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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그라드의 추억

프리 김앤리 2011. 3. 25. 11:12

 

 

일본 지진 이야기 와중에도 뉴스의 한 쪽에서는 연일, 다국적군의 리비아 공습 소식이 들려온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가 중심이 되어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에 크루즈 미사일을 퍼붓고

NATO는 카다피 정권에게 제공되는 불법 무기와 용병을 차단하기 위해 해상봉쇄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른바 작전명 '오딧세이의 새벽'이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자국민을 협박하는 독재자를 그냥 둘수는 없었다'며 민주주의의 화신처럼 등장했다.

맞다.

자국민을 협박하지 않는다는가?

더구나 독재자라지 않는가?

 

40년이 넘도록 긴 세월, 권력의 정점에 서 있었던 카다피.

60년대 말 리비아의 왕정을 몰아내고 미국, 영국등 외세를 물리치고

아랍식 사회주의를 건설하는데 온 힘을 다 쏟았던 당시의 혁명 영웅, 카다피는 이제 없었다.  

광기어린 희번덕거리는 눈빛으로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국민들에게 친위대를 조직해 공격을 명령하는 지도자.

그는 '미친 늙은이'로 전락해 있음이 분명했다.

 

세계가 들썩거렸다.

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고, 리비아 국민들을 위한 인도주의의 입장에 서겠다고.

미국, 영국, 프랑스가 선봉에 서서 다국적군을 조직하고

카다피가 살고 있는 트리폴리에 미사일을 쏟아 부었다.  

무모한 독재자 하나를 잡겠다고, 독재자 아래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겠다고

그 사람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도시 전체를 폭격하고 있단다.

하늘을 나는 전투기 소리, 어디선가 들리는 폭발음,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불안감,

도시를 가득 메운 연기, 아이들의 울음소리, 흔들리는 눈빛들의 사람들...

하늘에서는 연합군들의 폭격기가 떨어지고

땅에서는 카다피 군이 다국적군을 향해 쏘아대는 대공화기...

이제 이 전쟁은 카다피의 잘못인가? 카다피 잡겠다고 나서는 다국적군의 잘못인가?

 

쓰나미가 몰려와 집들이 다 쓸려 내려가는 일본을 보고 있는 것이나

폭발음과 연기, 전투기와 대공화기에서 뿜어내는 화염의 리비아를 상상하는 것이나

내게는 어디서든 사람들의 울부짖음만 아른거릴 뿐이었다.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가 생각났다.

태어나서 생전 처음 가보는 옛 유고연방의 한 나라.

그래서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부터 호기심보다는 두려움이 더 많았던 곳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베오그라드'라는 단어는 언제고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

공습이니 침공이니 하는 무시무시한 단어와 조합되어 항상 한 셋트로 각인되어 있었다.

 

베오그라드가 어떤 곳인가?

코소보에서 잔인한 폭력을 휘두르고 있던 세르비아에 대한 경고로

북대서양조약기구라는 NATO군이 연일 폭탄을 퍼부은 곳이다.

나토군은 1999년 3월 24일 공습을 시작해 78일동안 베오그라드를 죽음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공격의 목표는 당시의 학정자 밀로세비치를 잡기 위한 것였다지만

공습의 결과 어린이 89명을 포함해 민간인 2천5백명이 사망했고 부상자도 1만 2천 5백명을 넘었다.

건물이 부숴지고 도시가 폐허가 된 것은 말할수도 없을것이다.

이웃 나라 코소보의 평화와 인권을 위해 폭격을 했다지만

세르비아에서도 역시 평화와 인권은 다 빼앗겨버린 시간이었다. 

과연 누구를 위한 공습이었는지...

 

베오그라드 거리 군데군데에서 폭격으로 다 부숴진 건물을 만날수 있었다.

잊지 말자고, 나토의 공격이 어땠는지 잊어서는 안된다고 10년이 지난 그 때까지도

그들은 흉칙한 건물을 그대로 두고 있었다.

며칠전 리비아에서도 다국적군의 폭격으로 부숴진 건물을 보여주며

서방기자들에게 촬영을 허락했다는 소식이다.  

인도주의라는 명목으로 진행되는 또다른 폭력이

12년이 지금, 오늘의  리비아에서도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이웃나라 코소보에 폭력을 행사한 세르비아의 일부 집단(밀로세비치를 비롯한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이나

국민들의 민주주의 열망을 짓밟은 리비아의 일부 집단 (카다피와 그의 친위부대)을

잡고 싶었던게 맞았던가 하는 의문도 생긴다.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두려움에 절망한다.

 

☞ 여기서 잠깐!!! 20세기 지구촌의 화약고였던 발칸반도의 이야기와 베오그라드 여행기 

http://blog.daum.net/freeleeandkim/453

 

리비아의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나는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를 생각한다.

 

누군가는 가족을 잃은 슬픔에 몸서리 쳤을 

또 누군가는 집터가 다 부숴지는 절망에 몸을 떨었을 것 같은 사람들.

그들의 공포를 함께 떠올렸다.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던 두려움의 긴 터널을 벗어나

살아있는 사람들끼리 다시 평화로움을 맞고 있는 그 거리를 떠올렸다.

한편으로는 저들중에도 코소보에서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이 있는 것 아닌가하며

의문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고,

평생을 선하게 살아오다가 어쩌면 터무니없이 고통을 당했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푸틴 러시아 전 총리가 그랬단다.

다국적군의 리비아에 대한 군사행동에 대해 유엔 안보리가 결의한 것은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특정 지역으로 가서 누구를 해방시키라고 촉구한 중세 십자군 원정 때의 호소문을 연상시킨다"고.

 

누가 누구를 해방시킨단 말인가?

정작 그 도시에서 오손도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쏙 빼놓고  

독재와 민주주의, 인도주의와 외세 개입, 결국엔 석유에 대한 이권과 아랍지역에서의 영향력 확대라는

정치 공학만이 난무하는 이 전쟁이 무슨 해방을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베오그라드 성에서 우리를 향해 손짓을 하고 있던 아름다운 청년들. 그들을 다시 보고 싶은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