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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291 (1월15일) 인류최초의 철기문화 히타이트, 앙카라

프리 김앤리 2010. 1. 17. 06:50

인류 최초로  철기시대를 연 히타이트.

고대 히타이트는 앙카라에서 약 180km 서쪽에 위치한 보아즈칼레를 중심으로 발전했던 고대국가이다.

히타이트가 보고 싶었다.

 

히타이트를 처음 접했던 것은 학창시절 세계사 시간이었다.

그냥 전설같은 이야기 정도로만 알았다.

히타이트를 다시 기억속에 떠올리게 된 건 이번  이집트 여행 중 아부심벨과 룩소르에서다.

아부심벨은 람세스 2세의 치적을 알리기위해 만든 아스완 남쪽에 있는 거대 유적이다.

아부심벨 신전에는 람세스 2세가 기원전 13세기경 오늘날 시리아에 위치한 카데시에서 히타이트와 싸워서 이긴 전쟁? 장면을 새겨두었고,

룩소르에 있던  카르낙 신전에는 히타이트와의 평화 협정 내용을 남겨두었다.

이 평화 협정문이 상호 전쟁을 치룬 나라들끼리 맺은 인류 최초의 협정문 이란다.

 

항상 의문이었다.

철기를 사용하는 히타이트가, 어떻게 청동기를 사용했을 법한 이집트와의 전쟁에서 완벽하게 이기지 못했을까?

히타이트는 어떻게 철기를 만들줄 알았을까?

농기구 부터 만들었을까 아니면 무기부터 만들었을까?

 

히타이트는 터키 중앙 아나톨리아고원을 중심으로 발전했던 고대국가이다.

가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무너진 폐허위에 성터 조금 남아있고

대부분의 유물은 앙카라의 아나톨리안 문명박물관에 있다고 해서

앙카라를 찾았다.

 

앙카라는  400여만명이 사는 현재 터키의 수도이다.

부산 만한 인구를 가진 도시이다.

아나톨리안 문명 박물관 입구

아나톨리아는 소아시아라는 뜻이라고 한다.

입구가 소박하고 크지 않은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신석기, 청동기시대부터 시작되는 동굴벽화

석기와 청동기시대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지모상이다.. 땅의 어머니란 뜻인가?

중앙아나톨리아 지대는 비옥한 초생달지대에 속하는 곳으로 기원전 6000년 전부터 농사..

밀농사를 지으며 농경시대를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아마 자연히 대지의 풍요로움과 땅에 대한 고마움, 다산 등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사슴이나 소 등의 청동조각상이 많다.

야생동물도 많았을 것이고 소는 농사를 짓는데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하늘, 자연의 신에 바치는 제물을 의미할 수도 있다.

아직 기독교가 나오려면 4천 내지 5천년 뒤의 일이다.

 

청동과 금으로 만든 여자

아직 철이 만들어지기 전... 금이 먼저 발견되었나?

언제 어디서나 변하지 않고 영원히 태양과 같은 빛을 내는 물질 .. 금

그래서 귀했고 권력자들만 소유했을 것이다.

어쩌면 만들어서 무덤에 넣을 법한데 ...

 

앗시리아 시대로 들어오면서는 보다 정교한 청동으로 된 조각상이 나온다.

고대 앗시리아는 아나톨리아 지방을 지배하면서 강력한 고대국가를 형성한다.

 

여러 동물모양의 토기가  많이 있다.

개, 고양이, 토끼. 소. 양...

돼지모양의 토기다.

오늘날 터키는 무슬림국가라서 돼지고기를 먹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는 듯하다. 

터키인들에게 돼지고기를 먹으라고 권유하는 것은 이슬람의 율법에도 어긋나지만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앗시리아 시대 당시에는 돼지도 키우고 돼지고기도 먹었던 모양이다.

 

앗시리아 시대에 만들어진 점토판.

이집트가 파피루스를 통해,

중국이 죽간을 통해 서로에게 연락하고 문서를 만들었다면,

아나톨리아 지방을 지배했던 앗시리아는 진흙을 사각형모양으로 만든 후 굳기 전에 쇄기문자를 새겨넣었던 듯하다.

기록의 역사다.

 

한 점토판에는 앗시리아인의 결혼에 대한 내용이 새겨져있다.

" 이디 아다드는 아나나와 결혼했다.

 그는 마을에서 또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할 수 없다.

 그가 부인과 이혼을 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려면 은 5 미나를 부담해야 한다. "

당시에도 결혼과 이혼은 사회적 이슈였나 보다.

 

어떤 점토판에는 창고내의 물품 리스트를 정리해 둔것도 있고,

또 다른 점토판에는 아나톨리아 지방의 샤크류샤와 앗시리아 상인 앗수르 타클라크이 서로의 의사에 따라 이혼함에 따라,

둘다 똑 같이 책임이 없음을 나타내는 이혼문서도 있다.

 

지금으로 부터 약 4000년전...

점토판으로 모든 것을 기록한 것도 놀랍지만 결혼에 대한 남녀평등, 상호 책임의식이 오늘날에 못지않다는 것이 놀랍다.

흔히 아는 것처럼 모세의 십계명이 람세스 2세의 시대인 기원전 1300년 경에 나왔다면

이미 십계명 한참 전에...

앗시리아에서 결혼과 이혼에 대한 남녀평등이 이루어진 사실이 흥미롭다.

 

한참 동안 힛타이트의 철기를 찾았는데... 별로 없다.

다만 돌을 틀로 사용해서 쇳물을 부어넣은 유물이 있다.

한쪽은 분명히 도끼이고, 앞쪽은 칼이나 창으로 사용해도 될 듯하다.

농기구로 사용할 수도 있고 무기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기원전 2000년경에 아나톨리아 지방에 세워진 히타이트.

그러다가 기원전 1275년 카데시에서 이집트의 람세스와 전쟁을 치루고

기원전 1100년경 지중해의 이름 모를 해양민족에 의해 멸망하고,

살아남은 히타이트족이 남쪽으로 피신을 하여 신히타이트를 건설했다가 기원전 700년경에 망했다는데..

 

기원전 1235년 힛타이트의 영토 등에 대해 협정을 나타내는  청동쇄기문자판.

신의 이름으로 약속한다는 것을 나타내기위해 수천명의 신의 이름을 새겨두었다고 한다.

 

힛타이트가 철기문화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농경국가였다.

그러다 보니 하늘과 자연의 신에 바치는 소모양의 조각품을 사용했던 듯하다.

이전의 시대보다 훨씬 정교하고 아름답다.

 

힛타이트가 철기문화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철이라는 금속을 얼마나 광범하게 사용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히려 히타이트의 가장 무서운 무기는 이륜전차라고 한다.

이집트의 람세스 2세에게 무력감을 주었다는 이륜전차다.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와 벌인 카데시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곳곳에 기록해 두었다.

아부심벨에 또 다른 유적에...

하지만 시리아 북부를 나중에 히타이트가 차지 한 것으로 봐서 람세스 2세의 승리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히타이트와 람세스2세사이의 평화협정후 양국은 평화의 시대가 열린다.

람세스2세의 부인 네페르타리 왕비가 히타이트의 왕비에게 안부를 묻는 편지.

3500년이나 된 점토편지다.

  

신히타이트제국의 도시에 발견된 부조들...

박물관내에 가득하게 전시되어 있다.

 

 

 기원전 3000년 경 메소포타미아의 전설적인 왕, 길가메시의 신화도 있다.

그는 대홍수 이후의 왕으로 신과 사람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고,

위대한 건설자이자 전사였으며, 땅과 바다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박물관을 나와 오른쪽으로 돌면 9세기경에 만들어진 앙카라 성이 나온다.

현재는 성벽위에도, 성안에도 사람들이 성벽을 이용해 집을 짓고 살고 있다.

 

성위에서 내려다보는 앙카라시내.

터키의 수도답게 높은 건물과 빽빽한 집들이 시내를 가득 메우고 있다.

  

게네슬릭공원 입구

화려한 조명과 깨끗하게 정비된 ...

화려한 분수, 호수, 벤치와 정원, 깨끗한 식당과 산책로...

어느 도시 못지 않은 화려한 공원이다.

 

공원의 반대쪽으로 나오면 앙카라 역이 나온다.

형형색색의 조명과 분수에 눈이 어지럽다.

 

 

 터키의 아버지, 아타튀르크 케말파샤

20세기 초 오스만투르크제국은 독일과 동맹을 이루어 1차대전에서 패전을 한다.

전승국인 영국, 프랑스 등이 패전국 터키를 점령하고 위임통치를 실행하려고 할 즈음.

오즈만제국의 황제와 그의 지지자들은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기를 원했고,

일부 지식인과 언론인들은 미국의 위임통치를 받기를 원했다.

 

터키 북부군 사령관이었던 케말파샤는 영국, 프랑스군을 몰아내기 위한 전쟁을 시작하여 승리한다.

케말파샤가 없었다면, 그의 지도력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터키는 분단이 되었거나 독립하고 통일을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오늘날 처럼 번성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1923년, 우리가 일제의 식민지로 있을때..

터키는 공화국을 선포하고 케말파샤는 초대 대통령이 된다.

 

대통령이 된 후 회교경전에 기초한 모든 기관, 수도원, 학교 등을 폐지하고,

 " 과학은 삶의 가장 믿음직한 안내자"라고 말하면서

전통적인 종교적 교육체계를 폐지하고, 현대식 탈종교적인 학교를 설립하는 등 터키의 근대개혁에 앞장섰다.

대통령 케말파샤는 57세에 집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사망하였다.

 

터키를 여행하다보면 관공서는 물론 큰건물이나 학교, 식당등...

아타튀르크 동상과 사진등을 많이 볼 수 있다.

터키 국민들은 그만큼 절대적으로 그를 존경한다.

 

앙카라 시내에는 아타튀르크의 묘가 있는 기념관

우린 너무 늦은 시간?  오후 5시경인데... 이미 문이 닫혀있어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만 보았다.

외세로 부터 터키를 지키고, 터키의 근대개혁을 이루고,

대통령으로 일하다가 집무실에 서거한 대통령 아타튀르크...

터키인으로 부터 충분히 존경을 받을만하다고 생각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