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사는 이야기

프리 김앤리 2011. 4. 26. 10:57

내 어린날에는 비가 오면 길거리는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특히 친구들과 함께 하는 하교길이 가장 절호의 찬스다. 

너무 뚱뚱한 가로수는 젬병.

약간 날씬한 나무가 안성맞춤이었고, 파란 이파리까지 무성하다면 그건 완전 금상첨화다.

 

"얘들아!!! 오늘도 우리들의 놀이를 시작해볼까?"

우리들 중의 한 명이 나무에 가까이 간다.

비를 잔뜩 머금고 있는 날씬한 나무둥치를 발로 힘껏 찬다.  

그와 동시에 잽싸게 나무밑에서 벗어나 도망쳐 나와야 한다. 

한발이라도 늦으면 그 친구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뭉텅비를 고스란히 다 맞아야 한다.

살금살금... 툭! 후다닥.

뚱뚱한 나무는 어린 우리들이 아무리 힘껏 차봐야 그다지 미동도 하지 않는다.

가녀린 나무를 세차게 차고 재빨리 돌아나와 우두둑 떨어지는 비를 만나는게 훨씬 더 재미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가로수 둥치를 발로 차고 도망치고, 왕창 비맞고 다시 달리고...

 

한명씩 돌아가며 놀이를 하는 동안 우산은 어느새 우리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다.

빨리 도망을 못나와 와장창 비를 맞기도 했고,

허둥대다 쭉 미끄러져 옷을 버리기도 해서 작은 우산 하나 따위는 오히려 귀찮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쫄딱 비맞은 새앙쥐꼴의 서로가 너무 우스워 온 거리가 떠나가도록 깔깔깔 웃어댔다.

 

집으로 돌아왔을때는 교복이고 가방이고 몽땅 다 비에 젖어 엄마의 잔소리만 남아있었지만

그 때 그 순간의 즐거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지금도 비만 오면 깔깔거리던 그 친구의 웃음소리, 맑은 얼굴의 친구들을 추억한다.

 

그런데 이제는 비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즐거운 놀이감이 아니고 두려움의 대상이다.

비 떨어지는 유리창만 그저 바라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