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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9 절대적 고요함, 데스밸리 세번째 이야기

프리 김앤리 2010. 10. 26. 02:56

 

뜻밖의 무지개와 함께 시작한 데스밸리.
무지개가 걸려있는 샌듄에서의 저녁노을을 잊지 못한다.
단테의 시선이 아닌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본 데스밸리.
죽음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꿈틀거리는 생명을, 지구의 역사를,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간 사람들을 잊지 못한다.

오늘은 데스밸리를 느껴야 하는 날이다.
데스밸리의 깊은 속으로 들어가 데스밸리의 공기를 마시며
데스밸리만이 가진 색깔을 받아들이는 날이다. 

 

<골든캐년 트레일  Golden Canyon Impressive Trail>
데스밸리 비지터 센터가 있는 Furnace Creek에서 차를 조금만 몰면 골든캐년 트레일이 나온다.
왕복 2마일(3.2Km) 트레킹 길이다.
약간의 더 밝고 어두움의 차이만 있을뿐 아무 색깔을 가지지 않는 데스밸리에서
그래도 골드색을 가진 바위들로 둘러싸인 협곡이다.

 

입구의 안내문도 역시 무시무시하다.
'Don't became a death valley victim.'
열이 당신을 죽일지도 모른다(Heat Kills!)며
충분한 물을 준비하고 햇살 아래서는 함부로 걷지 말며, 몸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멈춰서서 휴식을 취하란다.
살아남기 위한 준비를 해야한단다.
고작 3.2Km의 트레킹 앞에서 삶과 죽음, 희생자라는 단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몇번씩이나 등장한다.
데스밸리에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2마일의 골든캐년 트레일.
일인당 2통씩의 물통을 비워가며 천천히 걸었다.
한여름 낮이 아니라 그리 덥지는 않았다.
죽음을 떠올릴만큼 그리 두려운 길도 아니었다.
무서운 단어로 비쳐지는 데스밸리의 햇살, 그러나 그 빛이 있어 골든캐년 길의 바위들은 황금색을 띄고 있었다.

 

 

 

 

 

 

 

 

 

 

 

 

 

 

 

 

 

 

 

 

 

 

 

 

 

<아티스트 드라이브  Artist Drive>
그랬다.
빛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데스밸리의 바위들이 색깔을 가질 수 있는 건 어둠이 아닌 빛이 있기 때문이었다.
자연이라는 위대한 예술가가 그려낸 형형색색의 바위들.
그래서 여기를 아티스트들의 물감이 담겨진 파레트(artist's Palette)라고 하는지 모른다.
자연이라는 아티스트가 어떤 색을 빚어낼지...
흰색과 회색, 검은 색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곳에는 초록색도 있었고, 붉은 빛도 푸른 빛도 들어 있었다.
배트맨 망또를 뒤집어 쓰고 배트맨 놀이를 하고 있는 독일 청년들의 신나는 몸짓도 햇살이 있어 더욱 빛났다.

아티스트 드라이브는 데스밸리의 본 도로에서 안쪽으로 굽어져 들어가 있는
약 15Km의 자동차 도로다.

 

 

 

 

 

 

 

 

 

 

<내츄럴 브릿지  Natural Bridge>
자연이 만들어 낸 천연의 다리다.
바다 - 산맥 - 융기 - 빙하 - 침식...
온갖 지질학적 작용이 다 있었던 데스밸리에서 자연스스로가 만들어낸 천연의 다리가 있다는 사실이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사물은 아래로 떨어지게 만드는 지구 중력작용에도
거뜬히 살아 남아있는 엄청나게 거대한 아치형 다리를 이곳에서 만난다.

 

여지껏 침식작용하면 비와 눈과 바람만 생각했었다.
그들이 오랜 세월 일을 하면 이렇게 위대한 일을 해낼수 있었던 것이라고 감탄해 왔었다.
그러나 지질학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아낸 건
침식작용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박테리아라는 사실이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눈에 뜨일만큼 빠른 진전을 보이지는 않지만
토양에 살고 있는 박테리아들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침식작용을 하고 있다는 사실.
아무 것도 없는 것 같고, 아무 움직임도 없을 것 같았던 죽음의 땅 데스밸리에서
가장 작은 생물체 박테리아의 역할을 알게된 건 정말 소중한 지식이다.
(침식작용을 일으키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식물도 있다.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자.)


비와 눈과 바람, 그리고 작은 생명체 박테리아가 만들어낸 내츄럴브릿지.
그도 오늘 데스밸리의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내츄럴 브릿지는 왕복해서 고작 1마일(1.6Km) 밖에 안된다고 해서
물통도 준비하지 않고 가방도 없이 살랑살랑 들어갔다 나왔다. 

 

 

 

 

 

 

 

 

 

 

<자브리스키 포인트  Zibriskie Point>
아!!! 이제 마지막이다.
이 곳만 보고나면 데스밸리를 떠나야 한다.
Furnace Creek에서 데스밸리 국립공원을 빠져나가는 길 190번 도로를 타고 8Km만 가면
환상의 뷰포인트 자브리스키 포인트가 나온다.

 

그제, 어제와 달리 오늘은 하늘도 우리편이다.
완전 파란 하늘이 열렸다.
햇살도 강렬하다.
눈이 부시다.


다른 사람들은 자브리스키 포인트 언덕 위에 올라서서 펼쳐진 경관만 보고 돌아섰지만
우리들은 그럴 수 없었다.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었다.

 

데스밸리의 희생자(Victim of Death Valley)가 되지 않기 위해
이번에는 큰 가방 메고 물도 여러통 넣고 과일까지 준비해서
자브리스키 포인트 길, 눈이 부시도록 하얀 데스밸리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햇살은 살을 태우듯이 따가웠다.
작은 우리 몸을 숨길만한 한 점의 그늘도 없다.
목이 말랐다.
그러나 아름다웠다.

 

오로지 내리쬐는 태양만이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낀 길,
절대적 고요함이라는 게 이런 것이라는 것을 절절히 느끼는 순간이었다.
흰색만으로도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질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러나 가는 길에 우리는 슬픔도 만났다.
2006년 5월 어느 날, 이 길을 걷다 강렬한 햇볕을 이기지 못하고
열사병으로 죽어간 아내에게 바친 빨간 장미 한송이 놓인 십자가 무덤도 보았다.

 

무거운 물통을 한가득 지고 가면서
햇살에 지쳐 쉬고 있는 우리에게 물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도
조심하라는 말외엔 물 한번 건네주지 않는 비정한 뚱땡이도 만났다.

 

그런가하면 여기 데스밸리에서 일하며 이 곳을 몇번이나 올랐다는 잘생긴 청년도 만났다.
그는 이제 곧 필리핀으로 가서 결혼을 할꺼라며 자랑까지 늘어놓는다.
 
누구에게는 죽음을 재촉하는 햇빛이었지만
또 그 햇빛이 있어 데스밸리의 이 절대적 고요함이 더욱 빛날 수 있다는 모순.
아무도 없는 길에 만난 반가운 동행에게 자신의 생명물을 건네주기는 두려운 모순.
누구는 결혼을 자랑하고 또 누구는 결혼한 아내를 이 길에서 잃어버리는 모순.
그러나 그 모순조차 아름답게 눈부신 자브리스키였다.
  

( 좋은 사진이 너무 많아 고르기가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수백장의 사진중에서 겨우 몇십장으로 고른거다.

  뙤약볕 아래 힘들게 걸었을 우리를 생각해서 지겨워도 참아주시길...

  우리가 내려가고 올랐던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