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사는 이야기

미안, 다시 만날수 있다면 네 이름을 기억할께

프리 김앤리 2011. 4. 13. 17:52

 

<부끄러운 추억, 리지앙의 당신>

이름이 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노트 한귀퉁이를 북 찢어 메일 주소도 적어줬었는데...

어느 순간에 그 종이쪼가리는 없어져버렸다.

하여튼 '순이' 비슷한 이름이었던 것 정도의 기억만 남아있을 뿐...

 

~~~순이씨.

미안해요.

2년이 다 지난 이제서야 당신을 떠올렸습니다.

히말라야의 한 자락, 차마고도의 설산이 감싸고 있는 리지앙엘 다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입니다.

이번 봄의 어느 날이든, 여름의 휴가철이든 주변의 몇몇과 함께 가볍게 떠날 수 있는 괜찮은 곳을 찾는 중이었습니다.

중국이라는 단어가 가져다주는 이웃이라는 가까움,  히말라야 · 차마고도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아득한 그리움,

압도하는 경치에 야외 오페라라는 문화적 만족감까지... 리지앙보다 더 좋은 곳은 없으리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이것 저것 자료를 뒤지는데 2년전 그 봄에 만난 당신이 떠오르는 겁니다.

 

리지앙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바로 장예모 감독의 인상 리지앙 티켓을 구하려고 했지요.

영어는 거의 안통했습니다.

공식적으로 있다는 관광안내소에서도, 곳곳에 있는 사설 여행사에서도.

중국 말이라고는 '니하오'하고 '쎼쎼'밖에 몰랐던 우리는 인상 리지앙의 '인상'을 뭐라고 발음해야 하는지도 모를때였습니다.

안내소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가르키고 손가락으로 네모를 그리며 티켓을 이야기 하는 그런 식이었지요.

그런데 불쑥 당신이 나타난 겁니다.

그렇다고 당신의 영어가 유창한 건 아니었지요.

우리의 영어도 여행지에서 먹고 자는 문제를 겨우 해결하는 한두살짜리 정도 수준이었으니

서로에게는 딱 맞았지요.

당신의 첫마디는 '인상 리지앙이 표가 모두 다 팔렸다'거였고, 

'며칠간의 시간을 주면 우리 표 두장 정도는 구해보겠다'라는 거였습니다.

우리는  당장에 당신을 의심했습니다.

중국 사람들의 문화예술적 취향이 그리 높지 않을 것이라는 까닭모를 중국 비하에

며칠이 걸리면 구할 수 있는 표가 지금 당장은 없다는 것이 가격을 높이기 위한 수법 정도로 생각했던 거지요.

첫눈에 느꼈던 순수한 미소나 순박한 표정보다는 '촌스럽기까지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을 보면

당신을 통 못 믿었던게지요.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당신을 믿지 않은들 무슨 뾰족한 수가 있었겠습니까?

다른 곳은 어떤 다른 말도 통하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호도협 트레킹과 샹그릴라(중띠엔) 까지 갔다 오기로 하고 나흘 후의 표를 부탁했었더랬지요.

티켓 값이 엄청나게 비쌌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 비싼 표에 다시 꼭 그만큼의 문화재 유적보호비까지 더  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페라의 야외무대가 히말라야의 한 자락인 옥룡설산에서 한다고 말입니다.

하여튼  Made in China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불신을 하고 있던 시절이라 모조리 다 의심이 갔었지요.

그래도 또 어쩌겠습니까?

 

며칠 뒤, 호도협 트레킹과 티벳땅의 초입인 샹그릴라까지 다녀온 우리는 당신을 찾으러 갔습니다.

표 두장을 구해놓으셨다고 했습니다.

겨우 구했다는 공치사도 놓치지 않으셨습니다.

'치~~ 뭘, 힘들었겠어?'

나는 당신을 의심하는 데 단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한마디 덧붙이더군요.

  지금 표는 없다. 내일 공연장 입구에 가서 준다. 거기에 내가 가서 받아야한다.

  그리고 공연장 입구까지 당신들은 그냥 갈 수 없다. 차가 필요하다. 차를 대절해야 한다.

  마침 내 친구가 차를 한대 가지고 있는데 내일은 그 차를 몰아줄수 있다.

  차비는 얼마다....

순간 짜증이 팍 나더군요. 보러가야하나 말아야 하나까지 주저했다니까요?

한가지씩 한가지씩 자꾸만 무슨 이유를 붙여 돈이 올라간다 싶었습니다.

당신 친구 차를 불러 당신이 굳이 따라간다는 것이 더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또 어쩌겠습니까?

리지앙엘 꼭 가고싶다고 생각했던 큰 이유가 장예모 감독의 인상 리지앙이었던 걸요.

 

다음 날 아침, 공연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당신은 꽃분홍색의 화사한 옷으로 한껏 멋을 부리고 나타났지요.

그 전까지는 소수민족, 나시족의 전통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마치 봄소풍 가듯이 예쁘게 단장하고 약간 들뜬 얼굴로 나타난 당신을 본 나는

예쁘다고 느끼기 보다는

고작 우리 둘의 표를 팔기 위해 하루 일도 다 제치고 나올수 있는 걸 보면

남겨먹어도 엄청 남겨먹을 것이라는 의심밖에 안들었습니다.

 

공연장인 옥룡설산까지 가는 길에 당신은 서툰 영어로 오페라 자랑을 했었지요.

  얼마나 감동적인줄 아느냐, 눈물이 나더라, 리지앙의 자랑이다, 등등.

  '흥, 아무리 그런 노가리를 까봐라. 내 말이 안통하니 그냥 참는다.'

 

한참을 달렸습니다.

아주 한참을 달렸습니다.

끝내주게 잘 닦여진 도로를 한시간도 더 넘어 달려가는데 대중교통이라고는 한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거 장난이 아닌데???  이 친구가 데려다 주지 않았으면 이 먼길을 어떻게 왔을까?'

옥룡설산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진짜 문화재 유적 보호비를 내야 했고, 가격도 당신이 말한 딱 그 가격이었지요.

  '어~~ 가격을 속인 건 아니네?' 

공연장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이른 아침 공연이었는데 사람들은 벌써 발디딜틈 없이 많이 와있습니다.

  '어~~ 진짜 우리 표 구하기 힘들었겠구나.'

당신은 티켓 부스에서 표 두장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 기다란 줄 제일 뒤에 서서 말입니다. 

우리가 서야할 줄을 대신 서 준거지요.

티켓에 찍혀 나온 가격도 당신이 말한 그대로였습니다.

입구까지 친절하게 안내한 당신은 우리를 안으로 들여보내며 

공연이 마치는 시간에 바로 여기서 기다리겠노라고 재미있게 보고 오라셨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순간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둔적이 없는 나는 얼마나 부끄럽던지요.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막 더듬었던 기억도 납니다.

당신의 눈을 똑바로 보지도 못했던 것도 같습니다.

 

인상 리지앙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한국에서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습니다.

당신이 말한 그대로 저는 공연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지요.

윈난성에서 기르고 따서 말린 찻잎과 히말라야를 넘어 먼 땅의 소금을 바꾸러 떠나던 길, 차마고도 이야기

험준한 자연과 싸우며 살아온 소수민족들의 삶이 무대 뒷 배경의 눈덮힌 산과 함께 나를 감동시켰습니다.

그리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당신이 바로 이들의 후손이라는 사실도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당신을 의심한 알량한 한국 여행자,

자연과 더불어 천년을 살아온 순박한 사람들의 순수한 도움을 의심한 부끄러움...

 

"저요, 공연 보면서 당신이 말한 것 처럼 울었어요. 굉장히 감동적이었어요."

"그래요?  고마워요. 우리나라 공연을 보고 이렇게 감동할 수 있다니... 당신에게 제가 더 고마운걸요."

그 때서야 저는 처음으로 당신에게 제 마음을 내보이며 이야기를 했었지요.

부끄러움과 고마움을 고스란히 다 안은 채 말입니다.

 

리지앙까지 다시 돌아가는 그 먼길,

당신은 노트의 한 귀퉁이를 쭉 찢어서 당신 이름과 메일 주소를 적어주셨어요.

다음에 오면 자기를 꼭 다시 찾아달라고,

혹시 한국에서 다른 친구들이 리지앙에 오면 당신을 소개시켜달라고.

반드시 그러마고 약속을 했었는데...

일년을 계획하고 떠난 우리의 세계 여행에서 당신은 너무 일찍 만난 친구였습니다.

우리들은 당시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모를 여행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던 여행 초반이었습니다.

여행의 제일 처음 국가였던 중국을 떠날 무렵쯤에는 우리는 벌써 당신을 잊어버렸던겁니다.

당신이 찢어준 노트 쪼가리와 함께...

 

미안해요.

요 며칠동안 리지앙 자료를 찾으면서 당신이 얼마나 그립던지요.

당신의 메일 주소를 알고 있다면  지금 당장 메일을 보내

혹시 리지앙엘 다시 간다면 오페라 티켓을 또 구해줄 수 있는지

다시 우리를 옥룡설산까지 데려다줄수 있는지 단박에 물어볼텐데 말입니다.

아니 이번에는 당신의 친절을 아무 의심없이 정말 고마워하면서 따뜻하게 받아들일건데 말이지요.

 

보고 싶습니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 아래 눈덮힌 산과 함께

불빛 아롱거리던 리지앙의 고성과 함께

꽃분홍 화사한 당신이 무척 보고 싶습니다.

 

인상 리지앙 공연의 일부.

우리 똑딱이 카메라 동영상으로 찍은 거다.

여행 2년째에 카메라를 바꿨지만 일년동안은 손바닥보다 더 작은 카메라 하나로 버텼다.

그래도 도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일깨워주는 필름이다.

 

☞인상 리지앙 관람기 ( 2009년 3월 21일) http://blog.daum.net/freeleeandkim/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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