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20100807 미국을 들여다보다, 미네소타 오로라에서

프리 김앤리 2010. 8. 14. 21:38

 

 <캐시와 그의 가족들>

 

캐시를 만났습니다.

캐시는 전에 제가 있던 학교의 미국인 영어선생님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유일한 미국인이지요.

물론 저는 오바마도 알고 힐러리도 알고, 또 여러 유명한 미국 연예인들을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사람들이 저를 모른다는 겁니다.

상대도 나를 알고 있는 유일한 미국인이 캐시입니다.

나에게 미국인도 건방지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 준

아주 친절하고 사려깊은 친구입니다.

 

저희들이 미국 여행을 한다니까 캐시가 자기나라 미국에서 만나잡니다.

작당을 했습니다.

떠나오기 전 유월에 부산 해운대에서 만나

"그래 느거 집에 가꾸마"라고 이야기는 했지만 사실 실현 가능할지는 미지수였습니다.

여전히 그는  예전 제가 있던 학교의 선생님이고,

여름방학이라고 해도 여름 영어캠프도 해야하는 터라

미국에 올 수 있는 시간은 단 두 주일 뿐이었습니다.

 

미국이 좀 넓은 땅입니까?

캐시 집은 미네소타주에서도 아주 북쪽, 거의 캐나다 국경까지 올라가야 하는 곳에 있다니

어찌 저희 여행 일정과 맞아떨어질란지,

하여튼 만날 수 있으면 그렇게 해보자고 주소만 받아두었습니다.

그런데 동부를 여행하고 있는데

캐시가 영어캠프를 마치고 8월 2일쯤 미네소타의 미네아폴리스로 온다는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우리 일정을 조정하고 몇번의 편지를 주고 받은 끝에 지난 4일,

한국인 문화캠프를 들렀다 머물고 있던 지은씨네 집까지

짠하니 차를 몰고 우리를 데리러 나타났습니다.

ㅋㅎㅎ

미국서 만난 캐시, 한국에서는 수줍어 보이더니

여기서는 천상 잘 웃는 미국인입니다.

 

(제 얼굴도 다른 사람하고 비교하면 제법 작다는 소리를 듣는데

 캐시 옆에 서니 거인이 따로 없습니다.

 얼굴도 팔뚝도... )

 

캐시네 집은 미네아폴리스에서도 다섯시간 정도를 더 차를 몰고 북쪽으로 올라가야 있는

Aurora라는 조그만 마을에 있습니다.

미네아폴리스에서 만난 캐시랑 두시간 정도를 차를 몰아 북쪽으로 올라갔습니다.

어느 조그만 마을이었습니다.

이름도 모르겠습니다.

캐시가 어릴 때 살던 집, 다니던 고등학교, 중학교를 소개해 줍니다.

여기다 캐시가 몰고 온 똥차(핸들이 덜덜덜 거리는... 걱정되어서 이 차로는 부모님집까지 몰고 갈수는 없답니다)를

세워놓고 다시 우리를 데리러 온 캐시네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언니, 오빠까지 시집 장가 다 가고

일자리를 찾아 캐시까지 다 떠나가고

캐시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들이 어릴 때 살던 고향으로 이사를 갔답니다.

그 곳이 오로라입니다.

 

캐시의 고등학교가 있던 마을에서 곧장 고속도로로 차를 몰면 

세시간이 못되어 오로라에 도착할 수 있는데

캐시네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리를 구경 시켜준다며

슈페리어호가 있는 둘루스(Duluth)까지 삥 둘러 차를 몰았습니다.

슈페리어호는 미국과 캐나다가 면해 있는 오대호의 한 호수입니다.

둘루스는 미국 사람들도 아주 가고 싶어 하는 호수 마을입니다.

 

캐시의 엄마, 쉐리입니다.

일년 만에 만난 딸과 깊은 포옹을 합니다.

그리고 처음 만난 저희들에게도 반가운 인사를 보냅니다.

 

캐시의 아버지 존입니다.

예순 중반의 나이에도 머리를 길러 뒤로 묶은 아주 멋쟁이입니다.

둘루스의 평화로운 정경과 함께

평범한 미국 가정의 가족들과 만나니

우리들의 마음도 평화로워집니다.

 

둘루스에서 점심을 먹고, 

침엽수림 빽빽한 숲길, 호수와 나무 파란 하늘만 있는 길을 아주 한참 달려  캐시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캐시 집의 문 앞에 달려 있는 액자가 먼저 눈에 띕니다.

어쩌면 이 집 식구들과 꼭 어울리는 문장이던지요.

여기 머무는 며칠동안 우리도 이 정원에서 꽃들의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을런지요.

 

오로라에 있는 캐시 부모님 집입니다.

우리는 '캐시 니네 집'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이 친구는 메일을 보낼 때 마다

'my parents house'라고 합니다.

우리랑 문화적 차이가 나는 거겠죠?

스무살 이상 성인이 되면 독립하는 미국인들의 문화, 말입니다. 

 

우리가 북반구로 많이 올라오긴 한 모양입니다.

집 바로 앞에 이등변 삼각형의 침엽수림도 보이고, 자작나무도 보입니다.

참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입니다.

 

뒤뜰입니다.

캐시 아버지가 자랐던 집이라고 합니다.

캐시 아버지의 아버지가 지었다는...

 

유럽이고 미국이고, 이 사람들은 한번 집을 지으면 참 오래도록 삽니다.

부수지 않고, 새로 짓지 않고.

바로 옆 집하고도 그냥 터 있습니다.

집집마다 있는 뒤마당이 하나로 트여 있으니

안그래도 넓은데 거의 공원 수준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멋진 테이블도 가져다 놓을 수 있는 모양입니다.

 

네 그루의 키 큰 자작 나무.

집 마당에 자작나무가 크고 있다니

그동안 저희들이 가지고 있던 주택 개념으로는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덕분에 캐시 집에 있으면서는

언제든지 나무 의자에 앉아 풀냄새를 맡고 햇볕을 쬘 수 있었습니다.

혹시 꽃들이 나에게 노래로 말을 걸어올까 기다려보기도 했는데,

그 정도의 내공은 아직 내게는 없나 봅니다.

 

캐시네 집 창고.

우와!!! 정말 '우와'입니다.

자동차야 마당 밖에 주차해두는 공간이 따로 있으니

여기 들어올 필요도 없고,

여기는 정말 조그만 공장 수준입니다.

온갖 공구가 다 있습니다 .

그리고 존이 즐겨탄다는 오토바이도 한 대 있고, 카누도 있고

천정에는 자전거가 네 대나 달려있습니다.

캐시 것도 있답니다.

한 쪽에는 스키장비도 엄청납니다.

여기는 한겨울이면 온통 눈밭으로 변한답니다.

아~~ 캐시가 이렇게 살았구나~~~

 

집 앞에서 산책길을 따라 오분만 걸어가면 동네 도서관이 있습니다.

급하게 메일을 확인할 일이 있어 도서관으로 갔습니다.

이미 도서관 문은 닫혔고, 밖에서도 날라다니는 WIFI 신호를 잡아 메일을 확인했습니다.

(ㅋㅋ 우리가 이렇게 삽니다.)

 

저녁을 먹기 전에 뒤뜰을 따라 나있는 길을 따라 산책을 나갑니다.

자연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들도 바로 자연입니다.

집 뒤뜰에서 바로 이렇게 국립공원 같은 산책길이 나있다니요...

 

뒤뜰은 이들에게 아주 소중한 공간이었습니다 .

여유로운 삶, 마음이 넉넉해지는 시간을 가지는 공간으로 말입니다.

 

참!! 캐시네 집 식구 소개가 빠졌습니다.

3박 4일동안 우리곁을 떠나지 않던 이 녀석들. 

 

케일럽입니다.

워낙 개를 좋아하는, 아니 거의 사랑하는 수준인 남편이 캐일럽에 홀딱 반한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태어난 지 열달 밖에 안되어서 아직 퍼피라나?

이렇게 큰 녀석을 말입니다.

 

사실 지난 유월에 캐시를 만났을 때

자기 아빠집엘 가면 아주 큰 개가 두마리 있는데 개 좋아하냐고 물었습니다.

큰 개는 커녕 조그만 개도 본능적으로 무서워한다고 말을 해서

캐시는 걱정을 많이 했었답니다.

개가 개가 아니라 한 식구였으니 말입니다.

이 큰 놈이 밖에서 자는 게 아니라 거실에도 어슬렁 거리고

차 안에도 같이 타고,  잘때는 침대 옆으로 기어오고...

존과 쉐리가 우리를 데리러 몰고 온 밴에도 큰 녀석 두마리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습니다.

어찌 그리 두려운지요.

난생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큰 놈들이랑 같이 차를 타고 몇시간씩이나 가야 한다니...

 

그런데 몇시간도 안되어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 인생의 경험으로 말하자면 거의 기적같은 일이었지요.

캐일럽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기도 하고, 안아보기도 하고,

10살이 되어 기력이 쇠잔한 메디도 나와 금방 친구가 되었습니다.

 

대빵만하게 커도 아직 한살도 안되는 Baby 캐일럽은

제가 가까이 다가가면 두려워 하는 기색을 보이며

냅다 도망까지 가다니,

ㅋㅎㅎㅎ

개가 사람을 무서워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눈빛을 보내면 100% 신뢰하며 따른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개들도 식구가 되면 아주 진한 정을 주고 받는다는 말을  실감하는 3박 4일이었습니다.

 

여하튼, 우리는 미국인 캐시와 캐시의 가족들을 미국에서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호숫가에 사는 사람들>

 

존과 쉐리는 어디를 가고 싶냐고 묻습니다.

야생 곰을 보고 싶으면 숲으로 가고,

언더그라운드를 보고 싶으면 근처 폐광을 찾아가고,

카약, 카누를 타고 싶으면 호수로 가잡니다.

 

호수로 가자고 했습니다.

미네소타는 만개가 넘는 호수가 있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으로 유명한 주입니다.

 

아침부터 존과 쉐리는 바쁩니다.

피크닉 음식도 준비하고, 개들의 음식과 개집도 차 안에 싣고

차 머리위에는 카누까지 질끈 동여맵니다.

한시간쯤 다시 침엽수림 가득한 길을 달려 갔습니다.

 

호숫가에 붙어 있는 캠핑촌에 도착했습니다.

Vermilion 호수입니다.

호수에도 파도가 일렁입니다 .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붑니다.

 

어이?

호숫가에 세워둔 캐시네 캠핑카입니다.

John Orazems , Sherrie  Orazems ...

Orazems는 캐시의 성입니다.

그렇다면 여긴 아예 자기네 캠핑지역이라는 말?

 

그동안 여행 다니면서 캠핑카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부러워했다구요.

저거 몰고 다니면 숙소 걱정이 없어서 좋겠구나,

밥 해먹을 걱정이 없어서 좋겠구나...

그런데 캐시네는 캠핑카를 가지고 있는 것에서 넘어서

호숫가에 이렇듯 자리까지 잡고 있습니다.

 

일년 중에 대여섯달은 여기다 아예 캠핑카를 두고 있답니다.

그리고 시간만 나면 여기로 와서

카누도 타고, 카약도 타고 책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다네요.

 

어쩌면 우리에게 이런 기회가...

꿈에도 그리던 생활이었습니다.

캠핑카 옆에 발코니도 만들어두고 잔디밭도 있습니다.

또 하나의 집입니다.

자연의 한가운데 푹 파묻힌 행복한 쉼터입니다.

 

캠핑카 안에는 모든 것이 다 마련되어 있습니다.

침실도, 거실도 그리고 부엌도.

자주 왔다갔다 하시는지, 부엌 살림도 가득합니다.

 

남편과 캐시가 힘을 합해 카누를 내립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오늘 카누나 카약을 탈 수 있을런지요?

하늘은 청명한데...

 

가지고 온 짐을 풀어놓고 다시 나섭니다.

점심 먹으러 엘리(Ely)라는 곳으로 갑니다 .

엘리는 미네소타주가 자랑하는 호숫가의 액티비티를 하는 전진기지같은 마을입니다.

 

점심 먹고 친구 별장에 놀러 가잡니다.

안 그래도 어제 둘루스에서 존과 쉐리의 친구들을 여럿 만났는데

내일 다시 만나자고 말하더라구요.

 

존과 쉐리도 학교 선생님으로 퇴직하셨는데

그 때 같이 근무했던 직장 동료들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캐시의 친구가 온다고 같이 만나자고 이미 말해 두었답니다.

이렇게 또 우리는 캐시의 부모님과 그 부모님의 친구들까지 여럿 미국인을 만납니다.

 

캐시 부모님들의 직장 동료였던 마가렛과 딘 부부는 또다른 호수(Burntside Lake)에

아예 통나무 별장을 짓고 있었습니다.

일년 중에 몇달은 여기 살면서 큰 뼈대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스스로가 다 짓고 있답니다.

데크도 만들고 침대와 가구도 만들고...

 

점심을 실컷 먹고 왔는데,

우리가 온다고 애플파이, 블루베리 파이를 가득 만들어 두었습니다.

달콤한 거는 안먹어야 하는데...

자꾸 손이 갑니다.

학교 선생님들 출신 아니라할까봐

(여기서 학교 선생님이 아니었던 사람은 오로지 우리 남편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이야기의 주제는 대부분이 학교 이야기, 학생들 이야기였습니다.

퇴직을 했거나 현직이거나, 한국인이거나 미국인이거나 마찬가지 입니다 .

이들은 한국의 학교, 캐시가 가르치고 있는 학교에 대해 궁금한 게 많나 봅니다.

 

딘에게 캐시가 묻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던 그때가 그립지 않냐고.

"Never"이랍니다.

저에게 딘이 되묻습니다.

별로 나이가 들어보이지도 않는데( 외국 사람들은 우리 나이를 잘 가늠하지 못합니다)

여행때문에 학교를 그만두어서 섭섭하지 않냐고.

"So So"라고 답합니다.

한국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것이 궁금한데

한국 생활을 2년씩이나 한 캐시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던지요.

영어로 대답하기 힘들어 우물우물 거리고 있으면

한국적 사고를 많이 이해하고 있는 캐시가 정리해줍니다.

그리고 제가 하는 엉터리 영어도 캐시는  신기하게 이해를 잘 해서

어른들에게 다시 고쳐주기도 하구요.

 

저녁에 만나기로 하고 다시 우리 호수, 우리 캠핑카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바람이 많이 불어 오늘은 카약이나 카누를 하기 힘들겠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렇게 호수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책을 읽는 시간을 얼마나 꿈꾸어 왔던지요.

 

쉐리와 함께 호숫가를 걷기도 하고,

메디, 캐일럽과 함께 산책을 나가기도 하고,

이렇게 앉아 그저 책을 읽기도 하고...

폴 크루크먼의 '미래를 말하다'가 술술 읽히더라구요.

 

저녁이 되어 친구들이 다시 우리 캠핑카로 왔습니다.

이제는 마가렛의 여동생 부부도 함께 입니다.

여동생도 교사입니다.

남편은 물론 아니지만...

이들 부부는 저희만큼 여행을 좋아해서

정말 오랫동안 세상 곳곳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른 영어는 좀 딸려도 여행 이야기를 할 때는

우리가 갔다 온 곳이 좀 많아서 선수를 잡아 풀어내지요.

이야기 하다가 막히면 문득 다른 곳의 이야기를 해버리면 되니까... ㅋㅋ

 

캐일럽이랑 저랑 많이 친하지요?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캐시의 가족들이 제게 선물한 기적입니다.

 

캐시와 존과 쉐리, 마가렛과 딘, 그리고 그의 여동생 부부.

- 그 때는 이름을 알아서 잘 불렀는데, 며칠이 지나고 나니 이름도 생각 안납니다.

   영어 이름은 왜 그리 어려운지... -

모두들 우리가 온다고 미리부터 약속을 해 둔 사람들입니다.

존과 쉐리한테 고맙습니다.

물론 캐시한테도...

 

캠핑카 데크에 마련해 둔 테이블에 식탁보를 깔고

쉐리가 아침부터 준비해 온 저녁 식사입니다.

케잌은 직접 굽고, 야채 샐러드에 미네소타의 전통음식으로 유명한 Wild Rice도 있습니다.

와일드.. 좀 딱딱했습니다.

우리 밥 처럼 포실포실 쫀득쫀득 하지 않고... 

 

마침 오늘이 존의 66번째 생일랍니다.

아침 식탁에서 문득 그럽디다.

이런 황망한...

 

캐시가 이번에 한국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했다니까

이것 저것 물으시더니 문득 자기도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싶답니다.

아니 , 육십이 넘으신 분이 패러글라이딩을 시도해 보고 싶다니...

비틀즈와 밥딜런을 좋아하고, 여전히 모터 싸이클을 즐기는 젊은 분이기는 하지만

육십대 중반에 패러글라이딩이라니...

그런데 아내, 쉐리는 한 술 더 뜹니다 .

"오늘이 당신이 66번째 생일이니 70번째 생일 기념으로 패러글라이딩을 해보는게 어떻냐?"고.

여러가지에 놀랍니다.

오늘이 존의 66번째 생일이라는 사실.

우리 같으면 미역국을 끓인다, 팥밥을 만든다 정신이 없고,

자식들이 어제 저녁부터 모여들고, 아니면 아침에 전화로라도 안부를 묻고 할텐데...

그냥 조용한 아침이었다는 사실.

이들이 일반적으로 먹는 토스터와 커피, 과일이 차려진 아침식탁이었을 뿐.

일년만에 집을 온 캐시도 별 반응이 없고.

또 예순을 넘긴 남편이 패러글라이딩을 한다는 말에

다친다, 나이를 생각해라 이런 말을 하는게 아니라

70번째 생일 기념으로 하라니요?

앞으로 4년만 더 기다리면 된다는...

함께 살고 있는 부부가 같이 멋지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우리는 송구해서 죽겠습디다.

방문하는 가정의 어른 생신이라는데 아무 준비도 없이 나타나서...

그리고 궁금하기도 하더라구요. 왜 다른 자식들은 연락도 없는지...

미국을 여행해도 우리는 어쩔수 없이 남의 가정사가 궁금한 한국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물어보니 이번 주말에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아들집에 가서 같이 만나서

 그 때 파티를 할거랍니다. 그러면 그렇지요)

 

여하튼 우리는 캠핑촌에 있는 가게에 들러

존의 생일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유리 공예로 만든 와인 병꽂이를 선물했습니다.

'둘루스에 있는 등대' 모양이라면 아주 좋아하십니다.

 

모닥불을 피웠습니다.

호숫가의 모닥불, 밤 늦도록 미국인들과의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도착하기 하루 전날 이곳 밤하늘에는 오로라가 펼쳐졌다는데...

초록색, 붉은 색 밤하늘에 마술같은 빛의 쇼가 있었다는데...

오늘은 또 펼쳐지지는 않을런지요.

미네소타의 Aurora에서 그토록 보고싶어하던 오로라를 볼 수 있는 또 다른 기적이 있을런지요.

 

지역 신문에 의하면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데...

하릴없이 북쪽 밤하늘만 쳐다보지만 감감 무소식입니다.

 

 

<또 다른 하루, 드디어 카약을 타다>

오늘은 날씨가 화창합니다.

아침밥을 정원에서 먹잡니다.

OK!

 

오늘은 어디를 갈래?

야생곰을 보러 가지 않을래?

아니, 우리는 호수로 다시 한번 더 가서 카약을 타고 싶은데...

(영어, 어떨때 보면 이거 참 편리합니다.

 예순이 넘으신 어른한테 니, 네 해가며 반말을 찍찍 해대도 별 탈이 없으니...ㅋㅋ)

 

존은 그러면 오후에 다시 호수로 가기로 하고,

모터 싸이클을 태워주겠답니다.

한번 신나게 달려보자고...

Really? Thank you!!!

 

시속 70마일, 시속 110Km도 넘는 광속(?)으로

차 하나 없는 침엽수 가득한 길을 신나게 달려갔다 돌아 옵니다.

ㅋㅎㅎ

"너,언제 모터 싸이클 탄 경헙있어?"

"굉장히 오래 전 이야기예요. 결혼도 하기 전.

 대학교 친구였어요... 물론 지금의 이 남편은 아니었지요."

존은 웃으며 남편을 쳐다본다.

괜히 말했다며, 둘 사이에 문제 있는 거 아니냡니다.

"No problem, Just we were friends!!!"

 

캐시네  앞집에 놀러 갔습니다.

자기네 집에 캐시 한국 친구들이 왔다며 이야기한 모양입니다.

채소밭, 허브밭으로 정원을 잘 가꾸고 있던 린다가 우리를 초청했습니다.

 

린다는 채소 하나, 꽃잎 하나하나를 일일이 다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이건 한국에 있냐고? 니네들은 이걸 어떻게 먹냐고...

고기 음식이 많은 서양 식단에는 향기를 내는 허브들이 많이 필요하지만

우리나라야 뭐, 별로.

 

호박이 눈에 띕니다.

저건 열매도 먹지만 우리는 잎을 더 좋아한다고 했더니

깜짝 놀랍니다.

호박잎을 먹는단 말이지?

그럼요, 얼마나 맛있는데요...

이 잎에 있는 질긴 부분을 이렇게 찢어서 버리고 부드럽게 만든 뒤에

푹 삶아서 소스에 찍어 먹는다고...

이 사람들이 호박잎 삶은 거에 된장을 푹 찍어서 먹는 맛을 알까요?

 

당근 밭에서 당근을 뿌리째 뽑아서 흙을 털어내고 쓱 내밉니다.

우적우적 씹어 먹습니다.

맛있습니다.

 

점심은 린다네집 채소밭에서 따 온 여러가지로 바베큐도 만들고 함께 먹기로 했습니다.

 

캐시는 아주 철저한 채식주의자라서

사실 이 집을 방문하면서 조금은 걱정했습니다.

고기는 하나도 안주고 순~ 풀쪼가리만 주면 어쩌지?

 

다행히 캐시 부모님은 채식주의자가 아니라서 고기 바베큐도 있습니다.

그릴에 고기도 굽고 야채도 굽고,

샐러드도 만들고 여전히 와일드 라이스도 있고,

과일 샐러드도 가득하고...

점심도 야외 부페입니다. 

 

린다는 음식에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

특히 유기농 음식.

한국에서는 무얼 먹는지, 어떻게 먹는지...

역시 캐시가 많이 도와줬습니다.

한국에서 2년이나 살고 있으니, 한국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이 대화에 같이 있으니 얼마나 좋았던지요.

 

다시 차를 몰아 캐시네 캠핑카가 있는 버밀리언 호수로 갔습니다.

사실 한시간 이상을 차를 타고 가야하니 가까운 거리라고 말할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땅 넓은 미국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한시간 걸리는 거리는 바로 옆동네인 모양입니다.

그러니 양산에서 부산 해운대에 있는 우리집까지 캐시는 아무렇지도 않게 달려왔나 봅니다.

차도 없이 오는게 나는 늘 걱정이었는데...

 

자라난 환경의 차이에서 오는 사고의 차이겠지요.

 

오늘은 어제보다 바람이 적게 붑니다.

카약을 타러 나갑니다.

캐시네는 자기 카약이 있습니다.

후후후

이 집에는 액티비티에 관한 한 없는게 없습니다.

아니, 미국의 중산층들이 원래 이렇게 살고 있는 듯 합니다.

오십년도 더 된, 때로는 100년도 넘은 오래된 집에서 그대로 살면서

자신의 레져 생활은 즐기는...

 

캐시와 엄마, 쉐리.

카약 노를 젓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우리도 카약을 타고 나갔습니다.

뉴질랜드와 라오스에서 카약을 타보기는 했지만 그 때는 2인용 카약이었습니다.

혼자서 타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그 때는 또 가이드라고 해서 지켜주는 사람이 있기도 했는데

여기는 완전 혼자서 알아서 해야합니다.

남편은 나더러 왜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가느냐고 멀리서 소리를 치지만

이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더란 말입니다.

ㅋㅋㅋ

그래도 재미있습니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합니다.

 

캐시는 다시 존과 함께 카누도 타고...

 

스쿠버든 수영이든, 낚시든지 간에

물에서 노는 운동이라면 뭐든지 좋아하는 남편은 신났습니다.

 

한참을 놀고 오니 피곤합니다.

어느 새 햇살 아래 졸고 있습니다.

 

 캐시도 마찬가지고...

 

한잠을 자고 일어나니 슬 추워집니다.

해도 지려고 하니 더 그렇나 봅니다.

존이 모닥불을  지핍니다.

노을이 지는 호수 바로 앞에 의자를 갖다 놓고 또 휴식.

모닥불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상쾌한 추위입니다.

 

존과 쉐리도 저녁 햇살을 받으며 쉬고 있고... 

 

참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어제도 부엌에서 왠종일 왔다갔다 하며 음식을 한가득 만들어 우리의 저녁을 화려하게 만들었는데

오늘 우리의 식탁도 만찬입니다.

 

또 오늘, 호수에 해가 집니다.

캐시네 가족과 보내는 사흘째 밤이 오고 있습니다.

 

첫날 저녁 먹은 BIBABIK의 피자집.

이 때까지는 아직 많이 서먹했었지요.

피자를 먹으면 당연히 오이피클도 먹어야했던 우리가 종업원에게 피클을 부탁하자

캐시가 설명했었어요.

한국에서는 피자 먹을 때 항상 피클을 같이 먹는다고.

우리는 뭐라고 설명하기가 힘들어서

한국은 식사를 할 때 항상 반찬이라게 있어서 밥 말고도 다른 게 꼭 있어야한다고 말했더니

다음날 부터 식사때마다 피클을 챙겨주셨어요.

토스트를 먹을 때도, 한가득 차려놓은 부페를 먹을때도...

 

저희들한테는 요 며칠이 마치 영어캠프 같았어요.

몸과 마음은 즐거웠는데 머리로는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는 부담스러움이었습니다.

한국말은 한마디도 안 통하고 오로지 영어만 해야 하는...

캐시와는 그래도 엉터리 짝퉁 영어라도 그럭저럭 통했는데

사실 걱정이었거든요.

캐시 부모님과 만나서 이야기가 잘 될까?

"캐시! 한국 사람들은 눈으로 이야기를 잘 하거든.

 그래서 우리가 가만 있으면서 눈으로 이야기하면 니네 부모한테 말 잘해줘"

부모님과도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이건 부모님 친구들에 , 그 친구 동생부부에, 옆집 부부까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통 미국 사람들과 영어만 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감사하다는 마음, 고마웠다는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Thank you!" 밖에 없었으니까요.

 

토요일 덴버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다시 미네아폴리스 공항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두 분은 그 먼길을 마다않고 다시 우리를 데려다 주셨습니다 .

차로 5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인데 말입니다.

5시간이라니요.

서울에서 부산까지 데려다 주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미네아폴리스에서도 시간이 더 있으니 막바로 공항으로 가지 말고

아들네 부부도 우리를 만나고 싶어하니 만나고 가라고 하셨는데,

염치가 없어 그냥 공항에 데려달라고 했습니다.

'염치가 없다'는 말, 그건 영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캐시는 한국 사람들이 참 친절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아무 미국인한테나 친절하지는 않습니다.

캐시같이 남을 존중할 줄 알고 사려깊은 친구한테만 그러지요.

그런데 캐시의 가족들과 친구분들, 그리고 이웃들과 함께 며칠을 보내면서 생각하니

그동안 한국 사람들이 캐시에게 베푼 친절의 댓가를 우리 둘이 다 받은 것 같은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John!  Sherrie!

We are so greatful to you for your kindness.

We really hope to see you at our house in Korea.

When we meet again, how about to play cards once more?

Lee &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