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20100618 발가락에 물집이 생기다. 캐나다 몬트리올

프리 김앤리 2010. 6. 20. 12:03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들으면

어느 팔자 좋은 부부의 기분나쁜 넋두리일지도 모르겠다. 

항상 그랬듯이 여행이라는 게 만만치는 않다.

여름이면 바닷바람 시원하게 불어오는 해운대 우리 집을 놔두고

(참, 한국은 지금이 장마철이라니 창문을 못열지도 모르겠고, 시원한 바람 대신 찝찝한 바람이 불어오는지도 모르겠다.)

이게 무슨 사서 고생인지.

 

오타와에서 세시간 반동안이나 버스를 타고 와서 도착한 몬트리올의 한 호스텔.

International Hostel은 이곳보다 조금 더 비싸면서 아침밥도 안준다고 해서

사설 호스텔을 찾았다. 인터넷 상으로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평이 괜찮은 곳이었다.

사실 그 평이라는 것도 그리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젊은 외국애들이 적어 놓은 것이 대부분이니까.

그래도 아무 것도 모르는 처음 도착한 도시에서 외국 애들이건 젊은 애들이건 하여튼 다른 사람들의 평에만 의존할 뿐이다.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다시 조금 더 걸어서

무거운 배낭을 울러매고 내 몸하나 겨우 지나갈 좁은 층계를 낑낑거리고 올라와

사흘동안 우리가 묵을 방에다 짐을 풀었다.

원래부터 각오를 하기는 했지만 캐나다의 물가가 으악! 악! 엄마야! 우짜노!! 온갖 비명이 다 튀어나올 만큼 비싸서

주저없이 6명이 같이 자는 도미토리를 정해 겨우 짐을 풀었다.

이층 침대까지 기어 올라가야 겨우 오늘 밤 잠을 청할 수 있는 곳.

이게 무슨 '사서 고생'인지...

 

짐만 풀었다고, 잘 방을 구해놓았다고 다 된 것은 아니다.

먹어야 한다.

아침밥은 주지만 점심하고 저녁하고 하루에 두 끼는 더 남아있다.

우리보다 조금 더 팔자좋은 사람들은 근사한 식당에 앉아 주문해서 식사를 해결하면 되겠지만

우리 팔자는 여기까지 인가보다.

여행은 하되, 내 손으로 밥을 해먹어야 하는...

스텝으로 있는 Paul한테 슈퍼마켓이 어디있는지 물어서

사흘동안 먹을 거라고 쌀이랑, 돼지고기랑, 야채랑 한가득 사가지고 돌아왔다.

오늘 저녁에는 돼지고기 구워서 고추장하고 상추쌈을 해먹어야 겠다.

세계 곳곳에 있는 호스텔의 부엌이 내 부엌이 된지는 이미 오래다.

대충 어디에 무엇이 있을 것이라는 감도 팍팍 오고..

 

호스텔에 있는 모든 여자들한테 작업을 거는 프랑스 남자의 눈꼴 사나운 장면도 참아넘기고,

혼자서 닭튀김 10조각에 볶은 국수 큰 접시를 다 먹어치우는 대만 여자애도 보고,

저녁 내내 거실에 앉아 월드컵 보고, 밥 먹고 그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뉴질랜드 커플도 만나고...

북적거리는 호스텔에서 잠 한번 푹 잘잤다.

정말 이건 복이다.

아무데나 엎어지면 잠들 수 있는.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내린다.

가방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이번에 사가지고 온 ‘초경량 우산’이라는 게

초경량에만 초점을 맞췄지, 견고함이나 유용성에 있어서는 거의 빵점이다.

넓이가 너무 작아서 내 어깨도 겨우 가려주더니만 바람이 휭~ 부니 뒤로 제껴지고 꺽어지고 난리도 아니다.

며칠이나 더 버텨줄 지 모르겠다.

비가 오니 어디를 가야할 지 모르겠다.  처량하기도 하고...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어갔다.

이것 저것 자료를 모은다.

몬트리올 인포메이션 센터, 끝내준다.

온갖 자료들이 다 있다.

인포 직원들의 설명도 아주 친절하고...

 

추운 날씨의 캐나다에는 어느 도시에나 발달해 있다는 언더그라운드만 돌아다닌다.

밖으로 전혀 안나가고 몇시간은 돌아다닐 수 있도록 땅 속이 잘 정리되어 있다.

'땅 속 도시'라는 게 사실 지하 상가다.

온통 가게 뿐이다.

별로 관심이 없다.

쇼핑은 천성적으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이턴 상가 아래 바닥에 월드컵 대진표를 붙여놓았다.

한국이 그리스에 2:0으로 이긴  것도 이미 적어 놓았다.

내일은 아르헨티나 전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봐야지~~~

 

미술관 한군데를 잠시 들렀다가, 비오는 거리만 이곳 저곳 헤매다 들어왔다.

오늘도 이 낯선 부엌에서 저녁을 해결한다.

다시 잠이 든다.

 

모두들 여전히  자고 있는 아침 7시.  한국 시간 저녁 8시에 맞춰서 일어났다.

아르헨티나와의 한판 대결.

혹시 다른 사람들 다 자고 있는데, 우리 둘이 흥분해서 소리지르면 어떻하나 고민했는데

웬 걸, 김만 빠진다.

탄식 소리가 컸던지 아침 일찍 일어나 있던 캐나다 애는 괜히 우리 우리 옆에서 안타까워만 한다.

한 두골도 아니고 네 골씩이나...

같은 숙소에 아르헨티나 애들이 없어서 다행이지...

그냥 잠이나 푹~~ 잘걸...

 

오늘은 하늘이 아주 맑다.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겠다.

 

마리아 대성당.

퀘벡주는 캐나다의 어디보다 더 유럽적인 곳이다.

그래서인지 성당이 눈에 제법 띈다.

유럽의 성당과 비교하면 뭐, 그저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의 종교는 인정하고 이해하자는 여행자의 기본 자세에 충실한다.

그리고 성당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염원,

‘모든 사람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는 촛불을 하나 밝힐 수 있어서 이제 성당에 들어서면 편해진다.

여행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서

감사하면서 촛불을 밝힌다.

 

광장을 지난다.

하루 저녁 잠 잘 방을 구하는 것도, 한끼 밥을 먹는 것도,

그리고 길을 찾아가는 것도 모두 우리가 직접 해야 할 몫이다.

 

이 꼬마야들은 좋겠다.

밥도 안해도 되고, 방도 안구해도 되고, 길도 안 찾아도 되고...

그냥 잡고 있는 끈만 따라가면 되는 꼬마들이 부럽다.

마치 우리한테 ‘메롱’하고 있는 것 같다.

 

빌딩 숲 사이를 걷는다.

몬트리올의 길은 마치 바둑판 같다.

딱딱 구분되어 있는 가로 세로길.

그런데 구시가지가 따로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기야 역사라고 해봐야 3~4백년 밖에 되지 않으니.

고대와 중세가 살아있는 유럽의 내공을 따라갈 수야 없겠지.

여전히 걷고 또 걷고.

 

마냥 걷기만 하면 힘들테지요.

‘가다 못가면 쉬었다 가지~~~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아픈 다리를 기대지는 못할망정

잠시 쉬었다 갈 수는 있다.

거의 강변도로까지 내려와서. 

 

몬트리올 고고 역사박물관.

‘다시 우리가 칠레를 여행한다면

입던 옷이라도 팔아서 이스터 섬에 가고야 말꺼다‘

어디서 만나든지, 그것이 모형이든지 사진이든지

이스터 섬에 있는 거석상만 보면 드는 생각이다.

10년전 칠레를 갔을 때 이스터 섬엘 갈까... 아니면 남미 대륙의 끝 푼타 아레나스로 갈까?

고민하다가 푼타 아레나스를 택했다.

그래서 파이네 국립공원에서 트레킹도 하고 빙하도 보고...

멋졌다.

그러나 경비때문에 포기하고 온 이스터 섬이 내내 마음에 남아있다.

 

또 걷는다.

구시가를 걷는데 현대식 건물사이에 구건물이 있다.

여전히 지도책을 보면서... 설명을 읽으면서...

 

또 한번 쉬어볼까나.

오늘은 ‘내 사진 특집’이다.

몬트리올 구석구석을 걷고 있는.

 

사진에는 나 혼자만 등장하지만 항상 둘이 함께 걷고 있다는...

쉬어도 같이 쉬고 있다는...

 

노트르담 성당안으로 들어갔다.

‘파리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이랑 뭐 그리 다를라꼬?’

기대도 안하고 들어갔는데

화려한 내부 장식에 깜짝 놀란다.

 

아름답다!!!

화려한 제단에서 눈을 떼지 못하겠다.

 

눈부시다.

오랫동안 성당안에 머물러 있었다.

 

노트르담 성당은 여행자들도 많이 찾지만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다.

특히 학생들이 단체로 많이 들어온다.

니네들도 좋겠다.

선생님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니까...

 

호스텔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빵 두조각, 시리얼, 우유, 커피)만으로 참 많이도 걸었다.

배가 고프다.

차이나타운 거리로 들어섰다.

점심때만 제공되는 Lunch Special을 먹어야겠다.

이 집에는 무엇을 팔고 있나?

가게 앞에 붙어 있는 메뉴판을 열심히 본다.

유리창 뚫어지겠다.

 

이 가게도 기웃.

진짜 진지하다.

ㅋㅋㅋ

머리 안으로 들어가겄다.

 

차이나타운 거리를 다 훑었다.

먹고 살아볼라고...

가격이 얼마인지?

현지인들이 많이 있는 지?

식당은 깨끗한지?

 

여행 나온지 며칠 됐다고, 벌써부터 이리 먹는데는 열중하고 있는지...

시간만 나면 같이 밥먹던 형부와 언니는 오늘 무엇을 먹었을까?

혹시 고등어 구이를 해먹지 않았을까?

회라도 한접시 했을까?

대구 뽈짐 한번 사먹고 오는건데...

ㅋㅋ

여행 나온 것 맞는갑다.

둘이서 죽을 맞춰 먹는 이야기만 한다.

 

그나 저나 온동네 유리 다 뚫어질듯이 살펴본 어느 식당의 런치 스페셜을 먹을까???

 

그렇게 찾아 들어온 집.

런치 스페셜 세트 메뉴 두 개를 시켰다.

우선 먼저 나온 스프.

물(차)도 공짜로 준다.

공짜 좋아하면 머리 벗겨진다던데...

머리 벗겨져도 좋으니 공짜로 많이만 주면 좋겠다.

 

연이어 나온 본 메뉴.

야채 볶음,  튀긴 닭조림, 그리고 각자 볶음밥 한 공기씩과 스프링롤 한 개씩.

모두 다 합해서 10.25 캐나다 달러다.

여기에 세금, 팁까지 더해서 12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14,000원쯤 한다.

선방했다.

 

배도 부르고, 기분도 좋고...

아까는 식당 밖에 없는 것 같더니만

배가 부르니 차이나타운의 다른 것들도 눈에 보인다.

한국에 있으면 밥 한끼 먹는다고 이리 달라지지 않는데,

여행을 나오면 뱃속에 뭔가 들어가야 주변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 드라마가 여기도 인기인가 보다.

신데렐라 언니도 벌써 나왔고, 꽃보다 남자, 공부의 신...

 

캐나다에는 중국 이민자들이 아주 많은데

그 중에서도 여기 몬트리올에 중국 사람이 제일 많이 산단다.

주로 1800년대 중반 철도 건설이나 광산 개발을 위한 노동자로 온 사람들이라고...

 

몬트리올 문화 예술의 심장부, 'Place de Arts' 거리.

늦도록 해가 지지 않는 몬트리올의 여름밤

이 거리에는 재즈와 연극, 뮤지컬, 음악 공연이 줄을 잇는다.

낮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고 여기 저기 작은 공연을 하고 있다.

 

또 걷는다.

Art 거리를 따라...

 

나도 나이가 들면 저 할아버지들처럼 길거리에서 공연이나 할까?

무슨 공연을 하지?

“일하라, 마치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 처럼”

우리 블로그의 프로필 난에 옮겨 놓은 한 인도 시인의 시처럼

나이가 들어서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나도 즐거운 뭔가를 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뙤약볕 아래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하는 저 사람들.

물론 모금을 위한 연주이기는 하지만, 행복해 보인다.

 

몬트리올의 중심거리에서 시작해서

이곳 저곳을 돌아, 해안가 길까지

구시가지를 돌아, 차이나타운으로, 다시 예술의 광장 거리로..

얼마를 걸어 다시 중심거리까지 걸어왔다.

몬트리올 공원이 있는 산으로 올라가고 싶은데 거기까지는 지하철을 타야겠다.

짠순이 짠돌이의 작전대로라면 여기까지도 걸어 올라가야 하겠지만

어제 인포 센터에서 걷기에는 너무 멀 것이라는 엄포도 있은데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하철 티켓이 두장 남는다는 사실이다.

몬트리올에 도착해서 숙소까지 찾아오면서 6장 묶음짜리 지하철 티켓을 샀기 때문이다.

버스 터미널과 숙소까지 왕복으로 따지자면 4장만 사면 되는데,

6장 묶음으로 사면 이익이었다.

 

지도상으로 보면 Peel 거리에서 직선으로 바로 올라가면 몬트리올 산이 나오는 것 같은데

두 장 남은 지하철 표를 써 볼 심산으로 지하철에 지하철을 갈아타면서까지 돌아서 돌아서

산을 오른다.

 

우리가 몬트리올 산을 오른 이유.

하나는 산 위에서 몬트리올 시내 전체를 조망하고 싶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산 위에 있다는 성요셉 대성당을 가기 위함이었다.

성 요셉성당은 높이 97m로 로마에 있는 바티칸 성당 다음으로 세계에서 높은 성당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골목을 돌아

성당 앞에 선 순간!!!

그 장엄함에 탄성을 질렀다.

땅이 넓어서 그런가?

캐나다 사람들, 성당 짓는데도  통 한번 대빵 크다.

 

덥다... 덥다...

비가 내리던 어제의 쌀쌀함은 온데 간데 없다.

터키에서 사서 한국을 와서도 봄이 오지 않아 줄창나게 입고 다녔던 검은 가디건이 너무 덥다.

민소매이거나 말거나 벗어버렸다.

초경량 우산이 양산으로 변해서 약간 힘쓰고 있다.

성당을 오르는 일도 힘들다.

너무 먼 거리에... 그리고 더위에...

 

성요셉 성당은 요셉에게 바쳐진 성당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이 성당의 건설을 추진한 앙드레 수도사는 병자들을 치료해 주는 능력을 갖춘 기적의 인물이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곳에서는 아픈 사람들을 위한 미사를 따로이 하고 있다.

제단의 양쪽으로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나무 조각으로 해서 붙여 놓았다.

그 중에 두 얼굴을 가진 제자가 있어 누군가 보니 베드로 상이다.

그의 다리 밑에는 닭도 한 마리 조각해 놓고...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 부정할 것이라는 이야기에서 나온 거겠지?

그 아래, 어깨 넓은 여인 하루 종일 몬트리올 시내를 걸어다니고 있는 여인도 지나간다.

ㅋㅋ

 

지도에 의하면 성요셉 대성당을 나와 조금만 걸어서 바로 오른쪽으로 나있는 산길을 따라 걸으면

몬트리올 시내가 다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암만 걸어도 오른쪽으로 나있는 산길이 안 보인다.

어제 인포 센터에서 말할 때 지하철 내려서 11번 버스를 타라고 했는데,

한참을 걷다보니 11번 버스가 올라가는 게 보인다.

옳지, 저 길이구나..

땀을 뻘뻘 흘리면 굽이굽이 올라갔다.

아!! 그런데 막다른 길이다.

동네 사람한테 물어본다.

어떻게 하면 산으로 올라가냐고.

또 가르쳐준다.

시키는 대로 지름길을 따라 산을 오른다.

여긴가?

나름 햇빛이 비치는 방향까지 가늠하며 이 쪽이 동쪽입네, 서쪽입네 해가며

감을 잡고 걸어가는데 어쩐지 뺑뺑 도는 느낌이다.

얼마를 걸었는데, 처음 시작한 지점이 나온다.

산을 더 올라가서 돌아가야 하나?

산 속으로 들어가 또 한참을 돈 것 같은데 또 그 자리다.

또 물어본다.

친절한 할아버지, 열심히 설명해주신다.

너무 어렵다. 너무 상세한 설명이다.

오른쪽으로 가라, 혹은 왼쪽으로 가라 딱 한 방에 설명해줘야 하는데

이렇게 돌아서 뭐를 만나면 또 돌아가고 내려가고 다시 돌아서 뭐를 만나면 ....

할아버지 왈, 설명은 이렇게 복잡해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란다.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란 뜬금없는 희망의 말만 믿고

“당신의 설명은 정말 완벽해요... 진짜 고마워요...” 입에 발린 감사의 말만 전하고

하여튼 내려가라고 한 말에 집중해서 길을 내려간다.

더워 죽겄다.

미치겄다.

그냥 지하철 표 날리고 peel 역에서 걸어 올라오는 건데...

 

얼마를 걸었는지 모른다.

성당을 나와서 제일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 잡았나 보다.

지금까지 걸었던 전혀 반대 방향에서 우리가 찾고자 하는 몬트리올 산의 공원이 나온다.

중간에 잠깐 시가지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 비슷한 걸 만나기도 했지만

이미 몸과 마음이 다 지쳐 있던 터라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몬트리올 공원 안에 있는 작은 호수에 도착했다.

저 사람은 벤치위에 누웠구만...

우리도 드러누워 버릴까?

그래도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사람들이라???

신발 벗고, 양말 벗고 땀에 절은 우리 발에 시원한 바람을 맞게 해 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물만 디립다 마시고...

 

다시 걸어가자.

이번엔 peel역까지 걸어내려가야 한다.

앞에 가는 저 아저씨의 파란 통 안에 팔고 있는 아이스크림이나 하나 사 먹을까?

달콤한 거라서 안된단다.

독한 남편.

이 정도 걸었으면 달콤한 거 좀 먹어도 되는데...

 

그래도 이 길은 숲길이라 좀 좋다.

뒤따라 오는 남편, 내게 한마디 건넨다.

어깨 넓은 거 이미 아니까 일부러 움츠릴 필요 없단다.

어깨를 쭉 펴고 걸으란다.

나 원참!!!

어깨 좁게 보이려고 움츠리고 걷는게 아니라, 피곤해서 그런 거라구요.

하기야 나만 피곤하겠냐?

당신은 안 피곤하겠냐? 싶어, 그래 까짓걸 어깨 쭉 펴고 걸어주마, 어깨를 쭉 편다.

그걸 본 남편, 한마디 더 건넨다.

“와이고... 어디 이 동네 덩빨(?) 좋은 흑인 한명 지나가는 줄 알겠다!!!”

으이구~~~

 

조금을 내려오니 시가지가 보인다.

아까도 걸어올 걸 그랬다.

지하철을 타고 오는 길보다 여기가 훨씬 더 가깝다.

인포 센터에서 대한민국의 건강한 배낭여행 부부를 얕봤다.

우리 둘 같으면 몇 번을 걷고도 남을 길이었는데...

괜히 지하철을 타가지고 고생만 실컷 했다.

 

한참을 걸어가는 데 무슨 음악 소리와 함께

시위대의 행진이 보인다.

밝은 햇살과 함께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걸어오는 시위대.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저런 모습을 보기는 힘든 걸까?

 

악기까지 동원해서 시위가 신난다.

지켜보고 있으니 우리에게도 쪽지를 나눠준다.

‘G20 반대 시위’란다.

여기서도 G20을 반대하는구나~~

 

퇴근 시간을 조금 넘긴 시각.

시내는 차량이 많다.

그런데 앞에 가는 이 녀석.

스위스 국기를 온 몸에 휘둘렀다.

월드컵에서 스위스 승리를 자축하는 모양이다.

며칠동안 시내에서 차량에 각 나라의 국기를 달고 지나가는 건 봤는데

이렇게 온 몸으로 휘감은 사람은 처음이다.

좋겄다.

느거는 이겼다 이거제?

그저께 우리나라가 그리스를 이겼을 때도 토론토에는 태극기를 달고 차량들이 빵빵빵 빵빵 하며

지나갔었다는데...

오늘 아침은 영~~~

축구니 야구니 스포츠라고는 거의 관심이 없는 우리들인데

유독 월드컵에만 이리 관심이다.

외국에 나와 있으니 좀 더 심각해 진 것 같기도 하고...

 

몬트리올 앞에는 큰 섬이 두 개 있다.

세인트로렌스 강을 건너면 있는 쌩 텔렌섬.

그 섬에 가려면 어떻게 갈 수 있냐는 우리의 질문에 어제 인포센터의 직원이 가르쳐 준 방법은

무료 카지노 버스를 타고 가라는 거였다.

그래? 그러면 공짜 버스만 달랑 타고 가서 카지노에는 안 들어가고 섬 구경만 하고

다시 그 버스 타고 나와야지...

도우체스터 광장 앞에서 쌩 텔렌섬까지 왔다갔다 하는 무료 카지노 버스를 탄다.

 

바로 코 앞에 보이는 섬 같은데 버스로 제법 달린다.

그리고는 카지노 입구에 딱 데려다 준다.

어디 다른데로 나갈 수도 없다.

할 수 없이 카지노 안으로 들어가본다.

할아버지 할머니들만 꽉 찼다.

이 사람들은 카지노를 이렇게 좋아하냐?

여기 이렇게 꼼짝없이 있다가 다시 카지노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한다?

아무리 공짜도 좋지만... 이건 아니다.

그냥 걸어서 돌아나가자...

얼마나 먼 길인지도 모르는데...

오늘 도대체 얼마나 걷는지...

 

가다 못가면 쉬었다 가지...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잠시 멈춘다.

또 쉰다.

 

이른 새벽 일어나 지는 축구 한 편 보고, 간단한 아침밥만 먹고

오늘 하루 얼마동안 걸어다니는지...

아까 그 먼길을, 강물위의 그 다리를

튼튼한 우리 다리로 걸어간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걸어간다.

 

걸어 오다보니 뜻밖의 행운도 만난다.

‘Habitat'

원래 와 보고 싶었던 곳이다.

헤비타트는 원래 거주지라는 뜻.

몬트리올 항구의 아래쪽에 위치한 독특한 구조의 공동 주택이 있다.

1967년에 세계 박람회를 위해 지은 것이다.

 

공중에 붕 뜬 것도 있고, 집과 집 사이에 뻥 뚫린 공간도 있고,

어느 집이든지 양 사방으로 큰 창을 내고,

아랫집 옥상이 윗집의 테라스가 되고.. 

23살 건축가가 설계를 했단다.

멋지다.

 

헤비타트도 지나고...

낮이 긴 북반구의 오늘도 이제 지고 있다.

석양이 비친다.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자전거도 타고 롤러 스케이트도 타고 있지만

우리는 오늘 하루종일 그저 두 발로만 걸었다.

오늘의 주제,

‘몬트리올은 온종일 걸어다녔다. 발가락에 물집이 생기도록...’

너무 많이 걸었다.

 

< 공  감 >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콘코르디아 대학(Concordia Unversity)에서 본 공중 조각.

분명히 공중에 떠있는 조각인데 아무리 봐도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수 없다.

그냥 공중을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있다.

대학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한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니

사람들의 어깨를 자세히 보면 낚시줄 같은 것이 걸려있단다.

말을 듣고 봐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서로 마주보고 걷고 있는 줄지어 걷고 있는 사람들.

제목이 ‘Connected Understanding' 이다.

‘상호 이해?’

좋은 말로 고쳐보자면 ‘공감?’

맞다.

세상을 향하는 우리의 여행의 주제도 ‘공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