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20100802 클린시티, 그린시티. 시카고 1

프리 김앤리 2010. 8. 13. 08:58

 

시카고.

내가 알고 있는 시카고에 대한 지식(?  아니, '시카고' 하면 떠오르는 단어라고 고치는 편이 낫겠다)이라고는

고작 알카포네, 시카고 갱, 전설의 농구팀 시카고 불스 정도다 .

조금 덧붙이자면 미시간 호수변의 도시에  높은 빌딩으로 유명하다는 것까지.

 

몇 해전 덴버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던 큰 언니네 아들이

연수기간의 6개월을 남겨놓고 시카고로 자리를 옮겼다고 했다.

얼마 안 남았는데, 굳이 왜 시카고로 옮겼나는 말에 녀석은

"시카고, 이름만 들어도 멋있잖아?'"라고 답했다.

그 때 마침 내가 미국 여행중이라 잠시 만났었는데

샌프란시스코의 야경에 한참 감동을 하고 있는 나에게

시카고의 야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보지도 못한 도시의 야경을 갖다 대며 그 때의 내 감동을 팍 ~ 깍아 내려버렸다.

"이모!!! 시카고에는 말이야... 높은 빌딩이 쭉 늘어서서... 호수를 배경으로 해서... 야경이...."

 

뉴욕의 맨하탄 야경을 감상하고 있는 우리 바로 옆에 있던 어떤 미국인도

시카고의 야경과 거의 비슷하다라는 말을 중얼거려

시카고라는 곳은 도착도 하기 전에

벌써부터 멋있는 야경에, 세련된 높은 빌딩으로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 전에는 사실,

시카고 하면 갱단들의 싸움으로 총소리가 가득한 시카고,

흑인들이 득실거리는 시카고,

하물며 전설의 농구팀이라고 하는 시카고 불스까지 마이클 조던의 검은 피부가 함께 떠올라

혹시 밤 거리로 나서면 뭔가 음습하고 무시무시한 분위기가 펼쳐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가득 했다.

그러나 한달 정도 미국 여행을 하면서

미국 밤거리에도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도 발견하고

흑인들이라면 모두들 건들거리고

총알이 아무 거리에서나 슝슝 날아다닐 것 같은 상상이

순전히 영화에서 과장되게 묘사된 미국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부터

시카고는 순전히 빛나는 도시로만 기대되고 있었다.

 

과연 그랬다 .

시카고를 들어서는 우리를 반긴 건 깔끔하고 세련된 도시였다.

 

높은 빌딩하면 빠지지 않는 뉴욕이지만

뉴욕의 높은 빌딩은 그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러나 시카고는 잘 정비된, 그야말로 스카이라인이 살아있는 빌딩 숲이었다.

 

더구나 시카고는 1871년 대화재로 도시 전체가 다 타버리고

그 이후 철저한 계획 아래 정비를 한 도시여서

어디 한군데 나무랄 곳이 없었다.

 

또한 20여년전부터는 시 주도하에 도시 전체적으로 환경에 대한 관심을 높여서

치밀한 계획으로 녹지공간을 조성하였다.

그 결과 시카고 시내 주요 도로에만도 183Km나 되는 자전거 도로가 만들어지고

곳곳에 시민들이 쉴 수 있는 공원이 조성되었다.

 

그래서 시카고이 상징이 단순히 높은 빌딩 만이 아니라

'그린 시티' ' 클린 시티'의 이미지 까지 갖게 된 것이다.

 

그린 시티, 클린 시티 시카고를 보기 위해

그리스 지구에 있던 호스텔을 나선다.

자전거 도로가 아주 잘 나 있다지만

우리는 역시 도보 배낭여행자다 .

 

햇살이 강하다.

그래도 북쪽으로 많이 올라와서 인지

뉴욕이나 워싱턴 만큼 미칠 것 같지는 않다.

천천히 걷는다.

 

미시간 호숫가로 가는 길이다 .

공원 옆에 커다란 조각상들이 놓여져 있다 .

조각품 이름이 '아고라'다.

106명이 사람들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모습.

광장이다.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광장이다.

 

미시간 호수를 따라 걷는 길.

누군가가 그랬다.

한국 지도를 오려  미시간 호수를 비롯한 근처 다섯개의 호수, 오대호에 빠뜨리면 퐁당 빠진다고.

 

호수라고 보기에는 너무 큰

그냥 바다다. 끝도 없는.

 

네비 피어(Navy Pier)로 들어선다.

미시간 호수를 배경으로 하여 시카고 전체가 잘 보이는 부두이자 시민들이 휴식 공간이다.

 

네비 피어의 끝에서 바라보는 시카고는 멋있다.

 

공원의 끝에는 놀러나온 시민들이 가득하다 .

 

발랄한 동상도 보이고... 

 

사람들과 눈높이를 맞춘 동상도 있다.

저 새까만 아이들이 앉아있는 모습도 동상의 일부다.

 

도심 안쪽으로 파고드는 미시간 호수를 따라 계속 걷는다.

 

이 곳을 따라 사람들은 보트를 타고 시카고를 즐긴다 .

건물의 유리창에 햇살이 비치면 반사되어 나오는 빛을 즐기고

해가 지는 시간이면 노을을 담은 경관을 바라보고

저녁이면 불을 밝히는 야경을 감상한다.

 

대화재로 모든 건물이 다 타버리고

완벽한 계획 아래 빌딩들을 지어올려서 그런지

도시 구간구간이 아주 잘 자여져 있다.

건물 하나하나도 모두 독특하고.

 

시민들이 쉴 수 있는 공간도 잘 만들어 두었다.

햇살 가득한 시카고의 오후.

 

시카고가 자랑하는 밀레니엄 파크로 들어선다.

밀레니엄 파크 최고의 자랑은 바로 이것, 크라우드 게이트(Cloud Gate)다.

하늘의 구름을 다 담는 곳이라는 뜻이겠지?

푸른 하늘의 구름은 물론 시카고의 빌딩들도 다 담겨있다.

완전 스텐레스로 만들어져 360도 시카고의 모습을 다 담아내는 아주 독특한 모양이다.

이 조형물은  The Bean (콩)이라는 애칭으로 불리우며 시카고 시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시카고의 하늘을 담아내는 The Bean.

 

밀레니엄 파크에는 만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야외공연장도 있다 .

여름이면 이 곳에서 재즈, 클래식, 춤등 다양한 공연이 열려

시카고 사람들에게 무료로 제공된다.

깔고 앉은 담요도 준비하고 , 의자도 준비하고,

온갖 먹을 것을 가지고 사람들이 점점 모여든다.

우리가 간 날도 재즈 공연이 있어, 덕분에 한참을 구경하기도...

 

한여름이면 시카고 전체가 들썩인다.

사람들은 문화의 향기로 빠져들고...

그리고 겨울이면 꽁꽁 얼어붙은 빙판에 스케이트장이 들어서고...

 

춥지 않냐고, 겨울에는 살기 힘들지 않냐고...

'정말 춥다... 끔찍하다.. 따뜻한 남쪽 나라가 그립다' 뭐 그런말을 기대하고

시카고의 겨울을 물어봤는데

사람들의 대답은 의외다.

시카고는 겨울조차 스케이트같은 야외공연, 뮤지컬 같은 문화공연이 있어 매력적인 곳이라고...

 

ㅋㅋ

우리는 우리의 길을 계속 걷는다 .

빌딩 숲이 가득한 시카고의 다운타운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어이?

난데없이 총으로 무장한 경찰?

그리고 경찰 트럭?

길은 완전 차단되어 있고, 사람들은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 있다.

 

하늘에는 요란한 굉음을 내며 헬기 두 대가 건물 옥상 주변을 맴 돌고 잇고...

 

두려움에 떨며 하늘을 쳐다보며 사람들이 바삐 뛰어간다 .

무슨 일이라도???

아이고...

드디어 미국에 들어온 게 맞구나...

어디서 총격전이라도 벌이진 것일까?

몰려 있는 사람들이 모두다 한 건물을 응시하는 것으로 보아

저 곳에 '무슨 인질극'이?

 

빌딩 주변으로는 아주 낮게 헬기가 계속 빙빙 돌고 있고..

뭔가 불안하고 두려움을 만들어주는 무시무시한 소리...

 

어.. 어... 어라???

무장 경찰을 실은 경찰차가 쓍~~ 하니 달려가고

뒤따라 흰 경찰차 몇대들이 따라가는데...

또 한쪽에는 아래 위로 카메라를 부착한 차량이 같은 속도로 따라간다.

그러더니

아까 그 사람들이 응시하던 건물 주변으로 사람들이 갑자기 뛰어나와 달리기 시작하고...

ㅋㅋ

영화 촬영중이다.

다행이다.

헬기가 낮게 뜨고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면서 불안감을 조성하는 건 틀림없었지만

총소리도 없다.

 

다음날  들은 건데,

영화 트랜스포머 3 촬영중이었단다.

시카고에서 며칠동안 계속 촬영할거라고...

 

한국에 들어가서 트랜스포머 3을 볼 때는 이 순간을 기억하겠지?

시카고에서의 이 순간을...

 

시카고의 밤이 왔다.

며칠을 머물렀던 시카고의 밤.

시카고의 밤은 특히 아름답다.

 

미시간 호수 너머로 저 멀리 시카고의 밤이 보인다.

 

시카고에서는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야경을 보기 위해 높은 곳을 올라야 한다.

시카고의 또 다른 명물,

윌리스 타워(Willis Tower)

103층에 있는 스카이데크로 올라가서 시카고의 저녁을,

그리고 하나 둘 불이 켜지는 시카고의 야경을 보아야 한다.

 

103층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서 자리를 잡았다.

더 어두워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리라.

 

불이 하나 둘씩 켜지기 시작한다.

빌딩 저 너머는 미시간 호수다 .

조카 영욱이가 말했던 바로 그 장면이다.

뉴욕에서 만났던 미국인이 중얼거리던 바로 그 장면이다.

멋지다.

 

 

윌리스 타워에서 빠뜨릴 수 없는 건 바로 여기.

103층 꼭대기, 유리로 만들어져 있는 발코니에 서보기, 누워보기, 앉아보기다.

유리 바닥  저~~ 아래로 지상의 땅이 훤히 보인다.

무섭다.

서 있자니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다리에 힘을 빼보지만, 그 뺀 체중이 어디로 갈 수 있을까?

결국엔 내 온 몸으로 이 유리를 누르고 있는데...

그리고 나만 있나?

80Kg도 더 되는 사람들 몇이나 바로 내 옆에 서 있는데...

뻔히 뜬 눈으로 훤한 유리 밑으로 아래를  보고 있자니 안되겠다.

벌렁 드러누웠다.

눈에 뵈는 게 없으니 두려움이 좀 덜하다.

그래도 어깨에는 가능하면 힘을 뺐다는 것...

 

ㅋㅋ

드러눕고, 앉고, 서고, 살며시 걸어보고...

103층 윌리스 타워의 유리 발코니에 선 사람들은 그저 즐겁다.

 

꼬마 아이는 풀썩 주저 앉았다.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었는데

사진이 어두워 잘 안보이는 게 조금 아쉽다.

우리는 그 아이의 얼굴 표정이 환히 기억나는데...

 

빼곡한 빌딩 숲과 빌딩에 켜놓은 전구들이 만들어내는 야경도 아름답지만

쭉쭉 길게 뻗은 시카고의 도로가 만들어내는 야경도 그에 못지 않다.

정말 1871년 대화재때 시카고 도시 전체가 남김없이 다 타버렸다고 하더니만

모든 것 다 털어버리고 새롭게 태어난 도시,

시카고는 정말 잘 정비되어 있다. 

 

다시 내려와서 윌리스 타워를 올려다 본다 .

저 높은 곳에는 지금도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며 유리 발코니에 서있겠지?

 

< 계속 빚지는 인생 > 

시카고에서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여행이 계속되었다 .

마침 조기숙 교수님 부부가 시카고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집에 와 계신다고 해서

그 집에서도 신세를 진다.

정말 이번 여행은 빚지는 인생이다.

 

아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한 눈에 미시간 호수가 다 내려다 보인다.

마침 같이 살고 있던 싱가폴 학생이 자기나라로 떠나고 다른 룸메이트가 들어오기까지

잠시 한달 정도 방이 비어서 교수님 부부가 오셨다는데,

달랑 방 두 개 있는 집에 우리가 신세를 지는 바람에

방 하나를 우리 둘에게 내어주고 교수님 부부는 거실에서 주무신다.

미안타.

 

 

함께 미시간 호수를 거닐기도 하고...

박물관, 미술관엘 가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그리고 이 것.

우리 눈을 휘둥그레 만드는 화려한 식탁.

정말 놀라웠다 .

조 교수님의 음식 솜씨.

대단한 필력과 상대에게는 두려움을 우리에게는 감동을 자아내는 토론실력에 늘 놀라웠는데

음식 솜씨도 대단하다.

 

사진으로 찍은 게 이 것 밖에 없어서 그렇지, 

이틀을 머물면서 그야말로 배가 터지게 먹었다.

배가 불러오는 게 어찌 그리 안타깝던지...

연구하고, 강의하고 , 글 쓰고, 토론에 나가고 또 언제 음식 장만까지 하시는지...

 

그동안 나는 나의 음식솜씨에 은근히 자부심이 있었다 .

그런데 미국에서 이곳 저곳 여러 주부들을 만나고 나서

앞으로는 이런 말을 하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 중이다.

음식 만드는 내공이... 나는 견주지도 못하겠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시카고에 살고 계시는 박사장님.

우리를 데리고 이틀동안이나 이곳 저곳을 보여주신다.  

 

시카고에 사는 다른 교포들과도 만나 한국 식당에서 거한 저녁도 얻어먹고

박사장님 댁에도 놀러갔다.

귀여운 박사장님댁 아이들.

 

시카고를 떠나 야간 버스로 미네아폴리스를 가는 날.

교수님 부부는 저녁 김밥까지 싸와서

우리를 배웅해 주신다.

 

'그래요. 교수님.

 우리 모두들, 그 누군가가 그리운 아직은 환자들이예요.

 자꾸 자꾸 서로들 만나 이야기로 치유하자구요.

 오늘, 여기도 바람이 많이 불어요.

 그날 저녁, 시카고에서도 바람이 많이 불었어요.

 아마 수천 수만의 바람으로 우리 곁을 다녀가셨을거예요. 

 시카고에서 즐거웠던 우리들의 시간에 함께 계셨을거예요...

 한국에서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