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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2 황제 선인장들이 모여 사는 곳, 사와로 국립공원

프리 김앤리 2010. 11. 9. 16:32

미국 아리조나 주의 상징은 키 큰 선인장이다.
아리조나 주의 자동차 번호판 한쪽에도 이 키 큰 선인장이 그려져 있다.

 

얼마나 큰지...
내 키 몇 배를 넘는다.

 

하얀 모래 사막, 뉴멕시코주의 화이트샌드 내셔널 모뉴먼트를 떠난 우리들이 찾은 곳은
멕시코 국경과 거의 맞붙어 있는 텍사스 주의 엘 파소(El Paso)였다.
텍사스 주를 가려던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멕시코 국경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는데...
렌트한 차의 엔진오일이 다 됐다는 신호를 보내온 거다.
사실 렌트한 지 사흘만에 엔진오일 교체 싸인이 들어와서 플래그스태프에서 렌터카 회사를 찾아갔는데
2000마일은 더 가도 된다고, 걱정하지 말고 타고 다니라고 했다.
그런데 그새 2000마일을 다 달려버린거다.
2000마일, 우리로 치자면 3200km다.

벌써 그 여유도 다 써버렸다.
참, 많이도 돌아다녔나 보다.


화이트샌드가 있는 Alamogordo에서 가장 가까운 '허츠'를 찾으니 텍사스주에 있는 엘 파소다.
그래, 국경까지 한번 가보자.
멕시코하고 딱 붙어 있는 미국 끝의 모습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하고,
어차피 엔진오일도 교환해야 하니까...

그런데 마치 별나라 같았던, 아주 조용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절대적 고요함 속에 있다가
도착한 엘 파소는 우리를 바보로 만들어 놓는 것 같았다.
어리버리 어리버리...
문명도 없는 시골에 살던 바보들을 번쩍거리는 도시에 갖다 놓았다고 할까?
자동차가 핑핑 날아다니고, 색색깔의 간판들이 눈을 휘둥그레 만들어놓고
갈팡질팡 어리버리 어리둥절, 온갖 바보 표정을 다 한 뒤에
겨우 차를 바꿔서 재빨리 엘파소를 다시 탈출했다.
(렌터카 회사에서 엔진오일을 갈아주는 게 아니고 아예 차를 바꿔줬다.)
멕시코 국경하고 딱 붙어 있는 도시고 뭐고, 늦은 저녁 고속도로를 팽하니 몰아서 도망쳐 나온 곳이 투산이었다.

ㅋㅋ
그러나 투산(Tucson)도 마찬가지.
이 곳도 대도시다.
가자, 자연이 있는 곳으로 가자.
산이 있고 바위가 있고 나무가 있는 곳으로 다시 가자.

 

그렇게 다시 찾아낸 자연이 투산 바로 근처에 있는 사와로 국립공원(Saguaro National Park)이었다.

 

사와로(Saguaro)는 선인장 중의 황제 선인장이다.

 

마치 사람 모양처럼 생긴 키 큰 선인장.

 

팔이 이쪽 저쪽으로 뻗어 있는 듯한,
만화영화에 사람으로 많이 등장하는 귀여운(?) 선인장.

 

물이 아주 적은 극한 환경 속에서도 하늘 높이 뻗어있어 감사하고 장엄한 풍경인데
이상하게도 사와로를 보고 있는 우리들은 자꾸 웃음이 나온다.
선인장의 주변으로 마치 웃음을 유발하는 뭔가의 화학물질(천연물질?)이 분비되는 듯이
자꾸 빙그레 웃음이 나오고 기분이 좋아진다.
만화영화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사와로 국립공원은 아리조나의 큰 도시 투산을 중심으로
동서 두군데로 나누어져 있다.
우리는 그 중에서 서쪽 사와로 국립공원을 찾았다.

 

사와로 국립공원 비지터 센터 앞에도
키 큰 사와로들이 잘 크고 있다.

 

센터 안의 직원들은 공원을 방문한 우리들에게
아주 상세하게 공원 안을 돌아다닐 수 있는 트레일 길을 설명해 준다.
듣고 있는 모습들은 아주 심각하지만
이미 밖에서 멀대같이 키 큰 녀석들을 보면서 지나온 터라
사실은 계속 실실 웃어대고 있었다.
자꾸 웃음이 나왔다.

 

어떤 녀석은 혼자 곱게 크고 있는 놈도 있고,
또 어떤 녀석은 옆으로 가지 친 새끼들을 곱게 같이 하늘로 키워 올린 놈도 있고,

 

또 어떤 집안 자식들은 어미 옆에 붙어 곱게 안 자라고
자꾸 옆으로 삐져 나갈려고 용을 쓰는 새끼들도 있다.
삐쭉삐쭉 비틀어지기도 했다.
재밌다.

 

가만 보면 어떤 녀석은 가운데 손가락만 치켜 세우며 '*큐' 욕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이 녀석들이!!!

 

.........

 

한참 늦둥이를 본 집안도 있고,
자식새끼들 먹여 살리느라고 어미는 바짝 마른 불쌍한 선인장도 있다.
부모도 자식도 모두들 토실토실 하늘을 향해 잘 커서
다른 집안에서 보면 '자식 농사 참 잘 한 집'으로 부러움을 사고 있는 집도 있고,
또 그와는 다르게 어느 한 자식 제대로 크는 놈 없이 모두들 비틀어지고 말라버리고
하늘과는 등지고 땅으로 꺼지고 있는 자식들만 있는 집안도 있다.

 

참말로 가지가지다. 천태만상이다.
이 넓은 공원안에 이 많은 사와로들 중 똑 같이 생긴 것이 하나도 없다.
인간 세상과 같다.

 

부모 옆에 독립해서 혼자서 무럭무럭 잘 크는 녀석들도 있고.

 

한 그루의 사와로는 평생 175년에서 200년 정도 산다.
그 긴(?) 세월을 살아가면서 평생 4천만개 정도의 씨를 만들어 바람에 날려 땅으로 뿌려댄단다.
한번에 일만개 정도씩.
그러나 수백만개의 씨 중에 살아남아 독립된 개체로 크는 녀석은 몇개 되지 않는다.
재수가 좋아 씨가 뿌려진 주위에 다른 식물들이나 바위들에게 도움을 받는 녀석들만 살아남는다.
다른 식물이나 바위들은 강한 햇살을 막아주는 그늘을 만들어주거나
아니면 추운 겨울을 견디게 할 수 있는 보호막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때로는 새나 다람쥐등 다른 동물들의 먹이가 되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다.

 


이 곳에 내리는비는 1년에 고작 12인치 정도.
여름과 겨울에 잠깐씩 비가 내리는 것을 제외하면 몇달동안 한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극한 환경속에서도 살아남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자라나는 녀석들이 사와로다.
햇살도 추위도 견뎌내고, 배고픈 동물들로부터 살아남은 한톨 씨도
1년이 지나봐야 고작 6mm 정도 밖에 자라지 않는단다.
15년 정도 커야 겨우 18Cm 정도?
75년 정도가 지나야 겨우 첫번째 가지를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적어도 자식새끼라고 달고 있는 녀석들은 70살은 넘은 고령들이다.
'녀석'들이라고 하지 말아야겠다.
나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아오신 분들한테... 감히...

 

100년이 지나면 7m까지 자란다고.
100년!!!
150년 200년 정도까지 살아가면서 주변에 다른 식물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높이까지
쭉쭉 뻗어나가며 살아가는 것이다.

 

노을지는 사와로 국립공원을 오른다.

 

황제 선인장으로 불리우는 사와로를 눈에 담는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키 큰 선인장, 사와로.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듯이
몇개의 선만을 가진 단순한 외형으로도 수십억 인구의 다양한 개성을 떠올리게 만든,
그래서 우리를 한없이 즐겁게 재미있게 웃음짓게 만든 사와로.

 

홀로 외로이 서있어서... 한쪽 가지를 잘리운 슬픔을 가진 사와로도 있어서...

 

사람과 닮아서 더 친근한 사와로.

 

사와로 국립공원은

국경도시 엘파소에서 '북적거림때문에 혼을 다 빼앗긴 시골 바보 둘'에게

정말로 딱 어울리는 마음 편안한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