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여행/공감 라오스&베트남

선물

프리 김앤리 2010. 5. 31. 00:21

나는 늘 여행이란 게 내게 주는 선물에 대해서 감탄해왔다.

하루종일 종종 거리며 바쁘게 살아가던 나에게, 여행은 ‘휴식’이란 걸 선물했다. 

해가 뜨는지 날이 저무는지 도무지 무감각하게 살아가던 나에게

여행이라는 건 비가 내리지 않고 그저 따스한 한 조각이라도 내밀어주는 햇살이, 그 따스함이 얼마나 고마운 건지 가르쳐 주었다.

꽃이 피는지 지는지, 계절이 바뀌는지도 모르고 무심하게 지내던 나에게

사막 한 가운데서도 자라고 있는 풀 한포기가 얼마나 소중한 건지,

또 열 몇시간이 넘는 밤버스에 시달리다가

꾀죄죄한 숙소라도 지구상 어딘가에 나를 받아주고 재워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오랜 산행 끝에 마시는 한모금의 맹물 한잔이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

일상에서는 그저 지나치던 작은 것에도 고마워할 줄 아는 소박함을 선물로 주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면 어디서 솟아낳는지도 모를 강렬한 에너지가 내 속에서 꿈틀거려

일상의 피곤함들을 쓱 날려버리는 마법을 선물하기도 했다.

그건 아마도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 아름다운 풍경, 생각을 할수 있도록 만든 숱한 시간들이 준 선물이었으리라.


여행은 내게 이렇게 많은 선물을 주고 있는데, 나는 여행에 무엇을 돌려 주어야 할까?

우리가 가는 여행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여행이라는 것을 통해 우리가 줄 수 있는 선물은 없을까? 

좀 가치있는 여행을 해보자! 그렇게 찾아낸 것이 ‘공감여행’이었다. 

‘공감여행’

그저 보다가 놀다가 먹다가 돌아오는 ‘일상의 탈출’이 아닌

뭔가 느끼고 배우고 나누는 뭔가 뜻있는 여행을 해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한

좀 새로운 여행이었다.


<미소가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곳, 라오스>

 

 

라오스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라고들 한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지형인데 아직까지 어느 한군데 철도도 없다.

길거리를 걷다보면 마치 우리나라 60년대를 보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 라오스가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순수의 땅이라고들 한다.

2008년 뉴욕 타임즈에서는 배낭여행하기 가장 좋은 곳 1위로 라오스를 꼽았다.

무엇일까? 라오스의 무슨 매력이 사람들을 끌어 들이는걸까?

딱히 볼 것도 별로 없고 여행하기에 그다지 편리한 것도 아니고

닦이지 않은 길에는 마른 먼지만 날리는 라오스에

최근 슬금슬금 배낭여행자들이 모여드는 까닭은 뭘까?

 

정답은 라오스 사람들의 얼굴이다.

아무런 욕심이 없는 얼굴, 낯선 여행자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띄워주는

그들의 미소 때문이다.

루앙프라방 씨싸왕웡 거리에서,

늦은 시간 몽족 여인들이 펼쳐놓은 야시장에서,

방비엥의 흙먼지 날리는 들판에서 만나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 해맑은 얼굴들이 있기 때문이다.


 

<현지인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공감여행>

그래, 우리의 공감여행 1탄은 라오스로 하자.

순수하고 소박한 사람들이 있는 곳, 아름다운 미소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

우리도 조용히 그곳으로   가서 그들의 삶을 배우고,

무엇인가 그들과 함께 나눌 것이 있다면 그것을 실천해보는 여행으로 하자.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있는 루앙프라방에서부터

배낭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고 불리우는 방비엥을 거쳐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안까지 가는 이번 여행에서 현지 사람들의 삶을 체험하는 여행 말이다.

  

 

 

 

 

 

 

 

 

 

 

 

 

 

 

 

 

 

 

 

 공감여행의 시작은

 현지 사람들의 삶을 체험하는 것이다.

 

우리의 공감여행은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박업소를 찾아가고,

현지인이 운영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현지인에게 직접 도움을 줄 수 있는 동네에 있는 가게, 식당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했다.

모든 것이 다 짜여진 패키지 여행을 한다는 것은

여행을 위해 쓰는 돈의 대부분이 그 패키지를 꾸리는 나라로 돌아가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가난한  동남아 나라들에 가서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는다거나 코카콜라를 마신다는 것도

결국 다국적기업, 즉 부자나라에 돈을 보태주는 것 밖에 안된다.

세계적인 체인을 가지고 있는 호텔에서 묵는 것 역시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부산의 대형백화점이나 대형 할인마트에서 물건을 사봐야 부산 사람들의 살림살이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고 

결국은 대기업에게 돌아가고, 대기업을 가지고 있는 서울로 돈이 들어가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다국적 기업이 운영하는 호텔이나 교통, 음식을 이용하며 여행자들이 쓰는 돈의

아주 극히 일부만이 현지인들에게 도움을 줄 뿐

알맹이는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버리고 난 후다.

그래서 가난한 나라에 여행자들이 넘쳐나도 그들의 삶은 윤택해지지 않고

오히려 여행자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만 치우게 된다는 자조섞인 한탄이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하질 않았던가?

새롭게 기획하는 공감여행의 시작은,

조금은 힘들더라도 현지인이 직접 운영하는 회사를 찾아가 버스를 계약하고

다국적 명함을 달고 있는 호텔은 사양하고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숙소(그것이 호텔이건 게스트 하우스이건)에서 하루 밤을 묵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운영하고 있는 조그만 동네 가게를 이용해서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그들의 삶을 느껴보는 것이다.

 

마음을 그렇게 먹고 떠난 여행이라서 그런지  루앙프라방에서 방비엥까지의 그 먼 버스길도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거리로 해봐야 300Km를 넘지는 않아서 우리나라로 치면 3시간도 안 걸릴 거리를

 7시간 동안이나 버스를 타고 가는데 불평들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천천히 가는 버스 속에서 느긋하게 세상 구경을 할 수 있는  여유까지 얻을 수 있었다. 

식당을 찾으면서도 굳이 한국음식을 고집하지 않고 현지식을 시도했다.

때로는 이상한 향취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별다른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저녁이면 펼쳐지는 야시장에서 아주 싼 가격으로 이것 저것 골라먹는 즐거움을 선물 받았다.

 

<천천히, 느긋하게 자연과 가까이 하는 공감여행>

 

 

라오스를 무척 좋아하는 사진작가 분이 계신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님이시기도 하다.

그에게 물어봤다, 라오스를 왜 좋아하냐고.

돌아온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아무 것도 볼 게 없잖아요.”

무언가를 꼭 봐야하고, 무슨 일이든지 꼭 해야 하는 여행은 참 바쁘다.

그런데 그는 라오스가 별로 할 일도 없고, 별로 볼 것도 없어 참 좋단다.

 

대개가 휴가, 방학, 연차, 월차 등 없는 시간 틈을 억지로 만들어서 떠나온 여행이라거나

있는 돈 ,없는 돈 이리 지리 끼워맞춰 겨우 나선 여행이라

어느 것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쫓아다니고 바쁜 여행을 마치고 나면

오히려 더 피곤하고 힘들어지기도 했던 경험을 대부분이 다 가지고 있는 터라

천천히, 느긋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자신이 꾸려나가는 자기시간을 가지는 것이 우리가 꿈꾸는 공감여행이다. 

 

‘단체’로 떠나왔으되 언제든지 자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여행,

단체라는 이름에서 벗어나 순전히 동떨어진 개인이 되어도 전혀 상관없는 여행,

 ‘따로 또 같이’ 혹은 ‘같이 또 따로’를 실현할 수 있는 여행 말이다.

 타인으로부터 뭔가 배우는 공감과 자기 자신 안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나를 공감하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다행히 우리 팀들은 전혀 어색해하지 않고 전혀 외로워하지 않고 자신만의 시간을 즐겼다.

어떤 이는 하루 종일 강가의 리조트 해먹에서 흔들흔들 책을 읽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그냥 이 거리 저 거리를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누구는 루앙프라방 옆을 흐르는 메콩강에서 배를 타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오토바이를 타고 방비엥의 자연 속으로 깊숙히 들어갔다가 오기도 했다.

이들이 자유시간을 가지면서 누구를 만났고 무슨 일을 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아무 볼 것도 없고 아무 할 일도 없더라면서도

라오스를 가장 좋아하는 사진 작가의 이야기에 숨어있던 그 ‘뭔가’를 바로 이 시간에 찾아 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공감여행 >  

 

여행을 가기 전에 사람들을 만난 자리에서 혹은 전화상으로 소위 오리엔테이션이란 걸 했다.

준비물로는 어떤 걸 챙겨와라, 환전은 얼마정도 하면 될 것 같다 등등

이런 저런 사소한 것들을 일러주고

 

마지막으로 소위 공감여행자가 되는 10가지 방법이라는 것도 살짝 곁들였다.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가게나 교통수단을 이용하자’ ‘ 환경을 생각하자’ 등과 함께 

 ‘여행하는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자.

그들의 생활방식, 종교를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자’는 내용도 있다. 

나와는 다르게 생각하고 나와는 다르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더 나아가 공감까지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낯선 곳을 찾아 떠나는

여행의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한 것이나 다름 없지 않겠는가!

내 것만이 옳다고 고집하지 않는 여행,

다른 사람의 다른 방식을 이해하고 배려함을 배우는 여행이고 싶었다.

 

 

 

<나눔을 실천하는 공감여행 1 - 딱밧>

 

라오스로 떠난 우리들의 공감여행의 핵심은 ‘나눔’이었다.

라오스 사람들은 이미 일상에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이었다.


아직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라오스 루앙프라방의 이른 아침 .

찹쌀밥, 과일, 과장등이 담긴 대바구니를 든 사람들이 하나둘씩

씨씨왕웡 거리로 나오기 시작한다.

그들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정숙한 자세로 땅바닥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린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붉은 옷의 스님들이 줄을 지어 걸어온다.

나이 드신 스님들도 계시지만 아주 어린 스님들도 보인다.

모두들 맨발이다.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대바구니에서 음식을

조금씩 떼어내 스님들의 대바구니에 넣어준다.

스님들의 발우는 조금씩 채워지기 시작한다.

루앙프라방의 가장 경건한 아침 풍경, ‘딱밧’이라는 의식이다.

딱밧은 승려들이 걸식으로 의식을 해결하는 방법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출가 수행자들이 지켜야 할 규율 중에 하나다. 

수행자들에게 딱밧이란  필수불가결한 생활요소다.

수행자들은 탁밧을 통하여 욕심을 버리고 아집을 버리고 

걸식하는 걸인으로 가장 낮은 자세를 배운다. 

음식을 준비해 와서 나누어 주는 사람들은 탁밧을 통하여

나눔을 실천하는 공덕을 쌓는 것이다.

딱밧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딱밧 행렬의 맨 끝이다. 

거기에는 이제 한 무리의 아이들이 대바구니를  들고 서 있다.

수행자들은 자신들이 받은 음식 중 일부를 다시 떼어내어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다. 나누어 받은 공양물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다시 나누어 주는 것이다.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루어지는

소박한 나눔의 의식인 것이다. 

 

우리의 공감여행은 이들의 딱밧 의식에 같이 참여하면서 ‘나눔’을 배웠다.

이른 아침 호텔에서 나와 우리도 찹쌀밥이 담긴 대바구니 하나씩을 사서 무릎을 꿇고 스님들을 기다렸다.

우리들이 조금씩 떼어주는 이 공양음식이 스님들의 한끼 식사가 되고

또 배고픈 아이들에게 돌아가리라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다.

소중한 시간이었다. 

  

 

< 나눔을 실천하는 공감여행 2 - 아이들과 함께 하는 책 잔치 >

라오스로 공감여행 1탄을 만들기로 하고 지난 3월 말에 답사를 갔었다.

가기 전에 여러 싸이트를 검색해서 라오스에 있는 여러 사회단체들을 알아봤다.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에서 우리 답사팀이 방문한 곳은 CCC(Children Cultural Center)였다.

CCC는 우리나라로 치면 방과후 학교 같은 역할을 하는 NGO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에게 음악과 미술, 춤 등 라오스의 전통문화를 가르치는 곳이다.

CCC의 스텝들에게 우리 여행의 취지를 알리고 과연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같이 토의를 했는데,

그들은  ‘책잔치’를 제의했다.

우리가 후원금을 내어 책을 사서 루앙프라방 근교의 학교를 방문하여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자는 것이었다.

선뜻 동의했다.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책 출판에 드는 비용을 우리가 부담하고 CCC에 일정정도 후원금도 내기로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몇 번의 편지를 주고 받은 뒤

공감여행을 같이 떠나는 사람들에게 ‘책잔치’에 대한 의의를 설명했더니 사람들도 선뜻 OK다.

후원금은 물론이고 각자가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학용품도 준비하고 헌 옷가지들도 준비했다.

어떤 이는 아이들에게 사진을 찍어줄 거라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도 준비해왔다.

 

 

 

 ‘라오스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책잔치’는 역시 우리가 생각했던 대로 이번 공감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여행의 셋째날 우리는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CCC를 방문했다.

우리가 방문할 학교의 아이들이 보답으로 무슨 퍼포먼스를 한다고 해서

우리들도 아이들에게 보여줄 뭔가를 준비해야 했다.

얼른 올챙이송과 무용을 배우고, 큰 도화지에 올챙이 그림도 그리고

CCC 스텝들에게 올챙이송이 어떤 내용인지 알려줬다.

다행히 우리들의 어슬픈 올챙이송과 무용은 방문한 학교의 아이들이 잘 따라해줘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운동장에 모인 아이들과 함께 게임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무용도 따라하고...

라오스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와 우리의 웃음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는 시간이었다.

예정된 순서대로 아이들에게 책을 나누어주고 책을 받은 아이들은 두런두런 둘러앉아 책을 읽고,

준비해 간 학용품도 나누어 주고 즉석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나누어 주고...

 

 

라오스의 아이들과 우리들은 어느새 하나가 되어 있었다.

책 잔치를 하면서 라오스의 아이들이 우리들에게 보내준 해맑은 미소는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나누어주겠다고

잔뜩 폼 잡고(?) 나선 우리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이것도 역시 여행자와 현지인이 공감하는 자리였다는 느낌으로 가슴이 따뜻해져 왔다.

나눔을 주고 다시 나눔을 받는...


매번 선물을 받기만 하는 여행을 뛰어넘어 이번엔 뭔가를 주고 오자고 떠난 공감여행.

이번에도 역시 여행은 내게 선물을 받기보다는

순수한 라오스 아이들의 티없는 웃음으로 ‘가슴 따뜻해지는 행복’이라는 선물을 한 가득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