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278(1월 2일) 들여다보면 안되는 곳, 터키의 괴레메

프리 김앤리 2010. 1. 7. 01:31

 

우리는 이번 여행을 하면서 정말 여러 곳을 봤다.

어떤 곳은 장엄했고, 어떤 곳은 또 소박하기도 했다.

대단한 곳도 있었고, 화려한 곳도 있었으며 볼품없이 찌그러져 있는 곳도 있었다.  

엄청난 곳, 입이 쩍 벌어지는 곳, 아름다운 곳이 있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쓸쓸하고 우울하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곳도 있었다.

경이로운 곳,  두려우면서도 무서웠던 곳, 눈이 부시는 곳, 감동적인 곳,

생각을 하게 해 주는 곳,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 있는 곳....

 

그렇다면 터키의 카파토키아 지역, 괴레메는 무어라고 표현해야 할까?

...

'사랑스럽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괴레메의 대자연에 한번 들어서면 절로 흥이 나고 기분이 좋아지고,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어진다.

마치 놀이동산에 들어온 듯 어서 빨리 만나고 싶어 입구부터 마구 뛰어 들어 들어가는 아이들의 발걸음 같아 지는 곳,

어디선가 경쾌한 음악이 들려오는 듯 시작부터 즐거움이 마구 터져 나오는 곳.

이 세상 풍경이 아닌 것 같은 카파토키아의 자연은 인간에게 '사랑'을 통째로 선사하는 곳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풍경이 있을 수 있을까?

얼마나 오랜 세월이 자연을 가지고 놀아야 이런 모습을 만들어낼수 있을까?

 

카파토키아의 기이한 풍경은 6천만년전쯤의 세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아주 아주 먼 옛날 화산이 폭발하고 용암이 흘러내리고 그 위에 화산재가 쌓이고

또 화산이 폭발하고 용암이 흘러내리고 화산재가 쌓이고.... 수백 미터의 산이 만들어지고...

그 산들은 아주 아주 오랜 세월동안 아나톨리아 지방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의한 풍화작용으로

또 내리는 빗물과 눈에 의한 침식작용으로 깍이고 깍이는 과정을 거듭해왔다.

화산폭발, 용암, 화산재... 수백미터의 산을 만든 암석들은 각각 그것이 어디에서 시작했느냐에 따라

흰색, 검은 색, 때로는 노란 색, 때로는 붉은 색... 온갖 색깔을 다 가지고 있고

암석들의 성분에 따라 침식작용, 풍화작용의 속도도 달라 어디는 더 많이 깍이고 어디는 덜 깍여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각각의 기이한 모양을 만들어 냈다.

 

거대한 들판에 수천만년 동안의 세월이 만들어놓은 다양한 색깔, 다양한 모양의 바위들은

복잡하고 힘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경이로우면서도 즐거운 놀이터를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

 

카파토키아를 여행하는 사람은 대부분 괴레메를 찾는다.

여행자를 위한 숙소도 잘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여기서 이 지역을 두루 돌아볼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도 많기 때문이다.

일명 그린투어, 레드 투어, 로즈 밸리 투어...

우치사르, 젤베, 파샤바등 기이한 암석들이 많은 곳도 보러가고 지하도시도 감상하고 계곡도 둘러보는 투어.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곳을 한 곳 한 곳 다 직접 우리 발로 걸어다니기로 했다.

2002년도에 혼자 여행했을 때는 나도 투어에 참가했었는데,

투어에 참가한다는 건 

카파도키아 대자연을 느껴야 하는 속도를 '나의 속도'가 아니라

가이드가 정해놓은 속도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 내내 못마땅했었다.

더 있고 싶은 곳, 더 가보고 싶은 곳이 훨씬 많았었다.

그래서 이번엔 천천히 우리 속도대로, 우리가 느끼고 싶은 대로 다니자며...

사랑스러운 이 곳을 '우리 식'으로 감상하자며 투어는 과감하게 포기했다.

 

그리고 우리는 괴레메에 며칠씩이나 머물면서 참 엄청나게 걸어다녔다.

이 계곡, 저 계곡으로.. 이 언덕 저 언덕으로... 

 

'괴레메' 터키어로 '들여다 보면 안되는 곳'이라는 뜻이란다.

들여다보면 안되는 곳, 괴레메를

우리는 우리식대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주대하기로 했다.

 

 

<우치사르(Uchisar)와 피젼밸리(Pigeon Valley)>

2010년 새해의 첫날, 우치사르부터 오른다.

숙소에서 난 뒷길로 걸어 오른다.

몇걸음 안가서 벌써부터 기이한 바위들이 나타난다.

 

하늘은 눈부시게 파랗다.

 

오랜 세월 바람과 비와 눈이 만들어 놓은 세상.

 

불쑥 솟아 오른 듯한 바위 하나하나에 뚫어 놓은 동굴 집들도 보인다.  

 

사람이 조각한다고 이렇게 만들어 놓을 수 있을까?

 

자연의 위대함이다 .

 

피곤함도 모른 채 계속 걷는다.  

저 높은 언덕위에는 자동차로 온 사람들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저기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계곡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다 드디어 우리도 언덕 위로 올랐다.

 

괴레메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우치사르 성까지 왔다.

우치사르는 '뾰족한 성채'라는 뜻이란다.

 

우치사르 성에는 아주 많은 동굴이 있다.

먼 옛날 이곳에는 사람들이 살았었겠지?

 

카파토키아 지형의 암석에는 동굴집이 아주 많다.

실제로 이 곳의 암석들은 동전이나 조그만 돌 조각으로 긁어도 쉽게 구멍을 낼 수 있다.

이 암석은  쉽게 잘 긁히면서도 공기에 노출되면 아주 단단해지는 성질이 있어서 동굴집을 만들기에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응회암 성분이란다.

 

사방팔방으로 확 트인 우치사르 성에서 한참을 놀다가 이제 아래로 내려간다.

피젼밸리로 내려가기로 했다.

 

계곡 안으로 들어오니 위에서 보이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풍경들이 펼쳐진다.

 

자연 동굴 사이도 지나야 하고...

 

생각보다 계곡이 깊다.

양쪽으로 사람 키 몇배의 바위산들이 쭉 늘어서 있다.

두려운 마음까지 든다.

 

한참을 아래로 내려 온 것 같은데...

여전히 바위산이 가득하다.

아직도 아래는 한참 남았나 보다.

 

계곡이 생각보다 훨씬 깊다.

끝을 알수가 없다.

길이 나올 것 같아 가보면 때로는 낭떠러지가 나타난다.

되돌아와 다른 길로 가보면 거기도 낭떠러지.

어떤 때는 개울이 나타나 우리의 길을 가로 막는다.

몇번을 되돌아 왔는지 모르겠다.

산을 한참동안을 헤맸다.

여름에는 이 길을 트레킹 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는데... 겨울이라 그런지 사람의 흔적도 잘 없다.

무섭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아니 길을 발견할 수가 없다.  

 

길을 잃기를 서너번.

이제 두려움 마저 온다.

여기는 4시반만 되면 해가 지는데...

왔던 길을 다시 가고, 또 헤매고...

 

산속에서 할아버지를 만났다.

새해 첫날, 천사 할아버지를 만난 것이다 .

이 계곡에서 괴레메까지 가는 길은 여러길인데...

딱 한 길만 빼고 나면 나머지는 아주 위험한 길이란다.

그러면서 자기를 따라오란다 .

이제는 안심.

 

가장 쉬운 길을 안내하시는 할아버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셨을까?

마치 우리가 길을 잃을 걸 알고 계셨던 것 처럼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 우리의 길잡이를 해 주신다.  

 

뒤돌아 보니 우리가 걸어내려온 길이 보인다.

 

깊은 계곡 사이에서는 벌써 해가 보이지 않는 부분도 있다.

할아버지를 못만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제부터는 안전한 길이란다.

이 물길만 쭉 따라가면 괴레메 마을이 금방 나올거란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새해 첫날부터 좋은 사람을 만나 더더욱 기분이 좋다.

 

물길을 따라 걷는다.

거의 다 와간다.

 

다 내려왔다.

괴레메 마을이 보인다.

새해 첫날, 아침 9시부터 4시까지 우리는 종일 우리 식대로 카파도키아를 마주했다. 

정말 많이 걸었다.

 

 

<파샤바(Pasabagi) 와 젤(Zelve) 계곡, 그리고 차우신(Cavusin)마을>

오늘(1월 2일)은 파샤바와 젤베 계곡이 있는 곳을 걷기로 했다.

파샤바를 가려면 돌무쉬(미니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돌무쉬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가 현지인을 한명 만나 이것 저것 이야기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자가용이 이 사람 친구라며 우리를 태워준다.

아바노스 가는 길이라며 파샤바 가는 길과 갈라지는 곳에서 우리를 내려준다.

거기서 부터 걷기 시작한다.

거친 바위모양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오늘 날씨도 환상이다.

 

파샤바 입구의 높은 언덕.

마치 눈이 온 듯, 눈이 부실 듯 바위가 하얗다.  

 

아!!! 파샤바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버섯 모양의 바위들.

 

2002년도에 여기를 왔을 때 그 감동을 잊지 못한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

이렇게 생긴 바위도 있구나...

 

우리나라 과자중에 '쵸코송이'를 만든 사람은 분명 여기를 와 보고 만들었을꺼야.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과자 모양하고 이 바위 모양하고 이렇게 닮을 수가 있겠어?

 

정말 버섯 모양하고 꼭 닮았다.

버섯 의 갓 부분에 해당하는 부분은 딱딱한 현무암이고, 아래는 부드러운 응회암인데

두 암석의 침식속도가 달라서 이런 모양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거란다.

 

남편도 그저 신기로운 모양이다.

 

마치 동화나라에 온 것 같다.

 

하늘 빛과도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오랜 세월 바람이 깍이고 깍여,

빗물에 씻기고 씻겨

이제는 곧 꺽여질 듯한 버섯 바위도 보인다.

그래도 저 버섯 바위의 꼭지가 완전히 꺽이려면 또 수천년의 세월이 필요할지도...

 

파샤바의 기이한 암석들을 다시 한번 머리속에 새겨두고 

 

또 우리는 걸어 걸어 젤베 야외 박물관까지 갔다.

 

양쪽으로 깍아 지른 절벽에 기이한 암석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어

전체를 아예 박물관으로 지정해 둔 곳이다.

 

이 곳 동굴에는 1950년대까지 사람들이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지진으로 인한 붕괴 위험때문에 지금은 사람들이 살지는 않는다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본다.

한쪽 벽을 뚫어 침대도 만들어 놓고, 부엌공간, 거실공간도 보인다.

 

어떤 집들은 동굴 내부까지 가려면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곳도 있고...

어떤 곳은 위아래를 오르내리며 반대편 언덕과 통하는 터널도 있다.

 

어떻게 이런 곳에 사람이 살려고 생각했을까?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정답은 금방 나온다.

돌조각만 있어도 구멍을 쉽게 낼 수 있는 바위를 뚫기만 하면 자기들의 안식처를 만들 수 있으니까

당시로서는 동굴을 거처로 만드는 게 가장 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따로이 벽돌을 만들어 집을 지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나무를 잘라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어야 하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 구석기, 신석기시대를 거치면서 아나톨리아의 카파도키아지방에서 수만년동안 동굴 생활을 했을 것이다.

아나톨리아지방은 약 8천년전부터 농사를 최초로 지은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원전 2천년경에는 아나톨리아 지방을 중심으로 만들진 히타이트의 본고장이다.

히타이트는 인류최초로 철기시대를 연 나라이다.

철을 만들기 위해서는 불을 잘 다루어야 했고, 그러다 보니 도자기도 일찌기 잘 구웠을 것이다.

그래서 괴레메 근처의 아비도스는 힛타이트시대부터 물려받은 도자기 굽는 기술이 아주 발달한 마을이고.

도자기 굽는 기술이 좋고, 구운 도자기가 풍부하여 만들어진 것이 항아리 케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세월이 한참 흐른뒤

로마에서 박해받던 크리스챤들이,

동로마제국시대엔 수도원 생활을 하기위해

셀주크 터어키시대엔 그들의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와 살던곳이기도 하다.

15세기 오스만투르크가 완전 장악을 한 이후엔 카파도키아에 살던 대부분의 크리스챤이 그리스쪽으로 떠났다고 한다.

 

'들여다 보면 안되는 곳'이라는 뜻의 '괴레메'라는 마을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숨어서 사는 사람들이 있는 마을이라서 '들여다보면 안된다'는...

 

그뒤는 현지인들이 와서 살았을 것이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눈과 비바람을 막아줘서 따뜻하고, 야생의 동물로 부터 보호도 받을 수 있고... 

   

사람들이 기도하고 살았던 흔적들...

동굴에 교회도 만들고 벽에는 성화, 프레스코화도 그리고...

 

잘 지어놓은 교회도 있다.

 

교회의 건너편 계곡엔 수도원과 공동체 생활을 했던 집들이 퍼져있다.

 

젤베계곡 여기저기를 돌다가 돌아나오면 만나는 수많은 동굴집이다.

박해받던 크리스챤들이 살았던 곳이기도 하고, 현지인들이 살았을 곳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오면서 만나는 장면들은

아주 천천히 우리 마음속을 파고 든다. 

  

우리 마음의 속도대로...

우리가 느끼는 속도대로 젤베 야외박물관의 구적구석을 돌아다 보고...

다시 걸어 돌아나온다.

  

젤베계곡에서 괴레메까지 약 6km

다시 파샤바를 지나고, 포도밭을 지나니 기암괴석 속에 교회가 나타나고..

천천히 걸어서 돌아간다.

 

 오랜세월이 그대로 바위의 색깔에 층을 이루면서 그대로 나타나 있다.

 

 

천천히 걸어서 되돌아가자.

오는 길에는 차우신 마을을 만난다.

 

오늘도 해가 지려나보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른다.

해 뜨자마자 아침 밥만 먹고 길을 나서 종일 걷다가  보다가, 걷다가 쉬다가, 걷다가 이야기하다가...

걷고 또 걸었다.

 

내일은 또 어디를 가지?

얼마나 걸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