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20101028 아 참 바람이 좋다, 아 참 햇살이 좋다. 타오스에서

프리 김앤리 2010. 11. 4. 02:50

 

이번에 딱 한장 가지고 나온 김광석CD.
하도 들어서 닳을 지경이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너무 많이 써 하늘은 이미 맑아졌고
어찌나 '일어나 일어나'를 외쳐서 차를 몰고 가면서도 벌떡 벌떡 일어나야 할 판이다.
'먼지가 되라'는 주문에 대자연 앞에 결국 먼지가 되어 사라질 인간으로 겸손에 겸손을 배우고 있다.
음악 CD를 여러장 가지고 왔어야 하는건데...

 

그 중에 사람을 아주 노곤하고 나른하게 만드는 노래가 있다.
  '아~ 참~ 바람이 좋다 싶어 나선 길
   아~ 참~ 햇볕이 좋다 싶어 나선 길에
   ...
   졸리운 오후 나른한 오후
   물끄러미 서서 바라본 하늘'

 

김광석의 '나른한 오후' 꼭 그 노래만큼
아~~~  참~~~ 바람이 좋고
아~~~  참~~~ 햇볕이 좋은
타오스로 들어왔다.

 

딱히 무엇을 해야 할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누군가를 만나야 하고 무엇인가를 봐야하는 것도 아닌
그저 햇볕과 바람을 맞으면서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니는 오후
타오스는 지금 우리와 딱 어울리는 곳이었다.  

 

 

<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 타오스 푸에블로 Taos Pueblo >

뉴멕시코주 산타페에서 1시간 반정도 북쪽으로 차를 몰면 타오스에 갈 수 있다.
여행 가이드 북 론니에는 전통 인디언들의 삶, 아도비 양식을 보려면
산타페보다는 타오스를 더 권하고 있었다.

 

마을의 입구에 있는 비지터 센터에 들른다.
아주 잘 정돈되어 있다.
오늘 하루 동안 시간이 있다고 하니 이곳 저곳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으냐는 질문에
그건 자기들도 모른단다. 당신이 무엇을 하며 어떻게 돌아다니느냐에 따라 달려있단다.
대게 이런 경우 사진만 찍고 빨리 빨리 지나치면 아무것도 아닌 동네가 되고
어슬렁 어슬렁 동네는 기웃거리면 시간이 한정없이 흘러가는 곳인게 대부분이다.
우리는 어디에 해당될까?

 

제일 처음 도착한 곳이 타오스 푸에블로 Taos Pueblo다.

 

1000년도 더 오래된 인디언 마을이다.
나누어준 브로셔에 의하면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이란다.
역시 아도비 양식 건축물이다.

 

창문이 있는 한 칸 한 칸들이 모두 개인 집이다.
층층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독립적이란다.
외부 공격을 막기 위해  아래 위 연결을 막고
윗층으로 올라가려면 모두 사다리를 통해야 한다고 .
적이 침입하면 사다리를 치워버려 공격을 막는다고.

적이 침입하면 스스로를 고립해 버린다는건가?
그렇다면 적이 바깥에서 오랫동안 진을 치고 있는다면?  결국엔?
당시 이 곳을 침입한 군대라면 스페인 군대였을 터...
그들은 고작 사다리 하나로 방어할 수 있었을까?

 

역시 그랬을것이다.
스페인에 의해 무너졌을것이다.
그리고 스페인 선교단에 의해 기독교가 전파되었을 것이고.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산제로니모 교회(San Geronimo Church).
이 마을에 있는 가장 나이어린(?) 건축물이란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만난 성 제로니모 수도원을 여기서 또 만난다.
여행을 많이 다니다보니 역사와 건축물, 성인들 그리고 사람들이 마구 엮이어져 간다.

그런데 참 소박하고 단정하다.

 

여기는 여전히 푸에블로 후손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다.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다정스럽다.

 

집집마다 문 밖이나 마당 한 가운데는 아주 예쁜 동굴같은 걸 하나씩 만들어 두었다.
뭘까?
'HORNO'라는 야외 오븐이란다.
빵이나 패스트리를 구울때 쓰는 화덕이라고...
저기서 구워주는 난이나 하나 먹었으면 좋겠다.


역시 이 동네 사람들은 아시아와 같은 혈통이 맞다.
우리처럼 엉덩이에 몽골반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살고 있는게 맞다.
비현실이 아니라 딱 현실이다.
미국 중간선거 벽보가 붙어 있다.
투표를 하고, 정책을 지지하고, 혹은 바뀌고...
여기도 사람 사는 세상이다.

 

마을 중간을 흐르는 개울가에는 붉은 버드나무들이 하늘거리고.

 

옥수수 콩 하나하나를 떼어내어 색색깔의 염색으로 치렁치렁 목걸이도 만들어 두었다.
어쩐지 인디언 색깔같이 느껴진다.

 

이집 저집....

 

기웃 기웃 거리고...

 

어슬렁 어슬렁...

 

나른한 오후... 졸리운 오후... 

 

어디가서 낮잠이나 잤으면 좋겠다.
햇살이나 한가득 받으면서... 

 

배가 고프다.
산타페를 들어오고 나서 부터는 먹는 것에 신이 났다.
뭔가 우리 입맛에 맞는 것들이 척척 보이기 시작하는...
여기는 뭘 만들어 줄까?

 

Indian Tacos란다.
멕시칸 음식 Tacos는 역시 우리 입맛에 맞다.
밀가루 반죽을 숙성시켜 기름에 튀긴 빵 위에 토마토, 고기, 양파, 고추들을 송송 썰어넣어 치즈를 듬뿍 발라주는...
우리로 치면 피자다.
그런데 하나도  느끼하지 않은...
빵은 안나푸르나에서 먹던 구룽빵, 딱 그거다. 

 

 

<단정하고 정갈한 동네, 타오스> 

타오스의 중심가(?)로 내려왔다.
중심가?
마을을 전부 다 헤집고 걸어다녀봐야 몇시간 걸리지 않을 것 같은 조그만 동네다.
그래도 마을이 제법 높은 곳에 위치해 있나 보다.
마주 보이는 산 위에는 눈이 쌓여있다.

 

조용한 마을이다.

 

똑 같은 아도비 양식의 건축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시끌벅적했던 산타페와는 다르게 여기는 아주 조용하다.

 

그래서 우리 마음은 더 평온하다.
산타페가 이쁜 곳이었다면 여기 타오스는 좋은 곳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산타페라고 표현한다면 타오스는 단정하고 정갈한 곳이다.

 

들뜨지 않고 차분해지는...

 

어떤 수식어가 필요없이 단정한...

 

마을 한가운데 있는 과달루페 성당.
멕시코에 있는 도시 이름 과달루페를 여기서 또 만난다.
멕시코와 스페인이 섞여 있는 인디언 마을이다. 

 

우리는 여전히 이곳 저곳을 기웃거린다.
따스한 햇살과 함께 오후를 느릿느릿 걷는다.

기타 소리와 함께 울려퍼지는 l'Knocking on Heavens door'가 정겹다.

 

 

<성프란시스코 아시스 성당 San Francisco de Asis Church > 

산타페에 있는 산미구엘 성당엘 들어갔을 때 본 책자에서
아주 멋진 성당을 발견했다.
아도비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 저녁 노을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냐는 우리의 질문에 타오스라는 곳을 가르쳐 주었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 론니에서 언뜻 본 지명, 타오스를 그래서 떠올렸다.
원래는 산타페에서 저 아래에 있는 화이트샌드 내셔널 모뉴먼트를 갔다와서
북쪽 콜로라도로 올라가는게 우리 계획이었는데
어쩌면 이 성당 사진 한장에 우리의 일정이 완전히 바뀌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날씨가 너무 추워 눈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는 록키산맥쪽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는지도 모르고...


아주 먼 옛날 인디언들도 따뜻한 곳을 찾아 삶터를 이동했듯이
우리도 따뜻한 곳을 찾아 움직이는 게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덕분에 예정에 없던 아랫동네로의 일정으로 바꾸었다.
타오스라는 마을에 그래서 찾아낸 곳이기도 하고...

 

우리의 일정을 바꾸어 놓았던 성프란스시코 아시스 성당 앞에 섰다.

 

그 많은 서유럽의 성당들,
러시아, 동유럽의 성당들.
예쁘고 멋있고 세련되고 근엄하고 엄숙한 숱한 성당들을 보아왔지만
이 곳처럼 이렇게 다정스럽게 느껴진 성당은 없었다.
흙으로 지어져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전혀 각진 모서리가 없어서 그런 것일까?

 

오길 참 잘했다.

 

흙과 짚과 물로 만들었다는 아도비 벽돌, 그리고 그 위에 외부 마감까지 그 재료로 씌워 놓은 곳.
사실 산타페나 타오스의 일부 집들은 짝퉁들도 많다고 했다.
시멘트로 만들고서는 외부만 흙으로 살짝 발라놓는...
그러나 여기는 진짜다.
흙 사이에 짚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따뜻하다.

 

 

<나른한 햇살의 타오스의 오후 거리> 

다시 느릿느릿... 어슬렁 어슬렁...

 

햇살 가득한 타오스의 거리를 걷는다.  

 

여기서는 빨리 걸으면 안 될것 같았다.
서둘러서도 안된다.

 

타오스의 속도대로 걸어야 한다.
모든 것이 느릿느릿 진행된다.

 

가로수 아래 누워 늦은 햇살을 찍는 사람,
야외 커피점에서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그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
체스를 즐기고 있는 부부,
정지된 화면처럼 우리 눈에 박힌다.  

 

어떤 사람들은 심심해 할지도 모르겠다.
산타페처럼 화려하지도 북적대지도 않으니까.

 

찾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멋진 솜씨의 예술가들도 별로 없고
그들이 차려놓은 멋진 갤러리도, 갤러리 앞의 신나는 마당도 없고...

 

그러나 우리는 이 단순함이 좋다.

 

북적거리지 않는 한산함이 마음에 든다.  

 

정갈함이 좋다.

 

산타페가 이쁜 곳이었다면
타오스는 좋은 곳이었다.
아~~~ 참~~~~ 바람이 좋다~~~~
아~~~ 참~~~~ 햇살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