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20101026 황당과 당황의 연속, 메사베르데 국립공원

프리 김앤리 2010. 11. 1. 14:00

여행이 짜릿한 건, 그 곳을 처음 가보기 때문이다.
한번 갔던 곳을 다시 가거나, 혹은 여러번 가면 어느새 그 곳의 내공이 나의 내공으로 옮겨오는 건
여행의 짜릿함이 아니라 여행의 진국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느 낯선 곳에 처음 발을 디뎠을때의 짜릿함을 즐기기 위해 어쩌면 또 우리는 배낭을 짊어지고 여행을 떠나오는 지도 모른다.
그런데 때로는 그 곳이 짜릿함이 아니라 당황, 황당, 두려움, 걱정으로 다가올때는
여행이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당황과 황당,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여러가지 이다.
그게 날씨 탓일수도 있고, 전혀 다른 생활 시스템때문일 수도 있다.
때론 음식이 입에 맞지 않거나 화장실이 급한 원초적인 이유일때도 있고,
도통 알수 없는 그들의 역사와 문화라는 고차원적인 문제에 봉착할 수도 있다.
또 어떤 경우엔 우연히 만난 동행이 지랄같은 경우도 있고
어떨 땐 내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정말 최악의 경우도 있다.

 

메사버드 국립공원(Mesa Berde National Park)를 가기 위해

콜로라도주의 코르테즈(Cortez)에 도착한 건 오후 3시 30분 무렵이었다.
북쪽으로 올라와서 날씨는 좀 쌀쌀한 것 같았지만 서쪽 하늘에 해도 제법 남아있어
잘 하면 해지는 메사버드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숙소도 정해놓지 않은 채 바로 메사버드로 향했다.

그동안 늘 찌부둥 하던 캐년 주변의 날씨들과 다르게 여기는 오후 햇살이 강하기까지 했다.
또 아리조나 유타주에서 보던 황량한 들판과 산, 그리고 온통 붉은 바위, 모래의 단일 색깔의 자연과 달리
여기는 키크고 우람한 나무들이 노랗고 빨간 단풍을 물들인 화려한 색깔이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메사버드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한 시간은 정확하게 4시 5분.
아~~ 그런데 공원 출입구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
벌써 퇴근했나?
닫혀진 창문에는 어디가 CLOSE, 또 어디가 CLOSE... 종이만 붙어있다.
불길한 조짐이다.
아니 아직 해도 창창하구만 벌써 문을 닫았단 말이야?
그리고 이제 겨우 10월 하순이구만 무슨 CLOSE가 저리 많단 말이지? 

 

공원내 지도 한장 못받고 안으로 차를 몰아 들어간다.
어디에 뭐가 있다는 것인지, 어디까지 얼마를 가야 한다는 것인지?
내일 아침에 다시 올 계획은 있지만 해지는 메사버드 유적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하는지 도통 알길이 없다.
공원 안은 거의 산골짝길이다.
엄청 올라간다.
그런데 주변 도로에는 눈이 가득하다.
이제 막 눈을 치웠는지 세워놓은 눈 치우는 차들만 중간중간에 보일뿐,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가파른 산길을 운전해 가는데 중간중간에 길이 얼어있기까지 하다.
아랫동네 날씨는 그리 화창하더니만
여기는 산동네라서 그런지 구름이 보이고 으스스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하는 것인가?
당황의 시작이다.  

 

얼마를 달렸을까?
40Km 산길은 달려온 것 같다.
언제 다시 눈이 내릴지도 모르겠고,
날은 어두워 지는 것 같고, 찬바람만 탱탱부는 2000m도 넘는 높은 산.
메사버드 국립공원이 이리 높은 산위에 있는 줄도 몰랐고,
이리 넓은 줄도 몰랐다.
그리고 이리 추운 줄도 몰랐다.
고작 10월 하순인데 이리 많은 눈이 내려있을 줄은 몰랐다.

 

어찌 어찌 도착한 Cliff Palace.
절벽 궁전?

메사버드 하면 대표적으로 보여지던 유적지다.
이곳은 다행이 서쪽으로 나 있어서 마지막 남은 오후 햇살도 들고, 눈도 오지 않았나보다.
가까이 가 보자.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유적지로 내려가는 길목에 철문을 만들어놓고 자물통으로 잠궈두었다.
Seaaon Open 이라나?
지금은 Season이 아니란 말?
황당하다.

이건 내일 와도 마찬가지란 말 아냐?
절벽위의 궁전이 멀찍이 내려다보이는 바위 언덕위에 서서 디립다 사진만 찍는다. 

 

이런 산세는 오만 곳에 다 있더만, 여기가 무신 국립공원씩이나...
괜스레 퉁퉁거린다.
"그러게 오늘 저녁은 일찌감치 숙소에 들어가서 쉬고 내일 아침에 오자고 했잖아.
 저녁 노을이 지는 유적지는 무슨..."
"..."
툴툴거림의 시작이다.
날씨가 추워서 몸이 오그라드니까 마음까지도 잔챙이가 되버린다.

 

조금 더 간다.
차 안에서 내리기도 싫지만 그래도 기왕 왔으니까 보는 시늉이라도 해야겠지?
발코니 하우스란다.
도대체 어디가 발코니 하우스란 말야?
저기 저 벽에 보이는 구멍?
에게~~~

 

아니다.
발코니 하우스는 여기서 안 보인단다.
이쪽 발밑에 있는 모양이다.
트레일이 있는 모양인데?
어이???
이것도 Sesonally Open인데?
4월 초순부터 10월 중순까지?
뭐야? 그렇담 이것도 꽝이란 말인가?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미치겄다.
"그냥 가자... 곧 어두워질건데... 길 얼으면 우짜노?"
"..."
"가자니까... 들어오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잖아. 아까 오던 길에 보니까 나가는 차만 있고 들어오는 차는 없었잖아."
"나갈때는 내가 운전하께."
"누가 운전 갖고 그라나?"
짜증이 묻어나는 두려움이다.

 

그래도 이 사람은 굳이 가는 길에 또 한군데를 더 들른다.
"여기만 딱 더 보고 가자"
"..."


Far View Site란다.
뭣이 파~~ 뷰란 말인가?
뭐 멀리 보이기만 하면 단가?
고작 돌덩어리들만 놓여 있구만...
안으로 들여다보지도 못하게 해놨구만...
눈 내린 땅바닥은 얼어있고, 날씨는 추워서 몸이 덜덜 떨리구만...
파??? 뷰???
냉소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툴툴거리고 퉁퉁거리고 불퉁하고...
돌아 나오는 길은 남편이 운전대를 잡았다.
길이 얼어있거나 말거나 나는 좀 편하다.
40Km가 넘거나 말거나 이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눈 내린 산에 노을지니까 좀 멋있다 그쟈?"
"그래도 콜로라도 주는 색깔이 있어서 좋은데?"
아까 없던 여유를 부리기 시작한다.
남편은 말이 없다.

 

그래?
그러면 나도 당신이 하던 것 처럼 차 안에서 사진이나 찍어볼까?
찰칵, 찰칵...
ㅋㅋ
운전대 위의 네비게이션도 다 찍힌다.
둘이 아무 말도 없다.

 

저 멀리 눈 덮힌 산꼭대기에 맺힌 저녁 노을을 보면서 우리는 이 날 메사버드 국립공원을 빠져나왔다.
원래 계획대로 하자면 그 다음날 아침,
우리는 다시 메사버드 국립공원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데
들어가봐야 10월 하순의 이 날씨에 가까이 가 볼수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데다
당황함과 황당함, 두려움과 짜증, 냉소까지 다 퍼부은 전날의 메사버드를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셨기 때문이다.

 

항상 성공하는 여행만 있는 건 아니다.
아메리칸 네이티브의 유적지 중 가장 화려한 곳이 메사버드 유적지라는데
그래서 누구에게는 감동적으로 다가온 곳이었겠지만
우리 둘에게는 '*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