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245(11월 30일, 월)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이집트의 아스완에서.

프리 김앤리 2009. 12. 1. 15:08

  

카이로에서 아스완까지 가는 밤 기차 안에서의 내 모습이 딱 이랬다.

도대체 먼지 냄새 때문에 참을 수 없었다.

어디선가 야금야금 피어오르는 것 같은 곰팡이 냄새까지. 그래도 일등석이었는데.

 

침대기차를 끊을까도 생각했었는데, 잘못 걸리면 밤새 낯선 사람의 발냄새를 맡아야

할 수도 있고, 또 툭 건드리기만 해도 먼지가 풀썩이는 침대에 언제 씻었는지 모르는

누런 시트와 베개 덮개를 베고 자느니 앉아서 가는 의자라도 일등석이면 괜찮겠지 하고 결정한 거였는데... 이건 ‘영 아니올시다’ 였다.

유럽식 컴파트먼트와 같은 구조에 세 명이 한 좌석에 나란히 앉아야 하는데다 전혀 뒤로 제낄 수도 없는 의자, 게다가 특별히(?) 우리 칸은 단 세 명만 들어가도록 만들어놓은 더 작은 방인데다가 ...

가방을 얹어놓을 선반도 없어 바닥에 배낭을 놓고 발도 제대로 못 펴는 상황이었다.

더욱 끔찍한 것은 숨쉬기조차 힘든 먼지... 곰팡이 냄새...

 

사막을 달리는 열차라 창문도 못 열도록 만들어놓고, 하나 있는 창문마저 먼지가 가득 끼어 있다.

낮이라도 창밖 경치를 구경하기는 힘든  꼬락서니였다. 그나마 12시간 만에 내릴 수 있으려나 기대했지만

역시나 기차는 연착되고 저녁 10시에 카이로를 떠난 기차는 다음날 오후 1시가 되어서야 15시간 만에 ...

먼지 홈빡 뒤집어 씌운 채  우리를 아스완 역에 내려 주었다.

중국에서의 끔찍했던 야간 침대 버스 이후, ‘우리의 여행사(史)에서 최악으로 꼽히는 잠자리에 등극(?)할 수 있는 영예를

그대, 이집트 기차에게 안기노라...’

 

<나일강 상류의 아스완>  

                                                                                         <West Bank에서 바라본 아스완 시내와 나일강>

그래도 아스완(Aswan)은 마음에 든다.

이집트 지도를 보면 아스완은 나일강을 따라 카이로에서 900Km 남쪽에 위치한다.

인간이 그려놓은 지도상으로는 남쪽이지만 나일강의 흐름으로 따지자면 아스완이 상류이고 카이로가 하류다.

즉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강이다.

북적거리는 카이로를 벗어난 것만 해도 상쾌한데 강바람까지 불어오는 아스완은

밤새 뒤집어 쓴 먼지를 한꺼번에 날려주는 듯 시원하다.  

 

 

강가에는 오로지 바람에만 의지하는 펠루카(Felucca)들이 돛을 펴고 떠다니고...

 

 

그저 바람이 이끄는 데로...

 

 나일강이 없었다면 과연 이집트가, 대 이집트 문명이 존재했을까?

관계시설이 제대로 없던 예전에는 해마다 나일강이 범람해야만 주변의 팍팍하고 마른 땅이 물을 흠뻑 흡수할 수 있었단다.

정말 생명의 강이요, 삶의 젖줄이다.

어떠한 생명체도 자랄 수 없는 땅이었지만 풍부한 수량의 나일강이 있어 주변에는 나무들도 자라고 사람들도 살 수 있었으리라.

그래서 이집트는 나일강을 따라서 주변으로만 사람들이 사는 촌락이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강에는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가 있어 이들에게 양식까지 마련해주고.

 

 

덕분에 우리의 식탁에도 드디어 생선이 올랐다.

나일강에서 자란 민물고기들.

기름에 바짝 튀겨주는 물고기의 맛은 한동안 우리가 잊고 있던 갯내음을 돌려주었다. 

첫날에는 생선튀김 1인분과 빵, 스프, 샐러드로 한끼 식사를 했지만,

다음날부터는 1인당 각자 따로이 생선튀김을 시켜 샐러드와 빵을 먹는 푸진 식탁에 행복해 하고 있다.

쥬스나 콜라까지 덧붙여도(여기는 이슬람 국가라서 맥주도 식당에서 판매하지 않는다.)

둘이 합해서 7~8달러, 만원도 안 되는 금액이다.

하여튼 먹는 것 하나만큼은 만족, 대 만족이다.

 

<호텔이라는 이름의 우리 숙소>

 

 

아스완에서는 킬라니 호텔(Keylany Hotel)에서 사흘밤을 잤다.

아일랜드의 아주 마음에 드는 도시 ‘킬라니’와 이름도 같고,

Hostelworld 예약 싸이트에서 머물다 간 게스트들의 평이 아주 좋은 곳이었다.

고급 호텔은 아니었지만 다른 어느 곳보다 외국인 배낭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하루 저녁에 두 사람이 100P(20달러)라는 이집트에서는 제법 거금(?)을 내야 하는 곳이었다.

방이나 화장실은 뭐... 그저 그랬지만 아침을 서빙해주는 옥상은 아주 그럴싸한 호텔이었다.

목욕탕 정도의 수준이지만 풀장도 있고...

그러나 제공하는 아침은 아주 화려하고 좋았다.



<불멸의 권력을 위하여...아부심벨>

 

 

 

이집트의 가장 남쪽 도시 아스완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람세스 2세가 세운 ‘아부심벨(Abu Simbel)을 가기 위해서다.

수천년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강력한 파라오 람세스 2세.

위대한 전사, 무적의 영웅, 자신을 살아있는 신으로 격상시킨 전설의 파라오 람세스는

이집트의 가장 남쪽 땅, 아스완에서도 280Km 더 떨어진 곳에 두 개의 거대한 산을 통째로 깍아

자신과 아내 네페타리(Nefertari)를 위한 신전, 아부심벨을 세운다.
 

                                                                                 <아부심벨 벽면의 부조>

왕비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였던 람세스는 아내 네페타리가 사망하자 그녀의 주검을 이 곳으로 안치하고

그녀에 대한 최고의 예우로 아부심벨을 세웠다.

람세스는 아부심벨의 내부 벽면에 힛타이트 왕국과 벌인 카데시 전투 장면등을 부조로 묘사해 놓았다.

벽면의 부조에 의하면 람세스는 이 전투의 가장 앞에서 영웅적으로 싸움을 벌이는 것으로 그려놓았지만

역사의 진실은 카데시 전투에서 이집트 병사들은 거의 패할 뻔 했으며 지원병이 도착하고서야 겨우 살아서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선전의 귀재’ 람세스는 이 전투는 승리하였으며 그 승리의 결정타는 자신의 용맹스러움과 위대한 지도력 때문이었다고

과장된 선전을 했단다.

그를 위해 이집트 전 국토의 신전에 거짓을 진실로 만드는 부조를 새기게 했다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지도자의 거짓 선전에 놀아나는 우매한 백성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씁쓸하다.

 

 

하나는 람세스 자신을 위한 신전.

 

 

또 하나는 아내 네페타리를 위한 신전.

두 개의 신전 입구에는 엄청나게 크게 람세스와 네페타리의 석상을 세워두었다.

보는 사람들을 압도하게 만드는...

그는 과연 어느 누구도 넘볼수 없는 위대한 신의 아들임을 세상에 알리고 있었다.

 

 아부심벨은 아스완에서도 280Km나 떨어져 있고 지금의 수단 국경과 거의 인접한 곳에 위치해있다.

(수단 국경에서 단지 40Km)

람세스 2세가 이집트의 최남단에 신전을 세운 이유는 당시 이집트 주변 국가들에게 이집트의 힘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누구도 함부로 이집트 왕에게 함부로 대항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선포하는 건축물이었던 것이다.


3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렇듯 엄청난 규모인데

당시로서는 이 정도의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 힘을 가진 나라에 감히 대항하려고 덤비는 민족은 없었으리라.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나일강이 내려다 보이는 이 곳 아부심벨에서

람세스는 ‘태양도 그 여인을 비추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했던 그의 아내 네페타리 옆에 나란히 서서 이집트를 지키고 서 있다.


*** 현재 아부심벨이 있는 곳은 람세스 당시의 위치와는 다르다.

해마다 범람하는 나일강의 홍수를 막기 위해 지은 하이댐 건설로 희대의 신전이 수몰 위기에 처하자 이집트 정부는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인공 산을 조성하는 등 대규모 공사 끝에 아부심벨 신전을 옮겨오는 데 성공하였다. ***

 

 

<필레 신전과 귀족들의 무덤>

 아부심벨을 가기 위해서는 투어를 신청해야 한다.

 개인 자가용이나 택시로는 갈 수 없고, 비행기로 바로 아부심벨에 직접 가는 것이 아닌 다음에는

 아스완에서 여행사를 통한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밖에 없다.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몇 해전에 아부심벨로 가는 버스에 무장 강도가 들어 관광객 몇이 죽음을 당했다나?

 각 호텔이나 여행사에서 주관하는 투어를 신청하면 다 모아서 대형 버스나 미니버스에 태우고

 일렬로 쭉 늘어선 버스의 행렬을 경찰차가 앞 뒤를 호위하는 가운데 사막을 지나는 고속도로를 함께 가야 한다.

 따로 갈 수 없으니... 투어 프로그램을 따라 갈 수 밖에...

 그런데 투어가 새벽 3시 30분에 시작한다니...

 거의 잠도 못 이룬 채 새벽 2시 50분의 모닝콜에 일어나 눈을 비비고 미니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별빛이 쏟아지는 사막을 달리고.


 아부심벨 투어를 신청하면 돌아오는 길에 나일강 하이댐과 필레 신전,

 덜 완성된 오벨리스크를 돌아보는 코스도 함께 겸한다.(70P)

 (아부심벨만 보고 오는 Short Tour를 신청하면 50P. 각종 입장료는 제외. 입장료가 일인당 20P(4달러)나  하는 아스완댐은

  한마디로 ‘개떡’이었다. 그냥 나일강과 댐을 볼 수 있는 곳. 입장료가 심히 아까웠다.)

 

 

그러나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풍요의 여신, 이시스(Isis)에게 바치는 필레 신전(Philae Temples)은?

대단했다. 멋있었다.

 

 

필레 신전으로 가려면 투어 버스가 내려 준 곳에서 보트를 타고 가야 한다.

아스완에서는 8Km 정도 떨어져 있다.

이 신전 역시 하이댐 건설 이후 원래의 필레 섬에서 500m 떨어진 아길리카 섬(Agilika Island)으로  옮겨졌다.

 

 

입구로 들어서면 양쪽으로 열주(Colonnade)가 늘어서 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보다 훨씬 더 장관이다.

점점 이집트 문명에 대해 놀라고 있다.

 

 

장엄한 감동을 줬던 이란 쉬라즈에 있던 페르세폴리스, 위대한 역사로 배웠던 그리스 로마 문명보다

 더 이전에 있었던 이집트 문명에 눈이 뜨이는 느낌이다.

 하기야 로마, 그리스마저도 이집트문명을 보고서 '모든 문명의 아버지'라고도 했다는데...

 심지어 나폴레옹군대도 이집트의 문명을 보고 놀라고  이를 모방하는 건축물을 만들었다는 것 아닌가?


 유럽식 사고, 미국식 역사관에 길들여 있는 우리네 교육에서는  그리스 로마 문명을 훨씬 더 자랑스럽게 배워왔지만

 정작 이집트에 들어와서부터는 대 이집트 제국의 위대함과 그들의 대단한 문명에 입을 다물지 못하겠다.

 

 

높이 18m에 이르는 거대한 탑문(Pylon)에는 빈틈 하나없이 신들에게 바치는 부조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하나하나 새겨넣은 이집트 상형문자들.

종이가 없던 시절, 파피루스에 그들의 역사를 새기던 시절.

이집트 전역의 예술가(? 조각가)들은 거대한 신전의 벽면에 자신들의 염원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규모도 대단하다.

얄팍한 속임수나 쓰고 있는 지금의 후손들을 두고 이집트를 평할 것은 결코 못된다.

 

 

하루는 배를 타고 아스완의 서쪽에 있는 귀족들의 무덤(The Tombs of the Nobels)을 올랐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동쪽은 산 사람의 땅, 그리고 서쪽은 ‘죽은자들을 위한 땅’으로 여겼다.

그래서 무덤은 나일강 건너 해가 지는 서편에 있다.

 

 

도로도 만들고 집도 지어놓은 동쪽과는 달리 서쪽은 사막 그대로다.

바위산을 뚫고 만들어 놓은 귀족들과 왕자들의 무덤.

거대한 바위산도 사막의 잔인한 바람에 깍여 모래먼지를 날리고 있었다.

 

 

무덤의 입구.

파라오의 무덤과 같은 피라미드도 아니고, 거대한 조각상이 있는 신전도 아니지만

그래도 엄청난 바위산을 뚫어야 하는 수많은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을 정도가 되는 귀족이나

왕자들이어서 이런 무덤을 가질 수 있었을테지.

그들은 지금 ‘사후세계’에서 부활했을까?

저들의 영혼은 저 컴컴한 바위 동굴 안에서 사후 세계로 가는 길을  찾아냈을까?

    

  

<산 사람들이 숨쉬고 있는 평화로운 아스완>

 

아스완은 카이로와는 많이 달랐다.

어느 나라를 가나 마찬가지겠지만 먹고 살려고 아등바등 거리는 것 같이 보이는 도심의 사람들에게 

보이는 약삭빠름이 훨씬 덜 보이는 곳이다.

나일강 강변에 위치한 공원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

 

 마침 우리가 아스완을 찾은 날은 나흘간의 긴 휴가 중의 하루였다.

 우리나라 설날 비슷한 이집트 최대 명절이란다.  (이름은 까먹어버렸다. 아라비아어라서...)

 이 명절이 양을 잡아 신에게 바치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해서 카이로 시장 길바닥에 낭자하게 뿌려져 있던  양의 붉은 피를

 봐야했던 끔찍함도 있었지만...

나흘간의 긴 휴가로 고향을 찾는 사람들의 분주한 이동으로  나라 전체가 들떠 있던 시점이었다.

 

 

대부분의 상점들은 문을 닫고...

그래도 이들의 주식, 에이쉬를 파는 사람들은 여전히 장사를 하고 있었지만...

 

 

색색깔의 이집트 향료들.

인도와 비슷한 이집트 특유의 냄새가 다 이것들 때문이다.

 

 

흔하디 흔한 딸기?

가운데 그려놓은 저 무늬는 무엇을 뜻할까?

흔하디 흔한 딸기를 팔고 있는 이 사진을 왜 올렸을까?


 딸기 한 가운데 세워놓은 저 무늬는 ‘숫자 5’를 뜻한다.

 딸기 1Kg이 5P(1,100원정도) 라는 뜻이다.

 무슨 물건을 팔든지 간에 이집트에서는 가격을 써 붙여 놓은 곳이 거의 없었다.

 과일이든, 빵이든 뭔가를 사려면 가격을 꼭 물어봐야 하고, 그 다음은 흥정이 오가야 하는

 피곤함을 겪어야 했다.

 우리가 얼마냐고 물으면, 시세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우선 불러 놓고 보는 저들과의 흥정을

 한편으로는 즐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짜증이 났었는데, 유일하게 이 딸기 아저씨만은 정확하게

 가격을 붙여놓고 있었다.

 소위 정찰제를 실시하고 잇었다.

 덕분에 여기서는 망설이지 않고 딸기를 사먹을 수 있었다.

 마음 편한 거래. 고마운 딸기 아저씨.

 

 

<아프리카의 아이들, 아프리카의 사람들>

 

 카이로는 유럽하고 아주 가까운 북아프리카여서 그랬는지 피부색도 그다지 검지 않은 전형적인

 아랍사람들의 얼굴이 많이 보였는데,  훨씬 남쪽으로 내려와서인지 아스완에서는 진짜 아프리카 사람들

 같은 새까만 피부색을 많이 만난다.

 흥겹고 유쾌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의 아이들.

 

 

귀족들의 무덤을 가는 길.  당나귀는 이들의 친구다.

 

 

제 몸보다 훨씬 더 큰 낙타도 이들의 친구다.

 

 

 아스완 서쪽 사구, 귀족들의 무덤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명절이라서 그런지, 학교를 안가는 휴일이라서 그런지 아이들끼리 많이 놀러 나와 있다.

 우리는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밭에서 걷기가 힘든데 이 아이들은 막 뛰어 다닌다.

 사막의 아이들.

 

 

 나일강 가의 아이들.

 한꺼번에 달려와서 사진을 찍고는 ‘담배 한가치’를 달란다.

 얘들이 담배를 피나? 그런 건 아닌 것 같았었는데?

 

 

낙타 영업(?)을 하고 있는 아이들.

어린 나이에 생존 경쟁(?)에 뛰어 들었지만 이들의 맑은 미소를 보면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영락없는 아이들이다.

 

 

나일강을 건너는 페리 안에서.

티없는 웃음을 보내는 아이들도 귀여웠지만, 사실 이 사진은 저 아저씨를 겨냥한 것이었다.

새카만 피부에 그가 보내는 미소는 얼마나 부드러웠던지...

눈빛이 빛났었다.

 

 

페리를 타고 가다가 튄 강물에 얼굴이 흠뻑 젖은 채 살인 미소를 날리는...

 

 

  조그만 보트에도 남자들은 앞쪽에 여자들은 뒤쪽에 앉는다.

  아이든, 어른이든 무슬림 여자라면 누구나가 얼굴은 가리고.

  눈만 빼놓고 싹 다 가린 부르카를 입은 여성도 있고, 아래 옷에 맞춰 색색깔의 히잡만 둘러쓴 여자애들도

  있고, 무슬림이 아닌지 아무것도 두르지 않은 여자 애들도 보이고...


  이 사람들 눈에는 서양인들도, 우리같은 황색 피부의 동양인들도 모두 낯설은 사람들이다.

  우리를 여행자로 보고, 어떻게 하면 우리로부터 돈을 울궈 낼까 귀찮게 따라붙는 삐끼들과는 달리

  평범한 아이들, 일상의 어른들은 낯선 여행자에게 숨길 수 없는 호기심을 보이며 아름다운 미소를 보낸다.

  막 샘솟는 것 같은 에너지가 전해져 오는 느낌이다.


  

 

<묻지마라. 말하지도 마라>

 킬라니 호텔에 묵고 있던 외국인 한명이 얼굴이 벌개져서 들어온다.

 낙타를 탔는데 원래 계약보다 훨씬 많은 돈을 요구했다며 기분을 한참 잡쳤다고 떠들어댄다.

 리셉션의 메니저는 그냥 웃기만 한다.


 또 한 명의 외국인이 오더니 메니저에게 묻는다.

 여기서 기차역까지 가는데 택시비가 얼마쯤 나오느냐고?

 5P 정도면 된단다. 많이 나와 봐야 7P란다.

 그러면서 택시를 타면서 얼마냐고 묻지 말고 그냥 기차역으로 가자고 하고

 내리면서 아무 말 하지 말고 그냥 5P를 주란다. 아무 말 하지 말고.

 (처음 우리가 아스완 기차역에 내렸을 때 택시기사가 다가와 우리 숙소를 묻더니

  거기까지는 멀어서 못 걸어간다며 30P을 내면 태워주겠다고 했었다. 물론 우리는 걸어갔지만.

  걸어서 10분정도 거리?)


 그렇다.

 이집션 들과의 흥정에서 우리가 이길 확률은 어쩌면 지극히 낮다.

 어차피 우리는 그들의 정확한 시세를 알 수도 없고, 길도 모르고 아무 것도 모르는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우리도 그랬다.

 멋도 모르고 에이쉬를 사면서 가격을 물어봤을 때는 한 개에 1P도 주고 두 개에 1P를 주기도 했다.

 그런데 가격을 알고 나서는 ‘아무말 하지 않고’ 그냥 0.5P를 쓱 내미니까 스무개씩이나 준다.

 아무 말 안했더니.

 땅콩을 사면서도 천원 정도 되는 5P를 쓱 내미니 알아서 한 봉지 가득 담아준다.

 토마토를 살 때도 마찬가지...

 으응~~~ 아무 말을 안하면 되는구나~~~

 이집트에서는 흥정을 붙일 틈새를 주지 않으면 되는 구나~~~

  

 

  아스완 동쪽에서 귀족들의 무덤이 있는 서쪽으로 가려면 나일강을 건너는 페리를 타야 한다.

  1인당 1P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었는데, 입구에서 엉겁결에 ‘얼마냐’고 물어버렸다.

  아무말 하지 않아야 했는데...

  1인당 20P를 내란다.

  무슨 소리? 안타겠다니 10P로 다시 5P로 떨어진다.

  ‘비싸면 비싼 대로 정찰제를 붙여 놓으면 그대로 낼텐데, 하는 행사가 괘씸타’며 남편은 그냥 가지 말잔다.

  에이~  즐기자니까요!!!

  옆에 있는 페리로 갔다.

  이번엔 처음에 바로 5P를 부른다. 웃고 있으니 1인당 2P로 타란다.

  1P나 2P나 이백원 정도 밖에 차이가 안나니 그냥 페리에 올라탔다.

  귀족들의 무덤을 보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는 ‘아무말 하지 않는 작전(?)’을 썼다.

  그냥 아무말 하지 않고 입구에서 두 사람용으로 2P를 내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페리를 태워준다.

  이래야 한다니까? 아무말 하지 않아야 한다니까? ㅋㅋ

  더런 몇 백원을 놓고 작전까지 구사해야 하는 우리가 스스로 우습다.  

 

 

 그런데 아부심벨 투어 중에 들른 필레섬을 갈 때는 좀 달랐다.

 같이 투어를 한 스무 명 정도가 한꺼번에 버스에서 내렸는데

 우리가 잠시 화장실을 갔다 오는 사이, 우리랑 같이 내렸던 사람들을 실은 배가 막 항구를 떠나 버렸다.

 우리만 달랑 남겨놓은 채. 돌아오는 시간도 정해져 있는데.

 론니에 의하면 1인당 왕복에 5P정도만 내면 된다는데...


 아무말 않고 그냥 쓱~ 타려고 하니 안 된단다.

 이 배는 이집션들만 타는 배라서, 우리 같은 외국인은 따로이 타야 된다며 1인당 60P씩 내란다.

 그렇다면 120P?

 말도 안 된다, 우리 책에 의하면 10P면 된다고 항변했더니 그러면 타지 말란다.

 배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이집션들에게 니네들은 얼마주고 타냐고 물어도 대답해 주지 않는다.

 배 주인들한테 물어보라고. 자기들은 모른다고. 그러면서 자기네들은 오는 순서대로 그냥 배에 턱턱 올라탄다.


며칠동안 남편이 계속 하고 있는 이야기.

“이집트 사람들은 전 국민적으로 단결하여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것 같다”는 말.

그냥 인도나 중국처럼 공개적으로 이중가격제를 실시해서 '자국민은 얼마, 외국인은 얼마'라는 규정가격을 제시해 놓으면

잠깐은 속상하기도 하지만 그렇겠거니 하고 생각할 건데라고.

정말 그런 것 같다.

‘기분 나쁜데 타지말까?’

우리도 뻐대고 있으니까... 다시 또 온다.

좋다, 그러면 100P 해줄게.

10P라니까?

또 그냥 가버린다.

우리 팀을 실은 배는 이미 우리 눈 앞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멀리 떠나 가버렸고, 시간은 자꾸 가고.

남편은 그냥 강가나 구경하자며 담배를 꺼내든다.

그러면서 삐끼한테도 한 대 권한다.

참, 단순한 삐끼(사진 중앙에 있는 사람). 금방 웃으면서 80P까지 내려간다.

우리도 좀 올린다. 20P.

단순한 삐끼, 이번엔 넉살좋게 친구들 담배까지 달란다.

또 내려간다, 60P.

남편은 여유만만하게 담배만 핀다, 20P면 어때?

좋다. 50P. 마지막이다.

우리도 좋다, 그러면 30P.

주거니 받거니... 우리 쪽에서 여유를 부리고 있자... 그들이 포기한다.

좋다. 다른 이집션들하고 같이 타라, 30P에 낙찰.

다른 이집션들은 얼마 줬는지 모른다.

여기에서도 이 말은 계속 적용되는 건가 보다.

‘아무 것도 묻지 마라. 다른 사람들은 얼마 줬는지를’

우리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우여곡절 끝에 탄 필레 신전으로 가는 보트를 탔다.

ㅋㅋ

우리 보트를 모는 아저씨는 필레 섬에 우리를 내려주고 돌아가기도 전에 먼저 돈을 지불하란다.

‘이거 줘도 되는 건가? 나중에 딴 소리 하는 거 아닐까? 강 한가운데 멈춰서서 더 이상 못가겠다고 하면

어떡하지?’ 머뭇거리고 있는데 자기를 믿으란다.

에라이~ 모르겠다. 아저씨 인상이 워낙 좋으니까, 믿고 준다.

여기 있습니다, 30P.

마음씨 좋게 생긴 아저씨는 이 날 아무 문제 없이 우리를 다시 버스가 있는 항구까지 데려다 줬다.

-버스를 다시 타서도 다른 여행자들에게 니네들은 얼마주고 필레 섬 가는 보트를 탔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무 것도 묻지 마라’가 정답인 것 같아서. 이 사람들도 우리에게 전혀 묻지 않았다.

 이게 이집트를 즐겁게 여행하는 법이라는 걸 서로 알고 있나 보다.-


호객꾼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마라’가 좋은 작전임에는 틀림없으나

여행자들끼리는 ‘자기가 어떻게 당했는가’를 끊임없이 이야기 하는 게 이집트 여행의 또 다른 재밋거리다.

몇 번이나 마주쳤던 네덜란드 아줌마 롤리는 낙타를 탔는데 낙타 몰이꾼이 자기 앞에 타라고 하더란다.

자기는 뒤에 타고 가고 싶다고 말하고 뒤에 탔는데 사막 한 가운데까지 가서는

이 몰이꾼이 낙타를 탈 때 자기 뒤에 타는 건 불법(?)이라며 내리라더란다. 앞이면 어떻고 뒤라면 어때서...

무섭기도 했지만 막 화를 내니까 그러면 돈을 더 내라더라나? 화를 벌컥 내니까 그냥 태워주더라는 이야기.

 

캐나다 아줌마 린다는 바람이 안 불어서 한시간 예약하고 간 펠루카를 몇 시간이나 더 탔다고 돈을 더 내라더라는 이야기.

(펠루카는 바람의 속도대로 가는 건데 말이다),

또 누구는 호텔 방에 가방을 두고 나와서 다시 문을 열어 달랬더니 돈을 내야 열어준다고 했다는 이야기에 

유로나 달러를 같은 가치로 속이려고 하더라는 이야기까지.(현재 달러는 유로가치의 2/3밖에 안된다.) 

여행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양 사방에서 이집션들의 황당한,

그러나 얄팍하면서도 어쩌면 깜찍한 속임수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운다.

 

누가 누가 어떻게 속았는지...

누가 어떻게 속였는지를 가지고 즐겁고 이야기하고 우리는 논다.


ㅋㅋ... 이렇게 우리는 이집트를 여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