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272(12월 27일) 실크로드를 지중해까지, 시리아 팔미라

프리 김앤리 2010. 1. 2. 02:02

 

 

팔미라 여행은 마르무사 수도원에서 만난 벨기에 친구, 브루노와 함께 였다.

마르무사에서 돌아와 다마스커스 알라비 호텔 도미토리에서 묵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브루노가 우리 방에서 자고 일어나는 거였다.

그도 오늘 팔미라를 간단다.

팔미라 여행의 동행이 된다.

 

시리아의 팔미라.

아는 지식이 하나도 없다.

사막의 한가운데 아주 거대한 로마 유적이 남아있다는 것,

사막의 오아시스라고 불리운다 는 것.

 

팔미라에 대해 무식하기는 부르노도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유적지 한가운데를 걸어다니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물어봤자 매번 서로가 모르겠다라는 말밖에 안했었다.

이거 언제 세워졌는지 아냐? 몰라.

언제 이 도시가 멸망했지? 몰라.

어떤 사람들이 살았을까? 몰라.

이 건축물은 뭘까? 몰라.

몰라, 몰라...

그래서 광할한 면적의 팔미라 유적군을 돌아다니면서 우리가 한 말은

 I don't know와 Incedible!!!  Really Huge!!! Marvelous!!! 와 같은 감탄사 밖에 없었다.

 

다마스커스에서 팔미라까지 오면서 론니를 읽는다고 읽었는데

영어로 된 책은 실컷 읽어도 왜 기억에 남는 사실은 없는지...

 

덕분에 우리는 팔미라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못 나누고,

벨기에가 잘 사는 것 같다. 왜 벨기에에 EU 본부가 있는지, 유럽피안 드림을 읽고 유럽의 정치 구조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둥, 현재 우리나라와 북한의 관계가 이렇다는 둥, 저렇다는 둥...

팔미라가 아닌 다른 어느 곳에서 만나도 할 수 있는 이야기들만 나누었다.

뭐... 그것도 괜찮은 대화꺼리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팔미라를 다녀오고 나서 새로이 공부를 한다.

직접 보기 전에는 론니가 영어로 된 가이드 북이라서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더니만

갔다오고 나니  내용도 훨씬 더 잘 이해가 된다.

 

팔미라... 우리 눈으로 확인하고, 우리 발로 직접 그 속을 걸어다니다 나오니

정리가 좀 된다.

 

 

<실크로드의 종착지 팔미라>

 

팔미라는 시리아의 중부에 있는 도시다.

유프라테스강과 다마스커스 사이의 광할한 사막지대 안에 있는 오아시스 지역.

 

페르시아 만을 거쳐 인도와 , 그리고 아라비아 반도, 메소포타미아, 지중해, 나일강 너머의 이집트와의

교역에서 중심 역할을 했던 고대 도시다.

 

먼 옛날  귀금속, 향유, 올리브, 비단, 청동상, 물, 소금을 실은 캐러반들이 북적거리던 사막의 오아시스.

 

애초 1877년 독일의 학자 리히트호펜이 실크로드라는 이름을 지을 때는

팔미라는 실크로드에 해당하는 도시가 아니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대 중국의 비단 유물이 발견된 경로가 중국~ 중앙아시아~ 서북 인도까지라고

판단하고 이 경로를 실크로드라고 지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 또 다른 독일의 학자 헤르만이 지중해 동쪽의 팔미라까지 이어지는 오아시스 곳곳에서

중국 비단 유물을 발견된 사실을 찾아내고 비단 교역로를 팔미라까지 연장하고 '실크로드'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게 되었다.

팔미라가 있어 실크로드가 지중해까지 확장된 것이다.

 

동방과 서방 교역의 중심지, 팔미라.

오래된 도시 , 팔미라의 '영광의 시대, 번영의 시대'가 짐작된다.

정말 Incredble이다.

 

이름하여 팔미라의 열주도로.

 

'열주'!!

고대 유적을 만났을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커다란 기둥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는 단어인데, 이건 쓸 때 마다 참 어색하다.

그냥 '늘어서 있는 기둥들'이라고 하면 안될까?'

'열주'라고 표현해야만 거대한 유적군에 포함되는 것 같아 쓰고는 있지만 하여튼 내 맘에는 안드는 단어다.

 

여하튼...

팔미라에는 1Km가 넘는 거대한 기둥군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정말 장엄하다. 

각각의 기둥들에는 대상 무역에서 공을 많이 세운 사람들의 석상을 얹으려고 만든 대좌(받침대)가 눈에 띈다. 

이 받침대 밑에  대상들의 공덕을 찬양하는 명문이 그리스, 팔미라 어로 새겨져 있다.

교역의 도시, 무역의 도시 답다.

 

팔미라 열주도로의 기점이 되는 아치문, 일명 개선문이다.

1930년대에 복원된 건물이란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 이외에는 어떤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

계속 몰라, 몰라를 말하던 브루노와 우리가 같이 수긍하며 일치했던 말은

'정말 이 도시가 예전에는 아주 잘 살았던 곳인 것 같다'였다.

얼마나 화려했었는지, 얼마나 부가 넘쳐 흘렀는지...

저 문 앞에 딱 섰을 때는 바로 짐작되는 것이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기둥들.

 

거대하고 장엄하고 대단하고...

큰 것과 관련된 모든 수식어를 다 갖다붙여도 될 것 같은 팔미라 유적에서 제법 앙증맞은(?) 것도 있다.

떨어져 나온 벽면 장식에서 아주 조그만 '소머리'조각을 발견한다.

아주 쬐그만...

ㅋㅋ

사진 아래 벽의 삼단 장식 제일 윗단의 중간쯤에 보면 뿔 두개가 솟아있는 '소머리 장식'이 있다.

찾을 수 있을래나?

 

4개의 기둥이 눈에 띄는 테트라필론.

도로 중앙 교차점에 세워져 있는 건물이다.

이 건축물의 석재들은 나일강 상류의 아스완에서 실어온 회색 화강암들이란다.

 

팔미라의 힘이 얼마나 위대했으면 나일강 아스완, 그 먼 곳에서 부터 이 큰 돌들을 실어 올수 있었던 것일까?

 

여행을 다니면서 대단한 유적들을 제법 많이 봤다.

이란의 페르세폴리스 유적을 보면서 그 장대함에 감탄했었다.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유적을 보면서 아주 오래전 그 시절에 그런 건축물을 만들수 있다는 데 대해 경이를 표했었다.

로마의 폐허가 된 프로로마노 유적에선 수천년 전 그 거리를 가득 메웠을 사람들을 떠올리며

내 상상의 한계를 깨닫기도 했다.

모두들 참 대단했다.

 

그런데..

팔미라!!! 이곳은 이전의 어떤 곳들보다 더 크고, 더 대단하고, 더 엄청나다.

자그마치 16만평이란다.

 

도대체 어느 순간에 팔미라라는 나라가 역사속에서 사라진 것일까?

그리고 지금처럼 이렇게 폐허로 남게 된 것일까?

 

팔미라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중동의 크레오파트라라는 '제노비아 여왕'이다.

팔미라 왕국이 가장 번성했던 AD 3세기. 제노비아 여왕이 있었다.

동쪽으로는 로마제국과 서쪽으로는 페르시아 제국의 사이에 있던 팔미라 왕국은

대상교역으로 엄청난 부를 쌓으면서 그 힘을 키워나갔다.

그녀는 시리아 일대에 세력을 확장해나가는 한편,

페르시아 제국의 원정을 기도하던 로마의 갈리에누스 군대를 격파하였다.

대 제국 로마에 대항한 것이다.

더 나아가 제노비아는 이집트를 원정하고, 270년에는 알렉산드리아를 함락시켰다.

이것은 인도까지의 해상 교역의 요충지와 이집크의 곡창 지대를 빼앗았다는 의미다.

이렇게 하여 제노비아는 유프라테스 강 서쪽의 시리아, 이집트, 아나톨리아를 제압하고

로마와 아시아와의 동서 교역로를 독점하려고 하였다.

팔미라는 육로로 동서를 잇는 가장 중요한 대상 도시가 되어 번영의 정점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제노비아의 시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

272년 로마의 황제 아우렐리우스가 반격을 개시하였다.

이집트를 비롯한 각지에서 제노비아 군대를 격파하고 마침내 팔미라는 포위되었다.

제노비아는 로마의 군대에 의해 체포되어 로마로 끌려가고..

273년 팔미라는 파괴되고 두번 다시 영광의 시대를 맞지 못하였다.

 

팔미라 유적 전체가 다 내려다 보이는 아랍 성채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 본다.

팔미라 유적 밖으로는 제노비아의 벽(성)이 둘러 쳐져 있다.

 

한때는 화려했던 영광의 도시... 팔미라가

지금은 기둥으로만 남아, 폐허로만 남아있다.

쓸쓸한 역사의 뒷모습이다.

 

그래도 지금은 시리아에서 아주 중요한 유적으로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

한때의 영광을 보러...

거대한 역사의 유적 속을 뚜벅뚜벅 걷기 위하여...

 

우리도 지금 역사의 한가운데 들어와 있다.

 

 

<사막과 모래먼지, 그리고 아랍 성채>

 

이후 팔미라는 AD 7세기에는 아랍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팔미라 유적의 서쪽을 올려다 보면 높은 모래산위에 아랍 성채가 우뚝 서있다.

17세기에 Fakhreddine에 의해 세워졌단다.

 

모래 먼지 가득한 성채를 오른다.

여름에는 이곳에서 보는 일몰과 일출이 장관이라는데

늦잠을 자는 바람에 일출을 놓쳐버렸다.

아니 새벽녁에 눈을 떠 밖을 보니 구름이 가득 끼어 있어 어차피 일출을 못 볼 것 같아 그냥  다시 자버렸다.

브루노랑 같이 보러가자고 약속까지 했었는데...

 

아침에 깨어보니 다행이 브루노도 우리와 같은 생각이었단다.

ㅋㅋ

덕분에 일출은 못보고(아니 그날은 일출 장면은 없었다)

그냥 낮에 모래먼지만 퍽퍽 마시며 산을 올랐다.

 

성 안으로는 안 들어갔다.

사실 성 안은 그다지 흥미로운 건 아니었다.

산 꼭대기에서 광할한 팔미라 유적군을 한눈에 내려다 보는 게 더 큰 목적이었다.

 

그런데 모래 먼지가 너무 많다.

앞이 뿌옇기만 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세찬 모래바람이 불어오다 잠시 멈춘 사이

저 아래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팔미라 유적군의 사진만 한장 찍고 그냥 내려간다.

 

온통 모래와 자갈과 먼지뿐이다.

 

다 내려와서 다시 위를 올려다 본다.

그 사이 잠시 모래 바람이 멈춘 모양이다.

 

때를 맞춰 낙타를 탄 청년이 절묘하게 시간을 맞춰 우리 앞을 지나가 준다.

 

그래도 이 곳에도 생명은 있다.

마른 가시덤불 같은 곳에 낙타 똥이 붙어 있는가 자세히 보는데

낙타든 염소든 동물의 그것은 아니다.

세상에!!!

마른 땅에 뿌리 박고 있는 생명체다.

푸른 잎 하나 없지만 마른 가지에 열매 비슷한게 달려있다.

이게 이 나무의 잎인지 열매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색깔조차 완전의 동물의 똥 색깔이다.

 

우리는 이걸 '똥나무'라고 불렀다.

사막에 피어난 끈질긴 생명체, '똥나무'. 

 

 

<팔미라에선 해지는 장면을 놓치지 마라>

팔미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일출과 일몰장면이다.

일출은 날씨가 흐려서 못봤지만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드는 해지는 장면은 만났다.

 

사막 전체가 붉게 물드는...

 

해가 막 서산으로 넘어가고 나서 마지막 남은 빛이 스며든 팔미라.

유적을 밝히는 불도 들어왔다.

 

어떻게 이런 빛깔을 낼 수 있을까?

멀리 아랍성채도 불을 밝혔다.

 

아!!! 대단한 팔미라....

영광의 시대여...

 

소설가 아가사 크리스티는 팔미라를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뜨거운 모래 사막 한가운데 땅 속에서 솟아 오른 것 같은 환상의 도시, 팔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