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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8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본 데스밸리 두번째 이야기

프리 김앤리 2010. 10. 25. 02:34

 

데스밸리의 아침이 밝았다.
사막의 오아시스 마을, 스토브파이프 웰스에서 아침을 맞는다.
서부 개척시대의 식당이었음직한 제법 멋진 식당.

 


우리의 아침이다.
머핀 빵과 쥬스 커피, 시리얼과 우유, 사과, 오렌지.
지난번 여행때는 아주 끔찍했던 미국식 아침이었는데
한국밥을 해먹고 다니는 이번 여행에서는 이 아침도 그런대로 괜찮다.
이것 먹고 오늘 아침을 시작한다.

 

190번 도로를 따라 60Km를 달려간다.
1900년 초반 데스밸리에 지은 화려한 별장.
따뜻하고 건조한 기후에서 살아야한다는 의사의 조언을 들은 백만장자 앨버트 존슨과
자신의 집을 짓기 위해
데스밸리에서 발견했다는 금광에 대한 지분을 놓고 투자를 바라는 월터 스코트의 합작품
스카티의 성(Scotty's Castle)를 보러 가기 위해서다.

 

데스밸리까지 와서 무슨 인간 건축물이냐며 투덜대는 나에게
아무것도 없는 여기까지 와서 성까지 지었던 사람들이 보고싶지 않냐며 나를 달랜다.
1930년대 미국 신문을 가득 메운 앨버트 존슨과 스코트의 일거수 일투족이 궁금해서란다.
무엇이 당시의 사람들을 그렇게 들뜨게 만들었을것 같으냐며...

스카티의 캐슬.
물 한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죽음의 계곡 한켠을 화려하게 차지하고 있는 집.
금광에 관한 궁금증이었겠지...
백만장자에 대한 관심, 그가 다시 나눠가질지 모르는 일확천금에 관한 궁금증이었겠지..

 

자그마치 일인당 11달러나 주어야 스카티 캐슬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60Km의 그 먼길을 달려왔지만
멋지게 차려놓은 잘사는 집 내부를 구경하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다.
그저 무채색의 이 곳에 색을 입혀놓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데스밸리에도 서려있는 인간의 욕망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흐린 하늘과 멋지게 지어놓은 캐슬만 보고 돌아선다.

 

우베헤베 분화구(Ubehebe Crater)로 간다.
3000년된 분화구.
그래. 적어도 데스밸리는 이래야 한다.

 

스카티 캐슬앞에서 투덜대던 아까와는 달리 발걸음도 가볍게(?) 분화구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화산폭발로 다 부스러져가는 작고 검은 모래때문에 발이 푹푹 들어간다.

 

저 아래 땅끝까지 바닥에 닿는다.
3000년 전. 땅속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치솟아 올라오며
섬광처럼 터지면서 바위를 산산조각내 부스러기로 만들고
화산재 파편들이 한시간에 100마일의 속도로 날아갔던 찰나를 상상한다.
그 괴력의 순간을.

 

바짝 말라버린 땅이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다 날아가버린 죽음의 땅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 곳에도 생명이 보인다.
물이 풍부한 땅에서 자라는 짙은 초록잎의 다른 나무들과는 다르지만
이 곳에서 이렇듯 옅은 녹색잎이라도 달고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회색같아 보이는 키작은 나무의 녹색잎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앗!!! 거미도 있다!!!
15Cm는 되는 듯한 거대한(?) 거미.
이 녀석은 여기서 무얼 먹고 생명을 이어가고 있을까?
생명이 고맙다. 정말 고맙다.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어 눈물겹다 .

 

지금 우리 이외에 이 분화구에 있는 유일한 다른 두 사람.
그들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그들을 두고 우리는 발걸음을 돌린다.
다시 푹푹 빠지는 힘든 걸음으로 하늘 위로 올라간다.
분화구 깊은 곳의 돌이라도 하나 주워오고 싶었지만
'돌을 들고 나오면 벌금이 250달러'라는 경고문이 없더라도
자연을 있는 그대로, 야생의 삶을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양심이 더 앞선다.

 

아침에 왔던 길 60Km를 되돌아 차를 몬다.
거기다 다시 10여Km를 보태서 달린다.
주변을 둘러보지만 아무것도 없다.
아무 색깔도 없다.
하늘마저 흐리니 밝은 것과 밝지 않은 것, 검은 색과 회색만이 존재한다.
어제 무지개의 선명한 일곱빛깔이 어쩌면 이 곳의 유일한 색깔이었는지도 모른다.

 

Salt Creek다.
이름으로 해석한다면 '소금 샛강'(?)

 

'사람들은 데스밸리를 물이 하나도 없는 완전히 죽은 땅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해수면보다 200피트 더 아래의 이 곳에도 강물이 흘러요.
 이 생명의 강 주변에 식물도 동물도 살지요.
 심지어 Pupfish라는 물고기도 산답니다.
 이 녀석들은 계절따라 찔끔찔끔 있는 물 속에서도 수천년동안 죽지않고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답니다.
 비록 짝이 없어도...'
Salt Creek Trail 앞에 붙어 있는 안내문이다.

 

그래? 여기에 물고기가 살고 있단 말이야?
이렇게 물이 없는데?
게다가 데스밸리는 예전에 바다였다는데 이렇게 뜨거운 지금은 소금농도가 굉장히 높을텐데?

짝이 없다면 단성생식을 한다는 말이겠지?


반신반의하면서 잘 만들어진 나무데크길을 걷는다.
그런데 고기는 커녕 그냥 바짝 마른 땅이다.
도대체 어디에 Pupfish가 있단 말이지?
팝피쉬가 노닐고 있는 모양이라며 붙여 놓은 그림에는 물고기들이 귀여운 강아지처럼 팔딱거리며 놀고 있는데...
왠지 속는 기분이다.

 

속은 게 틀림없다는 확신이 점점 들면서도
혹시 끝까지 가보면 한웅큼의 물이라도 있어 거기에 고기들이 놀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트레일의 끝까지 가본다.

 

허~~~
말짱 황이다.

 

지금은 완전 갈수기가 되어서 그런건가?
그렇담 이 녀석들은 이런 시기에는 어디에 있다가 수천년을 살고 있단 말이지?
완전히 물이 마르는 여름이 오기전에 이 녀석들을 어디 다른 곳으로 옮겨서 살게 하는 건가?
그리고 다시 조금의 비라도 내리는 가을 겨울이 되면 얘네들을 다시 풀어놓나?
여기가 뭐, 청계천인가?
살기 좋은 동네라고 뻐기려고 일부러 고기를 갖다 풀어놓게...

ㅋㅋ


속았다는 생각에 허탈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놈들이 이 나무 데크 아래 어느 구석에서 한줌의 물이라도 생명줄 삼아
살아남아 줬으면 좋겠다.
우리 눈에 보여주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다시 길을 재촉한다.
머스타드 캐년(Mustad Canyon)을 지난다.
검은 색과 회색밖에 없던 데스밸리에 노란 색이 드러났다.
서부로 서부로 금광을 찾아 떠났던 사람들에게 데스밸리에서 만나는
노란색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역시 그랬다.
184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금이 발견됐다는 소식에 수많은 사람들이 서부로 서부로 몰려가던 시절.
한겨울 솔트레이크 시티를 출발한 사람들이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넘기 힘들어
선택한 길이 이 길이었다.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남쪽 모퉁이를 돌아서 가자.
이 길은 겨울에는 안전할꺼 아니냐.


그러나 이것이 재앙의 시작이었다고 했다.
물 한방울 발견하기 어려웠던 사막길.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Death Valley' 라는 악명도 그래서 붙여졌다.

 

그러나 그때 데스밸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은 돌덩어리가
데스밸리의 광산붐을 일으켰다.

서부로 서부로 몰려가던 사람들이 노다지를 캐보겠다고 터를 잡은 것이다.
데스밸리의 중앙에 있는  Harmony Borax Works.
Borax란 유리 만드는데 쓰이는 천연광물이란다.
스무마리의 노새가 이끄는 마차에 Borax를 실어 멀리 모하브의 기차역까지 옮기는 일이 120년간이나 계속된 곳이다.

 

이 척박한 땅에 광물을 캐올리기 위해 숙소까지 짓고 살아야했던 광산 노동자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버린 곳이기에
이름조차 데스밸리였던 이 곳에서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
지금 여기를 여행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들의 피곤했던 삶도 눈물겹게 다가온다.

 

그 시절, 금광을 캐러가던 사람들이 목숨을 내놓고 지나가던 길.
돈이 되는 광물을 캐기위해 마른 땅에 집을 짓고 살아가던 길.
사람들에게 길은 살아가기 위한 방편이었다.

 

다시 한참을 남쪽으로 차를 몬다.
서쪽으로 길게 뻗어있는 길을 만난다.
포장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길.
터덜터덜 달린다.

 

Devil's Golf Course다.
죽은 자들의 놀이터란다.
데스밸리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게 바쳐진 땅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소금덩어리들이다.

 

2억년전 이 곳은 바다였다.
데스밸리를 둘러싼 양쪽 산맥들이 융기하면서 이 곳도 하늘에 노출되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바닷물이 완전히 마르고 소금만 남았다.
뜨겁고 마른 땅 데스밸리의 소금들은 서로 뭉치고 응결되어 이제 딱딱한 소금 바위가 되었다.
삐쭉삐쭉 소금 결정들이 그대로 드러난 바위덩어리들이다.

'이 곳에서 넘어진다면 당신의 뼈가 부러질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문이 붙어있다.

밤이면 이 곳에서 죽은 영혼들이 몰려나와 골프를 친다는 상상을 하면서 이름을 붙였다는데
꼭 악마라고 불러야했을까?
천사들의 골프코스면 어땠을까?
섣불리 소금바위들을 밟고 지나가던 살아있는 사람들의 뼈를 다치게 했기 때문일까?
죽은 자들에게는 놀이터이지만 산 사람들에게는 무시무시한 소금바위 밭이어서?
관광지에 억지로 붙여놓은 이름과 의미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 헉헉 목이 말라 죽어간 사람들 생각때문인지 모른다.

 

조심 조심 걸어본다.
'가만 들어보면 소금 결정들이 녹는 소리를 들을수도 있다'는 안내문 따라
가만 귀 기울여보지만 어디서도 소금이 녹는 소리는 없다.
아무 소리도 없다.
그저 멍한 귀울림밖에...

 

재미있게들 노세요.
뜨거운 태양이 있는 낮과 다르게 서늘해지는 밤이 오면
모두들 몰려 나와 골프를 치시건, 삐쭉삐쭉 소금 바위위에서 춤을 추시건
즐겁게 노세요.
당신들은 여기서 넘어지지도 않겠지만
설사 넘어지더라도 뼈를 부러뜨리진 않을거니까요.
부드럽고 아름다운 영혼 그대로들 와서 신나게 즐기세요...

 

이 곳이 진짜 죽은 자들의 골프코스였으면 좋겠다. 

 

Badwater로 간다.
새하얀 소금밭이다.
데스밸리가 바다였다는 사실이 그대로 드러나는 땅이다. 

 

산너머 저쪽은 이미 겨울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었는데
이 곳은 한여름이다.
한여름 뙤약볕 소금밭이다.

 

맞은 편도 높은 산이다.
양쪽의 두 산맥 때문에 데스밸리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
비구름들이 이 산맥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비를 다 빼앗겨버린 땅, 데스밸리.
다 빼앗겨서 아름다운 땅, 데스밸리.

 

사람들은 그저 카메라만 들이댈 뿐이다.
 

우리도 그들을 따라 사진을 한 장 찍어보고

 

쪼그려 앉아서 찍기도 하고
 

우리도 쪼그려 앉아보고.
그들이 먼저 그랬는지, 우리가 먼저 앉았는지...
소금밭 데스밸리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의 놀이터다.  

 

다시 차를 몬다. 
정말 메마른 땅이다.
끝도 없이 구불구불 산길을 오른다.
데스밸리 전체가 다 내려다 보이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다. 
 

다 올랐다.
단테스 뷰(Dante's View)다.
단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데스밸리.
우리가 단테가 되는 거다.

 

단테가 되기 위해서는 주차장에서도 제법 한참을 더 걸어 올라가야 한다.
단테스 피크(Dante's Peak)까지 올라야 한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단테의 신곡에서 묘사한 지옥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단테의 신곡 신곡, 말만 해댔지 읽어보지도 않은 책이다.
그가 그 책에 어떻게 지옥을 묘사해 놓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 장면에서 책 속의 지옥을  상상해야 한다.
어렵다.
지옥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말인가?
아니 지옥이라는 게 과연 있는지 없는지를 믿지 못하는 나에게
상상속의 지옥과 이 경치를 연관짓게 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조금 더 걸어가보자.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단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눈으로 데스밸리를 본다. 
 

아까 우리가 직접 걸어들어갔던 Badwater가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지옥의 구덩이가 아니라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눈이 부시도록 하얗게 넓게 펼쳐진 소금밭이 보인다.

 

높게 솟아오른 산맥들이 보이고 수억년전 바다가 보이고
바닷물까지 다 마르게 만든 오랜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시간이 보인다.

 

아무것도 없는 것 처럼 보이는 죽음의 땅에서 피어나는 나무도 보이고
그 땅을 기어가며 살고 있는 생명들이 보인다.
이 곳을 일구어 낸 사람들이 보이고,
여기에 숙소를 짓고, 집을 짓고 광산을 일구며 살았던 사람들이 보인다.
그리고 여기서 죽어갔던 사람들이 보인다.

 

그는 단테스 피크에 앉아 무슨 책을 읽고 있을까?
억지로라도 책을 덮어 책 표지를 보고 싶었지만
무슨 책을 읽고 있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absolutely calm and peaceful"이라는 그의 말에
우리는 차마 그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물을 수가 없었다.
그처럼 우리도 그대로 이 고요함을 느끼고 싶었다.
이 평화를 받아들이고 싶었다. 

 

 

단테스 피크에 앉는다.
단테의 시선이 아닌 우리의 눈으로 바라본
데스밸리에는 지금도 꿈틀거리고 있는 지구를 보고 그의 오랜 시간이 있었다.
죽지않고 수천년을 살고 있는 생명들이 있었고
그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간절히 원하는 비까지 다 빼앗기고도 아름답게 남아있을 수 있는 자유를 보았다.
황량함과 적막함에서 울려퍼지는 우리 마음속의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아!!! 데스밸리여!!! 

 

이제 내려가야겠다.
내일은 좀 더 깊은 곳, 데스밸리의 깊은 속으로 들어가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