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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펌)

프리 김앤리 2010. 5. 28. 15:29

뉴욕(New York)

 

미국 최대의 도시로서, 1790년 이래 수도로서의 지위는 상실했으나, 미국의 상업·금융·무역의 중심지로서, 또 공업도시로서 경제적 수도라 하기에 충분한 지위에 있으며, 또 많은 대학·연구소·박물관·극장·영화관 등 미국 문화의 중심지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교외를 포함하여 1600만이 넘는 방대한 인구를 수용하는 이 거대도시는 미국 내에서도 독자적인 세계를 이루는 독특한 도시이다. 국제적으로는 대무역항으로서 대서양 항로의 서단에 위치하는 가장 중요한 항구이며, 1920년대 이후에는 런던을 대신하여 세계 금융의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미국의 국제적인 지위향상과 더불어 세계 경제에 대한 지배적 지위는 한층 강화되었으며, 1946년 국제연합(UN) 본부가 설치된 후에는 국제정치의 각축장이 되었다.

 

뉴욕주의 남동단, 뉴욕만(灣)으로 흘러드는 허드슨강 어귀 일대에 위치한다. 허드슨강·이스트강·할렘강·뉴욕만 및 롱아일랜드 수로(水路) 등에 의하여 구획된다. 대도시권으로서의 뉴욕은 시역 밖으로 뻗어, 뉴저지·코네티컷의 두 주에도 미치고 있다.

시는 맨해튼·브롱크스·브루클린·퀸스 및 스태튼섬의 5개구(boroughs)로 이루어져 있다. 맨해튼은 시의 중심부이며, 그 남단에 금융 중심지인 월가(街)가 있다. 월가에서 북동쪽으로 브로드웨이와, 이것과 비스듬히 교차하는 5번가의 두 대로가 시를 종관(縱貫)하고 있다. 브로드웨이의 42번가는 타임스스퀘어로 시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며, 그 남쪽에 펜실베이니아역(驛), 동쪽에 그랜드센트럴역 등 도심의 두 주요역이 있으며, UN 본부도 동쪽 이스트 강가에 있다.

 

[미국 뉴욕 지도]

 

맨해튼섬의 북동부는 흑인 거주지구로 알려진 할렘이며, 여기서부터 할렘강을 사이에 두고 브롱크스구(區)가 된다. 브루클린구는 롱아일랜드의 남단에 위치하는데, 맨해튼섬과는 맨해튼교(橋)와 브루클린교로 연결되어 있다. 브루클린구는 북쪽에 있는 퀸스구와 함께 주택지가 많으나 남부에는 해군공장이 있고, 퀸스구에는 케네디 국제공항이 자리잡고 있다. 스태튼섬은 주로 공장지구와 주택지구로 이루어진다. 스태튼섬과 대안의 브루클린구 사이에는 세계 최장이라는 베라자노내로교(1,298m)가 있다.

-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뉴욕 항구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이 바로 횃불을 치켜든 거대한 여인상이다. 자유와 행복을 찾아 수만 리 물길을 헤쳐온 사람들에게 눈 앞에 우뚝 솟아 있는 위풍당당하고 단호한 여인의 모습은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징표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미국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여신상은 자유의 나라, 이민의 나라 미국을 상징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자유와 압제로부터의 해방 자체를 의미하는 상징물로 자리잡게 된다.

 

미국 뉴욕항으로 들어오는 허드슨 강 입구의 리버티 섬(Liberty Island)에 서 있는 여신상은 1886년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에서 우호증진을 위한 선물로 준 것이다. 정식 명칭은 ‘세계를 비치는 자유(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지만 통상 자유의 여신상으로 알려져 있다. 1875년에 만들기 시작하여 1884년에 완성되었고, 잠시 프랑스 파리에 서 있다가 1885년 배를 통해 미국으로 이송되어 1886년에 현재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여신상은 외적으로는 조각이지만 내부에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건축물의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작가 프레데리크-오귀스트 바르톨디(Frederic-Auguste Bartholdi)가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조각했다고 하며, 에펠 탑의 설계자이기도 한 귀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이 내부 철골구조물에 대한 설계를 맡았다.

귀스타브 에펠은 미국으로 옮기기 위해 자유의 여신상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역할도 맡았다. 여신상의 받침대는 건축가 리차드 헌트(Richard Hunt)가 디자인한 것이다.

동(銅)으로 만든 여신상의 무게는 225t, 횃불까지의 높이는 약 46m, 받침대 높이는 약 47.5m이다. 지면에서 횃불까지 높이는 93.5m에 이르고, 집게손가락 하나가 2.44m라고 하니 실로 거대한 규모다. 받침대 위에 선 여신은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옷을 입고 머리에는 7개 대륙을 상징하는 뿔이 달린 왕관을 쓰고 있다. 오른손에는 ‘세계를 비추는 자유의 빛’을 상징하는 횃불을 쳐들고, 왼손에는 ‘1776년 7월 4일’이라는 날짜가 새겨진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다.

 

여신상의 왕관 부분에는 뉴욕을 내려다보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고 박물관과 선물가게도 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까지 가려면 기본으로 몇 시간은 기다리는 수고를 감내해야 한다. 1984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

- 메트로폴리탄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

1866년 7월 4일 독립기념일에 외교관 J.제이(1817∼1894)가 파리에서 한 연설을 발단으로 설립운동이 구체화되었으며, 뉴욕 시민의 노력으로 1870년 임대건물에서 소규모로 개관하였다가 1880년 센트럴 파크의 지금 위치로 옮겼다. 유럽의 대미술관과 비교할 때 역사는 짧지만 그 동안의 기증품 ·구입품, 탐험에 의한 발굴품 등 학문적으로 귀중한 소장품이 급속도로 늘었다. 1954년 대규모 개축으로 근대식 전시장을 완비하여 오늘날 그 규모나 내용면에서 세계 굴지의 종합미술관이 되었다.

 

수집품은 이집트 미술, 그리스 미술, 중세미술, 유럽의 회화, 미국의 회화, 기타 극동 및 고대 중 ·근동 미술, 그리고 조각 ·공예 ·판화 ·무기류 ·코스튬 ·가구 등 선사시대 이래의 인류역사의 산물인 세계 각국의 유물 총 200만 점 이상을 소장하고 있다.

회화에는 앨그레코, 렘브란트, 페르멜, 인상파와 그 이후의 작품에 명작이 많다. 또한 수많은 장서와 정기간행물, 사진 슬라이드를 보존하고 있다.

시내 북부지역에 있는 포트 트라이언 파크에는 중세 프랑스의 성당건축(聖堂建築)을 옮겨 세운 분관(分館) 클로이스터(1938년 7월 개관)가 중세미술을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아시아 지역과 관련하여 중국실 ·일본실 ·동남아실에 이어,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이 한국실 설치를 위한 경비와 전문가 양성 및 프로그램 기금을 지원함에 따라 1998년 6월 한국관을 개관했으며, 400여 점의 한국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 구겐하임미술관(Guggenheim Museum)

미국 철강계의 거물이자 자선사업가인 솔로몬 구겐하임(Solomon R. Guggenheim)이 수집한 현대미술품들을 기반으로 설립되었다. 원래는 1937년 비대상회화미술관(Museum of Non-objective Painting)이란 이름으로 개관하였으나 1959년 구겐하임미술관으로 개칭하였으며, 설립 초기부터 구겐하임재단이 운영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43년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설계에 따라 착공하여 1959년 완성되었다. 큰 달팽이 모양의 외관과 탁 트여 통풍이 잘 되는 천장을 중심으로 한, 계단 없는 나선형 구조의 전시장이라는 독특한 설계로 인기를 모았고 준공되자마자 뉴욕의 새로운 명소로 떠올랐다.

 

소장품은 현대미술의 장려와 진흥을 표방한 창립자의 의도에 따라 20세기의 비구상·추상계 작품이 대부분이지만, 피카소(Pablo R. Picasso)의 초기작품과 클레(Paul Klee), 샤갈(Marc Chagall), 마르크(Franz Marc) 등의 작품도 전시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180점이나 되는 칸딘스키(Vasily Kandinsky)의 컬렉션은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1976년, 현대미술품 수집가인 탄호이저(Justin K. Thannhauser) 내외가 소장하고 있던 후기인상파들의 작품을 대거 기증하면서 미술관의 소장 작품수는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 미술관 활동면에서도 각종 교육프로그램 및 기획전을 개최하는 외에 구겐하임상(賞) 국제미술전을 열고 있는 점 등은 현대미술의 발전·계몽을 목표로 하는 이 미술관의 적극적인 자세를 나타내는 것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 휘트니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철도왕 반다빌트의 손녀이며 조각가인 G.V.휘트니(1875~1942)가 1930년에 설립하고 다음 해인 1931년에 개관하였다. 그후 1936년에 재단법인으로 발족하였으며 1966년에는 지금의 피라미드를 거꾸로 세운 모양의 새 미술관 건물을 지어 이전하였다. 1973년 맨해튼구(區) 올드슬립에 신인 작가의 작품전시를 위한 별관 휘트니 다운타운이 설치되었다.

 

이 미술관의 소장품은 영문명칭대로 미국미술에 한하고 있으며 원래 생활에 곤란을 겪는 유능한 작가의 구제를 목적으로 그들의 작품을 사들이기 시작한 만큼, 지금도 회화·조각·소묘·판화 등의 분야에서 현존 작가의 우수작 수집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또 운영면에서는, 그들 소장품의 전시 이외에 각종 전위적인 특별전을 빈번하게 열어 현대 미국미술 발전을 위한 유력한 미술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 미국자연사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뉴욕 시 센트럴파크의 서쪽 2만 7천여 평에 자리잡고 있는 미국자연사박물관은 수십 억년의 지구역사, 특히 변화해 온 생명체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다. 《종의 기원》이 출판된 지 10년 뒤인 1869년, 뉴욕 시가 자연에 관한 지식의 보급과 연구의 진흥을 위하여 설립하였다. 처음에는 패류나 조류의 박제표본을 위주로 한 소박한 곳이었지만, 19세기 말이래 지구 각지에 탐사대를 파견해 자료를 수집하고 조사연구실적을 쌓으면서 인류학, 각종 생물학, 생태학, 광물학, 천문학 등 자연사 관련 분야의 세계적인 수집, 연구와 지식보급기관으로 발전하였다. 그 동안 수행한 탐사는 원주민 문명에 관한 북서아메리카와 시베리아 탐사, 티라노사우루스를 발견한 미국서부 탐사, 공룡 화석의 보고인 고비(Gobi) 사막 탐사, 거대한 아프리카대륙의 생태계 탐사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박물관의 컬렉션은 3200만 점이 넘는다. 29m 의 푸른 고래 모델 등 세계 각지 포유동물의 표본, 563캐럿의 블루사파이어 ‘인도의 별(Star of India)’을 비롯한 온갖 광물, 각종 토템 기둥, 북서아메리카의 하이다(Haida) 인디언의 채색 카누 등 인조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지구상에서 이미 사라진 동물들의 골격과 화석의 수집에서 독보적인데, 공룡만도 100여 종에 이른다. 그 중에서 어미가 침략자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앞발을 쳐들고 으르렁대는 모습을 진짜 뼈로 재현해 놓은 바로사우루스(Barosaurus)가 유명하다. 박물관의 이 같은 발전은 훌륭한 학자들의 배출과 함께 이루어졌다. 이 박물관에서 활동하는 과정에서, 미드(Margaret Mead)는 현대인류학자로서 우뚝 섰고, 마이어(Ernst Mayr)는 현대생물학의 등장을 앞당겼다. 고생물학자 심프슨(George Simpson)도 이 박물관의 보조 큐레이터로 출발하였던 학자이다. 박물관에 축적된 풍부한 기초자료가 생명체의 구조와 진화 그리고 인류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기여하였던 것이다. 미국자연사박물관은 또한 세계 최고수준의 천문관(planetarium), 40만권에 이르는 자연사 도서를 갖춘 도서관, 스카이극장(Sky Theater) 등 부속시설을 활용하여 일반인들을 위한 교육활동도 적극 펼치고 있다.

 

- 인트레피드 해양항공우주박물관(Intrepid Sea Air & Space Museum)

맨하탄의 웨스트사이드에 있는 노스강(North River)에 있는 박물관이다. 1974년 재커리 피셔(Zachary Fisher)가 제2차 세계대전 때 난파된 항공 모함인 인트레피드를 인양하는 데 성공하였고 이 선박을 개조하여 1982년 박물관을 개관하였다. 또한 초창기 글라이더부터 최첨단의 우주항공기까지 실물을 전시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항공모함에서 운용한 전투비행기가 망라되어 있으며, 항공기와 관련된 다양한 부속물인 엔진, 비행복, 첨단 무기인 미사일 등도 전시하고 있다.

- 센트럴파크(Central Park)

면적 3.4km2. 사각형의 길쭉한 시민공원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공원이다. 숲·연못·잔디·정원·동물원·시립미술관 등이 있으며,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1850년 시장선거 때부터 공원 건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으며, 그후 1960년대에 완성되었다.

디자인은 주로 F.L.옴스테드와 C.복스에 의하여 다듬어졌다. 조경공학적 설계로 조성된 이 공원은 건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공원의 하나였으며 부지 확보에도 550만 달러가 투입되었다.

 

- 세인트패트릭대성당(St Patrick's Cathedral)

미국 뉴욕 맨해튼 한복판 빌딩 숲 사이에 있는 성당이다. 고딕 양식을 부활시키려는 J.레비크의 설계가 채택되어 1858년에 기공, 1879년에 헌당식(獻堂式)을 올렸다. 라틴 십자형의 평면 플랜을 갖고 있는 화강암의 건물로, 너비 약 52 m, 길이 약 100 m이고, 첨탑(尖塔)의 높이는 약 100 m이며, 약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뉴욕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록펠러센터의 동쪽에 있으며, 부활절이나 미사를 비롯한 행사가 있을 때는 성황(盛況)을 이룬다.

 

 

- 타임스스퀘어(Times Square)

브로드웨이, 7번가, 42번가가 교차하는 곳에 형성되었으며 초기에는 롱에이커스퀘어로 알려졌으나, 1903년에 뉴욕타임스가 이곳으로 이전해오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19세기에는 말 거래업자, 마굿간, 마차 등으로 붐비던 곳이었는데, 1899년 오스카 헤머슈타인이 이곳에 최초로 극장을 세우면서 브로드웨이 공연문화가 시작되었다. 타임스스퀘어와 인근 지역은 공연장, 극장, 상점, 뉴스 가판대, 술집, 음식점 등이 집중되어 있는 미국에서 가장 번화하고 분주한 유흥지역으로서 미국 공연문화의 중심지를 형성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제야에 불이 밝혀진 공이 내려오면 새해를 향해 카운트다운을 하는 전통이 뉴욕타임스가 이전해오던 때부터 시작되어 해마다 12월 31일 밤이면 많은 인파가 몰려든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이 지역은 포르노극장, 성인용품 상점, 스트립쇼 공연장 등이 들어서 천박한 분위기의 우범지대가 되었으나, 1990년대에 재개발작업에 착수하였다. 이에 따라 월트 디즈니(Walt Disney)가 이 지역 개발에 투자하였고, 많은 새로운 공연장, 호텔, 음식점, 대규모 상점들이 들어서면서 재정비되었다.

- 소호(Soho)

뉴욕 시 맨해튼 자치구에서 브로드웨이를 가운데 두고 남북으로 카날 스트리트와 하우스턴 스트리트, 좌우로 6번가와 라파예트 스트리트로 둘러싸인 지역을 가리킨다. 소호(SoHo)는 ‘사우스 오브 하우스턴(South of Houston)’의 머릿글자 합성어이다. 이 지역에는 1850년대에 거주민들이 외곽으로 옮겨간 뒤에 들어선 공장 또는 창고들과 길들이 남아 있다. '로프트(loft)'라 불리는 천정이 높은 주철(cast-iron) 건물들과 코블스톤(cobble stone)이 깔린 가로들이 그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소호는 1920년대까지 밀집한 제조업체들의 생산활동으로 활기찼으나 대공황을 겪고 나서 문을 닫는 곳이 늘면서 점차 황폐해졌다. 이곳이 활력을 회복하기 시작한 것은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이 높고 넓은 빈 공간을 싸게 임대하여 들어오면서부터이다.

특히 1960년대에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상점, 갤러리와 레스토랑이 잇달아 들어서고, 이어 부호들이 문화소비를 위해 찾으면서 소호는 뉴욕에서 가장 활기찬 문화지역으로 발전하였다. 재스퍼 존스, 로버트 라우션버그, 앤디 워홀, 바스키아, 백남준 같은 미술가들이 이곳에서 팝 아트, 미니멀 아트, 하이퍼 리얼리즘 등의 현대미술을 낳았다. 그렇지만 발전과 더불어 임대료가 치솟고, 이에 예술가들이 첼시 등 다른 지역으로 다시 옮겨감으로써, 소호는 9.11 테러 이후 차츰 예술의 거점에서 밀려나고 그 공간을 의상점과 쇼핑점들에 내어주고 있다.

 

-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Empire State Building)

슈립·람하먼이 설계, 1931년에 완공되었는데, 엠파이어 스테이트는 뉴욕시의 별명이다. 102층에 높이 약 381m인 이 빌딩은 1971년 세계무역센터가 생길 때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으며, 지금도 뉴욕시의 명소로 되어 있다.

마천루(摩天樓)의 대표적인 예로서 수용인원 약 1만 8000명이며 65대의 엘리베이터가 각 층을 연결한다.

주로 임대 사무실용으로 되어 있는데, 86층과 102층에는 전망대가 있어 시내와 근교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1951년에는 꼭대기에 약 67m 높이의 텔레비전 안테나 기둥이 설치되었다. 건축적으로는 1910~1920년대에 걸쳐 유행한 울워스 고딕 양식을 취하고 있다.

 

-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

1960년대 뉴욕주(州)와 뉴저지주의 무역이 국제화되면서 사기업과 정부기관의 편리한 업무를 위해 1968년에 착공해 1973년 완공되었다. 미국 경제를 상징하는 뉴욕주 맨해튼에 세워진 쌍둥이 건물로, 두 건물 모두 110층이며, 높이는 하나가 417m, 다른 하나가 415m이다. 완공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건축주는 뉴욕 항만청이며, 일본의 건축가 미노루 야마사키가 미국의 건축회사 로스 에머리 앤 손즈(Roth Emory & Sons)와 협력해 시애틀에 있는 IBM 빌딩의 단순미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하였다. 주건축재료는 철골이며, 당시까지 고층 건축에 주로 쓰이던 강철 골조 대신 연직(鉛直) 방향과 수직 방향의 합성력을 받도록 하는 로드 베어링(load-bearing) 강철벽을 사용하였다.

 

즉 건물의 바깥기둥을 일체화해 지상에 솟은 빈 상자처럼 세움으로써 수평하중에 대한 건물 전체의 강성을 높이고, 내부 기둥은 수직하중만 받게 함으로써 공간의 자유성을 높였다. 또 바깥기둥은 스테인리스강으로 덮인 고장력(高張力) 기둥을 1m 정도의 간격으로 배열해 지상 24m 지점에서 3개가 1개로 통합되는 형태를 취하는 등 수직·수평하중에 가장 효율적으로 대응하도록 설계되었다.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외에 이 단지 안에는 5동의 건물이 포함되어 있는데, 총 공사비용은 약 10억 달러(한화 약 1조 2980억 원)가 들었다.

 

세계무역센터는 국제무역의 중추 역할을 하는 뉴욕의 중심부에 있으며, 동시에 미국 경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물로서, 1990년대 이후 국제 테러단체들의 주요 공격 목표가 되어 왔다. 1993년 2월 23일 이슬람교 테러리스트들이 이 센터 지하 주차장에 폭탄을 던져 6명이 죽고 1,000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사건에 연루된 6명의 범인은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이 테러 사건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2001년 9월 11일 오전 7시 59분, 92명의 승객을 태우고 미국 보스턴에서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던 아메리칸항공 소속 AA11 항공기가 항로를 이탈해 8시 45분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과 충돌하였다.

이어 8시 14분, 65명의 승객을 태우고 역시 보스턴을 출발해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던 유나이티드항공 소속 UA175 항공기가 항로를 이탈해 9시 3분 세계무역센터 남쪽 건물과 충돌하였다. 9시 50분 남쪽 건물이 붕괴되고, 곧이어 10시 29분 북쪽 빌딩마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또 두 건물이 붕괴되면서 인근 건물에도 막대한 충격이 가해져 오후 5시 25분에는 무역센터의 제7호 건물마저 완전히 주저앉았다.

두 대의 항공기 납치범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부호이자 국제 테러리스트인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이 조직한 알 카에다의 조직원들이거나 빈 라덴과 연결된 다른 이슬람 테러 집단의 소행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2003년 현재까지도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이 사건으로 두 대의 항공기 탑승객 전원이 사망하고, 건물 안에 있던 2,500~3,500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는데, 실종된 사람들 모두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쌍둥이 빌딩에는 총 25만 2900평에 이르는 사무공간이 있는데, 상주인구 5만 명, 하루 평균 유동인구 13만∼15만 명이며, 사고 당시 모건스탠리·시티뱅크 등 세계적인 금융·투자기관과 유명 대기업을 비롯해 한국의 현대증권·동원증권·LG보험·LG증권 등 430여 개의 업체가 입주해 있었다.

 

연수익은 임대료 등을 포함해 총 2억 달러 정도이며, 2000년 7월 부동산 업체 ''실버슈타인 프로퍼니스''가 건축주인 뉴욕 항만청 등으로부터 이 건물을 99년간 장기 임차하면서 32억 달러를 지불했다. 2001년 11월 실버슈타인은 향후 5~7년 이내에 60층 미만의 건물을 다시 짓기로 결정하고,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추모관도 건립하기로 하였다. 다시 지을 경우 30억 달러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 록펠러센터(Rockefeller Center)

록펠러재단이 자본을 대고 R.후드, W.해리슨 등 건축가에 의해서 1931~1939년에 뉴욕시 중심가에 건조되었다. 처음에는 지상 70층으로 옥상에 전망대가 있는 높이 259 m의 RCA빌딩을 중심으로 주위에 13개 동의 고층 빌딩이 세워졌으나 제2차세계대전 후에 2개 동이 더 늘어났다.

 

종전에는 고층만을 추구하던 뉴욕시의 마천루건축에 대해 건물의 높이나 형태에 변화를 주어서 보다 기능적이다. 또, 적당한 공간을 마련하여 통풍·채광 및 교통인구의 처리를 원활하게 하는 등, 한 지구의 건축군을 종합적으로 계획한 것으로서 고층 시가지의 환경개선을 지향한 획기적인 것으로 손꼽힌다.

특히 RCA빌딩의 엘리베이터 샤프트를 핵(核)으로 해서 기준척도를 이용한 평면계획 등은 오늘날의 사무소건축의 전형이 되고 있으며 상업자본주의의 무정부적이고 추악하였던 종래의 마천루시대를 끝내고, 1929년 세계공황을 계기로 미국 경제의 재편성을 건축의 측면에서 보여준 건물이다.

영화와 쇼로 세계 최대의 극장인 라디오시티 뮤직홀(Radio City Music Hall)도 이 곳에 자리잡고 있다. 중앙의 로아플라자는 옥외 가든식의 휴게장소로, 여름에는 옥외 레스토랑이 들어서고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이 된다.

 

- 월가(Wall Street)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가로, 1792년 창립된 세계 제일의 규모를 자랑하는 뉴욕 주식(증권)거래소를 비롯하여, 대증권회사 ·대은행이 집중되어 있어,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다.

 

월가라는 이름의 기원은 뉴욕을 뉴암스테르담이라고 불렀던 1653년 이곳에 이민해온 네덜란드인이 인디언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쌓은 성벽(wall)에서 유래한다. 1783년 독립 이후, 공채(公債)와 은행주(銀行株)를 중심으로 증권거래가 보급되고 1792년 거래규약, 이듬해에는 거래소 건물이 세워졌다. 또한 운하주(運河株) ·보험주의 거래도 마련되었다. 1830년대에는 미국 자본주의의 발달과 깊은 관계가 있었던 철도건설과 결부되어 철도주의 거래가 성행되고, 모건과 로브의 활발한 사업과 함께 월가의 이름이 높아졌다.

1866년 대서양 해저전선이 부설되면서 런던과의 관계가 긴밀해졌고, 또 월가에서의 증권발행 및 거래액도 그 후 현저히 증가되었으며, 시장조직도 확대되었다.

처음 24명의 중계인이 거래규약에 서명했을 때에 비하여, 현재 뉴욕 주식거래소의 회원은 약 1,500명에 이르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외국 증권시장으로서의 월가의 역할은 매우 돋보였다. 1920년대에는 ‘신시대’라고 일컫는 번영의 시기를 맞이했다가, 세계공황으로 침체시대로 바뀌고, 1934년을 밑바닥으로 하여 뉴딜 시기로 접어들었다. 이와 같은 시기를 거치면서 월가는 19세기 런던의 롬버드가(街)를 대신하는 국제적 ·국내적 금융 중심지로서, 오늘날 이곳 주가(株價)의 동향은 전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 브루클린교(Brooklyn Bridge)

맨해튼섬 남단에서 이스트강(江)을 건너 브루클린에 이르는 다리로, 중앙부분은 현수교로 되어 있다. 1869년 착공하여 1883년 5월 24일 개통하였으며, 현수교 부분의 길이는 487m에 달한다. 현수교에는 강철선을 여러 개 꼰 강삭을 사용하고, 교각공사에도 직사각형의 목재 케이슨(caisson)을 사용하는 등 근대의 교량, 특히 현수교 건설에 새로운 기술 분야를 개척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는 J.A.로블링 부자의 설계·감독에 의한 것이다

 

- 엘리스섬(Ellis Island)

면적 약 0.1km2. 맨해튼섬 남서쪽 1.6km 지점의 만내에 위치하며, 맨해튼섬과의 사이에는 연락선이 다닌다.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섬에서 북쪽으로 0.5km 거리에 있다.

이 섬에는 미국의 입국관리에 관한 시설들과 이민국의 각종 설비가 있다.

 

- 국제연합본부(United Nations)

국제연합이 창설되자 영국·프랑스 등이 본부를 유럽에 설치할 것을 희망했으나, 소련·중국 등은 이에 반대하였다. 그리하여 미국이 이를 유치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 존 록펠러(John Rockefeller)의 기부금으로 약 7만m2의 토지를 구입하여 미국 뉴욕 맨해튼에 국제연합본부를 설치하였다.

 

국제연합본부 건물은 총회 회의장 건물과 사무국 건물로 구성되며, 사무국 건물은 1951년에 완공되었고, 총회 회의장 및 각 이사회 회의장이 있는 건물은 1952년에 완공되었다.

국제연합 본부에는 50개의 국제기구가 있는데, 그 중심은 국제연합이다.

 

국제연합본부는 국제연합과 미국의 협정에 의하여 ''불가침''이 보장되며, 미국은 각국 국제연합 대표, 국제연합 직원 등의 본부 출입을 방해하지 않기로 되어 있다. 또한 국제연합본부에 근무하는 직원은 입국수속 때에 외교관급의 대우를 받는다.

 

-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

약칭은 ‘NYU’이다. 1831년 4월 18일에 토머스 제퍼슨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역임한 스위스 출신의 정치가 앨버트 갤러틴(Albert Gallatin)의 주도로 ''뉴욕시티대학교(University of the City of New York)''라는 이름으로 설립하였고 1832년에 158명의 학생으로 개교하였다. 1896년에는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하였다. 1957년부터 TV·라디오를 통한 대규모 통신강의를 개설하여 교육텔레비전센터를 설치하였다. 미국에서 사립대학기관으로는 가장 규모가 큰 곳이다.

2010년 기준 인문, 치의학, 간호학, 수학, 미술, 고시대학, 경영, 의학 등의 16개 대학에서 학부과정과 대학원과정을 제공한다. 대부분의 대학 건물은 휴스턴가(街), 브로드웨이, 14번가, 식스 애비뉴로 둘러싸인 맨해튼과 브루클린 도심에 있다. 그중 모두 6곳의 중심지가 있고 주 캠퍼스는 그리니치빌리지 중심부에 위치한 워싱턴 스퀘어 캠퍼스이다. 그밖에 웨스트체스터 카운티(Westchester County)의 맨해튼빌대학, 로클랜드 카운티(Rockland County)의 세인트토머스아퀴나스대학에서 분교(branch campus)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런던, 파리, 프라하, 마드리드, 베를린, 아크라, 상하이, 부에노스아이레스, 텔아비브, 싱가포르 등 전세계 25개 도시에도 교육시설을 두었다.

부설시설로는 8개 도서관, 넬슨환경의학연구소, 코런트수학연구소, 부동산연구소, 아프리카하우스, 응용수학연구소, 응용기술센터, AIDS연구센터, 예술·공공정책센터, 대기·해양학센터, 디지털경제연구센터, 유럽학센터, 교육사회정책연구소, 현대미술연구소, 프랑스학연구소, 스페인 후안카를로스1세 센터, 중세르네상스센터 등이 있다.

졸업생 또는 교수로 노벨상을 수상한 대표적인 인물은 엘리후 루트(1912, 평화), 줄리어스 액설로드(1941, 생리의학), 클리퍼드 슐(1994, 물리), 프레더릭 라이너스(1995, 물리), 모하메드 엘바라데이(2005, 평화)이다.

 

- 컬럼비아대학교(Columbia University)

영국 식민지 시대인 1754년 뉴욕 지방 유지들이 영국 왕 조지 2세의 인가를 받아 설립한 ''킹스칼리지''로 출발하여 독립 후인 1784년에 ‘컬럼비아칼리지’로 이름을 바꾸었다. 1896년 근대적인 종합대학으로 개편하면서 ‘컬럼비아대학교’로 이름을 바꾸었고, 1912년 학교명이 비슷한 다른 대학과 혼동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정식 명칭을 ‘뉴욕시 컬럼비아대학교(Columbia University in the City of New York)’로 바꾸었다. 미국 동부 8개 명문 사립대학인 아이비리그에 속한다.

다른 대학보다 앞서 광산학부·도서관학부·사회사업학부 등을 개설하여 새로운 학문분야를 개척하였으며, 1902년 여자대학인 바나드칼리지(Barnard College)와 연계하여 여학생 교육을 실시하다가 1983년부터 컬럼비아칼리지에서도 여학생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2010년 기준 학부 과정은 컬럼비아칼리지, 공학·응용과학부(The Fu Foundation of School of Engineering and Applied Science), 일반대학(The School of General Studies)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반대학은 편입생이나 뒤늦게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을 위한 과정이다. 대학원 및 전문 과정으로는 법학대학원, 의과대학, 간호대학, 사회사업대학, 치과·구강외과대학, 공중보건대학, 국제·행정대학, 예술대학, 공학·응용과학대학, 건축·계획·보존대학원, 언론대학원, 경영대학원 등의 17개 대학원이 있다. 또 인근에 위치한 4개 학교(유대신학교, 교원대학, 연합신학교, 바나드칼리지)와도 연계하여 대학원 및 전문 과정을 진행한다. 특히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분야의 수준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캠퍼스는 맨해튼 북서부지역에 있으며 두 곳의 캠퍼스로 나누어진다. 주 캠퍼스는 모닝사이드 하이츠(Morningside Heights) 캠퍼스로 로메모리얼도서관(Low Memorial)을 비롯한 여러 도서관, 기숙사 등 대부분의 건물이 있고, 이곳에서 8km 떨어진 워싱턴 하이츠(Washington Heights) 캠퍼스에 의학·치의학·공공보건대학원 등으로 이루어진 메디컬센터가 있다.

부설시설로 버틀러도서관, 애버리건축·현대미술도서관을 비롯한 22개 도서관, 미술관, 플라네타리움, 라디오·텔레비전 방송국, 지질연구센터, 네비스 하이에너지 미립자물리연구센터, 지구관측소 등이 있고 요르단의 암만과 중국의 베이징에 글로벌센터를 두었다.

졸업생 또는 교수로 노벨상을 수상한 대표적인 사람은 로버트 먼델(1999, 경제학), 윌리엄 놀스(2001, 화학), 린다 벅(2004, 생리의학), 마틴 챌피(2008, 화학), 버락 오바마(2009, 평화) 등이다. 또한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 프랭클린 루스벨트, 버락 오바마, 유명 투자가 워런 버핏, 미국독립선언을 기초한 로버트 리빙스턴, 작가 J.D.샐린저, 소설가이자 화학자인 아이작 아시모프 등 저명인사들을 배출하였다.

 

- 할렘(Harlem)

맨해튼구(區) 북부에 있으며, 할렘강(江)과 센트럴파크 사이에 있다. 1658년에 뉴네덜란드의 네덜란드인 총독이었던 페테르 스토이베산트가 네덜란드의 하를럼을 기념하여 니우하를렘이라는 정착지를 세웠다.

 

독립혁명 당시 롱아일랜드로부터 퇴각하던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은 이곳에서 그의 군대를 재정비하고 1776년 9월 16일 현재의 할렘 서쪽인 할렘하이츠에서 적의 진군을 지연시키기 위한 전투를 치렀다.

 

18세기에는 농업과 목축 지대였으나 19세기에 들어와 여름 별장들이 많이 건설되면서 주거 중심지로 변모했다. 1880년대에 건축 붐을 타고 많은 아파트가 들어섰으나, 1893년의 경제공황 이후 여러 해 동안 임대되지 않자 건물주들은 흑인들에게까지 건물을 임대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레넉스가(街) 쪽에 흑인들이 많이 입주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이곳은 흑인들의 주거 및 상업 지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1920년대에 이곳은 ''할렘 문예부흥''이라는 창조적인 문학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시인 카운티 컬런, 제임스 W. 존슨, 앨린 L. 로크, 클로드 매카이 등이 신사실주의 성향의 대표적인 인물들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부터는 남부의 흑인이나 푸에르토리코인(人)이 많이 살게 되어 슬럼화가 심해졌다. 오늘날은 100만이 넘는 흑인이 살고 있으며, 할렘은 빈민가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할렘 동부에는 주로 푸에르토리코인이 살고 있고, 그 밖에 이탈리아계(系)도 많이 거주한다.

 

일부에서는 시가지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으나 생활환경은 아직도 열악한 편이어서 1960년대에는 많은 범죄와 폭동이 발생하였다. 1980년대 이후 지역사회단체와 시당국이 사회적 불균형을 개선하여 공공주택·의료시설 등이 보강되었다.

 

 

*뉴욕이 빌딩의 도시가 된 이유는?

 

빌딩이 세워진 곳은 뉴욕의 맨해턴섬 뿐이다.

맨해턴은 입지조건이 좋고, 강한 암반으로 지진이 없기 때문이다.

 

17세기 처음 맨해턴섬에 상륙한 네덜라드 사람들은 이곳을 ‘뉴암스테르담’으로 불렀다.

18세기에 들어서 영국함대가 네덜란드 사람을 내쫓아 점령하고, 요그공을 기념하여

‘뉴욕’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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