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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6 하늘과 만나는 곳, 모뉴먼트 밸리

프리 김앤리 2010. 9. 11. 00:44

 

 

원래 이 땅에는 네이티브 아메리칸, 나바호 부족이 살고 있었다.

미국과 멕시코가 전쟁을 벌이기 전의 일이었다.

태어나면서 부터 그저 있어왔던 땅은 부족민들이 함께 살아가야 할 곳이었지

결코 제 것으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었던 나바호 사람들의 터전이었다.  

그러나 1848년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면서

'제 것'으로 명확하게 소유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이 땅에서 쫓겨나게 된다.

여러번의 분쟁끝에 미국이 인디언 초토화 전술을 내세워

나바호지역의 가옥을 비롯해 땅, 가축을 빼앗아 불살랐다.

1864년에는 노약자를 비롯애 8,000명의 나바호 족들을 전쟁 포로로 붙잡아

300마일 떨어진 뉴멕시코 포트 섬너(Fort Sumner) 로 강제 이주 시켰다.

맨발로 끌려 가던 이 길을 나바호족은 머나먼 여정(The Long Walk Trail)이라고 부른다.

4년간 계속된 처참한 포로생활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미 합중국의 대표 셔먼 장군은 이들과의 협상에서 3곳의 선택권을 준다.

'동부의 초지', '포로 수용소 근처의 목초지'

그리고 '죽음의 사막, Monument Valley'를 제시한다.

나바호 부족들은 서슴지 않고 Monument Valley를 선택한다.

백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악마의 땅, 죽음의 땅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성지'이자 '선택의 땅'이었던 것이다.

 

                   (사진출처  httpwww.ancestral.comimagesmapsnavajo.gif)

유타, 콜로라도, 아리조나, 뉴멕시코의 접경 지역에 위치한 나바호 부족의 땅.

현재 미국 정부는 미 내무부 내의 인디언사무국에서 관할하고 있지만

나바호 족은 아리조나 지역의 Window Rock에 행정수도를 설치하고

입법,행정, 사법부를 갖춘 자신들만의 나라로 살고 있다.

미국은 이 곳을 인디언 보호구역이라고 부르지만

이들은 이 곳을 'Navajo Nation'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이 황무지인 나바호 부족의 땅,

그들의 성지, 모뉴먼트 밸리로 간다. 

 

아치스 국립공원을 떠나 모뉴먼트 밸리로 가는 길.

아득하게 지평선이 보이는 황무지를 따라 가던 길,

저멀리 거대한 바위산들이 불현듯 솟아오른 그들의 성지가 나타난다.

 

...

 

...

 

...

 

길가에 잠시 차를 세웠다.

앞서가던 차도 차를 멈춘다.

 

오던 길에 만났던 앙증맞은(?) 멕시칸 모자 모양의 바위와는 또 다른 생김새다. 

 

모뉴먼트 밸리 입구에는 나바호족 몇가구들이 살고 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모뉴먼트 밸리 전체가 내려가 보이는 곳에 멋진 호텔이 있다.

나바호 족들이 운영하는 호텔이다.

호텔의 발코니에서 모뉴먼트 밸리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볼 수 있고,

광활한 벌판위에 솟아오른 모뉴먼드들이 노을 빛을 받아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도 편안히 볼 수 있는 곳이다.

 

바로 이렇게...

 

비싸겠지?

엄청 비싸겠지?

그래도 오늘은 그냥 이 곳에서 쉬고 싶다.

용기를 내서 방이 있는지, 얼마인지 물어본다.

제일 싼 방으로 달라며 약간 비굴한 웃음까지 지어가면서...

스텝이 웃는다.

모뉴먼트 밸리가 다 내려다 보이는 앞쪽 방은 몇달 전부터 이미 다 예약이 되었단다.

...

그러면서 뒤쪽에 Full Size Bed 방이 딱 하나 남았는데 그건 가능하단다.

뒤쪽?

그건 얼마냐?

세금까지 다 포함해서 106달러.

후~~~

까짓 것, 뒤쪽이면 어떠냐? 

꼭 발코니에 서서 우아하게 해지고 해뜨는 걸 감상해야 하남요?

시간 맞춰 밖으로 나오면 되잖아?

106달러라면 지금까지 우리 여행 살림살이로는 꿈도 못꾸었던 하루 저녁 방값이지만 오늘은 무리한다.

"주세요... 우리 방 키 주세요..."

 

 그동안 다른 국립공원에서는 비싸서 공원 안에 있는 롯지나 호텔에서 자는 건 생각도 못하고

 한참을 차를 타고 나와 제법 멀리 떨어진 방에서 자고  왔다갔다 하는데 진이 빠졌더랬지만

 오늘은 안그래도 된다는 생각에 흥분하며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방안에 콩알만한 침대가  하나 달랑 있는 걸 보고 느낀 낭패감이란...

 아니 저기서 어떻게 둘이 자라는 거야?

 저건 일인용 침대잖아. 자다가 한명은 떨어지겠는데???

 다시 리셉션으로 나가 저 방에 둘이 자는 거 맞냐고, 침대가 너무 작은데?라고 잠깐 항변해 보았지만

 Full Size Bed 라고 다시 한번 힘주어 말한다.

 앞쪽 방은 300달러가 넘는 방들이라나?

 그러고 보니 킹 사이즈 베드니, 퀸 사이즈 베드니 하는 말은 들어보았어도 '풀 사이즈'라는 말은 낯설기는 하다.

 아까는 방이 있다는 말에 흥감하여 베드 사이즈는 지나치며 들었나 보다.  

 "풀 사이즈라잖아.. 푸~울~~~"

 뭣이 푸~울 이라는 거여...

 둘이 자면 꽉 찬다는 뜻이겄지???

 "그나저나 여보... 다른 방은 다 앞쪽으로 있는데 

  우리 방은 한쪽 구석에 찌질이 들어앉아 침대도 푸 ~울 이라는데 꼭 '식모방' 같다 그쟈?"

 "와, 식모방이라서 서럽나?"

 "아니, 그렇다는 거지 뭐

  식모방이라도 좋은데 오늘밤 자면서 제발 안떨어지면 좋겠다." 

 (이날 밤, 우리는 푸~울~ 침대에서 아무도 떨어지지 않고  무사히 잘 잤다. ㅋㅋ

  아무리 좁아도 그래도 우리방이었는데... 사진이라도 하나 찍어둘 걸..

  얼마나 훌륭한 식모방이었는지를 보여줄 수 있었는데...

  방안을 찍은 사진은 없고 호텔 로비 사진만 있네???)

 

방이 식모방 같거나 말거나 가방을 팽개쳐 두고 밖으로 나왔다.

개인 발코니는 아니지만 모두가 공용으로 쓸수 있는 호텔 발코니에는 황홀한 정경이 펼쳐진다.

 

큰 창 너머로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호텔 식당에서 점심으로 나바호식 샌드위치도 하나씩 사먹고. 

 

 

인디언 인형을 졸조롬하게 세워 둔 기념품 가게도 힐끗거린다. 

기념품 가게의 창 너머로도 모뉴먼트 밸리 구석구석을 감상할 수 있다.

 

얼마전부터 국립공원 근처에서 존웨인 사진을 많이 본다.

누구한테 물어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에서야 그 답을 확실하게 알았다.

"서부영화"

 

존웨인이 나온 1938년의 역마차의 배경이  바로 여기, 모뉴먼트 밸리다.

기념품 가게에 붙어 있는 대형 포스터 안에 말타고 달리는 존웨인의 뒷배경이 이제서야 한눈에 들어온다.

그렇구나... 여기구나.

 

이 곳은 서부영화 촬영지로 유명하단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도.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달리는 황야의 무법자도,

해지는 노을속에서 총을 멘 사나이들도

흐릿한 기억을 이 곳에서 떠올린다.

 

밖으로 나선다.

 

 

모뉴먼트 밸리의 상징, 두 개의 큰 바위산이다.

 

저 아랫길로 드라이브를 할 예정이다.

 

모두 17마일(27Km 정도)의 비포장 도로다.

 

모뉴먼트 밸리 안의 모든 도로는 다 비포장이다.

나바호 부족의 말에 의하면 자기네들의 성지를 보호하기 위해서 도로를 포장하지 않고 있단다.

그러나 어쩌면 재정적인 이유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얼핏 해본다.

다른 곳은 미 정부가 관리하는 국립공원이고 이곳은 나바호 자치정부가 관리하는 곳이라서 그런게 아닐까?

나바호 자치정부라고 해봐야 인구가 고작 17만 정도 밖에 안된다는데,

그 중 42.9%가 빈곤층이라는 통계가 있다.

토지와 주택에 대한 소유권도 없다.

땅의 대부분은 연방정부나 주 정부 소유란다.

실업률도 48.5%, 인구의 45%에 이르는 8만이 아직도 상하수도 시설이 없이 살고 있단다.

21세기 문명 시대에 세계최대 부자나라라는 미국의 슬픈 단면이다.

 

모래 먼지를 가득 날리며 모뉴먼트 밸리 공원 안으로 들어간다.

 

Three Sisters 바위도 지나고

 

온갖 이름들이 붙어있는 수직 암벽 사이도 지난다.

 

수직 암벽과 토템폴...

 

그리고 붉은 모래와 파란 하늘.

 

여전한 모래 바람의 길.

 

황야로 불어오는 바람의 계곡.

 

나바호 사람들은 모뉴먼트 밸리를 '하늘과 만나는 곳'이라고 부른다.

'Where the Earth meets the Sky.'

 

이들에게 Monument는 단순한 바위덩어리가 아니다.

생활이며 신앙이고 삶의 터전이자 역사다.

 

이 곳을 찾아오는 여행자들은 그저 여행자일뿐이다.

 

하늘과 만나는 곳, 모뉴먼트 밸리에 하룻밤을 텐트에서 보내는 사람도 있다.

저들은 오늘밤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들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겠지.

만약 다음에 한번 이 곳을 찾아온다면 우리도 텐트 가지고 오자...

이제는 불편해서 텐트에서 잘 수 있을까?

우리 아파트 베란다 창고에서 썩고 있는 2인용 텐트는 잘 있을까?

 

우리는 이제 이렇게 '편리함'에 길들여져 가고 있는데...

 

.......

 

해가 지려고 한다.

서쪽 기운을 받아 모뉴먼트 밸리의 바위산들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호텔의 앞쪽 멋진 방에 있는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방의 발코니에 서있고,

식모방에서 자는 사람인지, 아니면 멀리 떨어진 곳에 방을 잡은 알뜰족들인지는

호텔 앞 공용 발코니로 모여든다.

 

 

그러나 모뉴먼트 밸리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

 

......

 

사람들은 저마다 카메라를 들이대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는다.

 

한쪽에서는 나바호 사람 둘이 나와서 북을 두드리며 자신들의 노래를 부른다.

단조로운 음악이다.

둥둥둥둥...

별다른 기교도 없다.

뱃속 저 아래로 부터 올라오는 듯한 소리, 그냥  "아으아으우우..."하는 소리로만 들린다.

둥둥둥둥...

 

이 곳에서는 매일 저녁, 같은 시간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

아침이면 해가 뜨고, 사람들이 찾아오고,

모래바람 날리며 사람들은 모뉴먼트 밸리 속을 돌아다니다,

해질 무렵이면 발코니로 모여들고,

나바호 사람들은 멀찍이 플라스틱 바께스 하나를 놓아두고

저렇듯 슬픈 가락의 노래를 불러오고 있는 것일까?

둥둥둥둥...

기교도 없고 음조도 없는 듯한 저 노래 소리.

노래가 끝난 것인지, 다시 시작하는 것인지

처음과 끝도 구별하기 힘든 음악.

그들이 두드리던 북을 멈추고, 부르던 노래를 잠시 쉬어야

그제서야 비로소 노래가 끝난 줄을 눈치챈 여행자들이 드문드문 박수를 치고,

몇몇은 앞으로 나가 그들이 놓아둔 바께스에 동전을 넣고...

보일듯 말듯 엷은 미소로 감사의 표시를 하고...

오랜 나날 매일 저녁이 같은 모습으로  이어져 오고 있을까?

 

 

그 모습이 안타까워 차마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다.

 

그냥 무심한 척,

앞으로 노을진 모습을 보는 사람,

그리고 등 뒤로 노을을 담는 사람...

 

붉은 기운이 점점 하늘로 올라간다.

이제 바위산 머리 끝에만 붉은 노을이 남아있을 뿐이다.

 

서쪽 하늘의 지평선 아래로 해는 넘어가버렸다.

북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던 나바호 사람들도 들어가 버렸고

모래바람 날리는 저 아래길을 달리는 자동차들이 불을 밝힐 시간이다.

기온도 떨어져 제법 쌀쌀하기까지 하다.

 

동쪽 하늘에서는 달이 떠오르기 시작하고

 

슬픈 나바호 부족들의 역사를 다 알고 있는 모뉴먼트들의 밤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