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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285 (1월9일) 춥고도 긴긴 겨울밤, 무엇을 해야하나? 터키 도우베아짓

프리 김앤리 2010. 1. 12. 02:55

터키의 한참 동부, 도우베야짓까지 들어왔다.

이란 국경을 넘으면 가장 먼저 만나는 터키 도시가 바로 여기다.

4만명이 안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조그만 마을,

눈 속에 푹 파묻혀 있다.

겨울이다. 

6시 반쯤에 해가 뜨고, 오후 4시 반만 되면 주변이 깜깜해진다.

하루중 14시간 이상이 깜깜한 세상이라는 거다.

 

여행자들에게 '밤'이란 참 별로다.

야경이 화려한 대도시이거나, 음악회가 열리는 문화의 도시이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까페나 술집이 있어 밤을 도와 뭔가를 할수도 있으련만

인구 4만명도 안되는 조그만 도시에서  인적 뜸한 추운 겨울 밤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해가 떠 있고, 따뜻한 짧은 낮동안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이삭파샤 궁전(Isha Pasa Palace)를 오른다.

도우베야짓 시내에서는 6Km 떨어진 거리의 산 위에 있다.

여행자들이 많은 여름이었다면 2리라만 주면 도우베야짓 중심가에서 돌무쉬(미니버스)로 우리를 궁전까지

한 방에 데려다 줄텐데...

비수기라서 돌무쉬가 운행되지 않는다.

택시를 타야 한단다,

무려 25리라.

....

눈길이 얼어있지만... 오늘 쾌청한 날씨만 믿고 그냥 사박사박 걸어 오른다.

좋다.

완전히 눈으로 덮힌 사방천지가 우리 눈 앞에 펼쳐지고...

 

1Km쯤 갔을까?

이삭파샤 궁전으로 올라가는 외길에 접어 들었을때,

화물차가 한 대 끽~~~ 선다.

타란다.

아까 저 밑에서 이샥파샤 가는 길을 물어봤던 사람들이다.

운전하고 가면서 우리를 발견한 모양이다.

오우!!! 역시!!! 친절한 사람들!!!

얼른 올라탄다.

걸어가면서 천천히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을 감상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건 내려오면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까...

 

궁전 앞에 내려서 같이 사진을 한장 찍는다.

 

 

이삭파샤 궁전.

1,685년 짓기 시작하여 쿠르드족의 지도자 이삭(Ishak, Issac)에 의해 100년만에 완성된 궁전.

셀주크 , 오스만, 그루지안, 페르시안, 아르메니안 양식이 혼합된 훌륭한 건축물.

 

이삭퍄사 궁전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천일야화(Thousand and one Nights)에서 나오는

성의 완벽한 모델이라는 것에서였다.

(론니의 표현; The epitome of the 'Thousand and one Night' castle)

 

천일야화라면 아내의 부정을 목격한 샤푸리 왕이 매일 밤 여자를 갈아치우며 그의 욕정을 불 태운 뒤,

다음 날 새벽이면 어김없이 그 여자들의 목을 쳐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이야기,

그러던 어느 날, 세라자데라는 아름다운 귀족의 딸이 스스로 왕의 침실로 나아가

매일 밤 새롭고 재미난 이야기를 왕에게 들려주어 이야기에 빠져든 왕이 그녀를 죽이지 못했다는 이야기,

세라자데의 이야기는 천일 동안 계속되고... 결국 왕은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는 이야기...

 

어린 시절,'신밧드의 모험' '열려라 참깨' 등

아라비안 나이트는 항상 우리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아름답고 지성적인  세라자데는 자신의 목숨을 구한 것은 물론

당시 왕에게 끌려나가야 했던 처녀들의 절박함과 그녀 가족들에 대한 근심, 백성 전체가 느끼고 있던 광란의 공포까지

사라지게 했던 구원의 여왕이었다.

 

이 매혹적인 여인, 세라자데를 우리나라 피겨스케이트의 여왕 김연아는

얼음판 위에서 그토록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었고...

 

궁전 안으로 들어선다.

날씨가 추운데도 현지인들은 제법 많다.

 

궁전의 기둥에 있는 조각들.

아주 섬세하다.

 

궁전 내부의 한 방.

유리창도 없는 창문 너머로 산 아래 마을이 전부 내려다 보인다.

하얀 세상.

 

저 아래 조그만 마을, 도우베야짓이 보인다.

눈 속에 파묻혀 있어서 알아보기 힘들다.

겨울철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서 내뿜는 오염된 공기도 한 몫 하고.

 

예전에는 지붕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유리창문으로 덮힌 궁의 중앙홀이다.

하늘이 환하게 열려있다.

 

궁전 마당.

 

중간에는 무덤도 보인다.

 

이렇게 추운 날... 긴 긴 겨울밤 옛날 이들은 무엇을 하며 살았을까?

책도 그다지 많지 않았을 것이고, 요즘처럼 TV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이 되는 것도 아니고...

교통수단이 발달되어 겨울을 피해 어디론가 멀리 떠날수도 없었을꺼고...

 

밤을 세워 이야기 꽃을 피웠을지 모른다.

가보지 않는 곳에는 상상을 보태고...

바람에 실려오는 다른 곳의 이야기는 들려온 이야기에 재미있게 살을 붙이고....

'이야기'라는 문화가 발달되었을 것이다.

  

이삭파샤 궁전을 나왔다.

건너 계곡속에 묻힌 조그만 모스크에도 가 본다 . 

 

 

모스크 너머의 산 등성이는 우리나라 광주에 있는 무등산을 닮기도 했다.  

 

이제는 내려가야 한다.

그냥 걸어서 내려갈 꺼다.

우리를 제외한 여행자들은 개인 승용차나 택시 등으로 궁을 구경한다.

이들이 내려갈때 우리를 볼 것이고 ,

혹시 누군가가 또 다가와서 차를 태워준다고 해도 사양하고...

천천히 걸어서 가면서 하얀 세상을 보면서 내려가야지...

ㅋㅋ

 

아니나 다를까?

친절한 터키 사람들이 차를 타고 내려가면서 몇번인가 타라는 몸짓을 한다.

괜찮아요... 우리는 걸어서 내려갈께요...

고맙지만 정중히 사양한다.

 

산위로 방금 내려온 이삭파샤 궁전이 보인다. 

 

온통 눈 덮힌 산이다.

한국에도 눈이 그렇게나 많이 오고 있다는데...

한참 멀리 떨어진 이 곳에 있는 우리들도 눈 덮힌 세상을 만나고 있다.

한국이 가까워져 오는 것일까?

이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일까? 

바람은 차지만 햇빛으로 등이 따스하다.

 

내려오는 길에는 맞은 편에 있는 아라랏산도 마주한다.

노아의 방주가 있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지?

중동을 여행하면서는 성경에 나오는 여러가지 역사적 사실들이

현실 속에서 진실이 되어 나타나는 짜릿한 감동을 받기도 한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는 이집트의 시나이산에서...

노아의 방주가 있었다는 아라랏산까지...

여름이면 저산을 정상까지는 가지 못하더라도 트렉킹을 했을텐데...

아쉽다.

 

눈부신 태양이 눈에 반사되는 것인지...

눈이 밝은 태양에 반사되는 것인지...

코끝이 쨍한 겨울 날씨에 모든 것이 환하다.

 

아직은 환한 시간이다.

도우베야짓에 다 내려왔을 때에도 여전히 낮이다.

참 다행이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가는 도우베야짓의 아이들.

헬로, 헬로우...

영어라고 해봐야 고작 'Hello!" 나 " What's your name?" 정도 밖에 모르는 아이들이지만

이방인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환영의 인사를 보낸다.

 

 

인터넷에 의하면 반이나 도우베야짓으로 가면

돈을 달라고 따라다니는 아이들이 많다고, 

돈을 주지 않으면 때로는 뒤에서 돌멩이를 던지는 아이들이 있어서 속상했다는 이야기들도 제법 있었는데

돈을 달라고 우리 곁을 맴도는 아이들도 몇명 보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우리들에게 돌을 던지는 아이들을 만난 적은 없다.

 

그 보다 아직 어린 나이에 어른들이 해야 할 것 같은 노동을 하고 있는 안타까운 장면만을 만날 뿐이다.

눈이 내려 꽁꽁 얼어붙은 길에서 수레에 큰 물건을 싣고 가던 아이들.

두텁지도 않은 얇은 옷에 신발도 허접해, 어려운 살림이라는 게 한눈에 드러나 보였던 아이들.

그러나 그들은 자꾸 미끌어져 내려가는 수레를 힘겹게 밀어올리면서도 우리에게

환영의 인사를 보내는 것은 잊지 않는다 .

우리가 같이 밀어주려고 해도,괜찮다며 순박한 웃음을 띄운다.

이 들중 한명을 영어를 제법 잘해서

같이 밀고 있던 수레에서 잠시 손을 놓고 우리에게 말을 붙인다.

ㅋㅋ

공부를 제법 잘하는 녀석인가 보다.

우리랑 그만 이야기 하고 너도 친구들과 함께 수레를 미는 게 어떠냐는 우리의 말에

빙긋이 웃으면서 친구들 곁으로 돌아간다.  

 

 

골목을 돌아서는데 어디선가 생선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바다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환장을 하는 우리 둘이

생선 냄새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가게 안으로 들어 선다.

우리나라 멸치처럼 생긴 것(함씨)부터 정어리, 고등어, 돔... 갖가지 생선이 접시에 담겨 있다.

후라이팬에 그대로 지글지글 구워준다.

 

함씨도 한 접시 먹고, 머리부터 꼬랑지 끝까지 뼈째로 다 먹어치울 수 있는 작은 정어리 구이까지

두 접시를 후딱 먹어치운다.

고추 피클도 나오고... 빵은 무한정 제공되고...

한 접시에 5리라, 3천원도 안한다.

으하하하....

 

Good이라고,  Fantastic 이라고 말하니 종업원들도 너무 좋아한다.

말만 그렇게 한 게 아니라, 진짜 판타스틱한 맛이었다.

 

결국 우리는 이날 저녁에도 이 집에서 가서 함씨 한 접시 더 먹었었다.  

 

 

오후 3시 정도 밖에 안됐는데 날이 슬... 어두워지려고 한다.

여름에 왔더라면 아라랏산 트레킹도 할 수 있었을텐데...

겨울이라 엄두도 못낸다.

도우베야짓 자체는 조그만 동네...

그냥 동네만 어슬렁 거린다.

 

이제 날이 저무려나 보다.

해만 떨어지면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져서 낮에 녹은 눈은 미끄러운 빙판으로 변한다.

그래서 어두운 밤에는 맘대로 돌아다니기고 쉽지않다.

 

이 긴긴 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사라자데처럼 밤을 새워 사람들을 혹하게 만드는 이야기 실력도 없고...

가지고 있던 책은 이제 다 읽어 버렸고...

눈부신 야경도 없고...

밤에 하는 공연도 없고...

 

스코틀랜드 피츠로클리에서 만난 할머니 생각이 난다.

오후 3시만 되면 깜깜한 밤이 되어버리는 추운 겨울날 당신은 무엇을 하냐고?

끔찍하기 않냐고?

그런데 곱게 늙으신 그 할머니, 얼굴에 함박 웃음을 지으며

겨울이라고 해서 심심한 것 만은 결코 아니라고 말했었다.

겨울밤이면 동네 극장에서 거의 매일 연극 공연, 음악 공연이 있어서

자기들은 음악을 즐기고 연극을 즐기고... 거기서 사람들과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고...

거기 역시 이 곳 도우베야짓 처럼 몇가구 안되는 조그만 마을이었는데.

문화적 인프라가 조성되어 있는 나라에 산다는 것이 사람들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 것인지 다시금 생각나게 만들었다.

 

러시아가 생각났다.

이 곳보다 훨씬 더 밤이 길고, 훨씬  더 혹독한 추위가 있는 겨울 밤.

긴긴 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작곡을 하고..

러시아에서 유독 문학작품, 작곡, 그림에 대한 대작들이 많이 나올 수 있는 이유중의 하나가

그토록 긴긴 겨울밤이었을 것이라는 우리의 추측이 맞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몸소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남편은 그런다.

이럴 때 동굴에 살고 있었다면

동굴 담벼락에 돌 조각으로 무슨 그림이라도 그렸을 것이라고...

ㅋㅋ

 

 

아무 할일도 없는 도우베야짓의 밤.

우리가 선택한 일은 머리를 자르는 일이었다.  

다른 가게들은 거의 문을 다 닫았는데 이발소만은 캄캄한 밤에도 성업중이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일년동안 밖에 나가있던 자식들이 추레한 모습으로 나타나면

부모님들이 속상해 할까 약간 걱정도 되었는데, 마침 잘 됐다.

남편은 터키 남자들처럼 짧게 머리를 치고,

옆에 앉아있던 나도 엉겁결에 뒷머리를 조금 잘랐다.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 미용실에서 쪼다처럼 머리를 잘린 이후

삐죽이, 바보처럼 뒷머리만 길고 있던 게 마음에 안들던 참이었다.

이발소지만 내 머리도 잘라준다는 말에

난생처음 이발소라는 곳에 내 머리를 맡기는 일도 생겨버렸다.

 

길고도 긴 겨울밤.

문학작품도, 작곡도, 그림도... 대작은 커녕 소작도 못만들어내던 우리들은...

우리의 아라비안 나이트는 터키의 이발소에서 머리를 자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