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270(12월 25일) 아주 특별한 크리스마스, 사막위의 마르무사 수도원에서

프리 김앤리 2010. 1. 1. 04:03


 

마르무사(Mar Musa).

‘무사’는 아라비아어로 모세를 뜻한다.

마르무사. 그러니까 모세의 수도원이다.

마르무사의 기원은 AD 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아비시니아(Abyssinia, 지금의 이디오피아와 에리트리아) 왕의 아들인 모세가

이승의 번민 끝에 수도생활을 하기로 하고 여기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현재있는 수도원 건물은 벽에 새겨져 있는 아라비아풍의 조각으로 보아 11세기 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한다.

이후 15세기까지 시리아 지역의 카톨릭 수도원으로 존재했으나 점차로 쇠퇴하여 1830년대는 세상에 거의 잊혀진 수도원이 된다.

그러나 1980년에 들어서 이탈리아 교구에서 이 수도원을 재발견하여

시리아 뿐만 아니라 EU 차원의 지원을 받아 오랫동안 잊혀진 폐허의 땅에, 남아있는 건축물을 토대로 수도원을 재정비한다.


1991년까지는 소규모 단위의 신부나 수녀, 수련 수도자들의 수도원이었던 마르무사 수도원이

지금은 일반인들도 방문할 수 있는 곳으로 개방되어 있다.

특히 이 곳은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계파를 초월한다는 수도원의 방침에 따라

카톨릭 신자들 뿐만 아니라 정교회, 심지어 다른 종교, 종교가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원한다면 이 곳에서 머물면서 공동체 생활을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은 ‘공동체 생활’ ‘조화로운 종교’ ‘평화로운 세계’를 배우는 장소로

배낭여행자, 종교 학자들, 지식인들에게 매력을 끌고 있다.


마르무사에 가려면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에서 북쪽으로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네벡(Nebek)이라는 조그만 도시까지 가서 다시 택시를 타고 20여분 정도 더 사막의 한가운데까지 들어가야 한다.

높이 1,320m의 높은 산위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아무 것도 없는 곳. 사막위 높은 돌산 위에 있는 마르무사.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이 곳에서 보내기로 했다.

 

 

<마르무사 첫째 날, 12월 23일>

 

다마스커스에서 버스로 1시간을 달려 네벡, 다시 지나가는 승용차를 세워서 실비를 주고 ... 20분. 마르무사의 입구에 도착했다.

멀리 높은 산 위로 계곡 양옆으로 수도원이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무조건 저 위까지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다마스커스 숙소에 배낭 하나는 남겨두고 왔다.

가벼운 걸음으로 산을 오른다.


 

마르무사에서는 찾아오는 방문객에게 모든 것을 다 무료로 제공한다.

숙박에서 식사까지 모든 것.

남녀를 분리하여 우리도 각각 하나씩 침대를 배정받았다.

사막 한 가운데 있는 높은 산 위의 수도원이라 추울 것이라고 마음먹고 왔는데

방안에는 난로까지 설치되어 있다.

침낭이 없는 사람은 담요까지 제공해주고.


 

남자들이 머무는 숙소 건물.

방문객들을 위해 다 새로 지은 건물이다.

방에서 보이는 창문 너머로 저 아래 세상이 다 펼쳐진다.

마치 깊은 산 속에 있는 산장에 온 기분이다.  

 

여자 숙소는 따로이 떨어져 있다.

 

 

1980년에 처음 이 곳을 올라왔을 때에는 저 건물들이 다 없었으리라.

이후 교회 건물을 정비하고

사람들을 위한 숙소를 다시 하나씩 하나씩 새로 지어 올린 신부, 수도사, 수녀님들에게 감사드린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다른 편의 숙소동에 올라서 찍은 사진.

아무 것도 없는 돌산을 깍고, 교회를 새로 지어 올리고 건물을 만들어 낸 이들의 노동에 감탄할 뿐이다.


 

건물 안, 복도.

방마다 방문자들의 짐이 보인다.

화장실, 샤워실까지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이 건물위로는 여전히 공사중이다.

지금 공사를 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여전히 수도사들일까? 아니면 봉사하고 있는 방문객들?

막 도착한 신출내기 방문객인 우리는 그저 의문만 가져본다.


 

수도원의 앞 마당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끝도 없이 넓은 벌판, 황량한 사막 뿐이다.


 

점심시간이다.

1시경에 도착해서 우리가 이곳 저곳을 돌아보는 사이 벌써 누군가가 식사를 준비해 놓았다.

마르무사에 상주하고 있는 신부, 수녀, 수도사는 모두 9명이다.

우리가 간 그 때는 그랬다. 보통 때는 몇 명인지 잘 모른다.

여행자들은 각자 형편에 따라 그 곳에 머무르는 시간이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하루 만에 휙 둘러보고 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한 달 이상 머무르기도 한다.

일주일 이상 이곳을 머무르고 있다는 사람들은 공동체 생활에서 자기 할 일들을 척척 찾아내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식사 준비 같은...


우리는 첫날이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채 어슬렁 거리기만 했다.

식사를 알리는 종소리에 후다닥 2층 천막으로 뛰어올라 간 일 이외에는...

30인분도 넘는 엄청난 양이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탓인지 방문객이 평소보다 많은 듯하다.

식사를 준비해 놓고 신부님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점심 준비를 열심히 한 선배 방문자(?)들이 넉넉한 웃음을 띄고 있다.

모든 사람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자신들의 노동을 기뻐하는 것 같다.


 

밥, 빵, 쨈, 당근 감자 양파 각종 야채를 듬뿍 넣은 카레 맛나는 소스,

그리고 온갖 야채를 썰고 삶아서 만들어 놓은 푸짐한 샐러드까지.

언제 이걸 다 준비했을까?

보통 솜씨가 아니다.

공동체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럴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음식을 준비하면서 맛까지 끝내주게 만들어 내다니...

덕분에 우리가 호강한다.


 

먼저 온 순서대로 아무렇게나 편하게 앉아 식사를 한다.

식사 종소리를 듣자마자 달려온 우리가 제일 먼저 밥을 먹는 모양이다.

아직 다른 사람들은 올라오지 않았다.

오늘 처음 온 사람들, 온지 며칠이 된 사람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은 시리아 방송에서 촬영도 나왔단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특별 방송될 모양이다.

 

첫날부터 아무 일도 안한 채 맛난 점심만 얻어먹고,

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서성거리다 이 산을 꼭대기까지 오르기로 했다.

 

밥을 다 먹은 시각, 오후 3시가 넘었다.

이 곳에는 4시 반이면 해가 진다.

높은 산 위라서 어쩌면 더 빨리 해가 넘어갈 지 모른다.

서둘러 산을 올라간다.

황량한 돌산.

인공적인 것이라고는 수도원 건물 하나밖에 없다.

수도원 건물도 사막의 색깔을 그대로 닮았다.

무채색이다.

 

우리는 오늘  이 산위에서 저녁 일몰을 볼 수 있을까?

무채색의 사막에서 붉은 기운만 감도는 감동적인 일몰을...

또 한번 사막에서의 일몰을.

 

아무 생각없이 산만 오른다.

수도원엘 오니 우리도 수도자처럼 되는 모양이다.

서로 아무 말도 없이 산위로 걷기만 한다.

 

산을 오르면서 뒤돌아 본다.

마르무사 수도원이 저 아래로 보인다.

산 아래 건너편엔 그저 황량한 땅이 펼쳐질 뿐이다.

한동안 사람들의 기억속에 잊혀졌다는 이 곳을 어떻게 찾아냈을까?

시리아는 무슬림 나라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곳에서 카톨릭 수도원이 있다니...

그리고 신앙도 없는 우리들이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이 곳을 찾아왔다니... 

 

수도원 바로 위가 산 꼭대기인줄 알았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산너머 산이 자꾸 자꾸 산이 나온다.

갈수록 태산은 아닐지 몰라도 산너머 산이다.

계속 오른다.

 

완전 꼭대기까지는 못올라가겠다.

벌써 서쪽 하늘에서는 해가 지려나 보다 .

이쯤에서 멈춰야겠다.

 

하늘이 온통 붉어온다.

모래먼지가 인다.

뿌옇게 하늘이 붉어온다.

 

또 한해가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아주 먼 곳에 있습니다.

시리아...

그 곳에서도 또 아주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있습니다.

일주일 전까지도 전혀 몰랐던 곳,

마르무사라는 수도원에 와 있습니다.

여기는 신부, 수녀, 수도사들이 살고 있고...

또 '함께 사는 삶'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 외딴 수도원에서도 한참을 올라온 높은 산위.

정말 사막과 첩첩 바위산과 모래먼지, 그리고 우리 둘 밖에 없다.

고요하다.

정말 고요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 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넘어가는 서쪽 하늘의 태양빛이 사그라드는 것 이외에는... 

 

붉은 기운이 다 사라지지 않았는데도 서둘러서 산을 내려간다.

아니, 산 중턱에 있는 수도원으로 돌아간다.

산에서는 어둠이 빨리 오는데...

올라 온 길이 너무 멀다.

발걸음을 서두른다.

 

*** 수도원을 다 내려왔을때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그런데  어두운 돌산 길을 내려오느라 다리를 삐어 버렸다.

      다리를 삐어서 그랬는지.. 서둘러 산을 오르고 내리오느라 그랬는지  피곤했었던 모양이다.

      수도원에서는 매일 저녁 7시에 명상시간을 갖고, 8시부터는 미사를 드린다.

      신자는 아니지만 이곳에 온 이상  명상과 미사 둘 다를 참석하려고 했는데

      산에서 내려와 그만 둘다 뻗어버렸다.

      얌체같이 점심만 달랑 먹고 산으로 내빼더니만 명상도 빠져먹고, 미사에도 참석 못한채 잠들어버렸다.

      당연히 미사가 끝난 후 저녁  식사 시간에도 못가고...

      마르무사의 바오로 신부님은 이날 저녁시간에 몇번씩이나 우리를 찾으셨단다.

      Two Koreans 어디 갔냐고...

      저녁 11시가 다되어 깼는데 어찌나 창피하던지...

      저녁도 굶은 채, 마르무사의 밤 하늘만 실컷 봤다.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을...

 

 

<마르무사 둘째 날, 12월 24일>

새벽같이 눈을 떴다.

마르무사의 아침이 밝아온다. 

 

어제 서쪽 하늘에서 진 해가

오늘은 수도원의 동쪽 사막에서 떠오른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 거란다.

무슬림의 나라 , 시리아에 얼마 없는 기독교인들도 있을테고...

여러나라에서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어하는 여행자들도 있을테고...

공동체 생활을 하는 수도원에서 의미있는 미사를 드리고 싶어하는 세상 사람들도 있을테고...

저 아래동네에서  층층 돌계단을 힘들게 올라 이곳, 마르무사로 올거란다.

 

소박한 크리스마스 트리도 만들어두었다.

사막에서 구할 수 있는 마른 나무가지, 예수 탄생 장면을 알리는 작은 장식품도 있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이렇게 소박할 수 있다는 걸 여기서 처음 알았다.  

 

아직 이른 아침.

터키에서 자전거를 타고 왔다는 저 친구는 이른 아침 일어나

수도원의 아래 사막을 내려다 보고 있다.

 

산 중턱에 있는 수도원과 아래 동네는 철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무거운 것들은 철끈에 매달려있는 공중수레?(저걸 뭐라고 하지?  생각이 안난다)에 실려 올라온다.

 

오늘은 사람들이 많이 방문할 거라서 그런지

아래동네에서 실려오는 음식 재료의 양이 만만찮다.

야채, 빵, 과일, 음료수...

방문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들 부지런히 수도원 앞마당으로 아래에서 실려온 것들은 나른다.

어느 누구도 시키는 사람도 없는데 다들 열심이다.

 

아침 식사를 알리는 종이 울린다.

지난 며칠동안은 날씨가 안 좋아 밖에서 밥을 먹지는 못했다는데

오늘은 화창한 날씨 덕분에  밖에다 아침 식사를 차려놓는다.

어제보다 사람들이 훨씬 많다.

 

사진에서는 테이블 한개만 보이지만 앞 마당 여러개의 테이블에 한가득 아침을 차려 놓았다.

다마스커스에서 먹은 우리의 아침보다 훨씬 더 성찬이다.

 

어제 아무 노동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 앉아서 점심을 얻어먹은 우리 둘은

많은 사람들의 아침 설겆이를 도맡아 다했다.

뭔가 노동을 하고 나니, 미안한 게 훨씬 덜하다.

 

 

마르무사 수도원에서는 아무 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식사 준비를 반드시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설겆이를 반드시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매일 저녁 있는 명상시간에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미사를 꼭 함께 해야한다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아침에 바오로 신부님을 만나서

어제 저녁 명상과 미사에 참여하지 못해서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더니

No Problem이란다.

자유롭게 하라고... 여기서는 무엇이든 아무것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고...

원하는 대로 하라고...

어제 저녁 다리를 삐었노라고,  묻지도 않은 핑계를 댔다.

 

아침을 먹고 ,어린애들 여러명과 함께 온 프랑스 식구들과 다른 사람들 여럿은 등산을 하러 산으로 올랐는데

어제 저녁 내가 발목을 삐는 바람에 우리는 등산은 다시 못하겠다.

대신 수도원에 만들어져 있는 도서관을 찾았다.

그런데 도서관이 제법 좋다.

3층으로 된 도서관 안에 세계 각국에서 보내온 책들이 가득하다.

 

남편은 한글 책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를 찾아서 읽기 시작한다.

나는 밀린 일기를 마저 쓰고, 교회 안에서 찾아온 '신약성경'을 들었다.

한국어로 된 책은 달랑 세권.

'순례자' '위대한 게츠비' '신약성경'

 

*** 이틀동안 우리는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결국 남편은 '순례자'를 다 읽었고, 나는 성경의 상당부분을 읽을 수 있었다.

     신자도 아닌 내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이 곳을 찾은 것도 참 의아하고

     성경을 무슨 소설책 읽듯이 푹 빠져 읽은 것도 참 재미있는 일이다.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를 거쳐 오면서 성경과 관련된 지명이나 이야기를 많이들어

     어릴 적 열심히 다녔던 교회의 목사님 설교처럼 지겨운 성경이 아니라

     고대 역사를 보는 공부하는 느낌이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점심 준비가 한창이다.

레바논에서 온 사람, 독일에서 온 사람... 누구든지 식사준비에 한 몫을 거든다.

여기에 방문자로 온 이상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할 것 같은데

누구든 어떤 할 일만 생기면 얼른 자리를 차고 앉아 일을 해서 끼어들 틈이 없다.

 

같은 방을 쓰고 있는 폴란드 여자애들은 자기가 마치 어린애같단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단다.

오늘이 크리스마스라서 사람들이 많아서 좀 특별한 건지도 모른다.

보통때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 자연스럽게 노동에 참여할 건데...

일손이 부족할 수도 있고.

 

밥 먹을 사람이 많아서인지 오늘 식사 준비는 제법 거창하다.

까까머리 아저씨는 스님이 아니다.

시리아 출신 신자인데... 시리아 전통음식을 만들기 위해 센 불로 커다란 가지를 익히고 있다.

 

수도원 안의 성당을 둘러본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그대로 묻혀 있었던 프레스코화의 색깔이 선명하다.

떨어져 나간 벽들도 그대로 남아있다.

 

제대도 참 소박하다.

성당안에는 성경책이 많은데 세계 각국어가 다 있다.

세계 각국에서 이 곳을 찾는다는 이야기다.

한글로 된 성경책은 단 한권.

 

마르무사의 둘쨋날, 또 점심식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누군가는 식사 준비를 하고, 또 누군가는 줄을 서서 음식을 담고...

또 서로들 세계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이야기도 하고...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친구는 중국사람인데, 마르무사에 우리보다 하루 먼저 도착했다.

자기는 한 일주일 이상을 머무를 거라고.

물론 배낭여행중인 친구다.

 

오늘 우리의 점심.

볶음 밥에 야채 듬뿍 넣은 소스, 그리고 야채 샐러드.

고추절임까지 있다.

그동안 요르단이나 시리아 어떤 식당에서 먹는 밥보다 훌륭하다.

 

즐거운 식사시간.

 

점심 설겆이도 우리 둘이서 다 해치웠다.

부엌을 드나들던 수사님이 우릴 보고 웃는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똑 같은 사람이 똑같은 위치에서 이 많은 설겆이를 한다면서 웃는다.

괜찮아요... 우린 식사 준비도 안했는데...

부엌바닥도 닦고, 싱크대 구석구석까지 다 닦았다.

한국 주부의 깔끔함을 과시하며... ㅋㅋ

 

점심 식사후 우리는 다시 도서관을 찾아 해가 질 때까지 책을 읽었다.

미국에서 온 친구도 도서관의 우리 파트너였다.

그도 아침부터 점심, 저녁까지 내내 도서관에서 책만 읽고 있다.

여행하면서 참 오랜만에 아주 느긋하게 책읽는 시간을 가진다.

 

저녁 7시.

명상시간이다.

사람들이 성당안으로 모여든다.

오늘은 우리도 참석한다.

처음 시작하면서 시리아어로 이야기를 해서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침묵, 그자체다.

불을 거의 다 끄고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으로 부터 나오는 소리만 듣는다.

자신의 생각만 정리한다.

고요한 명상... 한참동안 계속된다.

 

성당이라고 해서 그 흔한 예수님의 십자가도 안보이고,

파이프 오르간도 없고, 화려한 조명등도 없다.

신자들이 앉는 의자도 없다.

신부님도 수녀님도 다른 수사님들도 모두 그저 땅바닥에 그대로 앉아있다.

 

1시간 가량의 명상시간이 끝나고 나면 미사를 올린다.

주로 시리아어로 미사를 올리지만 신부님은 간간이 영어로도 설명해 주신다.

 

그런데 이 곳의 미사는 좀 자유롭게 느껴진다.

우리나라 성당의 미사드리는 것을 몇번 안봐서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격식이라는 게 있었는데

여기는 중간중간에 노래형식이 많다.

그리고 또 엎드려 절하는 장면도 있고...

신부님이 뭔가를 물어보면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우리처럼 신부님 강론이라고 따로이 오랜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는다.

사람들도 굉장히 자유롭게 행동하고...

 

몇번 일어서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카페트 위에 다같이 앉아서 미사를 드린다.

신부님도 수녀님도...

소박하고 조그맣고오래된 성당에서의 저녁 미사....

감동적이다.

 

10시가 다 된 시각,

저녁 시간이다.

우리가 미사를 드리는 동안 또 누군가가 우리를 위한 특식을 준비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닭고기 바베큐도 있고, 생선구이도 있다.

야채도 여러가지다. 과일도 한가득.

특별히 와인도 한잔씩 따라준다.

 

풍성한 저녁식사에 감사드리면서

한편으로는 아직도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시리아의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여기는 조금은 풍족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숙박비를 받는 것도, 식사비를 받는 것도 아니고 모두 사람들의 기부와 EU를 비롯한 기관들의 지원을 받아

이곳이 운영된다는데...

 

문득 인도의 티벳 망명정부가 있던 맥그로드 간지가 떠오른다.

아직도 계급사회니 아주 잘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전히 길거리에서 걸식하는 사람들이 많고  오물투성이의  거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인도에서

그래도 맥그로드 간지는 사람들의 삶이 대체적으로 좋아보였다.

전 세계게서 티벳 망명정부로 보내는 기부금과 물질적 지원이 많은 이유라고 했었다.

 

이런 외진 곳에서 종교를 초월한, 계파를 초월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해주는

이곳에도 사람들의 기부가 많아서인가?

아님 카톨릭 재단에서의 지원이 많아서인지...

여기는 그래도 시리아 서민들보다는 나은 듯하다.

물론 일년중 가장 큰 명절인 크리스마스라서 그렇겠지만... 

 

정말 많은 나라에서 사람들이 왔다.

시리아 사람은 물론이고 이탈리아, 프랑스, 폴란드, 벨기에, 미국, 타이완, 말레이지아, 일본, 중국, 스페인,스위스...

우리가 만난 사람들의 국적만 해도 15개국이 넘는다.

물론 우리는 한국대표다.

모두들 크리스마스 성찬을 받고 감사한 마음으로 저녁을 먹는다.

 

오늘은 자정미사가 있는 날이다.

12시가 다 되어가자

방문객중에 어린아이들이 나와서 벽에 걸어둔 쇳조각판을 두들겨서 종소리를 낸다.

포크, 숟가락으로 쇳조각을 두드리고 있다.

 

야외에서 드리는 자정미사.

하늘에는 별이 쏟아진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처럼 별이 쏟아지는 곳에서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처럼 가장 초라한 곳으로 2000여년 전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오셨단다.

하늘을 쳐다보며 사람들이 한가득 미소를 보낸다.

신부님이 제일 앞에 서고 수사님, 수녀님... 그리고 마르무사의 방문자들이 함께

성탄 자정미사를 올린다.

 

다시 성당 안으로 들어와 드리는 미사.

오늘은 특별히 지금도 테러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잔다.

그리고 전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각국을 대표해서 미사해 참석했다고...

세계 평화를 위해, 세상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잔다.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기도를 올린다.

참 특별한 미사시간이다.

한 명 한명 자신의 이야기도 해가면서...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 12월 24일은 내 생일이기도 하다.

      미사 시간에 남편은 내 귀에 대고 살며시 이야기 한다.

      "당신 생일 축하해주기 위해 내가 전 세계에서 사람들을 모으느라고 조금 힘들었다"...

      ㅋㅋ 고맙수...

 

 

<마르무사 셋째날, 12월 25일> 

아침 일찍 성탄 미사를 먼저 올렸다.

신자도 아닌 우리가 어제부터 벌써 몇번째, 몇시간을 미사에 참가했다.

 

미사를 마치고 가지는 크리스마스의 아침식사.

신부님이 모두에게 축복을 보낸다.

중간에 서 계신 분이 바오로 신부님이다.

마르무사를 발견하고 이 곳에 새로이 공동체를 만들때부터 처음  이 곳에 오신 신부님이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쭉 그대로 이곳에 계신다.

 

이제 우리도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아쉬운 작별의 시간을 가진다.

요셉 수사님.

 

첫날 공사장에서 벽돌을 나르고 있었던 사람이다.

공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인부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대부분 여기에서 수도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멋진 분!!!

 

수도원의 벽에 붙어 있는 자그마한 기부함.

방문자들은 각자 자신의 성의껏 성금한다.

 

마르무사에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다 환영한다.

하루를 머물러도 되고 이틀을 머물러도 되고 ... 얼마든지 머물러도 된단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라며...

 

수녀님과 함께...

매번 생각하는 거지만 수도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정말 맑다.

시리아 분이시다.

 

마르무사 수도원에 계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아무 소리 들리지 않는 침묵의 명상시간,  난생 처음 참가한 성탄 자정미사.

처음 체험해 보았던 공동체 생활...

사막위의 교회... 특별한 크리스마스...

얼굴 맑은 사람들과의 사흘...

 

뒤돌아보며 뒤돌아보며

아쉬움을 가진 채 수도원을 내려왔다.

 

마르무사 수도원에서 같은 방을 썼던 폴란드 친구들과.

지금 터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인데

크리스마스 휴가를 받아 마르무사를 찾았단다.

 

다마스커스까지 같이 내려와 우리 숙소에서 같이 사진을 찍는다.

  

*** 작년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쓰고 있는 지금은 2010년 1월 1일입니다.

     우리는 그 사이 시리아의 팔미라, 하마, 알레포를 거쳐 어제 터키로 들어왔습니다.

     시리아의 인터넷 사정이 안좋아 글을 거의 올리지 못했습니다.

     인터넷 빵빵 터지는 여기에서 며칠간 푹 쉬면서 밀린 일기도 올리고

     새로운 한해도 설계하고 마지막 남은 우리의 여행도 정리할까 합니다.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는 행복한 일만 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