒤로...

평화롭다.

 

원래 남편과 다르게 나는 개를 아주 무서워하는데...

평화롭고 따스한 기운이 주변을 감싸니, 마음의 두려움도 좀 없어지는 모양이다.

정말 여기 있는 개들은 폼 한번 잘 잡아준다.

저 위험한 난간에 탁 올라설 게 뭐람...

그리고 내가 언제 저렇게 따스한 눈길을 개한테 보내주고 있었지???

 

노을과 함께 이제  '풍차가 있는 이아마을의  빛깔'도 달라졌다.

정말 평생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될것이다.

 

아름다운 산토리니...

편안하고 느긋한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