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20100621 캐나다속의 프랑스, 퀘벡

프리 김앤리 2010. 6. 23. 20:27

 

< 전쟁과 평화 > 

 

'퀘벡',

오래전부터 아메리카 대륙에서 살고 있는 원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강이 좁아지는 곳’이라는 뜻이다.

캐나다 지도를 보면 도시 퀘벡이 있는 곳에서 땅덩어리가 벌어지기 시작하여

대서양쪽으로 세인트로렌스 강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퀘벡시를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프랑스 인, 샹플랭은

세인트 로렌스 강의 강폭이 이곳에서 갑자기 좁아지는 것에 착안하여

이 곳이  전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잡아온 모피를 교역하고 대서양, 뉴펀들랜드에서 잡아들인 대구를 말리고

또 배를 건조할 수 있는 목재 등을 두루 갖춘 퀘벡이야말로 진정 새로운 프랑스가 탄생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이었다.

프랑스의 탐험가들은 퀘벡을 터전으로 하여 서쪽으로 서쪽으로 탐험을 하러 떠났고,

그들이 구해 온 모피는 뉴프랑스 식민지의 주요한 자산이 되었다.

 

샹플랭은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요새를 세우고 그 곳에 대포들을 설치한 후

강으로 올라가려는 적에게 경고 사격을 하여 적의 접근을 막았다.

퀘벡은 17세기 아메리카 대륙으로 진출하던 뉴프랑스의 수도이자 방어진지였다.

 

이 땅에서의 뉴프랑스의 적은 당시 막강한 해양군사력을 가지고 있던 영국이었다.

모피교역과 대구잡이로 벌어들이는 엄청난 돈은 세계로 눈을 돌이고 있던 영국에게도 군침이 도는 일이었다.

두 제국은 유럽 너머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진출을 넘보며 이 곳 퀘벡 땅에서 끊임없는 전투를 치른다.

이 땅을 차지하고 싶었던 두 나라는 본국에 있는 사람들을 이 곳으로 정착시켰다.

모피 교역, 임업, 선박건조를 할 노동자들이 필요했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가정을 꾸리게 할 여성들도 필요했다.

군인도 있어야 했고, 성직자들도 필요했다.

지주들도 있어야 했고 소작농들도 있어야 했다. 마을이 형성되었다.

강에서 보면 높은 언덕 위, 윗마을에는 총독관저와 지주들, 성직자들의 화려한 집들이 세워지고

아래 마을에는 공장이 세워지고 노동자들과 소작인들의 집이 지어졌다.

퀘벡의 상징이 만들어진 것이다.

  

퀘벡 시의 상징과도 같은 초록색 지붕의 높다란 건물.

지금은 호텔(프롱트낙 호텔) 이지만 예전에는 뉴프랑스 초대 총독 프롱트낙크(Fronenac)의 관저가  있던 자리였다.

이 도시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아주 화려하고 위엄있는 건물이다.

세인트 로렌스 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

초대 총독의 관저를 세우고 새로운 대륙으로 진출하려던 프랑스의 야심을 꿈꾸던 곳이다.

 

이 호텔은 근대사의 역사에서도 아주 유명하게 등장한다.

이차세계 대전 당시, 영국의 처칠 수상과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결정한 연합군회의를 열었던 곳이 퀘벡의 바로 이 프롱트낙 호텔이다.

  

 

평화로운 캐나다, 천당 바로 아래 구백구십구당이라며 지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나라라고,

어디서 들었는지도 모르는 이런 이야기로만 상상하고 있던 캐나다에서

우리는 평화가 아니라 온통 전쟁 이야기를 읽고 있었다.

 

퀘벡의 상징처럼 서 있는 프롱트낙 호텔을 설명해 놓은 브로셔에서도 이차대전을 만나야 했고,

도시 곳곳에서 퀘벡을 사수하기 위해 프랑스와 영국 제국주의가 어떤 전투를 했느냐가 그려져 있었고

한국에서 가지고 와서 지금 읽고 있는 책 ‘캐나다 역사 100장면’ 에서도

평화가 아니라 전쟁의 이야기가 있었다.

 

도시 전체에 넓게 펼쳐진 푸른 잔디밭.

여행자의 마음에는 평화가 보이는데 이 곳도 수백년 전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가장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곳이라고 한다.

역사는 전투가 아니었던 곳이 없다.

 

우리는 무슨 마음으로 이 평원을 걸어야 할까?

평화를 그리는 마음으로 걸어야할까?

전투를 치르며 죽어간 수백년 전의 사람들을 생각하며 걸어야할까?

 

햇살은 내리쬐고 잔디밭은 끝도 없는데...

눈부신 태양 때문에 살인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까뮈의 이방인을 떠올려야 할까?

눈부시게 평화로운 장소에서 피흘리는 전장의 역사를 떠올리는 건 참 힘든 일이다.

 

퀘벡시티의 윗동네, Upper Town의 대평원은 이제 공원으로 바뀌어 있다.

한낮의 강한 햇살도 다 막아주는 숲길도 있고,

 

드넓은 잔디밭이 나타나기도 한다.

아브라함 대평원이다.

 

북미 대륙에서 프랑스와 영국 식민지 사이에는

지역적 경계가 명백하게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들 두 나라는 물론이고 이들과 동맹을 맺은 인디언들까지 분명치 않은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 습격과 반격을 했다.

마침내 1759년 9월, 영국의 울프 장군 군대는 험난하고 가파른 퀘벡 해안의 암벽을 기어올라

도시의 뒤쪽 산언덕에 있는 아브라함 벌판에 집결했다.

진을 치고 있는 프랑스 군대가  준비를 할 새도 없이

전투는 단 15분만에 영국군의 승리로 끝이 나고 프랑스군은 몬트리올까지 쫓겨난다.

다음해 프랑스는 퀘벡 탈환을 시도했으나 몬트리올 마저 영국에게 함락되어

뉴프랑스는 완전히 영국의 손에 넘어갔고

북미대륙에서의 프랑스 제국의 꿈은 끝나버린다.

 

지금부터 꼭 250년전 바로 이 곳에서

수천 명의 군사들이 그들의 왕을 위해, 왕들의 제국을 위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희생을 기리는 기념탑이

드넓은 아브라함 평원에 세워져 있으나...

하늘은 또 푸르게만 빛나고 있으나...

 

 

지금 이 곳은 사람들의 수백년 전의 아귀다툼은 온데 간데 없고

평화롭고 깨끗한 공원이 되어 있다.

잔디밭에 덜렁 드러누워 온 몸으로 햇살을 받고 있는 사람들,

도시락을 싸와 가족단위로 피크닉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드넓은 평원에 만들어진 트랙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롤러 브레이드를 타는 사람들...

 

“할아버지, 정말 죄송한데요... 연세가 몇 살이나 되세요?”

신나는 속도감으로 롤러 브레이드를 즐기고 있는 할아버지께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75살이시란다.

그의 어린 시절에도 일차대전, 이차대전 같은 전쟁의 기억이 있을까?

그러나 지금 그의 얼굴에는 평화만이 가득하다.

아무 양해도 구하지 않고 사진을 찍는 이방인에게

미소를 보내며 오히려 롤러 브레이드를 잠시 멈추고 우리에게 말을 건네준다.

퀘벡은 영어를 거의 안 쓰는 동네라서 힘들지 않냐고,

퀘벡은 정말 사랑스러운 도시라며

여행 온 우리들이 행복함을 받아갔으면 좋겠단다.

유난히 일찍 찾아온 올해 더위를 미안해까지 하면서

그래도 화창한 날씨가 얼마나 좋으냐며

퀘벡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즐기란다.

75살의 롤러 브레이드 할아버지.

따뜻한 미소를 남기고 다시 씽~~ 달려나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우리는 지금의 평화를 본다.

 

이 숲속에 숨겨져 있는 아름다움을 본다.

평원에 심어져 있는 나무 한그루에서 지친 여행자가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나고

여행자의 썬글라스에 비치는 또 다른 여행자를 만난다.

고맙다.

 

 

< 그러나 여전히 퀘벡에서는 > 

 

지금 퀘벡은 아주 평화롭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퀘벡은 사실 아직도 완전히 평화로운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세인트 로렌스 강가에 살고 있는 프랑스계 캐나다 인들은

그들의 유산과 언어를 영원히 보존할 수 있는 불어 국가 건설의 꿈을 결코 버리지 않았다.

아메리카 대륙을 영원히 자신들의 식민지 땅으로 삼고 싶었던 영국의 바램과는 달리

미국이 독립하여 떨어져 나가고 미국의 세력확장을 두려워 한 영국이

캐나다 동부, 퀘벡주를 중심으로 오히려 프랑스계의 독자적인 의회를 구성하고 자치 정부를

세울 수 있는 퀘벡법과 입헌법령을 제정한 것이다.

(이 대목은 미국 독립전쟁과 연관되어 있는 내용이다. 기회가 되면 다음에 설명할 수 있겠지?)

결국 퀘벡법과 입헌 법령은 훗날 프랑스계 후손들에게 퀘벡 분리주의를 주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퀘벡주는 모든 것이 프랑스어로 되어 있다.

글도, 말도.

영어는 아예 없다.

사람들은 영어를 쓰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불어 문화권이다.

그리고 프랑스 문화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래서 퀘벡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캐나다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퀘벡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1995년의 주민투표에서는 주민의 49.4%가 퀘벡의 분리 독립에 찬성하였다.

아주 근소한 차이로 과반을 넘기지 못하고 퀘벡의 분리 독립이 좌절된 것이다.

그러나 골목에서도 프랑스 백합문양의 퀘벡기를 걸어놓은 집들을 심심찮게 만나고

길거리에 퀘벡기를 들고 다니는 젊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들은 이제 캐나다가 아니라 퀘벡인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표현을 한다.

 

퀘벡시의 다름 광장 앞에 있는 큰 벽면에는 퀘벡시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대형 벽화가 있다.

1534년 프랑스 왕의 명을 받들고 최초로 캐나다 땅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쟈크 카르티에가 이층 창문에 그려져 있고,

퀘벡시를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 사무엘 샹프랭이 총과 칼을 차고 있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

퀘벡을 일구어 온 성직자, 시민의 모습도 있고

최근까지의 정치가들도 있다.

자신들의 뿌리를 프랑스에서 찾고 있었다.

프랑스로의 회귀를 원하는 건 아니겠지만

캐나다의 다른 지역과 같지는 않다는 모습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캐나다 속의 프랑스, 프랑스 같은 캐나다가 퀘벡에서는 보인다.

 

우리는 그들이 캐나다이어도 좋고, 퀘벡인이어도 좋다.

단지,대형벽화의 그림에는  정치가나 탐험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듯이 이 사회의 다양함이 있는 그대로 인정되었으면 좋겠다.

역사를 그려놓은 벽화 속에서처럼

퀘벡시를 세운 샹플랭과

아이스하키를 즐기는 지금의 아이들이 나란히 공존할 수 있는 사회로...

 

힘들게 언덕을 올라가는 저 아이들이나...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 모두...

 

 

지금처럼 그대로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사회..

 

 

모두가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사회...

 

 

< 잠시 쉬어갈까요? >

퀘벡시의 상징 호텔 프롱트나크.

사흘 밤 낮동안 퀘벡시 어디에서든 이 호텔은 빛나고 있었답니다.

 

낮에도 찍고, 밤에도 찍고

흐려도 찍고, 맑아도 찍고,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가까이에서도 그리고 멀리서도...

길거리에 파는 엽서 속에 가득한 장면들을 잡아보느라고

오늘도 우리의 찍새는 초점을 맞추고, 노출을 바꾸고

배경을 흐리게 만들고

호텔에게 초점을 맞추고 혹은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고...

렌즈를 앞으로 뒤로 왔다 갔다하며 이리 서라 저리 서라 난리도 아닙니다.

덕분에 부끄럽게도 이번 여행에는 제 사진이 대왕만하게 자주 등장합니다.

대신 똑딱이 카메라만 만질 줄 아는 저는 뻔히 보고도 찍을 줄도 모르는 바보가 되어 있습니다.

 

 

 

 

 

 

 

 

 

 

 

 

<참 예쁜 퀘벡 거리 >

 

퀘벡은 참 예쁘다.

사흘동안 묵었던 퀘벡 유스호스텔 방명록에 누군가는 이렇게 써놓았다.

“퀘벡에서의 꿈같은 이틀을 보내고 갑니다.

골목 골목 가게들을 들여다 보는 것만 해도 행복했습니다.”

 

언덕 아래 동네, Lower Town에 있는 쁘띠 샹플랭 거리.

좁은 골목에 조그마한 기념품 가게들, 앙증맞은 간판들.

독일의 브레멘 좁은 골목도 생각나고, 스위스 짤즈부르그의 쾨른터너 거리도 떠오른다.

다들 참 예쁜 골목이다.

 

영어라고는 한 글자도 보이지 않는 불어 간판들.

관광객 유치를 제일의 목표로 삼고 있다는 퀘벡에서

조금은 이해되지 않는 고집스러움이다.

그랬거나 말았거나

이쁜 골목에 들어서는 여행자는 기분이 상쾌할 뿐!!!

 

쁘띠 샹플랭 골목 끝에서 만난 또 하나의 벽화.

퀘벡시에 처음 정착한 사람들이 살아가던 모습이 담겨있다.

 

상점 문을 다 닫은 저녁시간에도

여전히 빛나는 거리.

 

밤 항구도 멋지다.

세인트로렌스 강을 따라 이쪽 저쪽 땅을 오가는 유람선.

음악소리가 요란하다.

 

윗동네, Upper Town의 다름 광장.

 

북적거리는 쌩 잔 거리.

 

퀘벡시의 구시가지는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보호되고 있다.

 

폐장해버리는 저녁이 되어도 그냥 가만두지는 않는다.

화려한 조명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 그러나 퀘벡이 더 사랑스러운 이유는 >

거리 곳곳에 있는 이름 없는 예술가들 때문이었다.

호텔 프롱트나크 앞의 넓은 테라스 광장에서도...

 

성벽 바로 아래서도...

 

쁘띠 샹플랭 거리에서도.

 

우리는 그들이 있어,

그들의 아름다운 음악이 있어 퀘벡이 더 사랑스러웠다.

이 할아버지의 오르간 연주는 사흘 내내 퀘벡의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쁘띠 거리에서, 호텔 테라스에서, 그리고 여기 저기 광장에서...

어디선가 감미로운 음악이 흐른다 싶으면

그 곳에 이 할아버지가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 어느 누구의 시선에도 응하지 않고

그저 자신만의 음악을 하고 있는 아름다운 분.

 

때로는 광장이 떠나갈 듯 큰 음악도 있었다.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같이 노래를 부르고,

어깨를 들썩이고 가까이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리고 저녁이면 퀘벡 올드 타운의 곳곳에서 거리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이 코메디이기도 하고, 마술이기도 하고, 에어로빅 쇼이기도 하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우리도 이들과 같이 웃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불어만 한다...’

그나마 영어로라도 하면 남들 두 번 웃을 때 한번 정도는 웃을 수 있는데

이건 세 번 웃어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이들의 몸짓만 볼 뿐...

그러나 광장을 가득 메우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있어 퀘벡의 여름 저녁은 사랑스러웠다.

 

 

바에서는 사람들이 밖으로 들고 나온 칵테일과 맥주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고

한쪽 벽에는 천연색 불빛이 아른거린다.

 

광장 곳곳에는 야간 도심투어를 하는 사람들의 소리도 시끌벅적하다.

이쁜 골목과 이쁜 가게들 뿐만 아니라

도시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며 퀘벡의 역사를 말해주는 야간 투어 가이드의

청명한 목소리가 광장안으로 울려퍼진다.

 

또 있다.

퀘벡을 사랑스럽게 만드는...

빌딩 숲이 많아 경제적인 느낌이 드는 토론토나,

검게 그을린 벽돌의 오래된 건물로 중후함과 위엄이 느껴지던 오타와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마냥 섞여있어 특색이 없던 몬트리올과 달리

퀘벡이 구석구석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이유가...

‘캐나다의 몽마르뜨’라고 부르는 트레조르 거리, 생탄 거리 때문이다.

 

이름 없는 화가들의 소박한 그림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리 곳곳에서 만나는 조각품들.

 

후미진 골목에서 신기루처럼 만나는 조각상들이 있어

퀘벡은 우리에게 더욱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 룰루랄라라♪  느거들은 시리아의 알레포도 모르나~~~>

퀘벡의 시타델.

퀘벡을 지키는 군사요새다.

민병대의 교대식도 있다고 한다.

그래 들어가보자.

 

그런데, 아이구!!! 입장료가 일인당 10불이나 한다.

한 사람당 만 이천원이나 내야 한단다.

아니 이것들이???

더구나 민병대 교대식은 7월이 되어야 한다나?

그렇담 교대식도 없으면서 그냥 건물들 보고, 안을 한번 휙 둘러보는데

두 사람이 24,000원이나 내야 한단 말이냐?

이 사람들아!!! 느거들은 시리아의 알레포에 있는 시타델도 모르냐?

거기는 여기보다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몇 백원만 하면 들어갈 수 있었단 말이야...

사람들의 삶도 보이고, 역사도 보이고,생각도 하게 하는 공간이었단 말이야.

더구나 요르단의 시타델은 공짜란다, 이 사람들아!!!

고작 몇 백년 밖에 안된 역사를 가지고...

잔디밭에 건물 몇개 가지고.

 

토론토의 온타리오 박물관은 일인당 20불이나 내라고 하더니만...

느거들은 런던의 대영박물관이 공짜라는 사실도 모르냐?

세상 물정을 알아야지 말이야.

보자보자 하니 캐나다의 물가가 너무 비싸다.

주식이라고 하는 식빵 값도 그냥 하나 잡으면 3~4천원은 훌쩍 넘는다.

천원도 채 안하는 그 맛나는 터키의 빵도 모른다는 말이지?

거기는 더구나 식당에서 빵을 먹으면 무한리필까지 해주는데..

인도를 가봐라.

치킨 마샬라, 티카 마샬라 , 온갖 맛있는 커리도 몇 백원만 주면 사먹을 수 있는데

이것들은 슈퍼에서 팔면서도 몇천원씩 받아먹는다.

전 세계 어디를 가봐라,

토마토가 과일인가? 야채지.

식탁의 필수품으로 들어가는 야채가 이리 비싼데가 어디 있단 말이야.

 

내 더러바서 안 들어간다.

룰루랄라라~~~ 느거들은 시리아의 알레포 시타델도 모르냐~~~

요르단의 시타델도 모르냐~~~

 

퀘벡이 아메리카 대륙의 유일한 성벽 도시라구요?

 

에스토니아의 탈린을 가보셨나요?

독일의 로텐부르그를 가보셨나요?

오래된 성벽으로 된 도시가 얼마나 예쁜데요...

이런 성벽 가지고는 어디 갖다 붙이지도 못한다구요.

 

온 가족을 다 데리고 1년간 세계일주 배낭여행을 한 서울시 공무원 이성단장의 여행기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선 가족들이 “에게!!! 겨우!!!” 라고 했다나?

좋은 것을 너무 많이, 엄청난 것을 너무 많이 본 것 같다나??? 

 

비싼 시타델을 포기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괜히 콧노래가 나온다...

 

앗싸!!!

세상 물정 모르는 퀘벡... 앗싸아!!!

 

느거들끼리 잘 노셔요...

우리는 그냥 이대로 살랍니다...

 

그냥 돌아나옵니다.

그리고 다시 걷습니다.

 

뚜벅뚜벅 걷는 우리들의 여행....

앞으로도 쭈~욱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