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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5 테리폭스와 함께 걷는 길, 캐나다의 오타와

프리 김앤리 2010. 6. 17. 04:55

 

 

 아주 오래 전에 봤던 다큐멘터리다.

 '희망의 마라톤'.

캐나다 출신 테리폭스(Terry fox)에 관한 이야기였다.

 

1958년에 태어난 그는 18살이 되던 해

오른 쪽 다리에 암 진단을 받고 무릎 위부분까지 다리를 절단하게 된다. 

‘암’이라는 불치병에 걸렸으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자신과 같이 죽음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캐나다를 횡단하는 마라톤을 하기로 결심한다.

 

대서양과 마주하고 있는 캐나다의 동쪽 끝에서 태평양이 있는 서쪽  끝까지

8,000Km가 넘는 길을 온전하지 않는 다리로  달리기 시작한다.

죽음의 고통속에서 싸우고 있는 암환자들을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그의 달리기는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더 큰 것이었다.

 

처음에는 어느 누구도 테리폭스의 달리기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건강을 염려한 그의 부모들도 반대했다.

그러나 그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성한 왼쪽 다리로 두 걸음을 가볍게 뛴 후, 의족을 단 오른쪽 다리를 한번 옮기는

고통스럽지만 그만의 독특한 주법을 고안해 달렸다.

의족을 단 왼쪽 다리에 고름이 생기고 퉁퉁 붓는 고통을 이겨내며

그는 ‘희망’의 마라톤을 이어간다.

처음에는 하루에 1Km도 달리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하루에30Km를 넘는 거리를 달리는 인간 승리를 보여준다.

 

반대하던 그의 가족들도 그를 돕기 시작했고, 외로운 달리기가 시작된 몇 달 뒤

미국의 한 방송에 그의 인터뷰가 나가고 나서 부터는

전 캐나다인과 미국인들의 가슴속에 ‘테리 폭스’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가 달리는 곳곳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와 함께 일부 구간을 뛰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사막과 같은 캐나다의 황량한 벌판을 달려가는 그의 모습이 뉴스에 나오면

사람들은 그의 고통을 함께 하고  희망을 일구어나갔다.

 

캐나다의 동쪽 끝에서 세인트 존스 항구를 지나 퀘벡을 거치고 토론토에 도착하는 동안, 잘려나간 그의 다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염증이 심해져서

사람들은 그만 뛸 것을 권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달리기 시작한 지 144일째 되는 날,

온타리오의 썬더 베이에 도착한 그는 더 이상 달릴 수 없었다.

암이 폐까지 전이되어 병원에 입원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의 달리기는 끝이 났다.

그러나 그는 143일간 무려 5,373Km의 거리를 달려왔다.

죽음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전하던 사람.

다음해인 1981년 9월 그는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했지만 '희망의 마라톤'의 상징이었던  

그는 지금도 캐나다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있다.

 

제법 오래 전에 봤던 다큐멘터리였는데 영화를 보면서 온 몸에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그가 캐나다 사람이었는지 어쨋는지 한동안 잊어버리고 살고 있었는데

오타와 국회의사당 앞에 서있는 그의 동상을 보면서 그가 달린 곳이 이 곳이었구나라는 생각에 다시 한번 소름이 돋는다.

 

 

<테리 폭스와 함께 걷는 길, 오타와>

오타와는 테리 폭스의 동상이 서있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작한다.

바로 앞에 있는 관광안내소엘 들어간다.

왜 바로 여기에 테리 폭스의 동상이 있냐고 혹시 그의 고향이 오타와였나고,

아니면 다른 무슨 이유가 있냐고 물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너무나 단순하다.

 

그는 캐나다 사람들의 영웅이라고, 그의 정신을 우리는 높이 사고 있으며

그가 전한 희망이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여전히 살아있단다.

테리폭스의 동상은 오타와에만 있는 게 아니라 캐나다 전역에 아주 많단다.

뛰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도 그의 길을 가봐야겠다.

비록 그가 지나간 길이 아니라하더라도 그의 정신은 캐나다 곳곳에 다 살아 있다질 않는가?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에는 사람들이 걷는 길을 잘 조성해 놓았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작해서 국립미술관, 전쟁박물관을 지나

알렉산더 브릿지로 오타와를 관통하고 있는 리도강을 건너고 강가를 따라 걷다가

다시 다른 다리로 리도강을 건너 국회의사당이 있는 웰링턴 거리까지 돌아오는 길.

지도도 잘 나와 있다.

 

테리 폭스와 함께 걷겠다고 생각했는데 캐나다의 역사들이 보인다.

그동안 우리의 생각은 캐나다는 그저 역사가 짧은 나라이겠거니, 사람들이 작게 살아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있는 사회이겠거니,

아직도 영국에서 이 나라의 총독(?)을 임명하고 있는다는 정도의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지난 며칠동안 열심히 읽고 있는 캐나다역사에 관한 책이 이곳에 오니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캐나다는 아주 복잡한 유럽의 역사와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

대영제국과 프랑스제국의 싸움, 아일랜드의 기근, 유럽 사람들의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이주,

미국의 독립전쟁, 미국과 캐나다의 전쟁,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유럽 이주민들 사이의 투쟁과 거래...

남편은 쉬지 않고 내게 역사 강의를 한다.

어렵다.

얽히고 얽힌 그들의 역사를 씨줄과 날줄로 다시 제대로 엮으려면 아직 한참은 더 캐나다를 돌아다녀야 할 것 같다.

단지 유럽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처음 캐나다 땅에 도착해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들어가면서

그들의 개척과 탐험이 그리 만만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금방 이해된다.

그래서 오타와 걷는 길이라고 안내해 놓은 지도에서 오늘 우리가 걷고자 하는 길이

“예전 그들의 조상이 탐험하고 개척해 나간 바로 그 길”이라는 사실에 아주 공감할 뿐이다.

1600년대 Samuel De Champlain이 바로 이 곳에 섰듯이 말이다.

 

그래서 리도강이 내려다 보이고 오타와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 곳

네피언포인트 공원(Nepean Point Park)의 제일 꼭대기에 Samuel De Champlain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캐나다는 역사는 짧지만 그 짧은 역사 속에서 그들의 나라를 세우는 데 관련한 동상들이 많이 보인다.

 

국립미술관 앞.

거대한 거미 동상이 눈에 띈다.

왜 거미를 국립미술관앞에 세워두었는지 ....

 

네피언 포인트 공원의 꼭대기에서 바라보이는 국회의사당.

토론토는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높은 빌딩 숲이었는데 이곳 오타와의 중심은 참 고풍스럽다.

어찌보면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와 아주 많이 닮아있다.

의사당 건물이 150년밖에 안되었다는데 돌로 지어진 건물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검게 그을린 외부 색깔 때문에 그런지 세월이 드러나는 것 같다.

그리고 도심의 한 가운데 서서 주변을 압도하고 있는 분위기도 그렇고...

에딘버러의 무게와 같이 겹쳐진다.

 

그 앞에 한번 서본다.

 

알렉산더 다리를 걸어서 건넌다.

알렉산더 맥킨지(Alexander Mackenzie)는 1700년대 후반 캐나다의 동쪽 끝에서 시작하여 거의 캐나다 서부까지를 개척한

위대한 탐험가다.

 

알렉산더 다리를 통해 한겨울이면 다 얼어, 천연 스케이트장으로 변한다는 리도강을 건너면 캐나다 문명박물관을 만난다.

저녁 5시가 넘은 시각. 북반구의 여름 햇살은 아직까지 강렬하다.

 

해가 지지 않는 여름 저녁, 사람들은 잔디밭에 앉아서 책을 읽고 학생들은 어울려서 자전거를 탄다.

 

리도 강 건너로 국회의사당이 빤히 보이고...

 

리도강에는 노를 젓는 작은 배들이 보인다

 

우리는 공원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간다.

테리폭스를 생각하며, 먼 옛날 캐나다를 개척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또 유럽인들보다 훨씬 전부터 살아왔던 태나다의 원주민들...

그런데 여기는 정말 단풍나무가 많다.

 

다시 리도강을 건너서...

 

웰링턴 길로 돌아왔다.

국립도서관도 지나고 법원도 지나서...

 

다시 돌아온 의사당 앞.

5 Km는 넘는 길이다.

한쪽 다리에 의족을 달고서도 테리 폭스는 5,000Km도 더 달렸다는데...

우리가 지금 지구를 여행하면서 걷는 거리는 얼마쯤 될까?

뚜벅뚜벅 걸어서 세상을 보겠다고 늦은 나이에 나선 우리들.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뚜벅뚜벅 우리의 길을 걷는다.

 

 

어스름 저녁이다.

저녁 9시가 다 되어 가는데 아직 햇살 기운은 남아있다.

사람의 눈에는 햇살이 남아있다, 남아있지 않다, 밝다, 어둡다 정도만 인식하는데

그래도 카메라는 이 밝음 속에 숨어있는, 아니 어둠속에 숨어있는 푸른 빛깔을 선명하게 인식하나 보다.

실제 바깥 풍경은 이렇게 어둡지 않았는데, 검푸르지 않았는데 사진속에는 푸른 빛깔이 아주 선명하다.

컨페더레이션 광장 앞에 있는 전쟁기념비에서..

일차대전, 이차대전 그리고 한국전을 거치면서 이름없이 사라져간 군인들을 기념하는 탑이다.

 

 

단계식으로 만들어져 있는 리도 운하를 배경으로...

밤이 깊어진다.

이제 들어가서 자야겠다.

 

오늘 우리의 숙소는 감옥소다.

니콜라스 감옥인터네셔널 호스텔(Nicholsa Jail International Hostel).

1862년부터 1972년까지 실제 감옥으로 쓰였던 곳이다. 지금은 내부를 개조해서 호스텔이다.

슬로베니아의 류블라냐에서도 감옥 호스텔을 간 적이 있는데 거기보다 여기는 정말 감옥같다.

층층 출입구의 육중한 나무문, 기다란 복고, 좁은 철문, 창살...

“무슨 짓이고... 돈 내고 감옥에 다 들어오고...”

 

 

감옥까지 와서 여러명이 함께 쓰는 도미토리를 쓰기 싫어서 둘이만 들어가는 방으로 정했다.

정말 조그많다.

한쪽 벽에 딱 맞은 이층침대와 책상 하나 들어갈 공간,

그리고 그 옆으로 예전에는 변기가 있었음직한 곳에 락커가 딱 맞춰 들어있다.

다른 잡범(?)들하고 같이 안 쓰고 단 둘이 쓰니까 감옥이라도 제법 아늑하다.

 

감옥 호스텔에서 이틀을 묵고 싶었는데 다음날은 방이 다 찼다고 해서 방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세상에....

돈내고 들어가는 감옥이 만원이라니...

 

어제 낮에 직접 찾아가서 미리 예약해 둔 호스텔로 옮겼다.

오타와 백패커스 인. 전날 찾아갔을 때는 아주 좁고 사람이 많아 정신이 없는 것 같더니만

어쩔수 없이 하루 자야한다고 포기하고 들어가서 그런지 한번 더 보니 괜찮다.

아마 어제 는 그 큰 감옥소하고 비교가 되어서 그랬는가 보다.

박작거리는 사람들이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오타와의 국회의사당>

오늘은 의사당 투어를 하자.

영어 가이드 시간에 맞춰서 찾는다.

 

어제 저녁 발견한 풀리지 않는 의문.

오타와의 의사당 앞에 밝혀 놓은 횃불이다.

물로 된 분수위에서 진짜 불이 타오르고 있다.

휘발유 냄새도 나는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저런 조화를 부리는지 모르겠다.

 

의사당 도서관.

투어를 신청해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안에서는 사진을 못찍고...

뭐... 다른 나라에서 본 도서관이랑 거의 비슷비슷...

우리가 이제 너무 많은 것을 봤나?

그저그저..

 

오타와의 국회의사당은 아주 인기있는 곳이다.

관광객들은 물론 아이들에게도 좋은 견학코스인가 보다.

방학이라는데도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아주 여러 팀들이 의사당을 찾는다.

의사당 안을 돌아보면서 발견한 안내문에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 대상으로 하는

펠로우 쉽을 안내한 내용이 있었다.

이렇게 이들은 민주주의를 배우는 것인가?

우리나라에도 이런 견학 프로그램이 있나? 아니 견학 프로그램은 당연히 있을거고

펠로우 쉽 같은 프로그램이 있는지?

 

오늘 우리의 안내자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다.

그도 여기에서 펠로우쉽을 하는 학생이다.

어찌나 영어가 빠른지, 어찌나 발음을 굴리는 지 거의 못 알아들었다.

그냥 주변을 돌아보면서 감으로 때려잡고 상상하고, 눈으로 보는데 만족할 뿐.

 

의회가 열리는 회의실.

생각보다 아주 조그맣다.

 

의사당의 중앙현관.

유럽으로 치면 이런건 별로 장식도 못된다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의사당의 주변에는 제법 많은 동상들이 있다.

그런데..

근엄하게 서있는 엘리자베스 2세의 동상은 아무 찾는 이 없이 쓸쓸한데 반해

 

이 동상 앞에는 사람들이 북적인다.

 

무슨 동상?

동상이 모두 여자들이다.

다섯 여성들.

한 명은 신문을 들고 있고, 다른 둘은 웃으면서 서 있고, 또 다른 둘은 차를 마시는...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근엄하게 서있는 동상이 아니라

사람들과 같은 높이에 있어서 그 옆에 있는 의자에도 앉고, 손을 만지기도 하고

그들이 마시는 차를 같이 마시는 시늉을 하기도 하고...

 

“여성들도 인간이다”

“Women are Persons!"

캐나다 여성들의 권리를 위해 싸운 사람들의 동상이다.

1929년 이들의 투쟁을 알리는 기사를 실은 신문을 들고, 승리를 기념하며 함께 차를 마시는 모습을 표현해놓은 것이다.

그 때 그 기사의 제목이 “Women are Persons!" 였다.

뜬금없이 남편은 한마디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렇게 다들 투쟁을 통해서 여성들의 권리를 인정해줬는데

우리나라는 안 그런 것 같다나? 공짜로 준 것 같다나?

무신???

이걸 보수적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무식하다고 표현해야 하나???

 

 

<이 사람들의 일상, 그리고 우리의 일상> 

 

맥주를 한잔 하고 싶었다.

그런데 여기는 슈퍼에도 맥주가 보이지 않는다.

여행 와서 그 동네산 맥주를 마시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데!!!

도대체 어디서 맥주를 사야 하나?

 

아!!! 여긴가 보다.

술만 따로이 파는 곳이 보인다.

들어갔다.

아!!! 그런데 맥주가 진열되어 있지 않다.

그냥 한쪽 벽면 가득 맥주 상표만 붙어 있다.

어찌 알라고...

주로 우리가 맥주를 살때는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샀는가, 그리고 가격을 보고 판단하는데...

이 사람들은 어떤 맥주를 마시는지 어째 알라고.

어느 것이 캐나다산 맥주냐고 물으니까... 다 그렇단다.

어떤 종류를 원하냔다?

우리가 맥주 종류를 우째 알아서... 우리는 그냥 하이트냐 카스냐 이런 것만 알고 있는데...

맥주 한번 사기 어렵다.

하여튼 마침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어찌어찌 사서 한잔 마셨다.

 

과일이 엄청 비싸다.

비싼 과일을 사먹어야 하는 한국과 달리 여행의 즐거움은 과일이 엄청 싸다는 건데...

여기는 한국하고 같다. 콩알만큼 담아놓고서 5~6천원은 예사다.

야채인 토마토까지 비싸니 우리는 무슨 과일을 먹어야 하지?

 

바이워드 마켓 안에 있는 쿠키가게.

작년에 오바마가 와서 여기서 쿠키를 사먹었다나?

오바마가 직접 돈 내면서 쿠키를 사먹는 사진을 대빵만하게 걸어놓고

이름까지 오바마 쿠키로 만들어서 팔고 있다.

우리는 그런 것 없을까?

노무현 국수, 김대중 아이스크림 같은...

 

바이워드 마켓 가판대.

또 귀걸이가 눈에 띈다.

캐나다제 귀걸이나 하나 사볼까?

사실 귀걸이보다 인디언들이 사용했다는 행운을 부르는 드림캐처(Dream catcher)가 더 눈에 띈다.

 

바이워드(Byward) 거리를 알리는 간판.

문득 참 캐나다답게 보인다는 생각을 해본다.

 

티셔츠를 파는 가게를 들렀다.

여행 준비할 시간이 별로 없어서 가방을 싸면서

소매없는 티 셔츠로 집에 있는 걸 하나 그냥 푹 집어넣어서 왔는데

여기 와서 보니 다 낡아서 흐물흐물한다.

하나 사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는데 모퉁이에서 조그만 옷가게를 발견했다.

Organic 티셔츠란다.

티셔츠가 오르가닉이면 도대체 어떻다는 거지?

오르가닉이거나 안오르가닉이거나 색깔이 마음에 들어서 10달러로 깍아서 덜렁 하나 샀다.

그런데 사실 티셔츠의 예쁜 색깔보다 가게 주인이 더 매력적이다.

웃는 모습이 아주 유쾌한...

 

 

국회의사당 앞이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사람돼지 인형 여러 마리은 편안하게 눕히고

진짜 돼지 모양을 인형을 옆으로 쓰러뜨려 놓는다.

무슨 일이지?

여러 방송국에서 나와서 취재 경쟁까지 벌인다.

물어보니 “Empty Pension' 에 관한 이야기란다.

취재하는 사람들 사이로 머리를 삐집고 들어가 리포터로 나온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데

역시나... 그의 말도 너무 빠르다. 너무 굴린다.

으악...

연금이 동이 났으니 더 달라는 이야기인지...

연금이 동이 났으니 다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이야기인지...

돼지같이 퉁퉁 살찐 사람들은 편안히 누워있고,

진짜 돼지들은 오히려 홀쭉하니 한쪽 옆에서 쓰러져 있는 것으로 보아

연금을 너무 많이 줘서 돼지처럼 빈둥거리면서 살이 찌고 있다는...

그래서 연금을 줄여야한다?

혹은 아니면 다른 방안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라는 짐작만 해 볼뿐...

짧은 영어로 이해가 안되니 우리나라 상황을 여기다 적용시켜 볼 뿐이다.

진짜 영어 공부 좀 더해겠다.

 

짧은 영어로 조바심이 나고 불편한 우리와 달리 이들의 일상은 아주 느긋하다.

천천히 강물을 따라 흐르는 저 보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