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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1 "순돌아! 우리집에 놀러온나!!! 우파키, 월넛 Nitional Monument

프리 김앤리 2010. 10. 28. 01:58

 

무섭도록 내리던 우박포탄 때문에 잠깐 뒤로 물러섰습니다.
적어도 하루는 지나야 이 소름끼치는 검은 구름이 사라질 것 같기에
그랜트캐년의 베이스캠프, Flagstaff에 진을 칩니다.

 

그랜드캐년은 지구 지각의 살아있는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라면

프래그스태프 근처의 우파키(Wupatki)나 월넛(Walnut)은 아주 오래 전 사람들이 살았던 유적이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먼옛날 이런 극한 환경속에서도 둥지를 틀고 살았던 사람들을 만나러 갑니다.

 

~~~ 뭐, 우박이 내려줘도 괜찮은거네요.
아니면 모르고 그냥 지나칠 유적을 찾아가게 만드는 거니까요.

 

<선셋 화산 분화구  Sunset Crater Volcano > 

온통 검은 색입니다.
무지개는 찬란함으로, 붉은 모래 사막은 처연함으로, 흰 소금밭은 눈부심으로 다가왔었는데
여기는 온통 검은 색입니다.
검은색이라면 두려움이 앞서야 하는데, 화산이 폭발한 곳이라서 그런가요?
왠지 따뜻하다는 느낌입니다.

 

공부를 해야합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이곳을 들어섰으니까요.
입구에서 받은 미국 국립공원 자료를 한참동안이나 읽어봅니다.
뭐가 있는지, 어디로 돌아다녀야 하는지 감이라도 잡아야 하니까요.


ㅋㅋ
늙어서 고생입니다.

 

우파키 유적을 보겠다고 프래그스태프에서 30여분쯤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은
선셋 분화구 도 있고, 우파키 유적도 있습니다.
차로 한바퀴 빙 돌면서 이 둘을 다 볼 수 있습니다.
차로 한바퀴 빙 돈다고 하지만 그 거리가 80Km는 되니 그저 조그만 유적은 아닙니다.


여기는 화산이 폭발한 장소로 선셋 분화구 지형입니다.

 

여기 화산은 1040년에서 1100년 사이가 가장 최근에 폭발한 것이랍니다.
그 이전에도 물론 있었겠지요.
당시의 화산폭발로 샌프란스시코 볼케이노 지역에 600개의 언덕과 산이 만들어졌답니다.
여기서 왠 샌프란스시코?
미국 서쪽에 있는 도시 샌프란시스코와 다르게
이 곳에서 가장 높은 산 이름도 샌프란시스코 피크입니다.
제 흐릿한 기억으로 화산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조산대 이름중에 샌프란시스코대가 있었는데
거기가 여기를 가르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서부 도시 샌프란시스코에도 지진이 자주 일어나서 저는 거기가 거긴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긴가?
아니면 말고...

 

어쨋거나 화산분출로 만들어진 언덕이나 산들이 기후에 영향을 줘서
이 지역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니
화산이라는 것이 만고 불필요한 것은 아닌가 봅니다.
읽은 자료에 의하면 화산재가 땅을 덮어 토양 속에 있는 수분을 그대로 보존하는 역할도 해서
땅을 기름지게 만든다네요.

여기는 붉고 노란색의 화산재가 뒤덮혀있어서, 그래서 Sunset 볼케이노라고 부른답니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검은 색만 있어도 두렵지 않고 따뜻하게 느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나 봅니다.

 

그랜드캐년의 우박때문에 피해온 우리같은 사람이나 찾아올까,
아마 텅 비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미국 자기나라 사람들은 많이 찾아옵니다.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이 가을 단풍놀이를 나온 걸까요?
검은 화산지형에 노랗게 물든 단풍나무가 아주 아름답습니다.

 

여기서도 미국의 국립공원 레인저들을 만납니다.
별로 크지도 않아보이는, 그래서 '국립공원' 수준까지 못가고 'National Monument'수준에 머문
이 작은 곳에 일하는 레인저들이 10명쯤 된답니다.
이건 순전히 이 곳 선셋 크레타 볼케이노 지역에서만 그러니까
저쪽 우파키쪽은 훨씬 더 많겠지요.

 

오늘 자기들의 임무는 사람들이 걷는 트레일길을 따라 걸으면서
지각에서 혹시 무슨 움직임이 있는지 살펴보고,
어디 손상된 곳이 없는지, 더 챙겨야 할 곳은 없는지 살펴보고
또 방문객들이 버린 쓰레기도 줍기도 한답니다.


우리처럼 이렇게 질문하는 방문객을 만나면
이곳에서 살고 있는 동식물에 대한 설명도 하고(생태학),
사람들이 살았던 유적, 유물들에 대한 설명도 하고(고고학),
자연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설명(지질학)할 수 있답니다.

우리 지식이 천박해서 일일이 다 물어볼 수 없었지만
그랜드캐년에서 새 소리를 체크하고 있던 그 청년과 마찬가지로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최근에는 숲을 직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도 생태학, 고고학, 지질학까지 다 관심을 가지면서
숲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그 곳을 사랑하게 만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들도 자연을 가꾸는 사람으로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
그저 산에 있는 쓰레기나 줍고, 산불이나 막아보는 공공근로의 개념으로 추락시키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우파키  Wupatki National Monument> 

우파키 내셔널 모뉴먼트 비지터 센터로 들어갑니다.

 

이것 저것 자료들을 읽어보는데,
그것보다 더 우리 눈을 사로잡은 건
아주 작은 공간이었지만 아주 알차게 만들어놓은 공간의 효율성이었습니다.

 

정팔각형이었나?
한 면은 입구, 또 한 면은 티켓판매처, 그리고 나머지 면은 자료전시를 해놓고
가운데는 다시 조그만 팔각형의 부스를 만들어 기념품을 팔고 있습니다.
볼것이 많아 한참동안을 서성이게 만들었습니다.
공간이 없어서 뭔가를  못하는건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눈을 바짝 들이대고 다 읽어볼수 있도록 자료도 전시해놓고,
아래 서랍서랍을 열도록 만들어 또 뭔가를 넣어두었습니다.

 

벽면의 전시공간이 부족하면 또 아이디어를 내서
회전 전시판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기념관, 전시관등이 눈에 자주 들어오는 요즈음 참 탐나는 곳이었습니다.

 

어쨋거나... 우파키 유적을 보러 나가야 합니다.
이 유적은 1100년대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우파키 사람들은 이 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었답니다.
이 유적에는 100명 정도가 살았던 지역이랍니다.
수십개의 방, 커뮤니티 홀, 저장고등...
천년전의 건축물로는 꽤 멋집니다.
대부분 석회암과 붉은 사암으로 지어졌습니다.

 

우파키 트레일을 따라 걷습니다.
여기서도 역시 공부를 해야합니다.
비지터 센터에서 받아나온 책자에 머리를 빠뜨립니다.

 

메인 건물을 지나갑니다.
각 방의 용도, 구조를 설명해놓은 책자를 읽어야 겨우 이해가 가능합니다.
자료 한번 보고, 유적 한번 보고.

 

여전히 자료을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
유적을 본 시간이 더 많은 것 같은데
어찌 찍힌 사진을 보면 구경은 안하고 자료만 디립다 보고 있는 것 같이 나와있네요.

 

여기는 Community room입니다.
로마시대 유적에서도 자주 보이는 거였지만
그 먼 옛날에도 공동체 사회라는 것은 아주 중요했나 봅니다.
함께 모여서 뭔가를 이야기하고 뭔가를 결정하고 뭔가를 같이 즐기는...
하기야 하루하루가 거대한 자연과의 투쟁이었으니
개인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들었겠지요.
모두가 힘을 합하는 사회가 정말 중요했겠지요.

 

아주 잘 지어졌습니다 .
ㅋㅋ
물론 1000년 전 유적 그대로가 아닌거지요.
얼핏 보아도 현대인의 손길이 보입니다.
맨듯맨듯하고 딱 바르고, 결점이 없어보이는...
ㅋㅋ
이 유적을 발굴하기 위해서 이 곳 유적의 일부에서 아예 숙식을 하면서 살았었나 봅니다.
그 때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랍니다.

 

새로 보수는 했겠지만 원형을 완벽하게 다 부수고 새로 지은것은 아닐 겁니다 .
가능하면 원형을 토대로 해서 지었겠지요.
그래서 눈에 띄는 게 저 큰 돌입니다.
자연에 있는 돌을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그를 응용한 집짓기 말입니다. 

 

우루루 떼지어 들어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팩키지 여행자들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가까운 동네에서 가을 단풍놀이 마실을 나왔건
아니면 고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진 학자들이건
그건 잘 모릅니다만, 지금 여기 있는 방문객들의 걸음걸이가 천천이어서 참 좋습니다.

 

여기쯤에서는 저도 자료 독파를 다 했었나 봅니다.
천천히 살랑살랑 느끼면서 걷고 있습니다.

 

여기 우파키 유적이 있는 곳에서도 1250년경 큰 화산이 폭발했었답니다 .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콜로라도 고원 분지가 있는 더 먼 곳으로 떠나갔지만
화산이 폭발한 이후에도 여전히 이곳에 남아서 살았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의 후손이 바로 인디언 후피족, 주니족, 나바호족이라고 합니다.
인디언이 아니지요, 네이티브 아메리칸이라고 해야겠지요.
아주 오래 전부터 이 땅에서 살고 있었던 사람들.

 

푸에블로 성(Citadel Puebulo)을 보러 가는 길입니다. 
  

푸에블로 성 바로 옆에도 조그마한 분화구가 하나 보입니다.

 

푸에블로와 우파키, 나바호, 호피... 그 사이의 정확한 관계를 잘 알지는 못합니다.
수학적으로 따진다면 어느 것이 더 큰 개념인지
어느 단어안에 다른 단어가 하위개념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인지...

 

이들은 여기다가 무슨 일을 하려고 높은 성을 지었을까요?

입구에 쓰여져 있는 안내문에도 정확한 설명이 없습니다.
무슨 전쟁이 있어, 몸을 피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조그만 성 안에 피해봐야 몇명이 피했을 것이며,
버티어봐야 며칠을 버틸수 있었겠습니까?
전쟁용은 아닌 것 같고, 이곳 역시 사람들이 살았던 곳인 듯 합니다.
너른 평원에서 그나마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잡아먹어야 하는 짐승들도 눈에 잘 뜨이고, 농사짓는데도 다분히 편하지 않았을까요?

 

국립공원 안내 리플렛에는 온통 '도전'이라는 단어였습니다.
부족한 물, 극한 기후환경속에서 서사시적인 삶을 살았던 우파키 사람들의 강인한 정신, 도전 정신.
극한 땅은 이들에게 강인함을 주었고, 가능성을 주었다는 것.
그리고 그들에게 자연에 대한 겸손을 배우게 해다는 것.
우파키 유적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은 도전정신, 강인함, 그리고 자연에 대한 겸손인가 봅니다.

 

 

<월넛,  Walnut National Monument > 

우파키 유적에서 다시 차를 남쪽으로 몰고 내려와
거의 프래그스태프에 이를 쯤이면 월넛 내셔널 모뉴먼트에 도착합니다.
이곳에는 또 다른 부족 Sinagua 족이 살았던 유족들을 만날 수 있답니다.
비지터 센터에 들어섭니다.

시니구아 사람들은 바위 절벽에 집을 짓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아나사지(Anasazi), 호피(Hopi), 나바호, 아파치등 당시 주변에 살았던 부족들을 표시해 놓았습니다.
이 땅은 정말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이 살고 있었던 곳이 맞습니다.
유럽을 건너온 미국 사람들이 살기 전에는...

 

시나구아 부족들이 살았던 월넛 내셔널 모뉴먼트를 보려면 산 아래로 내려가는
트레일을 따라 가야 합니다.
이 곳은 해발 2000m 이상의 높이에 있고,
계곡의 절벽에 이들이 살았던 집터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계곡이 보이는 곳까지 아득한 절벽을 따라 내려가야 합니다.

 

얼마 내려가지 않았는데
저 멀리 계곡에서 빠꼼한 구멍들이 보입니다.
시나구아 부족들이 살았던 집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내려간 방문객들이 계곡의 절벽을 따라 나있는 집터들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우리도 내려갑니다.
비가 조금 옵니다.
파카의 모자를 뒤집어쓰고 가방에도 덮개를 씌웁니다.
뭐, 이까짓것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어제의 초강력 우박에 비하면 이건 가랑비입니다.
오늘 이렇게 마저 남은 빗물까지 다 내려주시고,
내일 우리가 그랜드캐년으로 갔을때는 그저 맑은 하늘만 보여주십사,
아니 비만 내리지 않게 해주십사 빌 뿐입니다.

 

아득한 절벽의 계곡,
군데군데 사람들의 흔적이 보입니다.
이 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보입니다.

잘 안보이시나요?
절벽 나무 사이사이에 뚫어놓은 집터들...

 

가까이 갑니다.
그 옛날 이 곳에 지금처럼 이렇게 멋진 트레일길을 만들었지는 않았을테지요.
그래도 그 사람들에게도 이 절벽 끝을 걸어다니는 좁은 길이라도 있었을테지요.
그 때부터 지금까지 자연은 거의 변한 게 없을테니까
그 사람들이 걸으면서 봤던 그 풍경을 그대로 바라보면서 걷습니다.

 

지금 우리의 걷는 길은
그들이 느꼈던 생존의 절박함은 없습니다.
미안해야 하는 것인가요?
그냥 그들의 생존을 떠올리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집이라고 지어 놓은 것이
지금 우리로 치면 고작 그늘막이 밖에 되지 않습니다.
비를 가려주고, 눈을 막아주고. 완벽한 차단이 아니라 그저 가려주는 정도.
그리고 맨바닥.

 

이쪽 그늘막에서 저쪽 계곡의 집들을 바라봅니다.
어떤 이들은 바위를 좀 더 뚫고 들어가 그늘막을 넓게 만들고
좀 더 넓은 평수(?)의 방을 만들어 두었겠지요.
매일 매일이 집을 짓는 일이었고, 매일매일이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투쟁이었겠지요.

 

보세요.
이 곳은 좀 고급(?) 집들입니다.
밖으로 담도 둘러 쳐놓고...

 

한 평 감옥이라는 게 이만했을까?
그래도 여기는 햇빛이 들잖아, 감옥에는 햇빛이라고는 조그마한 창문 하나밖에 없거든.
그래도 감옥은 밖의 찬바람이 그대로 다 들어오지는 않잖아?
여기는 그래도 불을 피웠겠지.
그래도 지금 감옥은 옷이라도 입고 있지.
여기는 그래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는 있었잖아?
....

 

뜬금없는 감옥 타령에 둘이서 같이 웃습니다.

 

계곡을 따라 아주 잘 나있는 트레일.
촉촉히 비오는 날, 멋진 산책 같습니다.

 

트레일 곳곳에 이들이 살았음직한 삶의 방식들을 적어놓았습니다.
시나구아 사람들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답니다.
1100년도 정도에 이 곳에 집을 짓고 살았다는 추정,
그리고 1250년경 이곳을 다 떠나버렸다는 추정만이 있습니다.
그 이후 이들이 어디에서 살았는지, 어떻게 살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 곳의 집터들과 거기에서 발견되는 도자기등을 보면 이들의 삶을 추측할 수만 있답니다.

 

오홋!!! 이 곳은 집터로 완벽합니다.
입구에 아주 작은 문이 있고, 안쪽으로 좁으나마 방이 있습니다.
입구를 아주 작게 만들어 놓은 것은
당연히 추위에 대한 대비이겠지요.
그리고 동물의 공격에 대한 방어이기도 하구요.
 

사진으로는 보기 좀 힘들지만
가만 보면 출입구 위로 아주 조그만 구멍이 또 하나 보입니다.
환기창이었답니다.
추운 겨울, 안에서 불을 떼우면
연기가 밖으로 나가야 하니까요.
아주 과학적인 설계였다고 말해놓고 있습니다.
추위를 피하건 음식을 먹건
이 사람들에게 불은 아주 중요한 것이었겠지요.
그리고 그 불을 잘 다스리는 것도 마찬가지 이구요.
 

바위 절벽에 한 가정, 한 가정 집을 짓고 살았겠지만
이들에게도 공동체로서의 삶은 아주 중요했을겁니다.
물을 길어오기 위해서도, 사냥을 위해서도, 농사를 짓기 위해서도
그리고 집을 짓기 위해서도 말입니다.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사회였을겁니다.
현대에도 마찬가지이지만 원시 부족사회에서만큼 힘을 합한다는 것이  
중요한 시기는 아마 또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깊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저 멀리에 집을 짓고 살고 있는 사람들과는 어떻게 교신하였을까요?

 

트레일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보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순돌아!!!! 우리 집에 놀러온나!!!!"
"갑순아!!!! 내일 우리 사냥하러 같이 가자!!!!"

 

달이 밝게 뜬 날, 횃불을 들어올려
상대 계곡을 향해 큰 소리를 지르던 사람들.
"똘아!!!! 그만 놀고 집에 온나.... 잠 잘 시간이다 !!!!"
 

이쪽 저쪽에서 부르는 소리가 가득했던 계곡이었을테지요.

 

극한 환경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의 소리,
그 소리들이 여전히 메아리 치고 있는 월넛 계곡을 다녀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