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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0 우리에게도 영웅이 있다. 사우스다코다,크레이지 홀스

프리 김앤리 2010. 8. 18. 20:03

미네아폴리스를 떠난 우리들은 비행기로 미국의 중부도시 덴버에 도착했다.

여기서 우리가 가 볼 곳은 사우스다코다 주의 블랙 힐(Black Hill) 지역과

콜로라도 주와 사우스다코다 주의 몇몇 국립공원이다.

블랙 힐은 바위산에 미국 대통령 얼굴이 크게 새겨져 있다는 러쉬모어 산과

그 맞은 편 산에 지금도 건설중인 인디언 (Native American  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 말이다.)전사

크레이지 홀스 상을 보러 가기 위해서다.

그리고 며칠을 더 할애해서 록키산 국립공원, 배드랜드 (Badland ),국립공원, 데빌스 타워(Devils Tower) 등

본격적으로 미국의 자연을 보러 나설 예정이다.

 

 

< 큰 바위 얼굴, 러쉬모어 산> 

덴버를 출발, 사우스다코다 주의 블랙 힐로 가는 길. 아무 것도 없다.

중간에 거쳐가야 하는 와이오밍 주를 지나는 동안에도 그저 황량한 벌판밖에 없다.

끝도 없다.

덕분에 저~~~ 끝까지 뻗어있는 지평선을 볼 수 있고,

머리를 들어 360도를 빙그그르 돌려도 어디든 하늘이 있다.

눈 앞을 가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미국, 정말 징하게 크다.  엄청나게 넓다.

 

블랙 힐 주변에서는 버팔로 떼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출발했는데

버팔로떼는 보이지 않고 모터 싸이클 떼만 가득 있다.

사우스다코다 주에는 모터 싸이클을 타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건지...

의아할 뿐이다.

 

모터 싸이클도 모두 근사한 것들이다.

소위 짜토바이는 눈 씻고 봐도 없다.

그리고 머리엔 두건, 가죽 바지에 가죽 조끼, 문신이 새겨진 팔, 검게 그을린 얼굴...

어디서 이렇게 많이 모여든 것일까?

...

알고 보니 사우스 다코다의  블랙 힐 근처 Stuugis에서

1년에 한번씩 열리는 전 미국 모터싸이클 대회가 열리는 주간이다.

70년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내에서는 유명한 대회란다.

80만 명이 참가했다나?

모터싸이클 80만대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한 대에 두명씩 탄 경우가 더 많았으니 그렇다면 도대체 몇명이 왔다는 것인지...

내 평생 본 모터싸이클 보다 더 많이,

마치 버팔로 떼가 시커멓게 몰려드는 것 같은 행렬을 보았다.

덕분에 이들과 꼭 때를 맞춰 같이 떠난 우리의 여행은

숙소를 잡는데 엄청난 고생을 해야했다.

 

어쨌거나, 미국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는 러쉬모어 (Rushmore)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미국의 영광'이 새겨져 있다는 러쉬모어 산.

사우스 다코다 주의 블랙 힐(Black Hill)에 높이 솟아 있는 산이다.

TV에서도 잡지에서도, 또 영화에서도  참 많이 봤던 장면이다.

그냥 익숙하다.

 

러쉬모어 공원안으로 들어선다.

 

입구에는 러쉬모어 산을 조각한 조각가, 거트존 보글럼(Gutzon bm)의 동상이 보인다.

그가 러쉬모어 산을 조각하면서 가졌던 컨셉은

'미국인은 위대하다('American' meant 'big')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위대하고 크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방법.

그는 이집트에 있는 피라미드 석상 앞에 세워져 있는 스핑크스를 떠올렸다.

'그 보다 더 큰 것을 만들어야 한다.'

'스핑크스 보다 더 크게 미국의 위대함을 나타내야 한다'

 

그는 미국의 중앙고원에 위치한 블랙 힐의 높은 산, 러쉬모어에

미국을 상징하는 대통령들의 얼굴을 새기기로 한다.

 

미국이 위대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미국인들이 존경하는 대통령들의 얼굴을, 산을 깍아서 그 위에다 새기고자 했을까?

물론 단순히 조각가 한명의 의견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집트나 다른 유럽과 비교하여 짧은 역사를 지닌 미국인, 미국 정부 전체의 의견이었을 것이다.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상상하지 못하는

산을 깍아 거기다 자신들의 자랑스런 대통령 얼굴을 커다랗게 조각하는 통 큰 시도를 했을 것이다.

 

대통령들의 얼굴이 새겨진 것을 보러 가려면

51개 미국 주들의 깃발이 양쪽으로 줄지어 걸려 있다.

 

뭔가 장엄한 분위기다.

미국 사람들은 이 곳을 지나면서

‘위대한 미국’ ' 자랑스러운 나의 조국‘을 느낀다고 한다.

미국 여행을 하면서

미국 사람들이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애국심이 높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그리고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많은 장면들이 있다는 사실에도 놀라웠다.

이곳도 마찬가지다.

상상을 넘어서는 시도, 힘든 작업, 그리고 절묘한 전시 효과까지...

 

전망대까지 나갔다.

 

4명 대통령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난다.

 

왼쪽부터

미국의 1대 대통령 조지워싱턴,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26대 대통령 테오도르 루즈벨트,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

 

미국의 탄생(Birth)과 성장(Growth),  보존(Preservation)과 발전(Development)를 의미한단다.

영국과의 독립 전쟁을 통해 미국을 탄생시킨 조지 워싱턴 대통령,

미국 독립선언서의 작성자이자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 주를 사들여

미국을 성장시킨 3대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파나마 운하 건설을 시작하고 미국 경제의 기초를 다진 테오도르 루즈벨트 대통령,

노예를 해방하고 미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

그들의 위대한 대통령이 거대하게 새겨져 있다.

 

대통령의 길을 따라 걷는다.

 

중간 중간에 표지판이 보인다.

 

각각의 얼굴이 잘 보이는 지점에는  각 대통령의 업적들이 소개되어 있고.

 

아래로 내려오면 작업의 진행과정을 보여주는 작업실도 있다.

 

1927년에 시작하여 1941년까지 모두 14년에 걸친 작업이다.

제일 처음 워싱턴 대통령의 얼굴을 조각하기 까지 모두 7년이 걸렸고

나머지 3명의 대통령의 얼굴을 조각하는 데 또 다시 7년이 걸렸다.

 

십 수년이 걸리는 작업을 하는 동안

수 십명의 인부들이 산 위에 집을 지어놓고 살면서

다이너마이트로 바위산을 폭파하고

공구들을 써서 일일이 다시 정교한 작업까지...

이루어 낸 일들이 엄청나다.

 

조지 워싱턴의 얼굴만 해도 모두 6층 빌딩의 높이다.

코 하나만 해도 20피트에 해당한다.

 

원래는 얼굴 부분만 조각하는 것이 아니라

반신상까지 다 계획했었지만 결국에는 얼굴 부분만 완성했다.

산 위에다 거대한 크기의 조각을 하기 위해

아래 작업실에서는 여러 수 십번 축소한 크기의 조각상들을 만들었다고...

 

아래의 박물관에서는 러쉬모어 산의 정경과,

당시 사용했던 공구들, 그리고 만들었던 수 많은 조각 모델등 많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고

건설 당시의 상황을 담은 14분짜리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다.

 

미국의 중앙고원에 위치한 블랙 힐, 그 중에서도 높은 산 러쉬모어 산.

그 위의 큰 바위 얼굴.

다시 한번 더 올려다 본다.

참 대단하다.

 

 

<우리에게도 영웅이 있다, 크레이지 홀스>

1939년 미국의 조각가 코작(Korczak)은 사우스다코다의 인디언 보호구역에 사는

라코다 인디언의 추장, 스탠딩 베어(Standing Bear)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나와 우리 동료추장들은

인디언에게도 위대한 영웅이 있다는 것을 백인들에게 알리고 싶소.

우리의 영웅, 크레이지 홀스(Crazy Horse) 상을 만들어 주시오.”

 

블랙 힐은 먼 선조부터 이 땅에서 살고 있던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인디언)에게 신성한 땅이었다.

황무지, 넓은 벌판 한가운데 신성하게 높이 솟아있는 블랙 힐.

미국의 서부 개척사에서 네이티브 인디언들이 찢기고 학살당하고 마지막까지 쫓겨난 땅,

그러나 아직도 그 곳은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미국이 이 신성한 땅 블랙힐의 한 봉우리 러쉬모어에

자신들의 영웅이라며 바위산을 부수고 미국 대통령의 얼굴을 새기기 시작한 것이다.

 

대대손손 수만년 자신들이 살아왔던 땅.

미국 백인 기병대와 네이티브 아메리칸의 최후의 싸움이 벌어졌던 곳,

수많은 자신들의 선조들이 총에 맞아 쓰러져 묻혀 있는 한 맺힌 땅,

그리고 아직도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위의 머리산을 부수고

세계 만방에 ‘위대한 조국 미국’을 상징하는 거대한 조각상을 만드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이들에게도 영웅이 있었다.

네이티브 아메리칸의 위대한 전사, 크레이지 홀스(Crazy Horse, 성난 말)가 있었다.

 

조각가 코작은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나와 내 동료들은 인디언들에게도 위대한 영웅이 있다는 것을 백인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인디언과의 전쟁, 이것도 미국의 역사이다.”

 

4명의 대통령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는 러쉬모어 산에서 27Km 떨어진 지점.

블랙 힐의 또 다른 봉우리에서의 위대한 작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콜럼부스가 처음 아메리카 땅을 들어섰을 때

그 곳에 살고 있었던 네이티브 아메리칸은 모두 5백만명을 넘었다고 알려진다.

그러나 남북 전쟁 이후로 미국은 본격적으로 인디언 토벌작전에 나서 곳곳의 인디언 부족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쫓기고 쫓기며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인디언 부족이 노스다코다와 사우스다코다에

머물고 있던 부족이 수우(Sioux)족이었다.

 

빅혼 마운틴 부근에 살며 버팔로 사냥과 농사로 살아가던 수우 족에게 닥친

재앙은 자신들의 사냥터를 가로지르는 미국의 도로 건설이었다.

백인들은 서부 개척을 위한 도로를 건설하기 위하여

수우 족과 전쟁을 벌이지만 패배를 하고 사우스다코다 지역의 수우족 독점권을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 블랙 힐에서 황금이 발견되자

골드 러시 바람을 타고 백인들이 이 땅으로 모여들고 

미국 기병대는 다시 수우 족이 사는 마을을 점거하기 위해 파괴하기 시작한다.

금 캐는 회사, 이 회사를 지키기 위한 군대...

인디언들은  마구 학살 당하고...

 

다시 인디언들과 미국 기병대의 전투는 시작되었다.

1876년 리틀 빅혼에서 크레이지 홀스가 이끄는 수우족 전사들은

카스터 장군이 이끄는 미국 기병대를 궤멸시킨다.

이 전투는 인디언 전쟁 역사상 가장 빛나는 전투로 기록된다.

수우 족에 관한 이야기는 케빈코스트너 주연의 ‘늑대와 춤을’이라는 영화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풀어 헤친 긴 머리, 귀에는 작은 돌, 얼굴에는 지그재그 번개 장식,

몸에는 우박 점무늬가 찍힌 말 등에 올라탄, 인디언 전사들의 영웅.  크레이지 홀스.

 

미국 기병대는 1876년의 크레이지 호스 전사들에게 크게 패배한  이후

수우 족에 대한 집중적인 보복 전투를 벌인다.

크레이지 홀스가 이끄는 인디언 전사들은 몇 차례 전투를 벌이지만

기관총과 대포로 무자비하게 밀고 들어오는 미국 기병대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결국 1877년 1월, 절벽까지 밀려난 인디언 전사들은 굶주림과 추위,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떤다.

이 때 크레이지 홀스는 미국 기병대로부터

 “항복하면 파우더 강 주변에 부족민들의 거주지를 보장해주겠다”는 소식을 듣는다.

더 이상 부족민들의 굶주림을 보고 있을 수 없었던 크레이지 홀스는

미국 기병대의 약속을 믿고 부족민 천여명과 함께 항복하지만...

거짓 약속이었다.

저항해보지만 그는 결국 칼에 찔리게 되고...

35살의 나이로 크레이지 홀스는 생을 마감하게 된다.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에게 있어 땅이라는 개념은

어느 한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나눠 사는 곳이다.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므로

또 다른 자연의 하나인 대지는 인간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는 철학.

그래서 처음 백인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왔을 때도

그냥 땅을 나눠서 함께 살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러나 자연의 대지를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기 위해

침입자 백인들은 원래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죽이고 쫓아내고...

 

그래서 크레이지 홀스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My lands are where my dead lie buried."

"내가 묻힌 그 곳이 나의 땅이다.“

 

미국 기병대의 속임수에 의해 죽임을 당한 크레이지 홀스의 주검은

블랙 힐의 벌판, 미국 대통령들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러시모어와

자신의 동상이 만들어지고 있는 산 사이의 너른 벌판, 운디드 니에 묻혔다.

 

운디드 니(Wounded Knee, 상처난 무릎)는 크레이지 홀스가 죽고 난 후

최후로 벌어진 미국과 인디언 사이의 전투에서 미 기병대가 인디언 전사들을 궤멸시키고

무장도 되어 있지 않은 어린이와 부녀자를 포함한 300명의 수우 족 사람들을

기관총과 대포를 마구 쏘아 학살한 바로 그 장소이다.

 

 

성난 말, 크레이지 홀스는

말등에 올라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역사를 말한다.

원래 이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묻혀 있는 곳,

운디드 니의 슬픈 역사를 세상 사람들에 알린다.

자신들의 위대한 대통령을 거대한 바위산에 새기면서

민주주의를 말하고, 정의와 평등을 말하고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 지구의 정의를 지키고 있는 국가라고 말하는

미국이 단 한번도 공식적으로는 언급하지 않는

네이티브 아메리칸에 대한 학살의 역사를 가리킨다.

 

 

<아직도 진행중인 크레이지 홀스>

 

네이티브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영웅, 크레이지 홀스를

제작하는 작업은 1948년 시작되었다.

미국 대통령 얼굴이 새겨져 있는 러쉬모어에서 27Km 떨어진 지점.

같은 땅, 블랙 힐의 마주보이는 다른 봉우리이다.

 

공사를 시작한 지 20년이 지난 1968년.

이제 겨우 얼굴이 들어갈 부분의 산을 깍아 냈을 뿐이다.

 

다시 십 수년이 흘렀다.

이제 겨우 크레이지 홀스가 타고 있는 말머리가 들어갈 부분의

바위 산을 깍아냈을 뿐이다.

 

그로부터 다시 십년.

크레이지 홀스의 얼굴이 어느 정도 완성되고,

그가 가리키는 손가락, 말의 형상 잡기....

 

진척이 느리다.

40년 세월이 더 지났어도 아직 그의 모습을 보기란 어렵다.

 

크레이지 홀스를 만드는 작업은 연방정부의 재정지원도 거부한 채

모두 일반인들이 낸 기부금과 크레이지 홀스 박물관을 운영하여

벌어들이는 자금으로 공사 기금을 마련하기 때문이다.

또 바위산을 폭파하여 떨어져 나온 화강암 조각으로 만든 세공품을 팔아서 충당하기도 한다.

아메리카 백인들에게 학살당한 인디언들의 영웅을 조각하기 위한 작업에

미국 정부의 돈을 받을 수는 없다고 거절한 것이다.

 

1998년, 공사를 시작한 지 50년 만에 1차 제막식이 있었다.

 

그날 제막식에는 7천명의 인디언 후손들도 참가하고

미국의 슬픈 역사에 공감하는 수많은 백인들도 참가했다.

 

러쉬모어의 미국 대통령 조각산과 마주하고 있다지만

크레이지 홀스 조각은 그 크기에 있어서

러쉬모어와는 비교가 안된다.

러쉬모어에 있는 4명의 대통령 얼굴을 모두 다 합해서 여기다 붙여 놓으면

크레이지 홀스의 옆면 머리 크기 정도이다.

 

이 곳은 산을 통째로 조각해서

그의 얼굴뿐만 아니라 말을 타고 달리는 그의 전신이 만들어지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크레이지 홀스 조각을 시작한 코작과 그의 부인.

코작은 처음 이 작업을 시작하면서부터

라코다 인디언의 추장과 함께 뜻을 합하여

연방 정부의 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클레이지 홀스의 제작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도움만을 받기로 하였다.

그래서 그는 이 작업이 그의 생전에 다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1982년 코작이 사망하고 난 후, 지금은 그의 부인과 10명의 아들과 손자들이

여전히 이 작업을 진행중이다.

 

2008년, 여전히 크레이지 홀스에 대한 작업은 진행 중이다.

 

육십년이 넘도록 블랙힐에서 울려 퍼지는 바위 폭발음과 해머소리는

수만년 이 땅에서 살아왔던 네이티브 인디언들의 세상을 향한 선포이자,

아메리카 백인들에 대한 저항정신의 표상이다.

완공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그들의 정신은 더 먼 곳으로 , 더 오래도록 퍼질 것이다.

 

산 아래에 마련해둔 박물관에서는

그날도 크레이지 홀스에 대한 영상물도 상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네이티브 인디언들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각종 자료를 전시도 해 놓고

 

잊혀진 역사, 파묻어버린 역사를 되살려 놓고도 있었다.

그들에게도 위대한 역사가 있음을...

그들에게도 위대한 전사가 있었음을...

 

이틀에 걸쳐 찾아간 같은 블랙 힐의 러쉬모어와 크레이지 홀스.

우리는 미국의 역사를 만나고 있었다.

 

미국의 중앙고원, 블랙 힐의 또 한 봉우리에

언제 완전한 크레이지 홀스가 완성될 지 모르지만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슬프고도 뜨거운 미국의 역사가

이미 우리들 가슴을 꽉 채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