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20100823 우리도 바위 기둥이 된 브라이스캐년 국립공원

프리 김앤리 2010. 8. 29. 17:15

 

미국의 자연, 그냥 한마디로 딱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었으면 좋겠다.

‘대단하다’, 이렇게만 표현해도 모든 게 다 이해 되었으면 좋겠다.

‘엄청나다’, 이렇게만 표현해도 이 대자연의 크기가 한 눈에 그려졌으면 좋겠다.

‘부럽다’ 한마디로 지금 우리의 심정이 다 드러나면 좋겠다.

 

몇 년전 학교 도서반 아이들과 함께 갔던 독서여행에서 만난 한 소설가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언어가 있는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게,

 소설가인 자신으로서는 얼마나 행운”인지 하고 말했지만

그 소설가처럼 아름다운 언어를 가진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그처럼 다양한 표현을 못한다는 게 오히려 부끄럽고 아쉬울 뿐이다.

 

미국의 자연, 진짜 ‘우와!!!’ 다.

 

오늘은 브라이스 캐년 국립공원(Bryce Canyon Natonal Park) 으로 간다. 

 

브라이스 캐년 국립공원은 자이언 국립공원을 관통해서 지나가면 만날 수 있다.

유타주 9번 도로를 따라 몇시간을 차를 몰아가면 만나는 곳.

지나가는 길이 벌써부터 예사롭지 않다.

 

아!!! 브라이스 캐년이다.

광활한 고원의 붉은 바위 기둥들.

Hoodoos! 라고 불리운단다.

자기네들의 말에 의하면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마법을 거는 ‘Hoodoos’란다.

마법이나 주술을 믿는 부두교(Voodoo)에서 그 말을 따왔단다. 

 

우리에게 무슨 마법을 걸고 있는 걸까?

 

처음 이 엄청난 바위 기둥 계곡을 발견한 브라이스는

“소를 잃어버리기에 딱 알맞은 지옥같은 곳”이라고 했다는데...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하다.

 

지금은 저 아래를 걷고 있는 사람들은 길을 잃지 않을까?

 

우리도 저 아래를 내려가고 싶다.

직접 저 속으로 걸어들어가고 싶다.

저 끝도 없는 바닥 아래로...

 

해는 뉘엿뉘엿 지려고 한다.

브라이스 캐년의 바위들이 저녁 노을 빛을 받아 점점 더 붉게 물든다.

 

지금 우리는 그냥 브라이스 Point 위의 전망대에 서있다.

오른 쪽 큰 바위 위의 저 사람들처럼...

 

그런데 자꾸 아래쪽으로 눈길이 간다.

내일 다시 올건데...

오늘은 그냥 한번 돌아만 보자고 하고서 들어온 건데...

저 깊은 협곡 속에서 한 점이 되어 걸어오고 있는 사람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

 

에라이!!! 걸어내려가자.

내일 다시 오더라도...

내일 다시 걷더라도...

오늘도 저 아래로 내려가보자.

 

Navajo Loop Trail을 따라 걷는다.

1시간도 더 넘어 걸리는 거리다.

 

우리도 브라이스 캐년의 하나가 되었다.

내얼굴도 셔츠도 바닥도 붉다.

자연이 되었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아래로 내려오니

이런 바위산에 자라고 있는 나무도 있다.

솟아있는 바위만큼 키 큰 나무다.

 

이 곳에도 물이 있구나.

생명을 키워낼 수 있구나.

참, 자연은 위대하다.

햇빛과 물만 있으면 자라나는 생명들.. 

돌보아 주지 않아도 스스로 살아가고 있는 생명들...

 

거대한 바위틈 사이를 돌아간다.

그 틈에서도 작은 나무는 자라고 있고...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

‘올바르게 산다는 건 뭘까?’

‘어떻게 살아가는 게 맞는 걸까?’

온통 붉은 색으로 휩싸인 신비로운 자연 안에서 새삼 '삶'을 생각한다.

떠나왔지만 ‘떠나오기 전의 생활’과 ‘다시 돌아간 우리의 생활’을 생각한다.

 

 

숨이 차다.

건조한 공기, 팍팍한 모래...

목이 마르다.

여기도 고도가 2,000m가 넘는다.

 

다시 올라가는 길, 여전히 구불구불 길이다.

 

우리를 뒤에도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다.

 

어두운 바위틈을 지나 햇살이 드는 세상도 만난다.

 

거의 한 바퀴를 돌았나 보다.

 

우리도 하나의 바위 기둥이 되어 걷던 세상.

다시 바위기둥들을 바라 볼 수 있는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sunset point에는 어느 새 해가 다 져버렸다.

서쪽 하늘의 노을을 받아 붉게 불탔던 Hoodoos들은 어둠속에 묻힌다.

동쪽 하늘에는 보름달이 떠올랐다.

 

내일 이 곳에 다시 오리라...

   

사람들은 묻는다.

“그래, 여행을 가면 뭐가 좋냐?”고.

“무얼 하며 다니느냐고?”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그냥 이렇게 걸어다니는 것을...

걸으면서 생각하고 이야기 하고...

그저 걷다가 오는 것을...

그러나 하나만은 확실하다.

머문 시간과 감동의 크기는 비례한다는 것만큼은.

그냥 한번 쓱 둘러보고 그냥 지나쳐 왔던 곳에 대한 찰나적 감동과

오랜 시간 머물면서 직접 그 속으로 걸어들어갔을 때의 감동은

분명 다르다는 것 만큼은...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 대자연에 대한 경외감, 그리고 소박해지는 마음...

 

23일 아침. 우리는 다시 브라이스 캐년을 찾았다.

우선은 공원 옆으로 나있는 아랫길의 폭포까지 걸어가봤다.

이 곳에도 폭포가 있었다.

바위산 틈틈이 흘러내리는 물이 있었고,

그 물이 모여 내리는 폭포도 있다.

작은 강물도 흐르고 ...그러니까 나무도 자라는 모양이다.

 

다시 브라이스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sunrise point 바위기둥들이 아침 햇살을 받고 있다.

 

비슷비슷하게 생겼다고 말한다면 저마다의 모양을 가지고 있는 자연에 대한 모독이겠지? 

 

오늘도 화려한 날씨다.

 

오늘은 브라이스 포인트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Peekaboo Trail이다.

 

바위기둥 옆으로 절묘하게 길을 잘 만들어 두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면 바위기둥들이 그리 크게 보이지는 않았는데

그 속으로 들어가면 하나하나의 기둥들의 크기가 엄청나다.

 

침식작용으로 자연스럽게 파여진 굴을 따라 길도 만들어진다.

 

한때는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이 이 곳에서 살았단다.

그들은 이 곳을 보고 “붉은 바위들이 사람들 처럼 서있었다”고 표현했단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때로는 마치 혼자 살고 있는 양, 우뚝 솟아있는 바위들도 있지만

모두들 서로가 서로를 기대며 함께 서 있는 바위들...

 

거대한 바위 군상들이 우리를 압도한다.

 

고요하다는 표현은 이럴 때 써야하는 거겠지.

 

정말 고요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귀가 멍멍하다.

바위들과 햇살... 그리고 우리 밖에 없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햇살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바위의 색깔도 다르게 변한다.

 

또 한 모퉁이를 돌아서 내려간다.

 

이 곳도 또 낯선 풍경이다.   

 

낯선 풍경. 지금 우리는 이 곳을 걷고 있다.  

 

온통 붉은 세상.

수천만년 아니 수억년의 시간이 만든 바위기둥속에...

지금 우리가 있다.

 

요르단의 와디럼 사막에서도 우리는 이런 빛깔을 본적이 있다.

붉은 사막의 붉은 저녁이었다.

 

정말 감사한다.

지금 우리가 이 곳에 서 있을 수 있음에...

이 곳을 여행할 수 있음에...

 

한참동안 넋을 잃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눈물이 났다.

이상하게도 나는 아름다운 장면을 보면 눈물이 난다.  

 

빛과 생명없는 바위가 만나서 마치 살아있는 듯 색깔을 바꾼다.

이 붉은 빛깔에서 가슴이 벅차 오른다.

 

수억년 세월의 비와 바람이 만들어 놓은 이 대단한 작품 앞에서 눈물이 난다.

 

이제는 돌아가야 하는데 자꾸 자꾸 더 아래로 내려간다.

돌아가야 하는데...

 

“조금만 더 갔다가 돌아오자.”

“조금만 더 가보자...”

 

과연 브라이스 캐년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더니만

과연 브라이스다.

 

삐쭉삐쭉 솟아있는 붉은 기둥들은 한번 더 눈에 담고...

어느듯 깊은 계곡속의 바위는 빛을 잃었다.

 

이제 걸어올라 간다.

 

 

돌아가야 한다.

자꾸 자꾸 뒤돌아 보인다.

 

이곳에서는 우리도 그냥 하나의 바위 기둥이 되어야 한다.

다른 무엇일 수가 없다.

그대로 이들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가 가졌던 욕심은 무엇이었을까?

쓰지 않을 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담아두지 않아도 될 것을 마음에 가지고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소박해지자...

소박해지자...

 

다시 자연이 만들어 놓은 천연 굴을 지난다.

 

내려갈때 빛과 바위의 색깔은 이미 없다.

다시 올라가는 길.

과연 다 비우고 가는 걸까?

 

다 비워서 그런 걸까?

갈증은 심해지고...

단순한 목마름이었으면 한다.

다른 ‘소유’에 대한 목마름이 아니라...

 

다 올라왔다.

여전히 꼭대기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고만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절대 아래로 내려가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

그들은 왜 위에서만 세상을 내려다 보려고 할까?

항상 군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까?

아래로 내려가면, 저 아래로 내려가면

소박한 바위군상들이,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꾸밈없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곁에 있는데...

 

해지는 시간, sunset point에 다시 한번 더 섰다.

그냥 위에서만 내려다 보기 보다는

아래로 내려가야만 더 잘 보이는,

더 감동을 받는 브라이스 캐년이 가르쳐 준 소중한 진실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