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294 (1월18일) 아름다운 리키아의 길, 조용한 바다 욜루데니즈

프리 김앤리 2010. 1. 19. 00:04

 

여행을 왜 떠나오는 걸까?

세계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기 위해서?

사실 그건 잘 찍혀진 사진이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이 어쩌면 더 나은 지도 모른다.

숨막힐 듯 아름다운 한 장의 사진, 감동적인 다큐멘터리로 만났던 장면에 직접 와서는

전문가들의 작품보다 내 감동이 덜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고작 이 정도밖에 안되는 데 그렇게 멋드러지게 장면으로 묘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때로는 실망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도도한 역사를 직접 이해하기 위해서?

사실 책으로만 접하거나 상상만 하는 것보다 직접 나와서 보는 것이 수 백배 더 빨리 이해되는 것은 사실이다.

긴 여행을 하면서 얽혀있던 역사의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보는 것은 참 재미나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그리스 로마, 페르시아, 힛타이트, 앗시리아, 이집트, 무슬림과 기독교...

그저 아주 오래전 역사들, 우리의 머리속에서 마구 헝클어져 있던 것들이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하나씩 제자리를 잡아가고 하나의 거대한 줄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것도 반드시 '여행'이라는 체험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여행은 그것을 좀 더 실감나게, 좀 더 명확하게 정리해 줄 뿐이다.

 

세상 곳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직접 보고 싶어서?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도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우선 언어의 문제에도 봉착하게 되고, 그 사람들의 삶 깊은 곳에 속속들이 들어가 볼 수 없는 이유이다.

그래도 그들의 삶을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더 쉽게 다가가는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이것 역시 반드시 '여행'이라는 과정이 필수불가결 한 것은 아닐께다.

 

그렇다면 왜?

우리 둘은 그랬다.

정말 세상을 우리 눈으로 보고 싶었다.

푸른 지구를 만나고 싶었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뚜벅뚜벅 걸어들어가 우리의 머리속에 갇혀있던 여러가지 생각들을 풀어내고 싶었다.

사실 여행을 계속 하다보니 점점 더 눈으로 보는 것에서 답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생각으로 정리되는 것이 더 큰 수확이다.

그것이 인류 역사에 대한 정리이건, 푸른 지구에 대한 정리이건 간에

일상사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크고 작은 일들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지속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생각을 한다'는 것은 어느 공간 , 어느 시간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단지 한국이라는 사회, 아니 나는 좀 아니라하더라도 우리 남편처럼 거의 워크홀릭(Workholic)의 수준에 있어서

미친듯이 자기의 일에 빠져 있던 사람에게는 '생각을 할 '공간적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게 더 큰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행을 나와있으니 그 문제가 아주 쉽게 풀리더라는 것이다.

어느 공간에서건, 어느 시간에서건 우리에게는 여유가 주어졌고

'생각'이라는 소중한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더라는 것이다.

더구나 매번 장소가 옮겨지고, 시대가 옮겨지고, 사람들의 삶이 달라지는 여행이라는 여정에서는

매번 새로운 것이 우리에게 던져지고

여유를 가진 우리는 그 새로운 것에 대해 느긋하게 '생각'하고 '정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여유를 가장 평화롭게, 가장 완벽하게 갖는 시간은 '걷고 있는 중'이었다.

참 많이도 걸었다.

어느 도시에 들어가든지 우리는 걷고 있었고,

어느 마을에, 어느 산자락에 가든지 우리는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우리에게 가장 완전한 행복을 가져다 주는 시간이었다.

 

사프란볼루에서 터키의 수도 앙카라를 가는 중에 버스 안에서 론니를 읽다가

터키에도 트레킹 코스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원래는 앙카라를 갔다가 힛타이트의 유적이 남아있는 보아즈칼레를 가려고 했었는데,

보아즈칼레에 별다른 유적이 남아있지 않으리라는 짐작, 그 위에

터키의 걷는 길을 가보고 싶다는 욕망이 덮쳐져

쉽게 보아즈칼레를 포기하고 예정에도 없던 터키의 남부도시 욜루데니즈를 찾아갔다.

 

지중해 해안에 있는 휴양도시 욜루데니즈는

주로 여름 수영을 즐기거나. 보트 투어, 그리고 패러글라이딩 등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그런데 론니에 의하면 그 곳엘 가면 터키의 유명한 트렉킹 코스가 있다는 거다.

"가자!!!"

"그 길을 걸어보자!!!"

또 다시 가장 평화롭게, 가장 완벽하게, 우리 자신에게 고스란히 주어질 시간을 맛보기 위해서였다.

 

 

<리키아의 길> 

리키아의 길(Lycian Way)은 터키 남부 도시 안탈야에서 페티예까지 이르는 509Km의 산길을 일컫는다.

 

리키아족은   BC 1400년경부터 안탈야와 페티예 사이의 넓은 반도에 정착한 민족으로

AD 1세기부터 3세기까지는 해양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던 민족이다.

 

터키정부는 지난 1999년 리키아 족들의 유적(주로 산위에 웅장한 무덤- 석관)이 있는 길을 따라

산길을 조성하고'리키아의 길'로 이름지었다.

먼 옛날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을 따라 만든 길이기 때문에 산위로 길이 나있지만

안탈야, 폐티예가 모두 지중해변의 도시인 점을 감안한다면

리키아의 길은 '산위에 있는 길'이지만 가는 길 내내 산을 오르내리면서

쪽빛 바다 지중해를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트레킹 길이다.

 

그래서 "Sunday Times'는 이 길을 세계 10대 좋은 길 중의 하나로 꼽았고,

'Country Walking Magazine'은 세계에서 50개의 아름다운 길 중 15번째로 이 길을 추천했다.

 

우리의 트레킹은 욜루데니즈에서 시작했다.

안탈야부터 페티예까지(반대로 하면 페티예부터 안탈야까지)인 리키아 길의

실제 시작지점은 페티예에서 욜루데니즈로 가는 언덕길 중간, 오바직(Ovasic)의 몬타나 호텔 뒤에 있는 숲길에서 부터다.

 

폐티예에서 돌무쉬를 타고 15분 정도를 오면 지중해 최고의 휴양지로 꼽히는 욜루데니즈에 도착한다.

우리는 전날 저녁, 욜루데니즈에 도착해 하루밤을 묵고, 이른 아침 길을 나섰다.

지난 일주일동안 내내 비가 오고 날씨가 흐렸다고 해서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오늘은 하늘이 맑게 개었다.

 

자!! 리키안의 길... 이제부터 시작이다.

모두 509Km의 길이지만 여행 일정상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리키안의 길, 제일 첫 단계인 오바직부터 아린쨔(Alinca)까지 걷기로 했다.

책에는 2박3일 코스로 나와 있으나

빨리 걷는 경우에는 1박2일도 가능하다고 하여

1박을 목표로 걷기 시작한다.

 

Lycian Way의 시작을 나타내는 플랜카드 아래에서 기쁜 마음으로 소나무 숲길을 바라본다.

 

소나무 숲길을 조금정도 밖에 안 걸은 것 같은데

멀리는 터키의 해안선이 그대로 드러난다.

지중해.

아마 저 멀리가 페티예일꺼다.

 

총을 멘 아저씨들과 함께...

저 아래 해변 욜루데니즈에서 숲길을 헤치고 중간으로 올라온 사람들이다.

진짜 장총을 하나씩 맸다.

산에 사냥하러 가냐고 물었는데...

영어가 잘 안통한다.

손짓 발짓으로 토끼를 잡으러 가냐? 곰을 잡으러 가냐?

물었는데, 하여튼 웃기만 한다.

그러면 산에 있는 양을 잡으러 가냐니까 그 말은 알아들으면서

산위에 있는 양들은 모두 자기들꺼란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여기는 양치기 목동들이 총을 매고 다니는 것인지...

하여튼 총을 맨 양치기(?), 사냥꾼 아저씨들과 함께 길을 걷는다.

 

산위로 나 있는 길이지만 바다를 바로 옆으로 해서 걷는 정말 아름다운 길이다.

저 아래 간밤에 우리가 묵었던 욜루데니즈 해변이 다 보인다.

 

초승달처럼 굽어 있는 흰 모래 백사장과 죽은 듯이 조용한 해변.

욜루데니즈(Oludeniz)는 여기 말로 사해(죽은 듯 조용한 해변)이라는 뜻이다.

욜루데니즈 중앙 해변 옆으로는 마치 가두어진 호수처럼 보이는 곳도 있다.

그러나 저기는 호수가 아니라 아주 좁은 물길이 열려(사진을 자세히 보면 보인다.  해변 제일 끝 윗부분이 열려있다.)

따로이 하나의 해변을 만들었다.

여기 사람들은 저 곳을 블루 라군(Blue lagoon)이라고 부른다.

 

쪽빛 바다를 오른 쪽으로 보면서 길을 계속 간다.

 

아직까지는 길이 잘 나있다.

하기야  오바직부터 안리짜까지의 길은 난이도에서도 'easy'라고 나와 있었다.

그저 평평한 길.

왼쪽으로는 산, 오른 쪽으로는 바다.

 

이제 평탄한 길이 끝나고 길이 좀 좁아지나 보다.

드디어 오르막 시작이다.

 

우리 두 사람이 산을 오를 때는 우리가 생각해도 참 서로에게 무심한 편이다.

다른 사람들은 조금 험한 길이 나오면

손을 잡아 부인을 끌어올려주기도 하고, 붙잡아주기도 하는 것 같더니만

우리 평생 그런 일은 잘 없다.

그렇게나 여러번 지리산 종주를 했어도 내 손을 잡아 높은 곳으로 올려줘 본 적도 없고

나를 밑에서 붙잡아 주는 적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저 내가 앞서거니, 혹은 남편이 앞서거니

걸어가다가 한 사람이 조금 뒤로 쳐진다 싶으면 그 자리에 멀뚱이 서서 기다리기만 할 뿐.

 

남자는 짐을 왕창 들고 여자는 낭창낭창 걸어가는 다른 커플들을 볼 때마다

괜시리 신경질이 나서

"이 산을 전부 돌아봐라, 나 처럼 배낭 무겁게 들고 가는 여자 있는지 봐라"

라고 항변해봤지만

아직껏 그것 하나 해결 못하고 있다.

다행히 해외 여행에서는 트레킹을 할 때 주로 큰 가방을 호텔에 맡겨놓고 나와서

그런 따위의 조잘한 항의는 필요조차 없는 일이 되어 버렸지만...

 

그저 자기의 길을 걸어갈 뿐이다.

 

돌로 잘 단장해 놓은 길도 나온다.

여전히 한쪽은 바다다. 

 

한참을 더 올라왔나 보다 .

그래도 아직 구비를 완전히 돌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직도 저 아래 욜루데니즈가 보인다.

 

땀을 바짝 흘릴 만큼 한참을 올라왔는데...

아침에 입고 나왔던 두터운 윗 옷은 다 벗어버렸다.

 

해안선의 한 구비는 완전히 돌아섰나 보다.

한쪽은 소나무 숲, 다른 한 쪽은 바다였는데....

지금은 숲길이 달라졌다. 

 

길은 다시 평탄하게 이어지고...

 

다시 바다가 보인다.

수평선이 뚜렷하지 않다. 

하늘색과 바다색이 구별이 잘 안된다 .

 

아니 이렇게 올라왔는데...

여전히 우리는 욜루데니즈 해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지 더 아래로만 보일뿐.

 

숨이 가빠온다.

 

세계에서 10대 아름다운 길에 속한다더니만

걷는 내내 바다와 산과,  아름다움에 넋을 잃는다.

 

다시 돌길은 이어지고...

 

키작은 나무들이 앞에 펼쳐진다.

멀리 높은 산들도 보이고...

 

짓다만 집들도 보인다.

아주 넓다란 평지도 보이고.

어쩌면 저 곳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지 모른다.

 

높은 산위에서 욜루데니즈 바다 아래로 떨어지는 패러글라이딩.

욜루데니즈의 패러글라이딩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것이라 했다.

 

온통 바위뿐인 엄청난 산이 우리 눈 앞에 펼쳐진다.

 

2시간 30분쯤 걸었을까?

조그만 마을이 하나 나온다.

Kozagac마을.

참 멋진 곳에 둥지를 튼 마을이다.

5가구 정도나 될라나?

아주 조그만 마을이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으로 보아 분명 사람이 살고 있는 집들인데

사람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그림처럼 딱 멈춰서 있는 마을이다.

 

다시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한구비를 돌았는데...

아!!!! 저 멀리 뭔가 날으는 게 보인다.

패러글라이딩이다.

높은 산 위에서 바다 아래로 날고 있다.

 

2002년에도 나는 여기 욜루데니즈를 왔었다.

그 때 너무 비싸서 패러글라이딩을 못했는데

이번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이 하늘을 날고 있는 걸 보니, 새삼 부럽다.

그 때 그 다음해에 욜루데니즈를 갔었던 우리 학교 여선생님은 패러글라이딩을 했었다고 했는데...

바다 한 가운데로 떨어지는 기분이 최고였다고 내게 자랑했었는데...

 

지금 저 하늘을 날고 있는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

어제는 비도 오고 날씨가 흐려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내리는 사람들의 얼굴도 약간 싱퉁했었는데

오늘처럼 맑은 날, 하늘을 날고나면 그 기분을 어떨까?

 

Kirme 마을까지는 이제 2Km남았다.

우리가 시작한 오바직까지는 8Km라고 표시되어 있다.

지금까지 8Km를 걸어왔다는 거다.

휴!! 발바닥이 아프다.

 

리키안의 길은 산 중간 중간 바위나 나무에 빨간색과 흰색 페인트로 길을 잘 표시해주고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거의 없다.

지금은 겨울이라서 산위를 걷는 사람은 한명도 못만났지만

봄이나 가을에는 이 길을 걷는 사람이 아주 많다고 한다.

 

부지런히 2Km를 걸어서 키르메 마을의 올리브나무 사이를 지난다.

산길 10Km째다.

 

Kirme 마을은 아까 Kozagac 마을보다는 제법 크다.

그런데 완전 산골 마을이다.

사람들도 완전 산골 사람들이다.

 

영화에서 보던 딱 그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보인다.

터키 산골, 불가리아 산골, 그리스 산골 하면서 나오던 영화에서 보이던 장수마을 할머니들...

꼭 그 모습 그대로다.

그리고 그 영화들에서 나오는 산골 장면 그대로가 여기에 펼쳐져 있다. 

우리가 가려고 하는 다음 마을인 Faralya 가는  길을 가르쳐주신다.

인자한 미소와 함께.
 

키르메 마을의 소박한 집들.

입구에 나무 막대를 걸쳐놓은 게 꼭 우리네 제주도 집들 같다.

 

깨끗한 초원에서 자라고 있는 키르메 마을의 양.

공기가 맑아서 그런지 양털도 복실복실하니 그리 깨끗할 수 없다.
 

키르메 마을부터 팔라야 마을까지는 계속되는 내리막길이다.
 

햇볕 잘드는 산골 마을에 올리브 나무가 가득 심겨져 있다.

이 사람들은 무엇으로 먹고 살까?

제법 깊은 산중이라 밀농사를 하는 것 같지는 않고,

양을 키우는 일은 하고 있지만 그것으로 생활비를 다 보탤수 있을 정도로 크게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렇게 평화스럽게 소박하게 사는 곳이라면

도시 사람들처럼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생활비가 필요할 터인데...

어쩌면 올리브나무를 가꾸는 것이 생활비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터키의 식탁에서는 거의 빠짐없이 올리브가 등장하니

올리브를 키우는 것이 제법 돈벌이가 될지도 모른다고...

 

그래도 그 것 또한 그리 큰 돈이 될 만큼 크게 벌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조금의 벌이가 되는...

아주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햇살이 비치는 산길의  행복한 걷기... 

 

계속 내리막이다.

그러나 지겹지 않다.

사방으로 펼쳐지는 자연에 넋을 잃는다.
 

다시 3Km쯤 걸었을까?

마을이 나타난다.

아마 Faralya 마을이겠지?

 

드디어 다시 지중해가 보이기 시작한다.

높은 산과 산 사이.

깊숙한 계곡이 보인다.

Butterfly Valley다.

양쪽으로 바위산이 펼쳐진 모양이 마치 나비의 날개 같다 하여 이름이 그렇게 붙여진 모양인 줄 알았는데...

실제 희귀종 나비가 유명한 골짜기라고 한다.

 

Faralya 마을에는 펜션도 제법 많다.

리키안 길에서 하루를 주로 묵어가는 마을이다.

뒤로는 높은 산이, 앞으로는 바다가 펼쳐지는 끝내주는 경치를 가진 마을에서

하루를 묵어가는 것도 퍽 행복한 일일께다.

2박3일을 기약하고 왔더라면 우리도 여기에서 하루를 묵는건데...

벌써 13Km를 걸어왔는데

1박2일을 기약하고 온 우리로서는 숨막히는 경치 앞에서 휴식만을 취할 뿐이다. 

 

여기서 아침에 삶아온 계란하고 감자, 쥬스로 점심을 먹고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Faralya 마을에서 7Km를 더 걸어가면 Kabak마을이 나온다.

우리는 오늘 거기서 묵기로 했다.

Faralya에서 Kabak까지는 모두 7Km이다.

 

Faralyal에서 Kabak까지는 해안으로 나 있는 차도로 걸어간다.

찻길이라고 하지만 지나다니는 차가 거의 없다.

또 천천히 지나가가면서 손을 흔드거나 크락숀을 누르고 지나가면서 인사를 한다.

산길인 리키안 웨이도 있지만

여기서 부터 카박까지는 해안도로로 걷는게 더 좋다는 욜루데니즈에서 만난 할머니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내내 바다가 보이는 길이다.

 

바다가 보이는 해안도로를 따라서는 드문드문 집들이 보인다.

모두들 따스한 햇빛을 받고 있는 바닷가 집들이다.

 

여전히 눈 앞에는 웅장한 산이 펼쳐지는 길...

 

한 두시간쯤 더 걸었을까?

힘이 팔팔할 때는 7Km라면 두시간이 안걸릴텐데...

20Km째를 걸어오니 나중에는 발바닥도 아프고 힘도 빠져 두시간은 족히 걸린 것 같다.

 

그렇게 도착한 곳.

카박(Kabak) 마을이 눈 앞에 보인다.

장엄한 바위산과 소나무 숲, 그리고 오렌지 나무들.

 

어제 저녁 욜루데니즈에서 만난 할머니에게서 알아둔 집, 올리브 가든(Olive Garden)을 찾아간다.

진짜 이름처럼 올리브 나무가 가득한 곳이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  지중해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와우!!!

잘생긴 청년 파티(Fatih )가 미리 연락 받았다며 우리를 맞는다.

저기 보이는 통나무집에서 오늘 하루를 묵어가란다.

 

겨울철이라 한참 보수공사 중이다.

올 3월에 다시 개장 준비를 한다며 자는 곳만 제공할 수 있고, 식사는 준비 해 줄 수 없단다.

어제 할머니한테 미리 이야기를 들은 터라

우리는 감자도 삶아오고, 계란도 삶아 왔다.

그리고 물, 빵, 소세지, 참치, 쥬스도  가방 한 가득 준비해왔다.

 

정말 멋지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에 저렇게 멋들어진 통나무집에서의 하루밤이라니.

 

올리브 나무 정원에 만들어진 정자로 내려간다.

 

마을로 쫓아 다시 올라가 사온 맥주와 길거리 오렌지 나무에서 따온 싱싱한 오렌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정자에서

20Km를 걸어온 피로를 한꺼번에 푼다.

 

 

하루종일 걸었는데

길이 아름다워서인지, 오늘 저녁 우리가 묵을 숙소가 좋아서 인지

막 아파왔던 발바닥도 이제는 하나도 안 아픈 것 같다.

 

'리키안의 길'

그렇게 우리의 '행복한 길을 걷는 하루'가 마감되었다.

지중해 바다로 넘어가는 태양을 보면서...

 

리키안의 길을 인도해준 우리의 지도.

아니 쪽지라고 해야겠지...

론니 책의 한 페이지를 쭉 찢어왔다.

가방 무게 줄이느라고.

욜루데니즈에서 만난 할머니의 설명을 후다닥 적어놓은 흔적이 보인다.

Olive Garden의 전화번호와 함께.

 

다음날은 원래 카박에서 아린짜(Alinca)까지 2시간 반을 더 걸어가야 했는데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리는 바람에 다시 욜루데니즈로 그냥 되돌아와야만 했다.

아린짜까지 가서는 욜루데니즈로 돌아오는 대중교통이 없어 택시를 타야 했기에

원래 우리의 계획은 아린짜까지 리키안의 길을 따라 걸어갔다가 다시 카박으로 돌아와

돌무쉬를 타고 욜루데니즈로 돌아가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안그래도 다시 카박으로 돌아와야 하는데다가  아침부터 비까지  내려 나머지 길은 포기한 것이다.

시간이 넉넉했다면 하루를 카박에서 더 머무르더라도 날씨를 기다려 산행을 계속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계획도 세워야 하니까...

 

그러니까 509Km 리키안의 길에서 우리가 걸은 길은 고작 20Km밖에 안된다.

다른 곳은 더 아름다운 길인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걸었던 그 길만큼도 손색없는 아름다운 길이었다.

꼭 한번 다시 오리라는 희망만 믿고서... 

 

 

<'리키안의 길'의 시작지점, 욜루데니즈... 지중해 최고의 휴양지 욜루데니즈> 

욜루데니즈는 말그대로 휴양지이다.

동네 사람들이 살고 있는  해변 마을이 아니라

여행자들을 위해 만들어져 있는 휴양도시다.

 

그것도 여름 한철동안.

타들어가는 여름 뙤약볕에서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여행자들이 이 곳을 찾는다.

그들은 코발트빛 바다, 하얀 백사장이 있는 욜루데니즈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보트 투어를 하고, 산위에서 패러글라이딩을 즐긴다.

여름철이면 이 곳은 여행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2002년 여름, 내가 이 곳을 찾았을 때도 방을 구할 수 없어 결국 저녁 늦게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던 곳이다.

 

그런데 지금은 겨울.

여행자들이라고는 거의 없다.

패러글라이딩을 하기 위해 간간히 찾아오는 몇몇만 있을 뿐.

뜬금없이 리키안의 길을 트레킹 하고싶다며 이곳을 찾아온 우리 같은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상가는 문을 닫았다. 호텔도 마찬가지.

겨우 하나 열어놓은 악데니즈 호텔(Akdeniz Hotlel)에 방을 잡았다.

그러나 이건 또 웬 횡재?

비수기라 이렇게 멋진 호텔의 하루 저녁 방값이 40TL(3만 2천원 정도) 밖에 안한다.

 

'리키안의 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데

상가도 다 문을 닫은 이 겨울철에 인포메이션 센터가 열려있을리도 없고,

호텔에 있는 스텝들은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

 

바닷가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할머니를 한 분 만났다.

여행사 문을 잠시 열어놓은 것 같아 물어보는데

할머니는 옆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이야기 하자신다.

그러면서 얼마나 자세히 '리키안의 길'에 대해 설명을 해 주시던지...

그리고 카박에 있는 올리브 가든의 파티한테 전화까지 해 주시고, 방도 예약해주시고...

영국할머니인데  터키 할아버지와 결혼해서 이 곳에서 살고 있다.

한 시간 이상을 할머니를 붙들고 이것 저것 물어보는데

아무런 댓가도 없는 일에 정말 성심성의껏 설명해 주신다.

우리한테 차까지 대접하면서...

고마운 할머니...

 

할머니 한테 설명을 듣고 그냥 고맙다는 인사만 하고 나왔다가

저녁이 되어서는 우리 발로 그 식당을 찾아가 밥을 사먹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할 일.

할머니는 전혀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았지만

정말 고마운 일이기도 하고...

또 먹어보니 맛있기까지 하다.

 

터키요리중에 유명한 피데(피자와 비슷한 것)와 닭고기 스튜, 터키 요구르트 아이란을 시켜먹었다.

다시 한번..  할머니, 고맙습니다.

사실 리키안의 길을 걸으면서 계속 생각했는데,

할머니의 정보는 정말 정확했었다.

 

죽은 듯이 조용하다는 욜루데니즈의 해변.

해지는 저녁무렵,

누군가는 바다 낚시를 하고 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철 지난 바닷가. 

몇구비 돌아 돌아 ... 리키안의 길을 따라

우리가 걸어서 갔던 저 먼길을 보면서...

욜루데니즈의 해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