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283 (1월7일) '반'에는 구시가지가 없다. 터키의 동부도시 반에서

프리 김앤리 2010. 1. 11. 08:14

 

다들 동부로 가라고 했다.

진정한 터키를 만나려면 터키의 동부로 가보라고 했다.

이방인들에게 한없이 맑은 미소를 지어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으면

아무 조건 없는 무한한 친절을 만나고 싶으면 주저하지 말고 터키의 동부를 찾으라고 했다.

 

2002년도의 여행에서도 이스탄불을 비롯한 터키의 서부와 중부 일부만 돌고 온 내게

그래서 터키 '동부'는 반드시 가봐야 하는 곳으로 꼽히고 있었다.

 

카파도키아에서 밤차로 15시간도 더 걸려 도착한 터키의 동부 도시, '반'

바다같이 넓은 호수가 있는 도시 '반'

그 곳은 한 겨울이었다.

 

카파도키아에서 터키 동부로 가는 내내 우리가 본 것은 하얀 세상이었다.

산과 들에는 온통 하얀 눈이 덮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것은 몇 미터씩 쌓여있는 한겨울의 꽁꽁 얼어붙은 눈 산이었다.

온 천지가 하얀 눈 밭에서 "오 겐끼 데스까"를 외치던

일본 영화, '러브레터'가 내내 생각나는 시간이었다.

 

오로지 파란 하늘과 눈 덮힌 산 뿐.

야간 버스 를 타고 동 터오는 새벽부터 반에 도착하는 정오무렵까지

온통 눈 만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과연 아름다운 미소를 보내주는 동부 사람들이 있기는 할까?

그 곳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따뜻한 동부 사람들의 친절을 만날 수 있을까?

 

반 터미널에 도착해서 다시 서비스 버스를 타고 반 시내까지 왔다.

그런데 너무 춥다.

길거리가 꽁꽁 얼어붙었다.

입김이 나오자 마자 얼어붙는 것 같다.

 

이제 어디로 가야지 며칠간 우리가 묵을 숙소를 찾을까?

론니에 의하면 아스란 호텔(Aslan Hotel)을 찾으면 될 것 같은데...

서성이고 있는 사이,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가 우리에게 다가온다.

"도와드릴까요?"

오호... 이런 거다.

낯선 도시에 도착해서 서성이고 있으면 누군가가 나타나서 도움을 주겠다고 하는 사람들.

인도나 이집트에서 만나는 삐끼들이 아니라...

 

아스란 호텔을 찾는다는 말에

자기도 잘 모르는지 옆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그리고는 우리를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우리를 데리고 가는 이 사람... 자기도 잘 모르고... 물어본 사람들도 사실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러면 우리를 그냥 놓아주지, 대충 시내로 나온 것 같으니까 론니에 있는 지도를 보고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낯선 이방인을 그냥 길거리에 버려 두지 않는다.

눈이 꽁꽁 얼어 붙은 길, 눈이 녹아내려 질퍽거리는 길...

여기저기로 우리를 끌고 다닌다.

ㅋㅋ

'때로는 과다한 친절이 사람을 피곤하게도 만들기도 하지. ㅋㅋ

 그래도 사람들이 참 좋다..'

 

한참을 헤매다가 결국 또 다른 구세주 같은 사람이 나타나 우리를 아스란 호텔 입구까지 데려다 준다.

아까 제일 처음 왔던 그 길에서 바로 내려가면 되는 구만.

ㅋㅋ

그래도 고맙다.

 

 

<반에는 구시가지가 없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반 호수로 가야 하는데 날씨가 너무 추워 반 호수 안에 있는 악다마르 섬까지는 갈 수 없을 것 같다.

성수기도 지나고 비수기 중에도 '왕 비수기'인데다가 날씨마저 추워 악다마르 섬까지 가는 배는

전세를 내지 않는 이상 우리 둘만이 탈 수는 없을거란다.

우선은 도심 내를 이 곳 저 곳 돌아다닌다.

그래도 터키는 오스만 투르크 대 제국이었는데...

뭔가 좀 심심하다.

오래된 건물도 없고... 다들 신식 뿐이다.

 

역사로 따진다면 페르시안 시대도 있었고, 비잔틴 시대도 있었다.

물론 오스만 투르크 시절도 있었는데...

 

참 아까 좀 특이한 일이 있었다.

우리를 데려다 주는 사람마다 우리더러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으면서

한결같이 자기들의 country는 '터키'이지만, nationality는 터키가 아니라 쿠르드란다.

말로만 듣던 쿠르드 민족들이다.

 

20세기 후반, 우리나라 뉴스에서도 자주 등장했던 쿠르드인.

터키의 동부에만 해도 쿠르드족 인구가 1천 5백만을 넘고, 이란, 시리아,이라크, 그리고 유럽의 곳곳에 모두 2천 5백만이

넘는 민족이다.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지만 아직까지 한번도 민족국가를 형성한 적이 없다고 한다.

오랜 역사 속에서 오스만 제국이나 이란의 사바피 왕조를 도와 준 댓가로

몇번은 터키 동부지역과 이라크 북부지역, 이란의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쿠르드 자치지역으로

인정받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보듯이 스스로 독립을 쟁취한 경우가 아니라

다른 제국의 힘을 빌어 얻은 '자치'라는 것이 결국에는 허울 뿐이듯이

쿠르드 민족에게도 진정한 독립의 날은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20세기가 지나서도 끊임없이 '민족 자치'를 주장하는 쿠르드 민족들에 대한

터키나 이라크 같은 주변 강대국들의 탄압이 계속되고 있는 곳이 바로 이 지역이다.

 

쿠르드에 대한 역사는 좀 더 공부해야 겠다 .

아직까지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어차피 동부도시 도우베야짓도 갈 꺼니까 천천히 할 참이다.

 

여하튼... 그런데 반에는 왜 구시가지가 없을까?

물론 이 사실도 쿠르드 민족과 관계가 있다.

 

쿠르드족은 여러차례 인접 기독교 국가들과 손을 잡고 터어키군을 정복하려 하였으나

어찌된 일인지 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쿠르드족은

 '이슬람`형제'라는 명분으로 독일과 같은 편에 섰던 오스만투르크와 손을 잡아

러시아와 한 편이 된 아르메니아군과 '반' 지역에서 전쟁을 벌이게 된다.

물론 이것도 오스만 투르크에게서 분리 독립, 자치 독립권을 따내기 위한 한 방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반' 지역에서 있었던 1차대전은 본질적으로는 독일과 러시아라는 강대국들의 전쟁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슬람세력이었던 쿠르드군대와 기독교 세력이었던 아르메아니군대가 맞붙어 싸우는

약소 민족간의 가슴아픈 전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오스만 투르크 군대는 구시가지를 모조리 파괴해 버렸다고 한다.

오스만 군대의 강력한 반격에도 불구하고 반은 1917년까지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었단다.

 

이후 1920년 터키공화국이 설립되고 난 이후 올드시티로 부터 4Km  떨어진 동쪽에 새롭게 세운

도시가 지금의 반이다.

그래서 반에는 구시가지가 없다.

 

 

<반 호수와 반 대학> 

반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는 반 호수다.

호수를 빙 둘러 400 Km 정도 되는 거리다.

우리나라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길,  내내 호숫가라고 생각하면 된다.

호수라고 부르기에는 엄청나게 큰,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같은 호수.

 

악다마르 섬까지 배를 타고 들어가보면 더 환상이라는데

그저 밖에서 쳐다 보는 것으로만 만족해야 했다.

겨울 호수.

 

호수 건너편으로는 눈 덮힌 산이 보인다.

 

돌무쉬(미니버스)를 타고 반 대학으로 갔다.

반 대학에 있는 Cat House를 찾아서...

반에서 유명하다는 짝눈(?) 고양이를 찾아서... 

 

요 녀석들의 눈동자를 자세히 보면 서로 색깔이 다르다.

한쪽은 푸른 눈, 또 다른 한쪽은 노란 색.

 

그런데 살아있는 녀석들의 사진을 찍는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갖다 대면 슬그머니 눈을 감아버리거나,

아니면 살짜기 돌아서 가버린다.

겨우 성공한 사진.

 

돌무쉬에서 반 고양이를 찾으러 간다니까,

버스에 탄 반 대학 학생들이 정확하게 표현하면 '반고양이' 아니라 ' 쿠르디쉬  cat' 이란다.

특히 반 지역에서 많이 나타나는 고양이라 터키에서는 나라 밖으로 반출을 금지하고 있단다.

 

Cat House까지는 반 대학 수의학과 5학년에 재학중인 바이럼이 동행했다.

대학 캠퍼스라고 해도 어찌나 넓은지...

이 친구와 같이 하지 않았으면 한참을 헤맬 뻔 했다.

자기 전공이 수의학이라 자기가 수업하고 있는 바로 옆 건물이 마침 Cat House다.

우리가 간 시각에는 Cat House가 닫혀 있어서 들어가 보지도 못할 뻔 했는데

손을  안쪽으로 넣어서  닫힌 문을 열어준다.

내부까지 완전히 들어가 볼수는 없었지만

정원에 만들어 둔 고양이 우리(?)까지 데려다주고, 고양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요 녀석들을 얼러주기도 한다.

친절하기도 하시지...

 

자기 수업시간까지 약간 시간이 난다며 캠퍼스의 다른 곳 까지 안내도 해주고...

역시 터키 사람이 아니라 쿠르드 민족이라며 강조까지 하면서...

 

반 대학도 반 호수가에 지어 놓았다.

서쪽으로 나 있는 호수에 앉아서 오늘 석양을 보면 끝내주겠는데...

추워서 그 때까지 기다릴 자신이 없다.

정말 너무 춥다.

 

대학 캠퍼스라기 보다는 무슨 공원같다.

 

반 대학안에 있는 모스크.

눈 쌓인 넓은 벌판에 대학 건물이 여기 저기 떨어져 있다.

넓다.

넓다.

그리고 춥다.

ㅋㅋ

 

 

<미소가 아름다운 사람들> 

어린 나이에 , 이 추운 날씨에 음식을 배달하는 아이들이라면

삶에 찌들려 있을 법 한데 우리를 보는 순간, 웃음을 보내줬던 아이들.

 

길거리 어디를 가나 사람들은 우리에게 미소를 띄워주었다.

아주 짧은 영어로

"Hello!!"

"Welcome to Van!!"

"Van, Good?"

...

서스럼없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차를 타고 가던 사람들도 창문을 열어 손을 흔들어주고,

걸어가다가다도 뒤를 돌아보며 웃음을 보이면 인사를 한다.

 

물론 대부분의 외국에서도 여행자들에게는 친절을 보여주고 웃음을 띄워준다.

친절로 하자면 유럽을 비롯한 서양에서나, 일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 나라 사람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친절은 아주 세련되어 있다.

그러나 그 '세련'된 친절과 미소는 어딘지 모르게 자본주의적 냄새가 나기도 한다.

어쩌면 상술같기도 한...

 

그런데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의 미소에서는 순박함을 발견한다.

이란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라오스에서 만났던 그 수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사람들의 친절함과 순박한 미소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손님을 환대하라는 종교적인 생활에서?

민족성에서???  이들의 소박한 삶에서???

 

그렇다면 여행을 하면서 불친절하고 무뚝뚝하다고 느꼈던 중국 사람들이나 구 소련 사람들은 왜 또 그러할까?

사회주의 체제 때문에? 민족성이라서?

하기야 구 소련사람들이라고 모두 무뚝뚝한 건 아니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좀 그랬지, 보스니아나 세르비아에서는 순박한 사람들을 또 많이 봤다.

왜 그럴까?

친절과 불친절. 미소와 무뚝뚝함... 어디에서 기인 하는 것일까?

 

'반'에서는 이란이나 라오스에서처럼

거리를 걷는 내내 사람들이 보내는 미소때문에 행복한 순간들을 맞고 있다.

 

 

 반 호수의 배 위에서 고기를 굽고 있던 아저씨들.

지나가는 우리에게 손을 흔든다.

 

배 위로 올라오라고...

반 호수에서 낚시로 잡아 올린 거란다.

제법 나이가 드신 분들 같은데도...

얼굴에는 소박함이, 순박함이 묻어있다.

 

길거리에서 빵 배달하던 아이.

그거 어디에서 가지고 오느냐는 우리의 물음에

자기 빵 가게까지 데리고 간다.

 

아름다운 미소를 보내주는 사람들...

길거리에 온통 이런 얼굴들이다 .

우리에게 보내주는 따뜻한 미소...

밖으로 나서기가 두려운 추운 날씨...

아무 곳으로 가기도 싫었던 끔찍한 추위...

저녁 5시만 되면 상점들도 문을 다 닫아버리고 길거리에 사람 하나 없는 춥고 꽁꽁 얼어붙은 '반'

그러나 낯선 곳을 더듬거리는 이방인에게 보내주는 아름다운 미소가 있어서

우리에게 '반'은 어느새 '따뜻한 도시'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