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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5 태양이 머무는 곳, 아치스 국립공원

프리 김앤리 2010. 9. 7. 14:27

 "맨 그런 바위들만 보고 다니면 지겹지 않아?"

작은 언니의 말이다.

번쩍번쩍 높은 빌딩도 없고, 고풍스런 건축물들도 없다.

슬기로운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편안한 시설도 없다.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도 안 보이고,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움직임도 없다.

그저 내리쬐는 태양과 그 속에 의연히 서있는 붉은 바위들만 있는 곳,

기괴하고 매끄러운 바위들로 이루어진 사막에서 계속되는 우리의 여행이다.

 

그러나 '태양이 머무는 곳, 아치스'의 작가, 에드워드 애비의

"황야는 사치품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에 꼭 필요한 필수품"이라는 말이 가슴깊이 공감되는 시간들이다.

마치 우리의 여행이 일상의 탈출이나 그저 사치가 아닌, 생활 그 자체인 것 처럼.

 

유타주의 상징, 아치스 국립공원(Arches National Park) 로 간다. 

전혀 지겹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영혼을 맑게 만들어주는 대자연 속으로...

 

아치스 국립공원을 가려면 대개가 거기서 5마일 정도 떨어진 모아브(Moab)라는 곳에 숙소를 정한다.

우리도 저녁 늦게 모아브에 도착해 이틀밤을 묵기로 했다.

차를 몰아서 아치스 국립공원으로 들어간다.

들어가는 길 부터 예사롭지 않다.

 

꼬부랑 길을 올라가서 제일 처음 만나는 Park Avenue.

납작하게 깍인 바위판들이 거대한 벽을 만들고 있다.

 

아치스 국립공원의 바위들의 역사는 3억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먼 옛날, 콜로라도 분지로 흘러들어온  바닷물이 밀려들고 증발되기를 반복, 세월은 소금층을 두텁게 두텁게 쌓아간다.

아치스 국립공원이라는 아름다운 지형을 만들어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이곳의 지층을 구성하고 있는 소금밭이다.

수백만년의 시간들 동안 그 위로 여러층의 지층들이 다시 덮히고 덮혀 두터운 지층을 만들고 바위를 만들어 낸다.

시간이 지나면서 바위들은 압축되어 어떤 것들은 그 두께가 1마일을 넘기도 했다.

 

그러나 엄청나게 두터운 바위의 압력을 버텨내기에 소금 지층은 불안정한 것이었다.

소금층은 움직이고 뒤틀어지고 용해되어 새로운 위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두터운 바위들의 윗부분은 돔처럼 만들어지고, 판처럼 갈라지고 중간 중간에 구멍이 뚫리기도 했다.

오랜 세월 비와 바람과 지구 중력 작용이 수많은 아치들을 만들어 낸것이다.

 

사진에서도 보면 거대한 바위 벽에 뚜렷한 지층이 나타난다.

 

대개 미국의 공원들이 다 그러하지만

아치스 국립공원 역시, 차를 타고 돌아다니지 않으면 불가능할만큼 엄청나게 넓다.

파크 아베뉴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바위벽 아래로 1.6Km 정도를 걸었지만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면 어김없이 차가 필요하다.

 

그래도 길을 내어주어서 고맙기는 하다.

 

생태주의자이자 공원 관리직원까지 했다는 '태양이 머무는 곳, 아치스'의 작가, 에드워드 애비는

아름다운 황야, 아치스를 상업적인 관광의 길을 열어 망치고 있는 것을 개탄해 했다는데...

우리는 이 넓은 공원 안으로 도로를 만들어 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는 아치스 국립공원을 '과학적이라는 이름 아래 거미줄 같은 관리'를 하는 것에도 그리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는데..

그냥 그대로 두면 된다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두면 된다고...

 

사실 아치스 국립공원의 바위들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압력에 뒤틀리고, 바람에 깍이고, 약한 소금지층으로 인해 갈라지고.

그래서 몇년 전에도 (2008년) 아주 유명한 아치 하나가 밤 사이에 그대로 무너져 내린 적도 있단다.

그것 또한, 자연의 이치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다.

자연이 해내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그래서 이 곳 사람들은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의미로

"Arches in the making"이라고 한단다.

 

또 잠시 차에서 내린다.

Balanced Rock다.

 

이 바위의 꼭대기도 수만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부러져 버릴까?

자연의 힘으로... 

 

사막으로 인간이 가져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 물...

구름이 만들어 주는 그늘이 아니라면 한낮에는 그늘 한 점 없는 곳.

생명과 같은 것이 물이다.

 

ㅋㅋ

물통을 어지간히도 꼭 끼고 있다.

 

그래도 에드워드 애비는 그랬다는데..

"사막에는 물이 아주 적당한 만큼 있다."고.

"이곳에 인간들이 도시를 세우려고 하지 않는 한, 사막에는 물이 모자라지 않는다."고.

...

감탄한다.

정말 맞다.

사막에는 자신들이 필요한 만큼의 물은 다 있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생물체들도 적은 양의 수분으로도 살아갈 수 있도록 몸이 적응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

있는 그대로 두면 된다.

 

그것이 바위이건

그것이 살아있는 생명체건

자연 속에서의 자연들은 그대로 두면 된다.

수업시간에 그렇게 열심히 설명하던 '생태계의 원리'가 너무나 간단하게 답이 나온다.

'환경에 생물체들이 어떻게 적응하는가'를 설명하면서

사막에 살고 있는 여우, 북극에 살고 있는 여우 하면서

과학자들의 무슨 어려운 이론을 들먹여가며 설명했었는데...

나의 지리멸렬한 설명과 다르게 자연은 너무나 명쾌하게 살아가고 있다.

생태계는 그대로 두면 된다.

그대로 두는 게 보존인 것을...

  

그러나 자연은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바로 보존이라는 것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분통이 터질 뿐이다.

미국에서도 부시 행정부가 알래스카 북극 국립야생동물 보호지역과 미국 본토 내의 국립공원 인근을

기업들에게 내주어 유전개발 촉진하도록 했었단다. 

다행히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유타주의 아치스 공원 및 캐니언 그랜드 국립공원 인근의

77필지 땅을 에너지 기업이 수용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해

이 아름다운 아치스가 그대로 지켜지게 되었다.

개발이라는 이름하에 벌어지는 '기업'과 '돈벌이'의 거미줄에서 아치스를 건져낸 거다.

강바닥이 파헤져 뒤집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얼마나 부러운 이야기인지...

 

저렇듯 경이롭게 만들어진 자연속에서 맑아지는 영혼으로

사람들이 보상받는 혜택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또 한참을 차를 몰았다.

중간 중간 몇번씩이나 우리는 차를 세워야 했다.

가는 곳 마다 우리를 잡아끄는 절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읽은 글에 의하면

"아치스공원 안에서는 시간 분배를 잘 해야 한다.

 차를 몰고 가면서 중간중간에 다 내리면 시간이 모자랄 수도 있다"고.

그래서 중간 중간을 과감하게 제껴버리는 결단을 해야한다고 되어 있더니만

우리는 그 과단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아치스 국립공원안의 제일 안쪽 Devils Garden 까지 왔다.

여기서 부터는 3Km정도는 걸어 들어가야 한다.

생수 몇병과 간식까지 챙겨서 바위 사막 안으로 들어간다.

 

쩍쩍 갈라져 벽을 이루고 있는 바위들.

 

키작은 나무 숲도 지난다.

 

... 

 

이곳을 왜 굳이 Devils Garden이라고 불렀을까?

이 공원의 다른 곳의 이름은 "Garden of Eden" 도 있는데...

 

미국의 지명 중에는 유달스럽게 Devil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간다.

기독교를 중시하는 나라라서 그렇나?

자신들이 믿지 않는 신을 모두 사탄이라고 생각해서 Devil이라는 단어를 많이 붙인건가?

네이티브 인디언들이 신앙처럼 믿고 있는 성스러운 땅에 악마라고 이름 붙인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악마의 정원에 들어서 붉은 머플러를 온 몸에 휘감고 있는 여인과 스치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오른다.  

 

악마의 정원에서 놀고 있는 삐쭉삐쭉 바위들...

 

재빠르게 지나가는 다람쥐도 만난다.

 

배가 고파서 육포도 먹어가면서...

 

사실 우리는 한국에서 소고기를 딱 끊었다.

재작년 미국산 수입 소고기 파동 이후, 

한우를 사먹기에는 경제적 능력이 안되고,

국산 소고기라고 팔고 있어도 그게 수입 소고기를 속여서 팔고 있는 건 아닌지 믿을 수도 없고,

(실제 현재 우리나라에서 미국산 소고기 수입량을 그렇게 많이 늘고있는데

 식당이건, 고기 가게건 내놓고 미국산이라고 팔고 있는 데가 거의 없으니

 우리의 짐작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다 때려치우고서라도 자존심 상해서 그냥 소고기를 딱 끊었다.

소고기 안먹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그래, 소고기 안 먹는다.

그날 이후 우리는 돼지고기나 닭고기만 먹고 해물만 먹었다.

 

사무실에서 한 번, 회식때 양곱창을 먹는 자리여서

정말 억지로 한 점을 먹기는 했었다.

그런데 그 이후 두고 두고 '소고기 안 먹겠다고, 왜 그 자리에서 딱 잘라 말하지 않았을까?' 후회했었다.

그리고 식구끼리 강원도에서 공부하고 있는 조카 한테 가서

한우식당에 들어가 곰탕 한그릇을 사먹은 적도 있기는 있지만

(강원도 횡성이라고.. 바로 한우 식당이라고 해서..

  찝찝하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함께 하는 친정식구들 여행에 찬물을 끼얹을까봐 걱정이 되어서...)

우리 집에서 내가 직접 사먹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슈퍼에 가서 공짜로 집어 먹을 수 있는 시식용 소고기도 그 이후로는 한번도 곁눈질 한 적 없었다.

 

자존심이 상해서였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반대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또 아무렇지도 않게 다 잊어버리더라며

코웃음을 칠 것 같은 소고기 수입업자나 정책 입안자, 우리나라 관리들의

눈에 보이는 비웃음을 뭉개주고 싶었다.

다만 우리의  결단과는 상관없이 라면스프에 들어있거나, 식당에서 사먹는 여러 음식들에

우리도 모르게 들어가있는 소고기는 우리 관할이 아니어서 어떻게 할 수 없는것이 분할 뿐이다.

 

그랬던 우리가 미국에 가서는 육포도 사먹었다.

고기도 한 두번 먹고.

미국 땅 내에 있는 고기는 그래도 안전하다고들 해서...

...  찜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발 한발 걸어가면서 별 생각을 다하고 있다.

억겁의 세월에서 부터.. 생태계의 원리에서... Devils라는 단어에서 부터... 미국산 소고기 까지...

 

그래서 걷는 것이 좋다.

아주 많은 생각을 하게 하니까..

그래서 여행이 좋다.

때로는 헝클어진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새로운 생각의 줄기를 잡아내기도 해서...

 

제법 안으로 들어왔다.

아!!! 저기 멀리 아치가 하나 보인다.

뻥 뚫려있는 구멍...

 

Landscape Arch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러야 저 두터운 바위벽에 뚫어진단 말인가?

이제는 달랑 얇은 다리로만 남아있는 아치...

 

아치스 국립공원에는 크고 작은 아치가 모두 2천여개나 된단다.

 

Double O Arch를 보러 올러간다.

여기는 지금까지의 편안한 트레킹 길과는 다르게

많이 험하다.

 

 

꼭대기까지 올라섰지만 아직도 한참은 더 가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안내 표지판도 없다.

두려움이 인다.

산엘 오면 돌아가야 하는 시간도 계산해야 한다.

이정표도 없는 바위위를 타고 올라와서 어두워지면 꼼짝없이 미아신세가 될 것 같다.

그저 먼 산만 바라본다.

 

그래. 더 가는 건 위험할테지.

바위와 바위로 겹쳐진 바위산 주변으로 오가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

아쉽더라도 내려가자.

뭔가를 반드시 이루어내고 끈기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일을 하면서 포기해야 하는 시점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포기하자.

 

포기하고 내려오려는데 힐끗 보니

두 개의 구멍이 나란히 뚫려있는 또 다른 아치를 발견한다.

"저게 Double O Arch?"

모른다.

아치스를 다녀온 지금도 우리는 정답은 모른다.

저게 더블 오 아치였는지 아닌지.

다만 우리는 더블 오 아치를 보기 위해 험한 바위산을 올랐고,

우리가 본 두개의 구멍뚫린 큰 바위를 '더블 오 아치'라고 생각할 뿐이다.

아니어도 좋고...

 

아래로 내려와 다시 돌아나가는 길이다.

노을 색깔로 보아 지평선과 해가 아주 가까워졌는 모양이다.

포기하기 잘했다.

무리하지 않길 잘했다.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아예 더블 오 아치 근처로도 오지 않고 그냥 발길을 돌리고 있는 중이다.

 

꼭 이름이 붙어 있는 바위를 보지 않으면 어떠리...

그냥 이대로가 좋은 걸...

 

이 속에 우리가 있다는 것이 중요한 걸...

유명한 이름에 쫓아다니는 것이 뭐이 그리 중요할까?

( ㅋㅋ 그래도 자연에서 유명한 것은 그 이유가 다 있다.

  다른 것 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거나 웅장하다거나 장엄하다거나...

  단지 우리가 보지 못한 것에 아쉬워하고 무리수를 두었다가는 문제가 될 것같아 포기 하고 나오면서

  스스로에게 거는 핑계의 최면이다.)

 

아치스에서의 '유명' 하면 바로 이거다.

'Delicate Arch'

 유타주의 자동차 번호판에도 아치스의 델리케이트 아치가 새겨져있다.

1년에 백만명은 찾아온다는 곳.

알래스카에서 남미 끝까지 자전거로 배낭여행을 했다는 일본 청년이 가장 반했다는 곳.

(이건 나도 책을 읽은지가 오래전이라 헷갈려하고 있었는데 우리 블로그에 자주 찾아와 주시는 '너도바람'님이 알려주신거다.)

 

원래대로 하려면 델리케이트 아치 바로 아래까지 2.5Km 정도 걸어가서 봐야 하는데

이미 해가 지려는 시간이라 우리는 델리케이트가 잘 보이는 View Point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저 곳은 어두워지고 나면 돌아오는 길이 아주 위험하단다.

 

정말 아치스는 절경이라도 중간중간을 과감하게 생략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곳 맞다.

시간 분배가 힘든 곳이다.

시간이 넉넉하게 있었다면 가까이 까지 갈 수 있었을텐데...

멀리서 보는 것도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한 번 더 가면 꼭.. 저 곳을 오르리라...

 

델리케이트 아치 뷰포인트에서 넋을 빼고 있는 사이 날이 거의 어두워졌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찾은 곳은 사막위로 불어오는 바람의 창을 만들어 놓은 곳, The Windows Section이다.

남쪽 창(South Window),  북쪽 창(North Window) 

아치스 공원의 해늦은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다.

 

바위가 만들어놓은 천연의 창 너머로 둥근 달이 떠오른다.

 

반대편 지평선으로는  넘어가버린 해의 여운이 아직도 붉게 남아있는데...

 

나이가 들수록 소중해진다는 경험과 기억.

아름다운 황야가 사치가 아닌 '영혼을 맑게 해주는 소중한 경험'으로 기억되게 하는

아치스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