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20101101 낯선 별에서의 행복한 걷기, 화이트샌드

프리 김앤리 2010. 11. 7. 00:30

 

이번 여행, 우리는 참 많이 걷습니다.
요세미티 가을 계곡을 걷고
황량한 데스밸리 언덕을 걸었습니다.
지구 20억년의 역사가 있는 그랜드캐년 협곡 속으로도 걷고
붉은 바위들만 가득한 뜨거운 길도 걸었습니다.
거꾸로 자라는 바위들이 있는 신비한 길도 걷고
먼 옛날 인디언들이 살았던 절벽 집터들 위에서도 우리는 걸었습니다.
화산이 폭발한 검은 바위도 걷고, 역사를 새겨놓은 바위도 걸었습니다.
흙집과 푸른 창문들이 잘 어울리는 산타페의, 타오스의 이쁜 거리 속으로도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곳은 참 낯선 길입니다. 

 

온 세상이 하얗습니다.

 

이 곳은 뉴멕시코주의 화이트샌드 내셔널 모뉴먼트(White Sands National Monument)입니다.
눈이 아닌  모래가 광활하게 쌓여져 있는  흰 모래 사막입니다.

 

끝도 없는 흰 모래 사막.
이정표 없이는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낯선 곳입니다.

 

멀고도 먼 옛날, 2억 5천만년전 이 곳은
아주 크고 얕은 늪이었습니다.
이 늪은 석고질을 포함하고 있었답니다.
석고는 물에 잘 녹는 물질이라 늪의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다른 침전물들이 그 위를 덮어 여러층의 바위가 되어 서서이 굳어갔습니다.

 

세월은 더 흘러 지금으로부터 7천만년전, 콜로라도 고원에  록키산맥이 형성될 때
이 곳의 지형도 위로 솟아올랐습니다.
석고와 침전물로 이루어진 여러 층의 바위도 위로 밀려 올라와 하나의 구릉을 형성하였습니다.

 

다시 세월은 아득하게 흐릅니다.
1천만년 전 이 곳은 지층이 쪼개어지고 움직이는 단층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밀려 올라왔던 구릉의 중심부분은 전체가 가라앉아 분지를 형성합니다.
Tularosa 분지입니다.
가운데는 가라앉고 주변으로는 높은 산맥들이 그대로 솟아 있습니다.

 

다시 세월이 흐릅니다.
비와 눈이 내립니다.
단층으로 노출된 산맥의 암석이 비와 눈으로 씻겨집니다.
산맥이 포함하고 있던 석고질이 Tularosa 분지로 내려옵니다.

 

보통 녹은 석고는 강물에 의해 바다로 흘러 들어가지만
이 곳처럼 산맥으로 둘러싸인 지형에서는 물이 바다로 흘러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석고와 다른 광물들을 씻어 내려온 물은 분지에 그대로 갇힙니다.
바다로 가지 못한 물은 분지의 가장 낮은 지점에서 호수를 형성합니다.

 

또 세월은 흐릅니다.
내리쬐는 뉴멕시코의 태양은 호숫물을 증발시킵니다.
수증기와 함께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석고는 표면에 남습니다.

빙하기도 거칩니다.
분지는 더 큰 호수를 만들어냅니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립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산맥의 암석에서 또 다른 석고들도 녹아내립니다.
다시 태양이 내리쬡니다.
석고는 점점 분지의 바닥에 쌓입니다.

반복되는 세월입니다.

 

호숫물이 증발하고 또 증발하고...
석고는 점점 결정체를 만들어냅니다.
투명 석고가 만들어집니다.
호수 주변을 따라 투명 석고층이 1m도 넘게 지면을 덮습니다.

 

반복되는 시간이 지나면서 비와 바람과 눈은
석고층을 얼리고 녹이고, 얼리고 녹이고, 또 다시 젖게도 합니다.

 

결국 자연은  석고층을 얼리고 녹이면서 
석고들을 바람으로도 날려 버릴 수 있는 모래알 크기로 잘게 부스러뜨립니다.

 

산맥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부는 강풍은 이제 잘게 부숴진 석고 알갱이를 서북쪽으로 날리고
모래가 된 석고 알갱이들은 둔덕을 형성합니다.

 

바람이 불어가는 쪽으로 모래언덕을 만듭니다.

 

석고로 만들어진 언덕은 이제 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약하게 만드는 바람막이의 역할을 합니다.
그에 따라 모래 언덕의 표면에는 바람이 불어가는 방향대로 물결무늬를 만들어 냅니다. 

 

석고는 아주 연한 광물질입니다.
잘게 부숴진 석고 알갱이들은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흩날립니다.
아주 약한 바람에도 둔덕의 사선을 따라 흰 모래 알갱이들이 나풀거립니다.

 

지금 우리는 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온통 하얀 세상.
지금까지의 여행이 그랬던 것 처럼
우리는 자연의 깊은 속을 걷고 있습니다.
낯설지만 배워가면서 걸어가고 있습니다.

 

화이트샌드에는 몇가지의 트레일 길이 있습니다.
Dune Life 트레일(1.6Km),  Interdune BoardWalk(0.4Km), 그리고 7.2Km의  Alkali Flat 트레일도 있습니다.
우리가 선택한 길은 당연히 가장 긴 알카리 프렛 트레일입니다.
흰 모래 사막을 마음껏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걷다가 걷다가 피곤하면
가방까지 다 내려놓고 모래 바닥에 풀썩 주저앉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는 이 길,
물결무늬 모래 속에 이름 모를 풀 한그루가 반깁니다.

 

아직도 다 부숴지지 않은 나름 견고한 석고 바위들도 만납니다.
아니 어쩌면 물기를 머금은 석고 알갱이들이 다시 뭉치고 있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온통 흰 세상에 이정표만이 색깔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표시를 따라 다시 되돌아갑니다. 

 

♪♪♪♪...  "We're walking in the air...

              We're surfing in the air. 
              We're swimming in the frozen sky..." ♪♪♪♪...

 

걸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언제부터인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습니다.


We're walking in the air...
우리 블로그의 배경 음악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정말 지금 하늘을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늘에서 파도를 타고, 수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노랫말 그대로 달밤을 떠다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구별이 아닌 어느 다른 별인 것 같습니다.

우리말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낯선 사막에 혼자 떨어져 길을 헤매고 있는 어린 왕자를 만날지도 모를 일입니다.

 

We're walking in the air...

 

마침내 우리 차를 세워둔 곳까지 되돌아 나옵니다.

 

저 멀리 다른 둔덕에 사람들이 보입니다.
오늘 처음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모래 사막을 걸어오는 사람들...
낯선 별을 걷고 있는 사람들...

 

 

<아이들의 놀이터, 화이트샌드> 

낯선 별에서 다시 지구로 돌아왔나 봅니다.
이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깔깔깔 웃는 소리도 들립니다.

사람들은 공원 내에 만들어져 있는 피크닉 Area에 차를 세워 놓고
모래 언덕을 오릅니다.
그리고 신나게 미끄럼을 탑니다.

 

서서 타고, 앉아서 타고, 누워서 타고...

깔깔깔 웃음 넘치는 놀이터입니다.

 

아이,어른 모두의 놀이터입니다.

 

 

<해지는 무렵에....  > 

사실 우리는 화이트샌드를 두번 갔었습니다.
전날 해질녁에 한번 가고... 다음날 아침에도 또 가고...
해지는 화이트샌드를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저녁에도 아이들은 모래 미끄럼을 타고 있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우리도 맨발로 언덕을 오릅니다. 

 

해지는 화이트 샌드를 담으려는 사진 작가도 보입니다.

우리 눈에는 그가 담겨있는 화이트 샌드가 더 멋집니다.
그의 어깨 너머로 굴곡진 화이트 샌드의 둔덕들이 그의 걸음과 절묘한 선을 이룹니다.

 

맞은 편 모래 언덕에도 한쌍의 연인이 마주 섰습니다.
푸른 하늘은 더 푸르게, 하얀 모래 사막은 더 하얗게 빛나는 시간입니다.

 

빛나는 흰 모래 사막에 섭니다.

 

손 안에 가득 들어온 모래.
그러나 주루룩 흘러내립니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었답니다.
이런 세상이 있었답니다.

 

작가는 해지는 노을을 담습니다.
노을을 담은 화이트샌드를 자신의 필름에 남깁니다.

 

붉은 노을과 하얀 모래 언덕을 담습니다.

 

바람이 불어옵니다.
모래가 날립니다.
오늘 이 저녁이 지나고 나면 새로운 모래 언덕이 만들어질지도 모릅니다.

 

밤이면 이 곳에 살고 있는 작은 동물들이 밤 마실을 나온다고 합니다.
그들의 발자국을 새겨놓는다고 합니다.

 

아무 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무 것도 이 곳에 남겨놓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걷는 이 길, 발자국만 남깁니다.

 

그러나 우리의 발자국도 오늘 저녁 부는 바람에 다 씻겨져 없어져 버릴 것입니다.

 

우리의 기억만 가져갈 것입니다.
반짝 반짝 빛나는 흰 모래 언덕의 행복한 시간만 가져갈 것입니다.

 

어느 낯선 별에 떨어져 헤매다 가는 여운만 가져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