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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30 역사가 새겨진 바위, 엘 모로(El Moro)

프리 김앤리 2010. 11. 5. 18:31

 

오늘은 El Moro를 간다.
엘 모로는 스페인어로 'The Headland'라는 뜻이다.
해안이나 바다에 높이 솟아있는 땅이라는 뜻이다.
이 곳이 바다는 아니었을건데, 황량하게 아주 넓은 땅을 바다로 비유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래전 이 곳에서 살았던 네이티브 아메리칸 주니(Zuni) 족은 이 곳을 Atsinna 라고 불렀다.
'바위에 글을 새겨둔 곳'이라는 뜻이다.
높이 솟아있는 바위 절벽에 무슨 글을 새겨두었을까?

 

 

<역사가 새겨진 바위> 

그란츠(Grants)에서 53번 도로를 타고 끝도 없이 황량한 벌판을 한참 달려가면
-정확하게 67Km다.-
저 멀리 불현듯 높이 솟아오른 바위 절벽을 만난다.

 

El Moro National Monument다.


미국 여행만 3개월이 다되가니 나름대로 터득한 지혜가 있다.
'National' 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곳은 그 나름대로 다 제 값어치를 한다는 것이다.
'National Park'든 'National Monument'든.

 

원체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이기도 하지만 National이라고 붙은 곳은
우선 차지하고 있는 면적 자체가 장난이 아니다.
처음 우리가 미국 여행을 계획할 때
순전히 대중교통으로 하겠다는 우리들의 야무진 포부에
"아마 불가능할 것"이라는 반응이 있었다.
아니 우리 같은 고수 배낭여행자를 뭘로 보고 대중교통으로 할 수 없다는 말을 하다니...
흥, 어디 두고 봐라. 보란듯이 버스, 지하철, 그리고 튼튼한 두 다리로 미국 땅을 헤집고 다니리라  큰 소리쳤지만
역시 앞서 미국을 다녀간 사람들의 말이 딱 맞다라는 걸 느낀 건
여행을 시작하고 바로 며칠도 안되서였다.
참말로 넓은 곳이었다.
어찌어찌 해서 대중교통으로 국립공원이나 국립 모뉴먼트 근처까지로는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부로 들어서서는 자가용이 없이는 어디 한귀퉁이나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로
참말로 끝도 없이 넓었다.

 

그런데 지도를 보면 엘 모로 내셔널 모뉴먼트가 차지하고 있는 면적은 아주 콩알만하다.
물론 여기서는 콩알만 해도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우리의 국립공원보다 더 크기는 하지만...
콩알만한데 그냥 지나쳐버릴까?
뭐가 있기는 하겠어?
망설이기도 했지만 National 이라는 단어만 믿고 찾아가본다. 

 

그런데 입구의 비지터 센터 직원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슬그머니 호기심이 동한다.
센터에서 상영하고 있는 이곳의 비디오를 보니 더 하다.
사람들의 기록이 새겨진 바위가 있단다.
그 것도 한 시대가 아니라 수백년에 걸쳐서...
그 기록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도 덧붙인다.
아주 오래전 주니족의 그림에서 부터 스페인 정복 시대, 멕시코 지배 시대를 지나
그 이후 미국이 이 땅을 차지하는 그 이후까지.
그리 크지도 않은 절벽의 바위에 역사들이 겹쳐져 기록되어 있는 곳이란다.

 

센터에서 나누어 주는 책자를 하나 들고 바위 탐험을 나선다.
역사를 보러 나선다.

 

'Inscription Rock(글이 새겨진 바위) 트레일은
절벽 바위 사이에 있는 우물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곳에 사람들이 마실 수 있는 우물이 있었기에 역사의 기록장이 될 수 있었단다.
황량한 벌판 한 가운데 이 오아시스가 있어
아주 먼 옛날부터 현대까지 사람들은 이 곳에 살았고,
또 다른 길보다 이 길을 지나갔다고.
주니족들이 다른 부족들과 교역을 위해서도 여기를 지나갔고
스페인 정복 시대에도 멕시코 지배시대에도
또 서부개척 시대의 앵글로 아메리칸들도 이 곳에 캠프를 차렸던 것이다. 

 

주니족들의 기록을 본다.
1200년대 후반의 그림들이란다.
손바닥 모양도 있고 사람의 얼굴도 있다.
동물들의 그림도 있다.
전형적인 고대의 그림들이다.
나눠준 책자에 의하면 현실과 영적인 세계와의 대화였단다.
이 기록들이 현대인의 이후 기록들을 이끌어냈단다. 

 

1692년의 기록도 보이고

 

1709년의 기록도 있다.

 

모두들 스페인 정복시대의 기록들이다.
물론 1500년대의 기록들도 있다.
무슨 무슨 장군과 군대가 '여기를 왔노라'라는 글귀들이다.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점령하던 시절,
코르테즈 1차 팀이 지금의 멕시코 땅인 당시 아즈텍에서 금은으로 막대한 부를 얻자
스페인은 북아메리카 땅도 넘보기 시작한다.
아즈텍처럼 황금의 도시라고 알려진 Cibola를 찾아 북아메리카로의 진군을 시작한다.
스페인 군대가  남부 텍사스로 부터 인디언들이 살고 있는 북쪽 사막지역으로 진출한 것이다.
1540년 프란시스코 장군휘하의 군대는 이 곳까지 진출했다.
1581에는 프란시스코의 형제 로드리게스 군대가,
1598년에는 돈 주앙 데 오나떼 군대가 이 곳을 지나가고 또 점령했다.


그들은 이 곳을 지나갈때 마다
절벽 바위에다 이름과 날짜, 그리고 'paso por aqui(여기 지나가노라)'라는 글귀들을 새겨넣는다.
책으로만 역사가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바위에 당시의 역사가 기록되는 순간들이 된 것이다.

 

어떤 바위에는 그보다 훨씬 이전 시대 사람들의 상형문자와 같은 그림과 함께
그들의 정복사가 아래 위로 같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고,
또 그 한참 이후 1800년대 후반 서부 개척시대 사람들의 기록도 나란히 적혀 있는 경우도 있다.
하나의 화면에 수백년의 역사가 겹쳐져 나타나기도 한다.

 

금은 보화를 찾아 북아메리카 점령을 시도한 스페인 군대들.
그들은 주니족들이 살고 있는 마을과 다른 푸에블로 인디언들의 타운을 점령했지만
그러나 그토록 바랬던 금은 없더란다.
그 곳에는 석조집이나 아도비 양식의 흙집을 짓고 소박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만 있었을 뿐.
함께 노래를 부르고 함께 의식을 치루면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아즈텍이나 잉카에서 재미봤던 금은과 같은 물질적은 '부'는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무형의 부'만 있더란다.
 

스페인 시대, 멕시코 시대를 지나 미국시대를 맞은 이곳.
황금이 난다는 서부를 찾아 떠나는 앵글로 아메리칸들도 이 땅을 지나간다. 
 

그리고 그들도 몇백년간 이어져 온 기록의 현장에 동참한다. 

 

바위에 자신들의 이름을 새기면서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같은 장소에 같은 모습으로 그대로 살고 있는 바위에
한시적으로 잠깐 살고 가는 인간들은 이 바위에 선조들의 글귀 아래위로 자신들의 이름을 새기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낮달을 나란히 띄우고 있는 말없는 바위...

 

엘 모로에서 나눠주는 안내문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우리의 한 뼘 인생에 대해 엘 모로는 영원한 시간을 보여준다.'
한 뼘과 영원.

 

이 곳에 새겨져 있는 사람들의 이름들과, 역사속에 남겨진 사실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놓은 이야기도 많다.
'나 여기 왔다 가노라'라고 거창하게 이름을 써 놓은 어느 장군은 나중에 살해되었고,
또 여기를 왔다간 누구는 시민전쟁때 목숨을 잃었으며
어린 나이에 다른 사람들처럼 이 곳에서 자신의 존재를 새겨 넣은 어떤 소녀는
인디언의 화살에 맞아서 목숨을 잃기도 했단다.

 

누구는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시를 새겨놓기도 하고,
또 누구는 주니족을 치러가면서 한번 새기고
돌아오면서 다시 글귀를 새겨놓기도 한다.
'우리는 주니족을 점령하였지만 그들의 삶터를 고스란히 평화롭게 두고 다시 돌아간다'며
자신들의 군대가 아주 점잖았던 것을 자랑하기도 하고...

 

그러면 후대의 사람들은 또

이 바위에 새겨진 사람들의 삶의 궤적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역사속 사실들을 확인하고 정리하고...

 

재미있는 것도 있다.

 

'몇년 몇월 몇일 어느 장군님이 이끄는 군대가 여기를 지나가다' 라고 새겨놓은 문장 바로 아래
같은 부대의 일원인 듯한 사람이
'나도 여기를 지나가다'라고 살짝 덧붙여 놓은...
ㅋㅋ

모든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니만 지나간 게 아니라 나도 지나간다~~~

 

보물찾기 하듯 바위에 새겨진 글귀 하나하나를 찾아가며 읽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수많은 사람들의 몇백년 세월이 농축된 것을
그 짧은 시간에 돌아보는 것이었으니 어찌 지겨운 시간이었으랴?

 

비지터 센터에서 나눠준 책자를 트레일의 끝에 있는 박스에 다시 넣는다.
이 책자는 수거되어 다시 다음에 오는 사람들에게 나눠준단다.
좋은 시스템이다.


 

 

< 하늘 위를 걷다 > 

바위에 새겨진 글귀들을 보는 트레일을 끝내고
엘 모로의 높은 바위위로 오른다.

 

아주 잘 정돈된 2마일(3.2km) 길이다.

 


높은 바위옆으로 난 길을 따라

 

지그재그로 올라간다.

 

엘 모로가 Headland 라는 뜻이라더니만
바다같이 넓은 황량한 벌판에 정말 바위가 불쑥 튀어나와 있다.

 

거북이 등껍질 같은 나무.
지금껏 이런 나무를 많이 봐왔는데
유독 이 곳에서 저 나무에 눈길이 가는 건
이제 막 수백년 역사의 기록을 보고 올라오는 길이라서 그런가?
이 나무는 이 곳에서 그 기록들을 새기고 있는 사람들을 다 지켜보고 있었을까?

 

바위 꼭대기에 올라선다.
너른 벌판이 다 내려다보인다.

역사를 기록한 바위가 오른쪽으로 보인다.

 

그 바위 위를 걷는다.

 

하늘을 걷는 기분이다.

 

이 꼭대기 바위틈에도 아름드리 나무가 자란다.

 

밑에서 바라볼 때는 그저 높다란 바위 몇개가 불쑥 솟아있는 것 같더니만
위로 올라오니 이 곳도 제법 넓다.

 

완전 흰 색의 바위다.

 

이 곳에도 돌무더기 이정표가 있다.
자연과 참 잘 어울리는 자연산(?) 이정표가 없다면
여기서도 분명 길을 잃을 것이다.
어디가 어딘지,
하늘 위에 있다는 것만 알 뿐, 방향을 모르겠다.

 

다음 돌무더기 이정표를 찾아야만 그 다음 방향을 알겠다.

 

예전에 이 곳은 바다였단다.
한 때는 공룡이 산 시기도 있었고.
그러다 바닥이 융기하여 이렇게 산을 만들었단다.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온 바위산.
공룡들이 떠나간 땅에 이제는 인간들이 둥지를 틀었다.
이 높은 곳에.
1400년경 주니족이 살았던 집터란다.
이 높은 곳에.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은 절벽같은 바위를 어찌 이리 좋아했을꼬?
바위 틈에 집을 짓고, 바위 위에 집을 짓고...
역시 저 아래에 있는 우물때문이었을까?

 

그들이 바위 위로 이렇게 길을 내놓은 덕분에
후손인 우리들이 하늘과 가까운 곳까지 올라올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한참을 이렇게 서있었다. 

 

이제 내려간다.

 

바람을 맞으며 바위산을 내려간다.

 

하늘 길을 내려간다.

 

거대 공룡이 노닐었다는 들판을 바라보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뒤돌아보며 

 

수백년 역사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고마운 바위를 보며...
먼 옛날 사람들이 그들의 미래인 현재의 우리들에게 남겨 준 '기록의 선물'을 받고 떠난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 블로그, 우리 여행의 기록도
'세상 곳곳의  이야기 기록'으로,

어느 미래에 가서는  다른 후손들에게 선물이 될 수 있을까?

 

센터 앞에 놓여있는 방문객을 위한 샘플 바위에

나도 선이라도 하나 그어볼려고 시도를 해본다.
ㅋㅋ
잘 안된다.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ㅋㅋ

 

그냥 블로그 기록이나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