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20100815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프리 김앤리 2010. 8. 22. 19:05

 

조카 동준이가 미국으로 날아왔다.

여름 휴가를 받아서다.

이 녀석은 작년 여름에도 우리가 있는 유럽으로 날아와 함께 휴가를 같이 보냈었다.

또 언젠가는 대학 시험을 쳐놓고 고등학생 신분으로 우리가 여행 중이던 호주까지 날아와서 20여일간 함께 여행을 하기도 했다.

하여튼 준이와 우리는 같이 여행할 운이 따르는 모양이다.

 

작년에도 직장에서 첫 휴가를 받았다고 오스트리아까지 날아와서는

그래도 돈 번다고 배고픈 배낭여행자들에게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고 다시 훌쩍 떠나더니만

고맙게도 올해 여름휴가도 역시 우리가 있는 곳으로 여행지를 결정했단다.

덴버에 있던 우리들은 중간 어디쯤에서 준이를 만날까도 생각했었지만

사랑하는 조카가 미국까지 날아와 준다는 사실에 감동하며 얼른 우리의 일정을 바꿔서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갔다.

 

스콧 메켄지의 노래에서는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꽂아라...’ 고 하더니만

머리에 꽃을 꽂지도 않은 우리들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멋진 대한민국의 청년, 준이를 만났다.

 

직장인이 받을 수 있는 여름휴가라 해봐야 고작 2주일 정도다.

그것도 이것 저것 제하고 나면 이번 미국 여행도 1주일밖에 되지 않는단다.

샌프란시스코로 날아와 라스베가스와 그랜드캐년을 들렀다 로스앤젤레스로 나가는 1주일의 일정.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차에 실어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금문교를 보러간다.

시차 적응이고 뭐고 없다.

 

게다가 이 녀석은 열흘 전에 미국 애틀란타로 출장을 나왔었다.

애틀란타에서 시차적응이 채 되기 전에 한국으로 다시 들어가서 일 잠시 하다가 다시 금방 미국으로 날아온 거다.

열흘 만에 낮밤이 세 번씩이나 뒤바뀌고 있으니

정상적인 머리라도 해가 떠있어도 낮인 줄 알 것이며 해가 진다고 밤이라고 인식하겠는가?

ㅋㅋ

쭌~~~ 돈 벌기가 어디 그리 만만하겠냐?

 

우리야 이 녀석을 보내고 나서 40여일쯤 뒤에 샌프란시스코를 한 번 더 와서 자세히 볼거지만

이 녀석은 이게 단데...

비행기에서 밤을 샌 오락가락하는 정신으로 금문교의 위용이 보이기나 할까?

그래도 우리는 엄청 기쁘다.

사랑하는 쭌~~~ 고마워~~~

 

멀리 샌프란시스코의 다운타운도 한번 힐끗 보고...

 

더 멀리 베이 브릿지 너머 오클랜드도 쓱 쳐다보고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영화 'The Rock'으로 유명한 알 카트라즈 섬도 확인한다.

 

샌프란시스코의 부자들이 산다는 소살리토까지 넘어가서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를 사랑스럽게, 아름답게 만드는 푸른 태평양 바다도 내려다본다.

 

아무리 짧은 1주일 일정이라고 해도

적어도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했다고 하면

금문교 아래를 지나가는 유람선도 타보고

다운타운으로 가서 롬바드 거리로 가서 꼬불꼬불 언덕길도 걸어 내려와 봐야하고,

이 곳의 명물 케이블카를 타고 경사 급한 길을 오르내리면서 언덕의 도시, 샌프란시스코를 감상해야 한다.

그리고 해질녁이면 피셔맨스 워프로 가서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크렘 차우더를 먹어보기도 해야한다.

그게 남들이 말하는 샌프란시스코 여행의 정석이다.

그렇게라도 해야 왜 샌프란시스코가 미국 사람들이 가장 가보고 하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도시인가를 짐작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준이의 샌프란시스코는 모든 것 다 생략이다.

샌프란시스코 공항까지 우리를 마중 나온 후배는

여기까지 와서 다른 곳에서 자면 어쩌냐며 우리를 자기 집으로 초대해

조카까지 얹어서 셋이서 얹히러 가야 하는 상황이다.

내일부터는 차를 렌트해서 바로 태평양 1번 도로로 내려갈 예정이니...

 

그래도 한 곳이라도 더 보게 하려고 공항에서 바로 낚아채서 차를 몰아 금문교를 건너고

소살리토 섬도 갔지만 다운타운으로 나가기에 토요일의 교통체증이 말이 아니다.

부인이 저녁까지 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니 고마움과 미안함이 마구 엉킨다.

 

모두 다 생략한다.

“그래도 되겠냐? 우리는 40일쯤 뒤에 다시 올꺼니까 괜찮지만 너는...”

“괜찮아요. 저는 다음에 또 오지요, 뭐.”

시원한 답변이다.

자기는 이제 미국 정도면 언제든지 다시 올수 있다는 여유있는 자신감이다.

믿는다.

그의 능력과 자신감을 이제는 믿어도 된다.

 

우리 둘만도 아니고 조카까지 얹어서 후배 집에 얹히러 들어갔다.

한국에서는 말도 못하게 바쁜 후배, 그보다 더 바쁜 그의 부인.

공항까지 마중 나오게 하고 객식구 세 명 밥까지 다 챙기게 만들었다.

여행 다니면서 한국 음식을 많이 못 먹었을꺼라며, 그득한 한식상이 준비되어 있다.

갖가지 나물 무침에 굴비까지.

역시 짭짤한 한국 음식이 최고다.

그 배려가 고맙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차를 렌트해서 태평양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1번 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상쾌한 바람이 분다.  

 

해안을 따라 시원하게 뻗어있는 길.

 

어이? 상쾌한 바람만은 아닌 것 같다.

춥다.

여름 반팔 티밖에 준비해 오지 않은 준.

이모부 옷을 입혔더니 꽉 째인다.

장가도 가야하는데... 폼 다 구겼다.

 

그래도 경치 하나는 끝내준다.  

 

한참을 달려 카멜이라는 예쁜 도시에 도착했다.

동화 속 마을 같다.

 

예쁜 집에 아주 오래된 나무들.

 

한 채 한 채 독립적으로 떨어져 있던 미국 다른 동네의 집들과는 좀 다르다.

오밀조밀 모여 사람답고 부자스럽게 살고 있다.

 

길거리 까페와 상점들도 앙증맞고

 

집 앞에 세워 둔 자동차도 장난감같다.

 

카멜은 영화배우 출신 크린트 이스트우드가 시장으로 있다는 곳.

그래도 이름이라도 들어본 사람이 시장을 한다니까

친근감이 들기까지...

 

이모와 조카는 이렇게 예쁜 마을에서 마치 연인들처럼 걸어간다.

친구들이 그러더란다.

“너는 또 이모가 있는 곳에 여름휴가를 가냐”고.

그러게나 말이다. 동준아.

우리는 고맙지만...

 

 

마을 아래 해변, 태평양 바다가 있는 곳까지 내려갔다.

 

카멜은 사람들이 여행을 많이 오는 곳인가 보다.

해변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태평양의 큰 파도를 타는 써퍼들도 보이고...

여유가 넘친다.

평화롭다.

 

ㅋㅋ

예쁜 마을 카멜에서 다른 사람들은

까페에 앉아 커피도 마시고, 멋진 식당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던데...

연인도 아니면서 마치 연인인 것 처럼 가까이 앉은 이모와 조카는

지금???  김밥을 먹고 있는 중이다.

 

후배 부부가 아침부터 일어나 우리를 위해 만들어 준 '순 한국산 김밥'이다.

너른 바다, 태평양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우리는 후배의 사랑이 가득한 김밥으로 배부른 점심을 해결하고 또 우리의 길을 재촉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생각하게 하는 스탠포드 대학교> 

차를 빌려 태평양 1번 도로로 내려가기 전 우리는 스탠포드 대학에 들렀었다.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스탠포드 대학은 미국의 최고 명문 사립대학 중 하나로 꼽힌다.

 

대학으로 들어가는 길.

마치 무슨 궁전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2005년도에 미국 서부를 여행할 때도 느꼈던 거지만

스탠포드 대학의 캠퍼스는 참 매력적이다.

마치 스페인의 궁전 건물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

 

학교 입구에 있는 교회 벽화에서도 스페인풍이 느껴진다.

멕시코 시티에서 보던 유명한 벽화들과도 분위기가 비슷하다.

캘리포니아 주는 1848년 미국 멕시코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이 멕시코로부터 거의 빼앗다시피 사들인 땅이라는데...

캘리포니아 주의 도시 이름도 대부분이 스페인어로 되어 있고 분위기도 스페인 풍이 많이 남아있단다.

그래서일까?

1891년에 세워진 스탠포드 대학에서도 스페인 풍을 많이 볼 수 있는 건?

 

건물 밖 회랑의 아치형 복도도 마치 이슬람 사원인 메스키타와 아주 비슷하고...

 

예전에도 느낀 거였지만 참 정갈한 느낌의 대학교다.

스탠포드는 연구 중심의 대학교라는데

‘정갈한 대학 캠퍼스’와 ‘연구 중심’이라는 단어가 정말 잘 어울린다.

스탠포드와 가까이 있는 실리콘 밸리의 구글, 야후, 휴렛 팩커드의 창업자들이 모두 이 대학 출신이란다.

 

대학 캠퍼스에만 오면 생각한다.

만약 이 곳엘 다녔더라면 나의 대학생활은 좀 더 공부라는 걸 열심히 했을까?

동준아! 니가 만약에 스탠포드에 들어갔더라면 더 열심히 공부를 했을까?

(하기야 대학 건물이 멋지다고 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건 아닌데 말이다.

대학시절 나의 딴청을 후진 건물, 부산스러운 캠퍼스 환경 탓을 하고 있다니 참 우스운 변명이다.)

 

‘대학’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는 영원히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아직도 팔팔한 청춘의 동준이에게는 실현 가능성 있는 이야기 같아 은근슬쩍 떠본다.

 

이쁘게 보자니 학생 식당의 야외 그늘도 멋지게 보이고

 

어쩌면 그저 시계탑일지도 모르는 데 그것도 멋져 보인다.

 

사실 스탠포드 대학은 미국 보수주의의 전당으로 알려져있다.

사진에서 보이는 둥근 돔형의 건물이 후버 연구소인데

1960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버가 스탠포드 대학에 설립한 연구소이다.

물론 해리티지 재단과 같이 미국 내의 다른 싱크탱크 집단도 있겠지만

후버 연구소는 미국 공화당의 이념을 만들어내는 미국 보수의 든든한 밑받침이 되는 곳이다.

유명한 보수주의자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도 후버 연구소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새삼스럽게 보수냐 진보냐를 들먹이는 것은

미국 보수주의자의 산실이라는 스탠포드 대학에서 발견한 ‘깔레의 시민’ 동상 때문이다.

 

‘깔레의 시민’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나타내는 대표적 상징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 전쟁 당시,

프랑스 깔레 시는 영국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오랜 전쟁으로 도시 전체는 황폐화 되고 식량이 바닥나 시민들의 삶은 더 이상 이어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 때 점령자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깔레 시민들을 향해 무서운 제안을 하나 던진다.

“깔레 시민 중 여섯명이 목을 매 처형당한다면 도시 전체의 학살과 파괴만은 면하게 해주겠다!!!”

누가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을 것인가?

모두들 두려워하고 있는 상황.

그 때,

술렁거리던 군중 속에서  한 명이 일어선다.

당시 깔레 시의 최고 부호였던 드 생 피에르였다.

“내가 그 여섯 사람 중 한 사람이 되겠소"

“자, 깔레의 시민들이여. 나오시오... 용기를 가지고...”

뒤이어 시장, 상인, 법률가등 도시의 부유한 귀족 5명이 자청해서 

영국왕이 원하는 6명의 대열에 자신을 던진다.

다음 날 아침, 에드워드 3세의 요구대로 속옷 차림의 맨발로 목에는 밧줄을 걸고 교수대로 걸어가는 6명의 대표들...

자신들의 목숨은 잃게 되지만 깔레 전체의 시민을 살리는 위대한 희생정신.

이후 이들 6명의 ‘깔레의 시민’은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인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상징하는 의미가 되어왔다.

부와 권력과 명성은 사회적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초기 로마의 공화정에서는 병력 의무를 실천하지 않은 사람은

호민관이나 집정관등 고위공직자가 될 수 없었다는 이야기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일 한국에서는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가 열린다는 뉴스를 보면서

스탠포드 대학에서 만난 로댕의  ‘깔레의 시민들’ 동상이 더욱 강렬하게 와 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보수주의자들이 지향하고 있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과연 어떤 것일까?

우리나라 보수들이 지키고 있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란 과연 어떤 것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