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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3 드디어 미국의 자연과 만나다.록키마운틴, Badlands,Devils Tower

프리 김앤리 2010. 8. 21. 18:35

미국 여행을 꿈꾸면서 우리가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은

광대한 미국의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 한 달 동안 우리가 만났던 미국은 대부분 미국의 역사와 관련된 것이었다.

동부 뱅고르로 들어와서

보스톤, 뉴욕, 필라델피아, 워싱턴, 피츠버그, 시카고, 스프링스 필드, 리틀락, 미네아폴리스까지...

도시를 중심으로 미국의 정치를 만나고 미국의 역사를 만났다.

그 속에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정신을 만났다.

 

미국의 중부로 들어서면서 부터는 광활한 미국의 자연을 만나고 싶다.

강과 바다, 바위와 산맥, 사막과 빙하...

지구상의 모든 자연을 한꺼번에 다 만날 수 있는 거대한 미국의 자연 속으로 들어가보고 싶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록키 마운틴 국립공원 Rocky Mountain National Park >

미국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록키 산맥.

몬타나 주의 Glacier 국립공원, 와이오밍 주의 옐로스톤 국립공원도 모두 록키 산맥의 한 자락이다.

그래도 록키 마운틴 국립공원이라고 정확한 명칭을 가지고 있는 곳은 콜로라도 주의 덴버와 가까이 있는 지점이다.

우리의 록키 마운틴 국립공원 여행은 덴버에서 공부하고 있는 후배 부부가 함께 했다.

3,000m가 넘는 높이까지 바로 차로 올라 갈 수 있단다.

우리는 지금 록키 마운틴 국립공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한참을 달려왔는데 아직도 산 정상은 저 멀리 보인다.

수만년 전 빙하로 덮혀 있었던 산.

지금은 빙하가 녹은 물줄기를 따라 골이 파이고 너른 초원이 형성되어 있다.

 

 

5월까지도 산위에는 녹지 않은 눈이 하얗게 덮혀 있었다는데

지금은 마른 산이다.

눈이 있었다면 포근하게 느껴졌을까? 아니면 춥다고만 느꼈을까?

파란 하늘에 뭉개뭉개 피어오르는 구름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아직 2,000m 높이까지 올라가지 않아서 그런지

발 아래는 나무가 빽빽하다.

 

우리가 지나온 저 아래 길을 내려다본다.

푸른 초원이다.

그래, 이 곳도 이제는 여름이다.

모든 것이 다 풍성한 여름이다.

하늘도, 구름도, 바람도...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올라가 본 지리산 천왕봉에서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하늘 바로 아래 내가 서 있던 느낌.

저멀리 희미하게 드러나던 겹겹이 쌓여있는 산군들.

도대체 세상의 끝이 어디인가 두렵기까지 하던 느낌.

두렵고도 벅찬 감격을 뭐라고 표현하기가 힘들었다.

 

지금도 그렇다.

사방천지를 둘러보아도 모두 산이다.

끝도 보이지 않는 산군들이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

하늘 바로 아래까지 온 느낌이다.

 

한여름이라지만 기온은 쌀쌀하다.

겨울을 대비해서 가지고 온 두터운 잠바를 꺼내입었다.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저 멀리 산에는 아직 녹지 않는 눈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저기 어딘가에는 눈이 녹아 만든 에머랄드 빛 호수도 보인다.

 

눈이 남아 있었다면 포근하게 느껴졌을까?

덜 쓸쓸해 보였을까?

덜 황량해 보였을까?

지금의 내게 있어 록키산맥은 포근함이 아니라 쓸쓸함, 그리고 황량함이다.

아~~~ 정말 넓다.

정말 크다.

정말 대단하다.

무섭다.

 

차를 세워두고 산을 오른다.

3,500m도 더 넘는 높이란다.

숨이 차다.

심장이 빨리 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산증 증세다.

 

구름이 바로 머리 위에 있다.

점점 흐려오는 것 같다.

기온도 점점 더 내려가는 것 같다.

미쳐 겨울 옷을 준비해 오지 않았는지 앞서 가는 여자는 담요를 둘둘 감고 오른다.

 

그래도 우리는 산을 오른다.

록키 산맥을 오른다.

 

거의 산 꼭대기인데 사람들이 걸어다닐 수 있도록 길을 잘 만들어 두었다.

3,500m 도 더 넘는 높은 산.

사람들이 걸어다니기 쉽게 길을 잘 닦아 놓은 것이 좋은 것일까?

 

지리산 종주를 스무번도 더 한 우리는 늘 입버릇처럼 이야기 했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 산은 자기 스스로가 한발 한발 떼놓지 않으면 오르지 못하는 곳이다.

 그래서 지리산은 오르려고 애쓰는 사람에게만 열려있는, 평등의 진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물론 지리산 노고단 쪽에는 일제 시대때 일본 사람들이나,

해방 후 미국 선교사들이 별장을 지어놓고 ‘사람 마차’를 타고 올랐다는 슬픈 이야기도 있지만

지리산 꼭대기는 언제나 제 발을 스스로 한발 한발 옮기지 않으면 절대 올라가지 못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 곳에 차가 올라갈 수 있는 길이 닦이고 나면 그 것은 이제 옛말이 되어 버린다.

차 바퀴만 몇 번 굴리면 산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게 된 세상이 온 거다.

그래서 노고단 성삼재까지 차도가 닦였을 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제 지리산이 얼마나 번잡해질까’ 하는 알량한 생각 때문에.

지리산을 가로지르는 벽소령 길이 닦였을 때는 실망까지 했었다.

‘이제 정말 지리산이 정신없는 산이 되겠구나’ 라는 생각 때문에...

 

그러나 나의 이런 생각이 ‘평등’이라는 것을 순전히 자신의 입장에서만 고집하는

편협함이었음을 고백한다.

단순히 차를 가지고 있다,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생각했을 뿐,

나이드신 분들도, 몸이 불편한 사람도 높은 산에 올라가 대 자연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인간 본연의 ‘평등’은 간과했음을 부끄럽게 고백한다.

그 이후로는 지리산 꼭대기까지 잘 닦여 있는 차도를 보고서 오히려 고맙게 생각했었다.

모두가 다가갈 수 있는 우리나라의 국립공원이었으므로...

 

우리나라에는 있지도 않은 3천~4천m 높이의 록키 산맥.

이 곳에 차가 쌩쌩 달릴 수 있는 도로가 나있고,

거기서 다시 더 높은 곳까지 평평한 길을 곱게 만들어 둔 길.

이 곳도 누구든지 오를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부끄러운 과거를 떠올렸다.

 

튼튼한 두 다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오를 수 있는 곳이고

나이 들어 힘이 없는 사람도 쉽게 오를 수 있는 곳.

물론 심장을 쿵쿵 잘 뛰어야 하겠지만...

 

그 곳에서도 더 높은 바위위까지 올라가 있는 사람도 있다.

거의 하늘까지 닿았다.

 

일명 버섯 바위라는 이름이 붙은 곳.

하늘 바로 아래 록키 마운틴이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다독이며 다시 걸어내려 오는 길.

검은 먹구름이 비가 되어 내린다.

결국은 좁쌀만한 우박이 되어 우리 머리를 때린다.

‘이제 그만, 내려가시오...’

그렇게, 미국에서 처음 만난  대자연 ‘록키 마운틴’을 다녀왔다.

 

 

< 배드 랜드, Bad Lands National Park> 

  

록키 마운틴 국립공원을 둘러본 우리 부부와 후배 부부는 다음날 아예 짐을 싸서 2박 3일의 여행을 함께 떠났다.

미국 대통령들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러쉬모어산도 가보고,

인디언의 전사 크레이지 홀스의 동상이 새겨지고 있는 블랙 힐도 가고,

또 황량한 벌판 배드랜드 국립공원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어제 크레이지 홀스, 러쉬모어가 있는 블랙 힐에서부터 이미 우리를 괴롭히고(?) 있던 모터 싸이클 부대가

오늘도 여전히 우리와 같은 길을  질주중이다.

징하다.

 

 

배드랜드 국립공원은 와이오밍 주의 래피드 시티(Rapid city)에서 1시간쯤 걸리는 거리에 있다.

미국 대통령의 얼굴들이 새겨져 있는 큰 바위산(러쉬모어)과

인디언 전사 크레이지 홀스의 동상이 새겨지고 있는 블랙 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아메리카 백인들에 의해 인디언 수족들이 처참하게 몰살된 운디드 니에서는 25마일 밖에 안되는 거리다.

 

 

배드 랜드(Bad Lands)에 들어선다.

모래와 바위, 마른 바람, 내리쬐는 햇살뿐이다.

덴버에서 와이오밍 주를 거쳐오면서 지겹도록 보아왔던 초원은 온데 간데 없다.

과연 Bad Lands다.

 

아니다.

이 곳에서도 생명은 자라고 있다.

힘겹게 붙어 있는 초록 풀들.

 

배드랜드에 들어서면서 우리 둘은 동시에 터키의 카파도키아 지방을 떠올리고 있는데

후배 부부는 작은 그랜드캐년 이란다.

경험의 차이에서 오는 생각의 차이다.

 

 

미국 중서부 지형은 원래 바다 밑바닥이었는데 융기작용에 의하여 생긴 지형이다.

배드랜드 지역은 이후 오랜 세월동안 바람에 의한 풍화작용, 침식 작용의 결과로 생겨났다.

지구 내부에 있는 강렬한 힘이 밀어 올린 땅, 바람이 만들어 놓은 땅이다.  

 

그래도 이 땅엔 과거에 생명이 꿈틀거리는 땅이었다.

공룡이 살았던 땅이었다.

티라노사우르스의 화석이 완벽하게 다 발견된 곳이다.

삼엽충 화석도 발견되고...

그러니까 고생대, 중생대 모두 생명이 살았던 땅이다.

지층의 나이로 보면 7천만년 전으로 예상한단다.

 

과거에는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이 살았던 땅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이 살았던 땅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름을 왜 Bad lands 라고 지었을까?

개간과 경작이 힘들었기는 했겠지만

비슷한 지형이라는 그랜드캐년은 ‘Grand'라는 단어까지 붙여주지 않았는가.

 

시간이 딱 멈춘 것 같다.

내리쬐는 한여름 햇살만 있을 뿐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아니다.

어디서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시간이 멈춘 곳, 배드랜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리다.

성조기, 가죽 잠바, 문신, 모터싸이클...

 

멈춰진 시간을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사람들.

 

그들도 배드랜드를 즐길 권리가 있다.

 

 

아니 그들이 황량한 땅, 배드랜드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사람 소리, 살아있는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사실 배드랜드에 아무런 생명이 살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바위와 모래 지형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느 틈에 풀도 자라고 나무도 자란다.

또 재수가 좋으면 고요테를 볼 수도 있고, 사슴등 다양한 동물들을 만날 수도 있다.

 

내버려진 나쁜 땅이 아니라

동식물도 살고 있고, 사람들도 찾아오는 땅이다.

 

그냥 작은 그랜드캐년이라고, 어쩌면 짝퉁 그랜드캐년이라고 말하던 후배도

그냥 쳐다만 보고, 한번 내려가려고 하면 엄청난 결심이 필요한 그랜드캐년과 달리

배드랜드는 속으로 들어와서 직접 느낄 수 있으니 그 감흥이 또 색 다르단다.

  

 

수천만년 세월의 흔적이 드러나는 색색깔의 바위.

버려진 나쁜 땅이 아니라 생명이 살고 있는 배드랜드를 그렇게 다녀왔다.

 

 

<데빌스 타워, Devils Tower> 

와이오밍 주의 북동쪽, 사우스다코다 주와의 접경지역엘 가면

너른 평원에 거대하게 불쑥 솟아오른 경이로운 돌산을 만난다.

와이오밍주의 상징, 데빌스 타워다.

 

황무지의 땅, 배드랜드를 지나 우리는 이제 데빌스 타워로 간다.

 

 

데빌스 타워에는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하나 있다.

7명의 키오와족 소녀들이 성난 곰에게 쫓겨 달아나던 중,

1m 정도의 높이가 되는 바위위에 올라서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는데

바위가 갑자가 위로 솟아나면서 지금 높이의 돌산이 되었다고.

뒤쫓던 곰은 소녀들을 잡으려고 바위에 붙어 발톱으로 긁어댔지만...

결국 소녀들은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고,

바위 옆에는 당시 곰이 긁은 자국이 남아있는 것이라고...

 

 

전설은 어디까지나 전설이고,

실제 데빌스 타워는 6천만년전 와이오밍 주에서 폭발한 화산의 중심부였다.

1906년 이 지역을 여행하던 테오도르 루즈벨트가 이 돌산을 국가 기념물로 지정하여

미국 최초의 국가기념물이 된 자연 그대로의 모뉴먼트이다.

 

 

높이가 1,267피트나 되어서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보다 더 높다.

그런데 하필 이름이 왜 ‘악마의 탑’이 되었을까?

 

 

데빌스 타워는 와이오밍 주의 너른 들판에 불쑥 솟아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 곳에서 터전을 잡고 살고 있었던 네이티브 아메리칸에게 있어

이 곳은 성지와 다름 없는 곳이었다.

이들은 이 돌산을 Devil God's Tower 라고 불렀다는데...

미국 땅에 도착한 유럽 백인들이 이 말을 듣고

신의 이름 앞에 Devil이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뭐해서 중간에 God는 뺐다는 이야기도 있다.

 

 

‘늑대와 춤을’ ‘주먹 쥐고 일어서’ 혹은 ‘서 있는 곰’ , ‘크레이지 홀스’ 와 같이

한 사람 한사람, 그 사람의 특징을 가지고 이름을 붙였다는 네이티브 아메리칸의

명명법에 의하면 자신들의 성지에 'Devil God's Tower' 이라고 붙일수도 있었겠다는 짐작은 하지만

왜 그들은 신의 이름 앞에 악마라는 단어를 붙였을까?

감히 다가서기 두려워 였을까?

 

혹시 기독교를 믿고 있던 유럽의 미국 정착민들이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의 성지를 자신의 종교와 다르다고 이단시 하여

악마라는 단어를 앞에 붙인 것은 아닐까?

 

실제 이 곳에서는 아직도 사람들의 기도 장소로 이용되고 있었다.

공원의 입구에는 ‘사람들의 기도 표식으로 붙여 놓은 것을 훼손하지말라’는 경고문도 붙어 있고.

 

 

머리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

시퍼런 하늘이다.

직각으로 불쑥 솟아있는 돌산이 두렵게 서 있다.

인간이 나약해지는 순간이다.

뭔가라도 믿고 싶고 무엇엔가 라도 빌고 싶다.

 

데빌스 타워가 유명해진 것은 1977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미지와의 조우(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에서

외계인과 지구인들의 만남 장소로 이 곳이 나왔기 때문이기도 하단다.

외계의 생물체에 관심이 많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관찰력에서도

만약 지구상 어디에선가 외계인과 지구인들이 만난다면  바로 데빌스 타워라는 상상을 했다는 것이다.

  

 

외계인과의 만남,  자신의 소원을 비는 기도 장소...

악마이거나 악마 신이거나...

우리는 자연이 만들어 놓은 걸작 앞에서 경외감을 가지며 그렇게 데빌스 타워를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