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쌩하니 자전거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프리 김앤리 2011. 1. 1. 17:54

 

 

 

2011년 새해의 첫날,  쌩하니 자전거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위의 사진은 물론  제가 아닙니다.

재작년- 벌써 재작년 이야기가 되어버렸군요-

2009년 스위스를 여행할때 융프라우 꼭대기에서 만난 자전거 탄 사람들입니다.

빨간 스위스 기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내려오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만 해도 스스로 장하다고 생각하며 걷고 있는 우리들을

쌩하니  앞질러 저 높은 산을 내려가면서 우리를 완전 기죽였던 사람들 사진입니다.

 

자전거는 남의 이야기인줄 알았습니다.

어릴적 어슬프게 자전거를 타다 꼬랑에 한번 쳐박힌 이후로는

자전거만 봐도 공포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 시절 어느 일요일 아침, 공부를 핑계대고 첫새벽에 집을 나와 찾아간 해운대에서

친구들은 자전거를 타자고 했었습니다.

"나는 자전거 못타는데..."

망설이고 있는 나에게 친구들은 의외라는 듯, 자전거를 왜 못타냐고 그냥 쓰윽 타면 된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 몫까지 자전거를 빌려 억지로 태웠습니다.

그냥 자전거 바퀴에 발을 굴리기만 하면 된다고 바닥을 보지 말고 앞만 보고 발 한번 저어보라고

그리고 걔들은 내 앞을 쌩하니 달려가버렸습니다.

하는 수 없이 자전거에 얹은 발을 쓰윽 굴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내 자전거가 앞으로 나가는 겁니다.

비틀비틀 거렸지만  무사히 한시간동안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돌아가 공부는 커녕 피곤해서 하루종일 잠만 자다 돌아왔습니다.

그걸로 고등학교 시절의 자전거 운전은 끝.

대학을 다니는 동안은 자전거를 탈 기회도 없었고, 떠올린 적도 없습니다.

무얼 하는지 그리 바빴다는 핑계외에는 다른 어떤 변명거리도 없는.

연애시절 경주 보문단지에서 자전거를 한번 탄 적이 있습니다.

자전거를 탈줄 모른다는 말을 하는게 자존심 상해서

어거지로 자전거를 빌려 호수 주변을 한시간 정도 비틀비틀 거리며 탔지만

연애시절 누구나 그렇듯 연약해보이는 여자에 대해 한없이 너그럽거나 아니면 괜한 보호본능까지 불러 일으켰던

생각해보면 아주 그럴싸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시 그걸로 땡.

결혼을 하고 나서 자전거를 좋아하는 남편은 나를 무수히 꼬셨지만 

여고시절의 흥겹고 아름다웠던 해운대의 자전거 운전보다는

더 어릴적 꼬랑에 박혀 버린 내 몰골이 먼저 떠올라 망설였지요.

그제서야 '꼬랑의 전설'을 들먹이며 나한테 함부레 자전거 이야기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더랬지요.

이후 남편은 프랑스 파리의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거의 조르다시피 했습니다.
이 정원에는 차도 없고, 길도 아주 편평하고 더구나 꼬랑은 절대 없다며 자전거를 다시  한번 타보자고.
그냥 발만 쓰윽 저으면 된다고...
좋습디다.
아주 좋았습니다.
걸어서는 가보지 못하는, 베르사이유 궁전을 가로지르는 조그만 땡땡이 기차를 타도 가보지 못하는
숲길을 자전거로 다니는 상쾌함이란.
나를 공포스럽게 만드는 꼬랑도 없고...
그러나 다시 그걸로 땡이었습니다.
한국의 거리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처음 혼자 떠난 캐나다 배낭여행.
에드먼튼에서 역시 혼자 떠나온 또래의 여자애를 만났습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전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 같다며
자전거를 하루종일 빌려 이 동네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는게 어떻겠냐는 그 친구의 꼬심에
이번엔 별로 망설이지 않고 자전거를 빌렸습니다.
자전거를 평생 몇번밖에 타지 못했다며 걱정이 된다고 미리 말은 했었습니다.
그런데 호기있게 자전거를 타자고 먼저 제안한 그 애는 
결국 그날  공원 한 귀퉁이에서 넘어져 무릎도 다 까지고 손바닥에 피까지 흘렸는데 저는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다시 수년이 흘러 이번엔 재작년 아일랜드의 킬라니를 여행했을때 나의 자전거 역사가 다시 이어졌습니다.
하루종일 자전거를 빌려 킬라니를 돌아다녔습니다.
물론 약간의 언덕길만 나와도 무조건 자전거에서 내려 밀고 올라가야해서
걷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었지만 괜찮았습니다.
그리고는 끝.

여행에서라면 한번씩 모를까, 내가 한국에서 자전거를 탈거라는 건 단 한번도 상상조차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가 며칠전부터 자전거를 타고 있습니다.
백화점 경품이래나 뭐래나, 시누이가 받아 모셔놓고 있는 자전거를 남편은 기어이 우리집으로 얻어오더니만
지난 연말 생일때
-남편과 나는 생일이 며칠사이로 나란히 있습니다-
작은 언니네를 꼬셔서 또 한대의 자전거를 마련했습니다.
두다리가 튼튼해야 나머지 우리 인생을 건강하게 살수 있다며,
언젠가는 또다시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려면 지금부터라도 튼튼한 두다리 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비좁은 현관 입구에 떡하니 두대씩이나 자전거를 만들어 둔겁니다.
여행가느라고 차도 팔아버려서 이동수단은 오로지 두 다리밖에 없다는 신념으로 살려고 했는데
네 바퀴의 자동차는 없어지고 이제 두 바퀴의 자전거가 눈 앞에서 왔다갔다 하는 겁니다.
에라이 모르겠다.
자전거 역사라고 해봐야 대여섯번밖에 안되는 내가 자전거에 올라앉았습니다.
첫날은 해운대 언저리에서, 다음날은 해운대 바닷가에서 수영까지, 그리고 다음날은 수영강변을 지나 반송 입구까지
또 하루는 온천천까지...
제 속도를 줄여가며 건널목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남편 덕에 제법 멀리까지 진출하는 호기를 부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2011년 새해의 첫날.
드디어 저 혼자서 해운대 신시가지 장산역에서 출발하여 해운대 바닷가를 지나 수영강도 지나고 반송 입구까지
쌩하니 자전거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올해는 어떻게 살아보겠다고 이것저것 다짐하곤 하던걸 안하고 산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예전에 같은 학교에 근무했던 선생님이 보내온
"쌤, 새로운 삶이 펼쳐지는 2011년 행복하세요"라는 문자메세지를 보고 후다닥 자전거를 몰고 나갔습니다.
선생님이었던 시절, 그리고 2년간의 긴 여행시절까지 다 끝내고 새롭게 맞이한 새로운 한 해
비틀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던 자전거 운전, 누군가가 돌봐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길에 나서지도 못했던
두려움을 접으며 새로운 한해를 시작합니다. 

자전거를 탄다고 해도 여전히 핸들을 두 손으로 꽉 쥐고서야 겨우 안심하는,

여전히 약간의 비탈만 나오면 얼른 내려서 밀고 올라가는 미숙 덩어리에 두려움의 연속이지만

이 나이에도 새로움에 가슴이 떨리며, 배워야 하는 여러가지들이 남아있으며

세상만사에 두려움이 있다는 것도 괜찮다는 믿음을 가져봅니다. 
어떤 시간들로 다가올지는 모르지만 겸손하게 한 해를 시작합니다.
감당할 수 없이 벅찬 대자연 앞에서 배웠던 인간의 겸손을 실천하는 한해로 시작합니다.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