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303 (1월27일) 오스만 제국의 첫 수도, 부르사

프리 김앤리 2010. 1. 29. 18:06

부르사(Bursa)는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첫 수도였던 곳이다.

1326년 이 곳 부르사에서 오스만 왕조가 처음 세워져

1453년 이스탄불로 수도가 옮겨지기 전까지 127년간 오스만제국의 수도로 번영과 영광을 누리던 곳이다.

 

그 이전 비잔틴 제국 시절, 이슬람 세력의 저항 운동의 중심지였던 곳, 또한 부르사이다.

그만큼 부르사는 이슬람의 정신적 고향이면서 역사적으로도 자부심을 갖게 해주는 고장이다.

 

부르사는 실크로드의 요충지로서 비단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당시 베네치아 상인들이나 피렌체의 상인들이 부르사의 비단을 사기위해 몰려들어

도시 전체가 북적였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 돈이 집중되는 곳, 부가 넘쳐 나는 곳.

도시는 팽창하고 번성했다.

 

그래서 지금도 부르사에는 오스만 시절의 화려한 가옥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고,

당시의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오스만 왕조의 창시자 오스만 1세와 그의 아들 오르한의 무덤도 이 곳 부르사에 있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의 영광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 부르사.

이곳 저곳을 돌아다녀야 하는데

날씨가 우리를 받쳐주지 않는다.

길이 꽁꽁 얼었다.  

 

며칠동안이나 눈이 내렸던지 가는 곳 마다 눈도  쌓여있고 길은 얼어서

두터운 옷을 겹쳐 입은 사람들은 어깨를 움츠리고 살금살금 걸어다닌다.

 

술탄 오스만과 오르한의 무덤으로 오르는 길. 

 

이제 우리의 여행도 며칠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이리 힘든 일정이 남아있단 말인가?

그동안 봐 왔던 것만해도 엄청난데,

아직도 남편은 여러가지 역사적 사실이 얽힌 곳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막연히 여행을 하고 싶다거나, 그저 떠돌아다니는 방랑이 아닌

세상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그 곳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

지금도 그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떠나왔다는 사실을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으려 한다.

 

나는 너무 추워서 다 포기하고 싶은데...

지금까지 봐왔던 것만 해도 내 용량에 한계가 온 것 같은데...

 

똘똘 굴러가듯이 있는대로 옷을 껴입고 나선 겨울길, 춥기만 한데... 

 

언덕까지 다 올라가 그저 시내만 쳐다보고 있다.

그런데 남편은 혼자서 여기저기를 들여다 보고 있다.

보거나 말거나  나는 그저 꽁꽁 얼어붙은 부르사 시내만 쳐다보고 있다.

발을 동동 구르면서...

  

시계탑이란다.

부르사 시내가 다 내려다 보이는 이 곳 언덕위로 현지인들도 제법 많이 오르고 있다.

공원의 한쪽, 시계탑 바로 옆에 오스만과 오르한의 무덤이 있는데

나는 아직도 심드렁하다.

아니 추워서 얼른 내려가고 싶다.

너무 추워서 발가락이 다 오그라붙는 것 같다.

 

언 발을 녹이느라고 눈 밭에서 종종거리고 있는 내 모습이 안쓰러운지

남편도 그냥 내려가잖다.

 

뻔한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러고보니 부르사는 참 대도시다.

150만 정도의 인구가 사는 터키에서 네번째로 큰 도시다.

이스탄불, 앙카라, 이즈미르 다음으로.

 

일년 가까이 여행하면서 물론 대도시에도 다니긴 했지만

그동안 우리가 주로 갔던 곳은 조그만 마을이었다.

역사를 간직한 조그만 마을, 거대한 자연안에 품어져 있는 조그만 마을...

인구 4백만이 살고 있는 거대한 도시 부산이라는 곳에서 출발하여

우리는 세상속의 조그만 마을들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높은 빌딩들에  현대식 건물들이 많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부르사라는 대도시엘 들어오니

이제 우리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야 하는 '한국'이라는 세상, '부산'이라는 거대도시(?)가 가까워진 느낌이다.

아!!! 이제 얼마 안있으면 그 곳으로 돌아간다.

 

생각해보면 참 우습다.

오스만 제국의 첫 수도라고 찾아온 부르사에서

역사를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돌아가야 할 '복잡한 세상'을 떠올리다니... 그래서 오히려 더 반가운 생각이 들다니...

  

부르사에는 이스켄달(Iskendal) 케밥이 유명하다고 했다.

양고기를 얇게 썰어 그대로 구워져 나오는 케밥이다.

나는 양고기 냄새가 역해서 진하게 양념을 해놓은 것 아니면 잘 못먹겠는데

남편은 양고기 냄새가 그대로 진하게 베여있는 이스켄달 케밥도 맛있다며 잘먹는다.  

 

부르사 시내에서 이스켄달 케밥을 잘한다는 식당엘 들어가서 밥을 먹고 있는데

다른 테이블의 꼬마애가 우리한테서 눈을 떼지 못한다.

밥도 안먹고 우리만 계속 쳐다보니까

결국 엄마가 애 손을 잡고 우리한테까지 찾아와 인사를 시킨다.

ㅋㅋ

'역사' 보다도... 나는 '먹는 것'이 더 좋아...

꽁꽁 얼어붙은 바깥 보다도... 나는 훈훈한 공기가 있는 실내가 더 좋아...

 

다시 밖으로 나왔다.

바자르 건물에 고드름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다.

혹시 떨어지면 어떡하나 걱정하면서 벽에서 제법 떨어져서 걷는다.

그런데 지붕에 매달린 고드름은 사실 끄떡도 않는다.

너무 추워서... 녹아서 떨어질 수가 없나보다.  

 

1399년에 세워진 대사원 울루자미(Ulu Cami).

건축의 시작은 1399년에 했겠지만 이 건축물의 완성은 1421년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를 마구 헷갈려하는 나에게 남편은 조선건국 초기 시절쯤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한다.

1400년 초반에 세워지고 있었던  모스크라니

따져본다면 이성계할아버지가 조선의 기반을 잡아가던 시절.

지구의 반대편 아주 멀리 떨어진 이 곳에서는 그들의 위대한 창조물 '울루자미'를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20개의 돔이 솟아있는 대 모스크라고 알려져 있지만

주변의 다른 건물들과 너무 밀착해 있어서 전체의 사진을 찍기가 힘들다.

 

유럽에 갔을 때에도

한 마을의 중심에 있던 너무나 큰 성당, 주변으로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들과 바짝 밀착해 있어서  

오히려 전체의 외부 모습을 하나의 사진 앵글에 담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이다.

종교라는 것이 사람들의 생활속에 들어 있음을 엿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진을 찍고자 하는 후대의 사람들에게는 좀~~~

 

섭섭해 하는 우리를 보고

어제 저녁 여기까지 우리를 데려다 줬었던 잼(Cem)은

바깥 모습보다 실내가 훨씬 더 아름다우니 너무 섭섭해 하지 말라고는 했다만...

어제밤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쬐금은 아쉽다.  

 

울루자미의 실내.

잼의 말처럼 소박하게 아름답다.

그런데 거대한 모스크 안에 사람들은 별로 없다.  

 

유럽에 갔을 때

성당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믿음이 있는 곳이라기 보다는

이제는 다분히 여행자들만이 둘러보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중의 하나'로 전락해버린 느낌이 많았다.

 

하지만 이슬람 문화권에 와서는 아직도 이 사람들에게는

종교라는 것이 생활의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많이 느꼈었다.

여전히 모스크 안에서는 경건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기차역이나 다른 공공장소에 마련되어 있는 기도실에도 턱수염 더부룩한 이슬람 남자들이 가득 모여

기도를 올리고 절을 하는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모습도 대도시엘 들어오니 조금 덜한 것 같이 보인다.

나만의 생각인지...

아니면 완고하고도 철저한 다른 이슬람 나라와는 다르게

조금은 자유로워 보이는 터키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라고 할까?

하여튼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부르사 울루자미 안은 약간 썰렁한 분위기까지 감돌았다.

 

그것도 그저 잠깐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의 편협한 시각이었을까?

옷을 두텁게 껴입고, 목도리로 얼굴을 꽁꽁 싸매도 추운 날씨에

모스크를 들어가기 위해 발을 씻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또 다른 감정이 일었다.

분명 뜨거운 물도 아닐 텐데...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일텐데...

이들은 모스크를 들어가기 위해 저 찬물에 손을 씻고, 양말을 벗어 발을 깨끗히 씻는다.

 

어쩌면 이제는 터키에서도 종교라는 것이 다분히 퇴색되었을지 모른다는

일방적인 내 생각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시점...

 

우리같으면 이렇게 추운 날에는 공원의 분수도 그냥 잠궈버렸을텐데,

여기는 여전히 물이 콸콸 솟구쳐 오른다.

 

우리 같으면 길거리에 사람들도 별로 없을텐데,

길거리 가로수 아래의 의자에 앉아서 담소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나처럼 호들갑을 안떨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사람들에게 이 정도의 날씨는 그다지 춥지 않다는 뜻일까?

 

이렇게 꽁꽁 얼어붙어 있는데...

 

부르사 시내에 있는 재래시장.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다. 

터키에는 대형할인매장이 거의 없다?

대자본이 없어서 일 수도 있고, 재래시장에서 먹고사는 일반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물론 작은 미니 카르푸 같은 것은 보이지만...

한편으론 불편하지만 부럽기도 하다.

 

실크로드의 요충지로, 베니스의 상인 피렌체의 상인들까지 다 몰려들어 품질좋은 비단을 사려고 북적거렸다는 곳.

오스만 제국의 물질적 풍요를 가져 주었다는 곳, 부르사.

오늘날에도 부르사는 터키에서 잘 사는 도시라는 게 한눈에 보이는 듯 하다.

 

도로도 잘 정비되어 있고,

사람들도 많고... 차도 많고...

 

도심 한 가운데 있는 또 다른 시계탑, 그리고 멀리는 울루산. 

 

여행을 다니면서 대도시에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우리였지만

이제 우리의 여행도 끝나가고

다시 돌아가야 할 세상이 대도시라는 생각때문인지,

오히려 편안하게 와 닿는다.

  

이제 우리는 부르사를 떠난다.

우리 여행의 마지막 도시 , 이스탄불은 부르사에서 4시간 거리에 있다.

다음날 이스탄불을 가는 버스를 탔는데

한참을 달리던 버스가 바닷가까지 와서는 갑자기 배에 올라탄다.

각종 차량을 싣는 페리.

 

부르사에서 이스탄불까지 그냥 육로로 가는 것이 아니라  얄로바(Yalova)까지 가서는

마르마라해는 페리로 건넌다.

이제 우리는 간다.

우리 여행의 마지막 도시, 이스탄불로... 

 

페르가몬에서 7시간이나 걸리는 버스를 타고 부르사에 도착했을 때

사실 사고를 하나 쳤다.

부르사 터미널에 내려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갑자기 어깨가 허전함을 느꼈다.

아뿔사... 작은 배낭 하나를 버스 선반위에 두고 그대로 내려버린 것이다.

어찌 그런 일이...

 

"여보!!! 내 작은 가방... 버스에 그냥 두고 내렸다..."

"가방 안에 뭐 들었는데..."

"뭐.. 잠바 하나하고, 밤에 입고 자는 옷.. 그리고 화장품... 약..."

 

지금 시점에서 잃어버린다고 해도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별 문제는 없기는 하다만...

여행 막바지라고 긴장이 풀린 모양이다.

지난 1년간 정들었던 가방인데...

 

부르사 숙소에 도착해서 스텝으로 있는 잼(Cem) 한테 도움을 청했다 .

우리가 내린 버스가 부르사를 지나서 이스탄불을 가고 있으니

선반위에 둔 오렌지색 가방을 버스 보조기사가 발견만 한다면

이틀후에 이스탄불에 우리가 갈꺼니까 이스탄불의 메트로 버스 사무실에 보관해 달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복잡한 일이었다.

부르사의 메트로 사무실에 있는 사람도, 지금 이스탄불로 달리고 있는 버스 안의 보조기사도

모두들 영어는 전혀 못하니 영어와 터키말에 능숙한 사람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순간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해는 이미 져서 저녁 7시가 넘은 시점이었고,

시내에 있는 메트로 회사 사무실까지 찾아가야 하고,

우리 가방이 있는지 지금 달리고 있는 버스안의 보조기사와 전화통화도 해야하고,

선반위에 가방이 그대로 있는지 확인도 해야하고,

그걸 이틀후에 우리가 이스탄불에 있는 버스회사 메트로 사무실로 찾아간다고 말해야 하고...

 

ㅋㅋ

부르사 대학에서 영어교육과를 다니고 있다는 잼이 어찌나 세심히 우리를 보살펴 주든지...

그 저녁에 메트로 사무실까지 찾아가서 전화하고

확인하고, 다시 전화하고, 확인하고... 내 오렌지색 가방 잘 보관해달라고 얘기까지 전하고...

 

3년만 있으면 자기도 대학을 졸업하고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거라는 친절한 잼덕분에

쪼다같이 두고내린 가방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남편은 나를 놀린다.

"가방을 어떻게 버스에 두고 내릴 수 있냐"고.

"당신은 뭐 아무것도 안 잃어버렸냐? 아테네에서 여권까지 잃어버렸잖아."

"그래도 나는 그걸 바보같이 두고 내리지는 않았다~~~ 소매치기가 훔쳐갔지..."

"그래도 나는 없어도 되는 별로 안 중요한 가방이었지만... 당신은 여행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여권이었잖아~~~"

"스스로 두고 내린 것 하고, 소매치기가 훔쳐간 것 하고 같나?"

ㅋㅋ

결국 우리는 '일대일'이라는 결론만 내린 채...

이스탄불로 들어간다.

갈매기의 배웅을 받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