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20101020 작전상 일단 후퇴, 그랜드캐년

프리 김앤리 2010. 10. 27. 07:00

 

 

오늘은 하바수 폭포로 간다.
인터넷을 뒤적거려봐도 하바수 폭포를 갔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어떻게 가는 지 설명해 놓은 곳도 별로 없다.
헬리콥터를 타고 가거나 말을 타고 가는 방법은 있지만
우리처럼 직접 찾아 들어가는 길은 참 어렵다.
경로가 정리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수파이 부족들의 공식 홈페이지에 안내해 놓은 길도 구글지도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랜드캐년 거의 입구까지 가서 비포장도로로 빙둘러 가도록 구글은 안내한다.
그곳에 자는 곳이 있다는 말인지, 하루만에 폭포까지 갔다가 돌아올수 있다는 말인지,
아니면 어디까지 돌아나와 자야한다는 말인지
모든 게 불투명하다.

......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찾을 때는 잘 몰랐는데
여기와서 보니까 공식 홈페이지에서 알려준 도로 이름은 인디언 도로다.
그래서 구글에는 안나오는 걸까?
......
모르겠다.
'공식'이라니까 즈그들 시키는 대로 가보자.
Kingman에서 66번 도로를 타서 Peach Springs 까지 가서 18번 인디언 도로를 타는 것.
잠자리는 가보면 무슨 수가 생기겠지.
 
미국 동부에서 서부를 횡단하는 구도로, 66번 도로를 탈 수 있어서 이것 또한 좋은 일이다.
서부개척시대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도로다.
많은 화물칸을 매단 열차도 우리의 여행에 동행한다.

 

조그만 마을 Peach Springs에 도착.
여기는 이미 후알라파이 인디언 보호구역(Hualapai Indian Reservation Area)이다.
동네 조그만 우체국앞에서 인디언 소녀한테 하바수 폭포를 물어보니
이 길로 쭉 가다가 갈림길에서 좌회전 하기만 하면 된단다.
그러면서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그 길이 열려있을라나?"
뭣이라?
한국에서부터 풀리지 않는 숙제를 가지고 온 하바수 폭폰데 여기까지와서도
갸우뚱에 닫혀있을지 모른다는 이상한 소리만 들린다.

뭐, 이래?

흥! 그래도 해가 창창하니 맑고
신비의 인디언 마을, 하바수 폭포에 가기만 하면 된다.
룰루랄라라 ~~~


갈림길이 나왔다.
왼쪽으로 꺽어 들어간다.
뭐, 별 어렵지 않구만.
아스팔트같이 깔끔하니 안닦여 있어서 그렇지 이길도 뭐 괜찮구만.
구글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룰루랄라라~~~

 

어이쿠!!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길이 막혔다.
모든 방문객에게는 이 길이 닫혀있단다.
표지판에 의하면 이제 60마일, 100Km도 채 안남았는데...
길은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이래서 구글에 안떴나?
그냥 한번 들어가볼까?
왜 못들어오게 해 놓았지?
그러면 다른 길이 있나?
구글에서 시킨대로 그랜드캐년 입구까지 가서 비포장 도로로 가야하나???

 

난감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다시 66번 도로를 타고 내려와 Seligman, Williams를 거쳐 한참을 달려 거의 그랜드캐년까지 올라간다.
이번엔 구글이 시키는 대로 왼쪽으로 난 비포장도로로 가보자.
터덜터덜 길이 장난이 아니다.
이런 길로 도대체 얼마나 가야한단 말이지?
60마일? 80마일? 백Km도 넘는 길을 이렇게?
이 길이 맞기는 한가?
오늘 저녁 거기 잠자리는 있을까?
게다가 이 놈의 네비는 비포장도로 중에서 그나마 길이라고 나와있는 길을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길도 없는 완전 숲쪽으로 가라고 자꾸 시킨다.
미치겄다.
하바수 폭포, 너 어디 있는거야?

 

포기했다.
공식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길은 막혀있고,
구글이 시키는 길은 이상하고,
네비는 더 미친 짓을 해서 그냥 포기했다.
그랜드캐년 비지터 센터에 가서 물어보기로 했다.
ㅋㅋ


그래서 예정에 없던 오늘, 며칠 일찍 먼저 그랜드캐년으로 들어왔다.
비지터 센터 스텝에게 물어보니 하바수폭포 가는 길은 18번 도로가 맞단다.

 닫혀 있던데?
 그럴리가? 니네들 언제 가봤는데?
 오늘 갔다니까, 지금 막 거기서 오는 길이라니까?
 그래?

스텝이 수파이 마을로 전화를 걸어본다.
어쩌구 저쩌구...
 맞지? 도로 통제하는 거 맞지?
며칠전 많이 온 비 때문에 수파이 마을 거의 입구에 도로가 물에 잠겼단다.
그래서 방문자들은 통제하고 있다고...

그래, 언제 열린데?

그건 자기도 알 수 없단다.
전화번호를 하나 주면서 수시로 연결해보란다.
이런 일이 자주 있냐? 우리가 거기를 다시 갈려면 보름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가능하겠냐?
겨울에도 갈 수 있냐? 별 영양가 없는 질문을 해보지만 결론은 지금 갈 수 없다는 거다.
일년 내내 도로가 닫히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얼마전에 비가 아주 많이 와서 그런 일이 생긴 것 같다나?

 

그러면 어쩐다?
어차피 그랜드캐년을 왔으니까
내일 우리가 그토록 원하던 그랜드캐년 아래로 걸어가는 트레킹이나 해야겠다.

그런데 이것도 또 문제다.
내일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하루종일 흐린데다가 비올 확률은 70%,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곳곳에 버번쩍 있을거란다.
.......
그 다음날은 조금 낫다. 흐린 건 마찬가진데 비올 확률이 20%라나.
확률은 확률일 뿐, 비가 오지 않은 나머지 확률이 우리에게 떨어진다는 보장도 없지만
그래도 70%와 20%는 천지 차이다.

일단 오늘은 간단한 트레킹을 하고~~
Flagstaff로 가서 내일은 그 주변의 National Monument를 갔다가~~
그 다음날 다시 그랜드캐년을 오기로~~~

그러면 오늘 이 몇시간동안은 어딜 간다?
모레 오면 Bright Angel Trail을 갈꺼니까~~~

 

일단 Yaki Point로 가서 경치 한번 봐주고,
쬐매 험하다는 Kaibab Trail을 몇시간만 걸어가볼까?
야키포인트에서 보이는 멋있는 장면을 카이밥 트레일 아래에서 맛볼까?
그래!!! 결정했어!!!

 

하~~ 좋다.
야키포인트.
해질녁에 가야 제일 좋지만 이것도 멋지다.
내일 모레면 저멀리 보이는 저 곳으로 우리가 내려간다.

 

 

빛이 참 중요하다.
빛이 어떤 방향에서 얼마나 비치느냐에 따라 그랜드캐년은 매번 달라보인다.  

 

벌써 몇번째 그랜드캐년을 찾아온거지?
2005년도에 한번, 지난 여름 동준이란 한번, 우리 둘이서 따로 한번
그리고 이번까지...
그때마다 다 좋다 .

 

바람이 차다.
지난 여름에는 여기서 반소매를 입고 다녔었는데
얼마 시간이 지난 것 같지 않은데 벌써 이 곳은 겨울인 것 같다.
하기야 2000m 높이의 산꼭대기인데...

 

그냥 한번 감상해 주시고...
 

다시 한번 더...

 

그런데 이상한 친구가 보인다.
뭐 하는 친구지?

 

무신 안테나를 들고?
이 높은 산 위에서?

 

새 소리를 채집하고 있단다.
그랜드캐년에 어떤 새들이 날아다니고 있는지, 어떤 새가 살고 있는지
새들이 내는 소리 주파수를 저 안테나로 잡고 있단다.

그랜드캐년 국립공원 직원이다.
하루종일 자기는 그랜드캐년 곳곳에서 이 멋진 경치를 보면서 안테나만 휘두르고 있으면 되니
얼마나 즐거운 직업이냔다.


자기도 대학에서 생물을 전공했다고...
나도 생물 전공이었다니까 그러면 당신도 새를 좋아하냐고 묻는다.
아니 나는 고등학교 생물 선생이었고,
새, 꽃 이런 거는 잘 모르기도 하고 관심도 없다고...
사람의 신체 구조, 작용에 대해 관심이 더 많다고...

사실 고등학교 생물 교과과정이 사람의 신체구조나 그 작용에 관한 것이 더 많아서 관심사가 된 것 뿐일 수도 있는데...
그런 것만 수능에 나오고 새, 꽃 이런 거는 수능에 안 나와서 잘 몰랐노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ㅋㅋ

 

자신의 일도 멋지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당신 일도 아주 멋진 일이라는
청년의 말에 지금은 선생을 그만두었노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구구절절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같은 생물 전공이라는 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며 이것 저것 설명해준다.
그랜드캐년에는 40여종의 새가 있는데
오늘도 몇 종류의 녀석들이 다녀갔다고.
새종류 하나하나 마다 주파수가 다 있단다.
안테나 끝에 달려있는 작은 기계에 주파수가 기록되어 어떤 녀석이 이 근처에서
움직이고 있는지 다 찾아낸단다.

 

같이 한번 찾아볼래?
이 근처에 한마리가 있는 것 같다며 방금 전에도 신호를 잡았었단다.
안테나를 다시 계곡쪽으로 들이대고...
ㅋㅋ
어디 멀리 가버렸나보다.
내가 지켜보고 있는 동안은 어떤 소리도 잡히질 않는다.

 

멋진 청년... 열심히 일해요...


남편은 그런다.
일자리란게 바로 저런 거라고.
일을 다양화하고 세분화 하고 전문화하여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구석구석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일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일자리 창출이라고.

 

그나저나 서둘러야 한다.
Kaibab Trail을 내려가려면...
내일 모레 저 아래 깊숙한 곳까지 내려가더라도
오늘도 우리가 걸어가야 할 곳이 있다.

 

그런데 날씨가 심상찮다.
방금까지 멀쩡하던 하늘에 검은 구름이 잔뜩 몰려온다.
무거운 비구름이다.
저 쪽은 벌써 비가 내리나 보다.

참 믿을 수 없는 산악기후다.

 

카이밥 트레일 내려갈려고 딱 입구까지 왔는데
한걸음 정도 내려갈려고 하는데 후두둑 비가 오기 시작한다.
후두둑 후두둑
어~~ 어~~ 이거 장난이 아니다.

비가 아니다.
우박이다.
하늘에서 우박이 쏟아진다.
안내판 아래의 콩알만한 지붕 아래 머리를 숙이고 몸을 피하는데
다리 아래를 때리는 우박이 장난이 아니다.
점점 더 커진다.
우아~~~
내 평생 이렇게 큰 우박이 이렇게 순간적으로 무섭게 몰아치는 건 처음이다.

 

멀쩡하던 땅이 금새 새하얗게 변했다.  
 

후두두두...후두두두...
무섭다.
우박이 다리 아래를 마구 때린다. 
엄청 아프다.

그렇게 10분여를 지독하게 내린 우박.

 

우박 포탄이다.
나중에 나가서 보니 세워놓았던 우리 차의 앞 유리창이 약간 깨져 있었다.
순간적으로 내린 이 우박때문에....
차 유리창을 깰 정도의 대형 초강력 우박이라니... 

 

 하기야 저렇게 큰 우박이 이렇게 심하게 내렸으니... 

 

우리 눈 앞의 우박 포탄은 멈췄다.
그러나 이미 땅은 바짝 얼어붙고 기온은 엄청 떨어졌다.
카이밥 트레일이고 뭐고, 포기 할수 밖에 없다.
딱 바로 입구에서.

 

지난번에는 비겁한 놈, 징한 놈 대상포진이라는 놈 때문에 그랜드캐년 트레킹을 포기했는데
이번엔 우박이다. 추운 날씨다.

 

일단 포기다.
작전상 후퇴다.
그랜드캐년 !!!  모레 다시 온다.
그때는 아무 것도 막지마라.
그랜드캐년 아래로 내려가는 우리의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