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20101016 우리 자신을 먼저 만난 요세미티 국립공원

프리 김앤리 2010. 10. 18. 17:02

 

무슨 남다른 유별난 간절함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몇 달사이에 미국을 두번씩이나 여행한다.
잘 놀던 놀이판도 멍석을 깔아주면 그만둔다는데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강한 열망도 없었는데
계획되어 있던 여행을 다하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던 미국이라
오히려 더 아쉬웠다.

타의로 말아올려진 멍석에 대한 미련때문이었다.

견딜수 없던 통증으로 잠시 멈추었던 우리의 미국 여행,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려 30분 거리에 있는 팔로알토로 가서 차를 빌리는 것으로 다시 시작한다.  

 

도착한 첫날 하루는 자고 가라는 후배 부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길을 떠난다. 
아프다고 돌아간지 얼마 안되어 다시 배낭을 둘러 메고 나타난 철없고 겁없는 선배부부에게 걱정어린 눈빛을 보낸다.
우리나라에서는 110V 밥통을 구하기가 어렵다고 미제 밥통하나 빌려달라고 전해놓았는데
밥통뿐만 아니라 전기쿠커에 쌀, 각종 반찬에 온갖 통조림, 식기류까지 다 준비해놓았다.
지난 여행때 아프면서도 니글니글한 미국음식밖에 없어 고역이었다는 우리 말을 허투루 듣지 않고 새겨놓고 있다가
이번엔 한국 음식 해먹으면서 다니란다.
바로 전날 담근 싱싱한 열무김치, 배추김치에 부엌용 칼과 가위, 그릇 닦으라고 키친타올까지... 산더미같이 싸준다.
살림을 차려도 되겠다.
우리 여행에 이런 역사는 없었다며 챙겨놓은 이것저것을 빼보지만 또 집어넣고, 빼고 또 집어넣고...
따뜻한 사람들의 깊은 사랑 가득 담아 다시 미국 여행을 떠난다.
행복한 배낭여행자, 나이 먹은 철없는 배낭여행자 둘이서...

 

운전하는데 잠이 쏟아지기는 한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이다.
오늘은 요세미티의 남쪽 출입구와 가까이 있는 오크허스트(OAKHURST)까지 가야 한다.
EBS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미국의 국립공원, 요세미티편'에 나온 마을이다.
담당 PD가 추천한 마을이다.
어디서 잤는지 아주 좋은 숙소가 있다고 알려준다고 하고선
미적 미적거리다가 결국 그 좋은 숙소 연락은 못받고 인터넷으로 예약해버렸다.

시차도 적응 못한 첫날부터 헤맬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한번 아프고 나니까 무작정 여행, 무턱대고 떠나는 여행에 쬐금은 두려움이 있었다고 할까?
떠나기 전날에서야 그 좋은 숙소 이름을 알려왔지만... 이미 늦은 일...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이제부터 모든 건 우리가 알아서 해야한다.
팔로 알토에서 3시간 반만에 도착한 오크허스트.
조그맣고 깨끗한 마을이다.

 

우리가 묵었던 Comfort Inn.
좋다.
아주 좋다.
자!!!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요세미티로 떠나자.

 

 

<요세미티 국립공원, Yosemite National Park>

요세미티는 네이티브 아메리칸의 말로 '곰'이라는 뜻이다.
뽕나무 밭이 있었다고 '잠실', 밤나무가 많았다고 '밤골' 세개의 호수가 있는 마을이라고 '삼호동'...
대개의 지명은 그 동네 자연과 관련이 많다.
물론 역사가 짧은 미국에서는 사람이름을 붙인 지명이나 거리가 눈에 띄지만
영어로 풀이가 안되는 많은 지명은 대부분이 네이티브 아메리칸의 말이다.
오랜 세월 이 곳을 살아온 사람들이란 역시 아메리칸 인디언이었다는 걸 증명해보이는 이름들이다.
'곰'이 많이 살았다는 깊은 숲, 요세미티.
그곳에는 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무도 있고, 화강암 절벽도 있고, 계곡도 있다.
그리고 미국의 서부를 높게 가로지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높은 땅도 있었다.

 

<나무>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남쪽 출입구를 따라 들어가면
키 큰 세콰이어 나무숲을 만난다.
마리포사 세콰이어 그로브스(Mariposa Sequoia Groves)다.
몇명의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고 둘러싸도 그 둘레를 다 채우지 못하는 어마어마하게 큰 세콰이어 나무들.
천년도 더 넘도록 한 자리에 서있는 나무들.
그들이 함께 살고 있는 숲으로 들어간다.

 

나무는 늘 한자리에 서있다. 묵묵하게.
맑은 공기, 한줄기 바람, 넉넉한 그늘 그리고 완벽한 안식까지...
우리는 그들에게 수많은 것을 바라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왼쪽 끝부터 오른 쪽 끝까지 사진 한장을 가득 채우는
요세미티의 세콰이어 나무들.
그저 그들의 존재 자체가 우리를 들뜨게 한다.
이천년 가까이 그 자리에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 그 자체로.

 

마리포사 그로브스에 들어가면 유독 불에 탄 나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요세미티에는 자연 발생적으로 산불이 많이 발생한단다.
세콰이어 나무는 아주 여러층의  껍질로 구성되어 있어서
산불에 대해 다른 나무들보다 생존력이 강하다.

그래서 이천년 가까이를  살아남아
두텁게 아주 두텁게, 높이 더 높이 자라나고 거대한 세콰이어 숲을 이룰 수 있는것이다.
물론 세콰이어 나무들이라고 항상 산불에 살아남는 것은 아니겠지.

 

불에 타 넘어진 거대한 세콰이어 나무.
갈래 갈개 흩어진 세콰이어 나무의 뿌리가 보인다.
얕은 뿌리를 가진 대신에 사방천지로 넓게 퍼져 물을 빨아올려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불에 그을린 세콰이어 나무 둥치를 보는 것도 요세미티의 즐거움이다. 

 

요세미티 국립공원 안에 있는 가장 큰  세콰이어라는 그리즐리 자이언트.
가장 크다고, 가장 그럴싸하다고 주변에는 둘레까지 쳐 출입금지를 시켜놓았다.
그냥 쳐다만 본다.
저 나무는 저런걸 바랬을까?
한줄기 바람이 되어주고 넉넉한 그늘이 되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건 아닐까?
여러겹으로 층층 두터운 껍질을 가진 세콰이어 나무는
사람들의 손길이 있어도 좋지 않을까?
그 강한 산불도 견뎌낸다는데...

 

어떤 건 이렇게 터널까지 뚫어 마차가 지나다니기까지 했으면서...
사람의 편리에 따라 재단 당하는 세콰이어 보호법이다.
그들은 그래도 그저 그 자리에 저렇게 넉넉하게 자라고 있는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세콰이어 나무 끝을 찾는다.
보이지 않는다.
나무, 그들은 오늘도 묵묵히 하늘로 자라고 있었다.

 

 

< 바위 절벽 > 

요세미티의 또다른 상징은 거대한 바위 절벽이다.
요세미티의 바위 절벽들이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그레이셔 포인트(Glacier Point)로 간다.

 

 

그 유명한 하프돔.
1만년전 요세미티의 중심에 있던 빙하의 침식작용으로
1200m 높이의 거대한 바위 반쪽이 그대로 잘려

뚝 떨어져 나간 자연이 빚어낸 예술 작품이다.

 

거대한 바위 절벽들.
자연의 작품에 사람들은 감탄하고 사진도 찍고,

 

오랜 시간 머무르고 있지만
높은 바위 절벽은 우리의 가슴을 짓누른다.
높은 바위 절벽... 그 위에 올라선 당신...

 

저 깊은 아래 계곡은 일만년의 긴 세월동안
짙푸른 숲을 이뤄 후대의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국립공원을 선사하였지만
하늘 높은 곳의 바위 절벽은 아무 말없이 아래만 바라보고 서 있다.

 

 

그레이셔 포인트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까마득한 계곡.

 

여러가지 이름으로 붙여진 거대한 바위 절벽들 사이로
요세미티의 폭포들이 보인다.
참 잘 만들어진 자연의 작품이다.  

참 대단하다.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다시 차를 몰아 아래로 내려간다.
터널 뷰 포인트에 서면 요세미티의 바위 절벽들이 수평으로 바라다 보인다.
저 멀리 하프돔이 조그맣게 보이고,
왼쪽으로는 요세미티의 또 다른 상징 엘 캐피탄(El Capitan)이 보인다.
우리도 무심한 듯, 요세미티의 바위 절벽들을 바라본다.  

 

이제 완전히 아래로 내려왔다.
엘 캐피탄이 위로 올려다보인다.
2005년에 혼자 이 곳을 여행했을때는 그저 이 바위의 거대함에 감탄만 했었는데...
요세미티 계곡으로 들어가는 가로수를 물들인 단풍에 황홀하기만 했었는데...
이번엔 바위 절벽이라는 단어에 아려오는 가슴을 숨길 수 없다. 

 

 

< 계곡 > 

그냥 둘러만 보자고 했다.
요세미티 빌리지라고 이름이 붙어 있는 계곡으로 들어가 숲길 한번 둘러보고, 기념품 가게나 기웃거리기로.
여행 떠나온 지 고작 하루만인데 피곤하면 안된다고,
그저 설렁설렁 숲만 힐끗 보고 돌아나오자고 했다.
조금 섭섭하면 가까이에 있는 호수나 한번 가 보자고.
여름철이 지나 요세미티 폭포도 바짝 말라있는데
호수라고 해봐야 무슨 물이 많기나 하겠냐며
그래도 요세미티에 대한 예의로 그정도만 잠깐 다녀오자고 했다.

 

그런데 거대한 바위절벽들을 보고 돌아나오면서 마음이 달라졌다.
땀을 흘려야겠다.
피곤하게라도 걸어야겠다.

저기 위에 있는 폭포까지 걸어갔다 오자.
실컷 땀이라도 흘리자. 걷기라도 하자.  

우울한 마음을 풀고 싶다.

 

사람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길을 오른다.

 

생각보다 멀다.
생각보다 험하다.
온 몸에 땀이 흐른다.
세콰이어 나무니 하프돔이니 엘 캐피탄이니, 요세미티 하면 떠오르던 요세미티의 상징들이
사람들과 함께 오르는 이 오르막 산길에서

사람사는 동네로, 북적거리는 숲길로, 그리고 땀범벅이 된 우리의 피곤함으로 뒤섞인다.

저기 보인다.
Vernal 폭포.
다 와가는 모양이다.

 

쏟아지는 물줄기.
마음이 안정된다.

그래, 이 곳은 요세미티다.
사람들이 쉬어가는 곳, 미국의 국립공원이다.
자연이 만들어낸 뛰어난 예술품이 있는 곳이다.

 

어라?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닌가벼?
폭포 꼭대기에도 사람이 서 있는데?
아니 그러면 더 올라가야 하는 것이여?

꺼이 꺼이 다시 산을 오른다.

 

아까 흘린 땀은 땀도 아니다.
아까 느꼈던 피곤함은 피곤한 것도 아니다.
꺼이 꺼이 계단을 오른다.
머리 속이 하얘진다.
아무 생각도 없어진다.
그저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마다 가쁜 숨을 몰아쉬기만 할뿐.
아려오는 가슴을 떨쳐버리고자 시작한 산행, 일단 작전은 성공인 것 같다.

 

헉헉 거리며 도착한 폭포 꼭대기.
사람들은 모두들 편하게 다리를 뻗고 천천히 숨을 고른다.
그래, 이 곳이 사람사는 세상이다.

한 친구는 흘러내리는 물 옆에 앉아 연필로 나무를 그리고 있다.
별로 좋은 솜씨는 아니다.
그래도 진지하다.
내가 옆에 한참을 서있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자신의 그림에 집중하고 있다.
보기 좋다.
나무도 있고 바위도 있는 요세미티, 사람도 있더라.

 

저 아래 낭떠러지로 내려가는 폭포물이 흐르는 위쪽 계곡.
에머랄드 풀이라고 하지만 이름값은 못한다.
그래도 우리 마음속에는 진정 에머랄드 빛으로 빛난다.
가슴 한켠으로 쏴~ 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제 가슴에 이 에머랄드 빛을 담고 내려가자.

 

다시 단단한 차돌멩이가 되어 내려가자.

 

요세미티 계곡을 빠져 나와 다시 길을 간다.
오늘 중으로 서쪽 출입구를 통해 밖으로 나가야 한다.
초록의 숲 사이로 늦은 오후 햇살이 비친다.

 

앗! 곰이다.
요세미티- 곰을 만났다.
사실 요세미티가 '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요세미티 공원 안에서 곰을 만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란다.
만약 당신이 곰을 만난다면 행운이라고 생각하라고 요세미티 신문에 써 있었는데...
'consider yourself lucky'
lucky일꺼 까지는 없다.
그냥 앞으로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You'll be happy as now.' 이런 문구로 바꾸어 줬으면 좋겠다.

 

요세미티 계곡에는 사람도 살고 곰도 살고 있더라. 

 

 

 < 높은 땅 >

요세미티의 서쪽 출입구로 나가려면 높은 산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타이오가 로드.
3000m를 넘는 높이다.
요세미티 계곡을 저 아래로 두고 산위로 위로 올라가야 한다.
 

다시 높은 바위산들이 수평으로 보인다.

 

타이오가 로드에서 만나는 올름스테드 포인트(Olmsted Point).

 

올름스테드 포인트에 오르면 요세미티가 빙하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EBS의 미국 국립공원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올름스테드에서 보이는 큰 바위덩어리를 '표석' 혹은 '미아석'이라고 한단다.
빙하게 흘러다니는 길에 같이 떠다니다가 빙하가 녹은 뒤에 보면
어느 낯선 곳에 덜렁 놓여진 미아같은 바위덩어리라고.
요세미티에서 가장 멋있고  경이로운 곳이다.

 

낯선 곳을 흘러다니다가 우연히 한 자리에서 마주친
커다란 미아석과 나무 한 그루.
그리고 배낭여행자인 우리 둘.
여행은 만남이다.

 

타이오가 로드를 지나다 보면 빙하가 만들어낸 호수들도 여럿 만날 수 있다.

 

빙하가 쓸려 내려와 만들어놓은 거대한 초원을 만나기도 하고.
 

늪지대를 만나기도 하고

  

달라진 계절, 겨울을 만나기도 한다.

 

다시 떠나온 미국.
자연을 만나는 워밍업 정도로 생각하고 계획한 첫 코스의 요세미티.
나무도 만나고 바위 절벽도 만나고 호수도 초원도 겨울도 만났다.
곰도 만나고 사람도 만났지만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을 만났다.
어떤 여행이든지 여행이란 자기 자신과의 만남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고마운 요세미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