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20101017 기본만 있어도. 모노레이크에서

프리 김앤리 2010. 10. 21. 00:15

 

맘모스 레이크를 떠나 다시 북쪽으로 차를 몰아 모노레이크로 간다.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집으로 배달되어온
지질학 책에서 발견한 사진 한장이 지나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도록 만들었다.
바로 이 사진.
지구의 생성과정,  암석의 종류와 형성 과정 등
다분히 따분한 자연과학책을 줄까지 그어가며 열심히 읽던 남편은
호수 위에 이런 신기한 암석이 생기는 모노레이크가 여기에 있는 줄 몰랐다며 흥분을 한다.
그 책에는 별 설명도 없이 그냥 사진만 한 장 달랑 올라가있고
그게 모노레이크에 있다는 말밖에 없었는데도...

 

모노레이크 비지터 센터 입구.
커다란 흑요석이 놓여있다.
남편은 '흑요석은 지표로 나온 마그마가 차가운 바닷물 등을 만나 아주 짧은 시간에 냉각된 암석' 이고,

돌이 단단해서 원시인들과 인디언들이 돌칼로 사용되던 돌이란다.
또 여기는 분명 화산 폭발이 있었을 것이란다.
생물학, 지질학 책을 열심히 읽더니만
과학선생이었던 나를 오히려 가르치려 든다.

 

비지터 센터의 내부.
이건 또 석회암이란다.
모노레이크에서 많이 발견된 석회암.
호수 주변으로 흘러 내려오는 물 속에 섞여 있는 칼슘 성분과

강한 알카리 성분의 호수 안에 있던 탄산염이 만나 이루는 것이라고...
점입가경이다.

내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비지터 센터 내부에 있는 전시실의 설명을 하나하나 다 읽어보고
센터에서 방영하는 20분짜리 다큐멘터리도 봤다.
과학 다큐멘터리는 그냥 보고 있어도 재미가 그닥 없는데
한 술 더떠서 영어 과학 다큐라...
귀로 들리는 건 많이 없고 화면 가득 날아다니는 파리떼와 새떼,
호수 물속을 가득 채운 새우새끼들,
장관을 이룬 모노레이크의 석회암 탑들만이 눈으로 들어왔다.
듣고 보고 이해하는 다큐가 아닌 보고 생각으로 끼워맞추기만 하는 다큐.

밖으로 나와서 보이는 모노레이크의 정경속에
방금 눈으로만 본 다큐를 접목시키느라 좀 힘들다. ㅋㅋ

 

비지터센터 근처에서 바라보이는 호수 주변에 하얀 뭔가가 만들어져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센터의 직원이 일러주는 대로
돌탑들을 왕창 볼 수 있다는 남쪽 호수로 차를 몰았다.
1년짜리 미국 국립공원 패스가 여기서도 유용하다.

패스한장으로 여기저기 국립공원이 전부 공짜다.
그거 참 마음에 드는데?

주차장에서부터 호수까지는 방문객들을 위해 길도 잘 만들어두었다.

 

어~~어~~~
가는 길이 예사롭지 않다.
삐죽삐죽 솟아있는 바위기둥들.
생판 처음 보는 광경이다.

여기서는 이 바위 기둥들을 투파(TUFA, 구멍이 뚫린 돌)라고 한다.

우리는 세상의 많은 호수를 돌아봤지만, 이런 투파가 있는 호수는 처음이다.

 


미국의 국립공원을 찍은 EBS PD의

남들은 잘 안가는 곳인데 호수도 하나 있고, 좋은 마을이라고 그냥 한번 가서 꼭 하룻밤을 자라는 언질과
지질학 책에서 본 사진 한 장 때문에 이끌려 온 곳인데
(둘 사이에는 아무 관련이 없다. 한쪽은 그냥 호수라고 일러준 거 뿐이고, 또 한쪽은 암석 책을 읽은 것 뿐이고
 그런데 여기 도착해서 그 호수가  그 모노레이크라는 걸 알고서 흥분한 것 뿐이다)
사람들도 별로 찾지 않는 휑한 곳일꺼라는 우리의 상상과는 다르게 여기도 현지 미국사람들이 많이 온다.
역시 우리만 몰랐을 뿐이다.
참, 세상은 넓다.
어느 회장님이 먼저 말만 안했어도 우리가 먼저 하는 건데...
'세상은 넓고 볼 거는 많다.'
여기다 하나 덧붙일수도 있는데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모르는 것도 많다.' 

 

어쭈! 제법인데.
나무데크도 다 깔아놓고.

 

모름지기 호수에는 해가 쨍하니 비쳐야 하는데...
그래서 호수가 하늘 초록빛을 담고 있어야 하고,
어딘가 웃통 벗어던진 팔자 편한 족속들이 보트를 타고 놀고 있어야 제맛인데...

오늘은 하늘도 잔뜩 찌푸린데다가
날씨마저 음산하니 호수를 걷고 있는 사람들의 어깨가 잔뜩 움츠려져 있다.

 

이 호수가 그렇단 말이지?
몇번씩이나 화산이 폭발한 곳, 원래는 바다였던 곳,
염분의 농도가 태평양보다 세배나 더 높다는 완전 짠물.
그러나 이 곳에도 소금새우가 살고 있고,
그 새우를 먹고 사는 파리가 우글거리고,
그 파리떼를 먹고 사는 새들에게는 지상의 낙원인 곳.

 


센터에 있는 글들을 열심히 읽은 터라
지금 이 광경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다.

거기에 의하면 모노레이크의 호수가 점점 더 말라서
예전에 비해 호수의 크기가 훨씬 더 줄어들었다고 했다.
원래는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이 이 곳에서 이 호숫물을 마시면서도 살 수 있었다는데
캘리포니아주의 사람들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해 이 호수로 들어오는 물줄기를 다 돌려버렸다고.
그래서 호숫물은 점점 말라가고 염분의 농도가 지나치게 높아져
사람들이 마시지 못하는 물이 되어 버렸다고.
결국은 수세기동안 이 땅에서 살았던 네이티브 아메리칸은 이 땅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고...

그냥 한번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의 눈으로도 확연히 보인다.
아주 먼 옛날에는 호수였음직한 부분이 이제는 마른 땅으로 변해 있다.

 

Mono lake의 mono는 '하나'라는 뜻이 아니라,

네이티브 아메리칸 말로 'monache'의 줄인말로 'mono'라고 했고,

monache의 뜻은 'fly eaters'..

파리를 먹는 사람들.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은 '파리의 번데기'... 구더기를 모아서 주된 요리중 하나로 먹었다고 한다.

파리의 번데기... 구더기...

기분은 이상하지만 당시의 삶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다른 먹을 것은 없고, 호숫가에 흔하디 흔한 구더기를 단백질 성분으로 먹을 수 밖에 없었던 시절...

모노레이크... '파리를 먹는 사람들의 호수'

 

손가락을 담궈보면 소금 농도때문에 찌릿찌릿하고
호수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기름인 것 처럼 뭔가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는...

물을 보고 마구 달려가던 개 한마리가
머리를 쳐박고 물을 핥으려다 뒤로 한발짝 물러선다.
냄새만으로도 알아차렸을까?
혀를 홀까닥 뒤집을만큼.....

샌프란시스코 바닷물 보다 몇배는 짠 소금물이라는 사실을.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이 보인다.
우리말로 치자면 현장 학습이다.
가운데 선생님이 열심히 설명을 한다.
아이들도 제법 열심히 듣고 있고...
나도 저렇게 밖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면 더 즐거운 수업이었을까?

 

어느 더운 여름날,
땀으로 지쳐 쓰러지고 졸고 있는 아이들을 깨워
"내가 다 책임지겠노라"고 교문밖 동네 언덕까지 아이들을 몰고 올라가
"여기서 자기가 마음에 드는 풀을 하나씩 뿌리째 가지런히 뽑아 그걸 자세하게 그려보라"고 했던 게 다였던 나.
잔뿌리 하나라도 부러뜨리면 수행평가 점수고 뭐고 국물도 없다는 엄포와 함께
작은 것이라도 살아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가장 완벽한 생물수업이라는 고백을 슬쩍 끼워넣으며 자위했던 나.
그때 그 아이들은 지금 잘 있을까?
살아있는 모든 것을 진정 사랑하며 살고 있을까?

 

밝은 이 아이들처럼...
 

센터에서 나누어주는 모노레이크 설명서의 한 문장이 내 머리를 쿵 쳤다. 
" The tufa tower formations show what nature can do with a few basic elements."

 기본적인 요소만 있어도  뭔가를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연.

...

자연은 아주 기본적인 것만 있어도 뭔가를 만들어내고 있다...

 

호수로 흘러들어오는 물, 그리고 호수 안에 있던 물.
산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에 자연스럽게 있는 칼슘 성분과 염분 호수가 가지고 있던 탄산염 성분만 만나서
수만년의 세월동안 돌을 자라나게 하는 자연.

 

돌을 자라게 하는 자연...

 

처음 지구가 만들어졌을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바다도 없었고, 산도 없었고, 공기도 없었고, 생명도 없었다.

가스, 먼지, 불덩어리만 있었다.

그러나 자연은 스스로를 키워나갈 수 있다.

 

아주 작은 물방울들이 만나 바위로 키워올리는 자연.
아주 기본적인 것만 있어도...
아주 오랜 세월동안...

 

이 곳은 사진 작가들의 성지라고 했다.
아침 햇살이 비치면, 저녁 노을이 비치면
붉게 물든 바위기둥 투파들이, 붉게 물든 호수에 비치는 환상적인 장면.
그들의 등 뒤에는 수천미터의 시에라네바다 산들도 물들고...
수없이 많은 새들이 그 호수위를 날아다니는...

 

그러나 오늘 우리들에게는 그런 장면이 없다.
하늘도 흐리고, 새들은 그냥 호수위에 점처럼 박혀있다.
붉은 노을도 파란 하늘도 없다.
그냥 무채색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가장 기본적인 것만 있어도 지금도 끊임없이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는 자연의 움직임을...
무채색의 황량한 호수속에서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는
가장 화려한 자연의 색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