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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7 시간을 걷다, 그랜드캐년

프리 김앤리 2010. 9. 15. 08:35

거대한 협곡, 그랜드캐년.

사진과 다큐멘터리에서 너무나 많이 봤던 곳.

익숙한 지명에 눈에 익은 경치다.

그럼에도 눈으로 직접 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거대하다.

우리가 가장 와 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하다.

 

흔히들 그랜드캐년은 '지구역사에 대한 기록물'이라고  말한다.

지질학적 기록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그것이 우리가 볼수 있도록 겉으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협곡의 바닥은 약 20억년전의 암석의 자취가 그대로 있고,

계곡 벽에는  2억7천만년전에서 5억년전의 암석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우리 눈으로 직접 보고 만질 수도 있다.

 

암석들의 나이는 오래되었지만 그랜드캐년의 협곡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나이다.

지각 표층 대충돌로 2,000m 이상 치솟은 콜로라도 고원 사이를

록키산맥의 남부 비탈을 흘러내리는 콜로라도 강이 

모래와 자갈을 이동하면서 지층들을 깍아 내려 협곡을 조각한 것이다.

7천만년 전부터 시작한 대충돌이었지만 협곡은 지난 5~6백만년전의 일이다.

지구의 역사에서 생각해보면,

그랜트캐년의 형성과정에서 생각해보면 눈깜짝할 사이의 일이다.

 

그랜드캐년은 노스림(North Rim)과 사우스림(South Rim)으로 나뉘어져 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사우림을 중심으로 둘러본다.

사우스림과 노스림의 직선 거리는 10마일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차로 가려면 약 5시간이 걸릴 정도로 돌아서 가야한다.

거대한 협곡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스림에는 관광안내소를 비롯해서, 많은 롯지와 캠핑장이 있지만

11개월전부터 예약을 하다보니...

비용도 비용이지만 성수기에는 방 자체가 없다.

사우스림에는 3개 노선의 무료셔틀버스가 있다.

Hermits Rest 노선(붉은 라인)

Village 노선 (푸른 라인)

Kaibab Trail 노선 (녹색 라인)

빌리지 노선과 케이밥 트레일 노선은 승용차로 다녀도 되지만, 허미츠 노선은 승용차로는 갈수가 없고 셔틀버스나 걸어서만 갈 수가 있다.

미국의 대부분의 국립공원이 그렇지만 들어가는 게이트에서 안내지도를 나눠주고 있고, 그랜드캐년의 경우에는 한글로 된 공원발행 신문을 준다.

지도는 물론이고 필요한 정보가 많다.

 

우리는 8월 중순, 휴가를 받아 미국에 온 조카와 함께 처음 이곳에 들렀다.

그때는 조카의 바쁜 일정에 맞추다보니 이곳에  할애한 시간은 고작  반나절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는 나중에 미국을 한바퀴 돌아, 다시 이곳으로 와서 한번 더  꼼꼼히 둘러볼 예정이었다.

노스림, 사우스림, 림트레일은 물론이고,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이나 케이밥트레일을 통해서 대협곡의 바닥까지 트레킹을 할 계획으로... 

 

일단 야바파이(Yavapai) 전망대쪽으로 간다.

그랜드캐년의 윗쪽은 해발 2000미터의 고지여서 바람도 많이 불고 날씨가 쉽게 변한다고 한다.

언제 날씨가 나빠질지 몰라서...

일단 전체를 보기로 하고...

 

익숙한 곳이다.

봉우리 마다 이름이 있다고 하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 보고 싶다.

대자연을 느끼고 싶다.

 

말이 수억년전이지...

제일 위에 보이는 지층도 2억 7천만년 전이다.

이 시기. 아직 지구상에는 공룡이 살고 있었고, 

인류의 선조는 어쩌면 어두운 땅속에서 지내며, 네발로 걷는 조그마한 생명체로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짐승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추위를 피하기 위해...

 

림 끝자락에 안전막이라도 없으면 겁이나서 설 수도 없을 것 같은 곳에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햇빛과 구름으로 만들어진 그늘이 대협곡의 모양을 바꾼다.

빛과 그늘이 자연의 색깔과 모양도 다르게 보이게 한다.

 

아직은 날씨가 우리편이다.

햇빛도 있고...

(그러니까 이 사진은 한참 전의 일이다. 조카와 함께 한 시간이었으니...)

 

사우스림의 동쪽 끝,

Desert View.

관광안내소에서 승용차로 30분이상 걸린다.

한쪽은 저멀리 사막지대가 보이고,

협곡사이로는 콜로라도강이 흐르고 있다. 

 

한마리의 독수리가 대협곡의 바람을 타고 먹이를 찾는다. 

 

그랜드캐년을 수백만년 동안 만들어온 콜로라도강이다.

너무 멀어서 실개천 처럼 보인다.  

 

대협곡의 서쪽부터 비가 오는 듯 어두워진다.

어느새 산 위의 날씨가 변해버렸다.

날씨가 흐리고 잔뜩 찌뿌려있다.

이러면 안되는데...

한쪽에선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 마저 들린다.

 

해발 2000미터에서 번개가 치면 림(계곡의 끝자락)에서 물러나서

승용차 안이나 건물 안으로 피해야 한단다.

번개가 칠 징조는 사람의 머리카락이란다.

머리칼 끝이 서면 근처에 전기가 모인다는 뜻이라고,

근처까지 번개가 다가왔음을 의미한다고...

아니나 다를까 .

비를 맞아 머리가 젖어있는데도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갈기처럼 쭈빗쭈빗 선다.

바로 옆에서, 이제 곧  번개가 칠 모양인데...

어서 빨리 피해야 하는데...

대피하지도 않고 난생처음 겪어보는 신기함에 카메라만 들여댄다.

 

비오는 잿빛의 그랜드캐년.

색깔도 없어져버렸다.

우울하다.

을씨년 스럽다.

 

어느새 다시 햇빛이 난다.

색도 드러나고 형체도 드러나고...

구름이 만든 그늘이 협곡의 모양과 색깔을 또 다르게 바꾸고.. 

 

날씨가 좋아지면 겁이 없는 사람들은 벼랑끝으로 끝으로 나선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협곡을 느끼기 위해...

 

림끝자락에 서서 사진을 찍는 이들이 있어 우리는 더 좋다.

오히려 아무도 없는 협곡보다 사람하나 더해져 대자연이 더 장엄하게 보인다.

 

서쪽 하늘이 개이면서 협곡의 그림자를 만들고,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비구름은 아직 계곡에 머물고...

이렇게 해가 지는 대협곡을 보면서 다음을 기약했었다.

다음에 올때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협곡의 바닥도 내려가자고 다짐하면서..

그렇게 우리는 그 날 그랜드캐년을 떠났었다.

 

...

...

그런데 남편의 몸이 좀 안좋다. 

며칠전 부터 어깨가 아프고,

왼쪽 갈비뼈 밑이 결린다며 걷는 것을 많이 힘들어한다.

파스도  바르고 조금 천천히 쉬면서 가보지만 쉽게 회복이 되지 않는다.

여태까지 여행중에 이런 일은 처음이다.

파스를 바르고 쉬엄쉬엄 움직인다고 나을 병이 아닌 것 같다.

 

원래 우리의 계획은 브라이스 캐년에서 솔트레이크 시티로 가서

옐로스톤, 덴버쪽 록키산맥을 들러서  

아치스 국립공원과 모뉴먼트밸리로 돌아내려 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때 데스벨리도 가고 요세미티도 가고...

 

그러나 브라이스 캐년 국립공원에서부터 몸이 안좋은 걸 느꼈다.  

며칠간 의논 끝에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다시 오면 되지 않냐며... 미국이 어디 그리 먼 곳이냐며...

그런데,

한국으로 가려면 샌프란시스코까지는 차를 몰고 가야 하는데

우리는 지금 사막 한 가운데다.

브라이스캐년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1000마일(1600km) 이상이다.

차만 타고 곧장 돌아간다고 해도 이틀 이상 걸리는 거리다.

돌아간다고 마음을 먹어도 쉽게 돌아갈 수 없는 거리에 우리가 있다.

게다가 11월 중순에 벤쿠버에서 출발하기로 한 항공권의 출발 날짜와 출발지도 바꾸어야 한다.

여행사로 전화를 해서 이리저리 시간을 맞추어 본다.

일주일 이상은 걸릴 것 같다.

빨리 쉽게 돌아갈 수 없다면...

방향을 바꾸어 아치스와 모뉴먼트 밸리를 보면서 쉬면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러면 옐로스톤이나 요세미티등 다른 여행지는 포기해도

적어도 그랜드캐년은 갈 수 있으니까...

 

쉬운 여행은 아니었다.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아쉬움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보통때 같으면 충분히 올라가고도 남았을

아치스 공원의 델리케이트 아치스도 그래서 오르지 못했고,

모뉴멘트 밸리에서도 그래서 더 많이 걸어다니지 못했다.

심지어 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비포장 도로를 위에서는 덜커덩 거림때문에 힘들어했다.   

 

그렇게 우리는 조카와 헤어진 지 얼마되지 않아서  다시 그랜드캐년을 찾았다.

 

 

<다시 찾아온 그랜드캐년>

그랜드캐년에서 우리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은 그랜드캐년의 바닥으로 내려가는 가장 대중적인 트레일이다.

협곡 바닥까지 왕복 12마일... 약 20km

평상시 같으면 당일치기도 문제없을 거린데...

현재 남편의 상태로는 어려울 것 같다.

일단 입구까지는 들어서 보기로 했다.

 

원래 사진을 찍는다고 뒤쳐져서 오기도 하지만...

뒤돌아보니...

영 자신이 없다.

 

좀 더 내려가본다.

 

밑으로 보이는 꼬불꼬불한 길이다.

개미같은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다.

 

평상시 같으면 문제없는 길인데...

우린 오히려  여기는 너무 쉬운 길이라고 생각하고

조금 더 힘들더라도 경치가 좋다는 사우스 케이밥 트레일을 통해 내려 가려고 했었는데...

마음을 바꿔 먹고 돌아선다.

다음에 꼭 다시 와서 꼬옥 아래로  내려가기로 하고...

 

대신 좀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림트레일을 걷기로 했다.

날씨는 좋다.

언제 다시 나빠질지 모르지만...

 

그랜드캐년의 서쪽 끝 허미트 포인트에서 빌리지까지 총 거리 13마일.

그러나 그것도 힘들것 같아서 중간의 Mohave Point에서 걷기 시작했다.

대협곡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림을 따라서 길이 잘 만들어져 있다.

 

'The Trail of Time'

'시간의 길'이다.

 

지구의 나이는 약 45억년이다.

처음 만들어졌을 45억년전에는 가스와 먼지로 뭉쳐진 뜨거운 불덩이었다.

지구가 식는데만 약 5억년이 걸렸다고 한다.

태초엔 아무런 생명체도 없었고 살 수도 없었다.

 

'시간의 길'

타임트레일은 마리코파(Maricopa) 포인트에서 시작한다.

지구의 나이 45억년전부터 시작하는 거다.

시작 지점엔 표지판 말고는 다른 표식은 없다.

 

편안하게 시간의 트레일을 걷는다.

대협곡을 즐기면서...

 

그런데 39억 천만년 전부터 트레일의 바닥에는 동그란 마크가 있다.

 

약 1m 쯤 떨어져서 39억9백만년 전...

또 1m쯤 ... 한걸음을 걸으면 39억 8백만년 전...

그렇게 10m 쯤 걷자, 39억년전이 나온다.

지상의 1m가 지난 시간의 백만년을 나타낸다.

 

마리코파 포인트에서 현재인 야바파이 전망대까지 가려면 ...

45억년전 부터 현재 지점까지 가려면..

100만년을 1m로 하면 약 4.5km

시간의 트레일은 약 4.5km이다.

 

100만년이 1m 라고 정한다면

1만년은 1cm

1000년은 1mm

100년은 0.1mm

 

이런 방식으로 보면

인류의 직립보행은 전체 4.5km 중에서 약 4m에 해당하고,

문명의 역사를 길게 잡아서 10,000년이라고 한다면 꼴랑 1cm

예수님은 현재로 부터 2mm지점에서 태어났고,

우리가 아무리 오래 살아도 100년을 산다면 꼴랑 0.1mm를 살 뿐이다.

 

37억년전에는 단핵세포가 생겨났다.

생명체는 지구 생성 초기에 나타난 셈이다.

이로 부터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다양한 생명체로 발전해왔음을 그랜드캐년은 설명하고 있다.

 

지구의 시간을 음미하면서 우리는 천천히 걷는다.

30억년 전쯤 되는 지점에서 대협곡을 그리는 화가를 만나고...

  

모퉁이에 서서 협곡을 내려다보는 사람도 만나고...

 

2억년쯤 전에 만들어졌을 대협곡의 바위 끝에 걸쳐앉아도 보고...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협곡을 내려다보는 꼬마녀석도 만나고...

 

협곡과 구름그늘사이에 서보기도 하고..

 

아직 절반도 못 왔는데...

아니 20억년전도 되지 않았는데...

하늘에 어두운 구름이 내려앉아...

바람이 세차게 불고

흙먼지가 날리고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한다.

지구의 역사 45억년은 그 긴 길이만큼 그랜드캐년에서의 날씨도 천변만화한다.

 

지구의 역사 중 수많은 빙하기, 간빙기가 있었다.

그속에서도 생명체는 살아왔고 진화해 왔듯이

바람이 불고 빗방울이 쳐도 우리는 '시간을 걷는다'.

 

Trailview Overlook 포인트에서 본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

우리가 포기한 길

그랜드캐년의 역사와 또 다른 시간의 길이다.

 

가파른 협곡을 따라 만들어진 길.

우리에겐 길이 아니라 시간으로 보인다.

시간을 걷고 싶었었는데..

  

한참을 걸어오니 롯지가 보인다.

롯지 옆으로 90살이 다 되어보이는, 걷기도 힘들어하는 노인이 림트레일을 걷고 있다.

존경스러우면서도 대단하다.

처음 오셨을까?

아니면 여러번 왔는데 다시 한번더 보고 싶어서 오셨을까?

100년을 산다는 것이 참으로 긴 세월이기도 하지만

4.5km중 0.1mm 밖에 안되는 시간과 거리인데...

그 0.1mm가 모여서 1mm가 되고... 1cm, 1m가 되어

마침내 4.5km가 된다.

 

순간이 진실되고 찬란하여야 영원이 화려하고 볼게 있다.

 

지금부터는 그랜드캐년의 역사, 대협곡의 시간 트레일이다.

입구엔 그랜드캐년을 형성하는 각시기의 암석이 전시되어있고...

우리에게 시간을 걸으라고 한다.

천천히 시간을 음미하면서...

 

19억 8천만년 전이다.

그랜드캐년이 바닥에 있는 지층이 만들어진 시기다.

생명체는 어디까지 왔을까?

포유류는 나왔을까? 아직 포유류는 나오지 않았을 것 같다.

이때까지도 생명체는 물속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의 트레일 옆에는 그랜드캐년을 구성하는 지층의 암석들이 있다.

 

18억 4천만년전에 만들어진 암석이다.

만질 수도 있다.

18억년전의 돌을 만지면서 당시를 떠올리려고 해보지만 상상력이 부족하다.

 

또 다른 옆에는 망원경이 아닌,

그랜드캐년의 해당 지층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둔 장치다.

 

마침내 4.5km...

지구의 시간 ... 45억년을 걸었다.

어두워졌다.

해가 떨어지자 바람이 많이 불고 쌀쌀한데도 등엔 땀이 솟는다.

 

그랜드캐년을 두번이나 찾아왔지만 협곡의 바닥에는 가지 못했다.

선셋이 멋있다는 야키포인트도 가보지 못했다.

사우스림보다 낫다는 노스림도 가보지 못했다.

그랜드캐년을 제대로 못 본듯하다.

 

다음에 꼭 다시 온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