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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4 빛이 만든 계곡, 슬롯 캐년- 엔텔롭

프리 김앤리 2010. 10. 31. 14:15

 

1931년 어느 날, 양떼에게 풀을 먹이던 나바호 부족의 한 소녀가 자신의 양 한마리를 잃는다.
소녀는 잃어버린 양을 찾아 들판을 헤맨다.
  워이~~ 워이~~~ 어디 있는거니?
  내 착한 어린 양~~~
헤매다 헤매다 문득 들어선 어느 협곡,

소녀는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아주 좁고 구불구불한 신비의 계곡을 만난다.
양쪽 팔을 뻗으면 손이 닿을 듯한 아주 좁은 계곡.
컴컴한 협곡 사이로 하늘 끝 한줌 햇빛이 직선으로 강렬하게 내려 꽂히는 계곡.
협곡 사이의 바위들은 햇살에 강렬한 붉은 빛을 띠고 있고,
바위 하나하나는 물결치듯이 흐르고 있다.
조금 더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간다.
머리를 들어 저 꼭대기 하늘을 보면 거기 한 줌의 햇살이 신비로운 계곡으로 스며든다.
붉은 바위들이 휘감기고 소용돌이 치고 있다.

 

소녀는 돌아가 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저 멀리로 가면 아주 신비하고,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계곡이 있노라고...
정신을 잃을 것 같았노라고...

 

나바호 부족들은 그 이후 이 신비의 계곡을  Tse Bighanilini 라고 부른다.
'물이 바위 사이를 흐르는 곳'이라는 뜻이다.

 

훗날 사람들은 이 계곡을 슬롯 캐년(Slot Canyon - 길쭉한 구멍이 있는 캐년)이라 부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슬롯 캐년이라는 말 보다는
잃어버린 양을 찾아 헤매다 우연히 발견한 계곡이라 하여
엔텔롭(Antelope- 산양)이라고 부르는 것을 더 좋아한다.

 

페이지에서 갈 수 있는 엔텔롭은 어퍼(Upper) 엔텔롭과 로어(Lower) 엔텔롭 두 군데가 있다.
로어 엔텔롭은 개인이 갈 수 있지만 어퍼 엔텔롭은 반드시 나바호 부족이 운영하는 투어를 통해서만 갈 수 있다.
로어 엔텔롭도 가고 싶었지만 우리가 갔던 얼마전에 큰 비가 와서 다분히 위험하다는 정보때문에
어퍼쪽만 가보기로 했다.
(엔텔롭을 떠나온 지금, 그래도 로어쪽도 갔었어야 했다는 후회가 든다.
 어쩌면 그리 위험하지 않은데, 꼭 투어를 신청하도록 만든 이 사람들의 상술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까지 슬그머니 드는...)

 

트럭을 개조해서 만든, 바퀴가 뭣 만큼 큰 투어트럭을 타고
페이지에서 완전 비포장길을 20여분 달려 입구에 도착했다.

 

나바호 부족민인 우리의 가이드.
엔텔롭의 입구에 섰다.


왠지 비장한 얼굴이다.

나바호 사람들은 엔텔롭을 들어갈 때 입구에서 항상 잠시 멈춰선단다.
자연을 신앙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들은
어머니 자연이 주신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고 항상 조화로운 삶을 이 자연이 주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드린단다.
존경심을 가득 담아서 입구에서 마음을 다잡는 것이라고... 

 

어둡고 좁은 계곡 안으로 들어선다.

 

하늘 꼭대기에서 한줌 햇빛이 쏟아진다.

 

바위들이 휘몰아친다.

 

고개가 꺽어질 듯, 햇살이 밀려들어오는 그 곳으로 시선이 고정된다. 

  

수천년동안 바람과 물과 햇빛만 드나들던 곳이라고 했다.

 

물이 휘몰아치던 바위다.

 

과연 햇빛이 춤추는 곳이다.

 

바람이 소용돌이 치는 곳이다.

 

햇빛이 만들어내는 바람의 계곡.

 

물이 흐르는 빛의 계곡. 

 

휘돌아가던 바람이 머물던 붉은 바위의 계곡.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이 곳은 어떠했을까? 

 

바람이 불어 들어오지 않았다면 이 곳은 어떠했을까?

 

물이 흐르지 않았다면...

 

과연 햇빛과 바람과 물의 계곡이다. 

 

잠시 한국에 나가 있으면서 'The Canyon'이라는 영화를 봤었다.
등장인물이라고는 몇 나오지 않는 그 영화에서
주인공 남자와 여자 둘이서 신비의 계곡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캐년이라고 하면 그래드캐년밖에 몰랐었는데
그 영화에서 나오는 신비의 계곡이 바로 이 곳이었다.

막 결혼을 하고 캐년을 찾은 신혼부부가 결국은 캐년 속에서 길을 잃고
돌아나가는 길을 찾으려고 절벽위를 오르다 떨어져 결국 남자는 다리를 다치고
나중에는 굶주린 늑대들의 표적이 되자
남자는 다친 자신을 죽이고 혼자라도 이 곳을 빠져나가라며 애원하는...
슬프고 안타까운 비극 영화.

 

그 곳이 바로 여기였다.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쪽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린 사람들은 머리를 내릴 줄 모른다.  

 

나바호 소녀의 한마리 양은 햇살이 비치는 곳을 따라 들어왔을까?

 

햇살이 비치는 곳을 따라... 따라... 

 

햇살이 이끄는 곳으로...

 

엔텔롭의 입구에서 부터 출구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길이다.
400m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깊은 어둠속을 헤매다 온 느낌이다.
햇빛이 비치는 곳을 따라왔건만.

 

다시 되돌아 들어간다.
돌아가는 길은 그 길 뿐이다.
처음으로 다시 가야한다.

 

다시 붉은 바위들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을 따라.

 

어둡고 좁은 협곡 사이를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가야 한다.

 

아까보다는 이 곳이 훨씬 더 익숙하다.

 

가장 많은 양의 햇빛이 들어오는 곳.
나바호 가이드에 의하면 엔텔롭의 가장 중심인 곳.

엔텔롭의 심장과 같은 곳.
그 곳에 서 본다.

 

아쉬운 듯, 되돌아서 다시 한번더 햇빛을 찍는다.
붉은 바위를 찍는다.
휘몰아치는 바람을, 소용돌이 치는 물결을 카메라에 담는다.

 

나도 한마리의 잃어버린 양이 되어...
아주 오래 전 나바호 그 소녀가 되어...

 

빛이 만든 신비의 계곡, 엔텔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